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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원바안
제12회 82.스페인월드컵축구대회 -본선조별예선- (6. 13 ~ 7. 11)
개최국 스페인은 세계최고의 프로리그를 가진 국가답게 대회 준비에도 대대적인 힘을 쏟았다. 1975년에 조직위원회를 발족시킨 스페인은 14개 도시에 17개 경기장을 건설. 개수하고, 교통, 숙박시설의 정비 등에 거국적으로 힘을 쏟았다.
FIFA는 1978년 총회에서 스페인 대회부터 본선진출국 수를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리는데 성공했다. 이는 제3대륙의 축구발전과 함께 월드컵의 더 큰 흥행을 위해서였다. 24개국이 본선에서 경기를 함으로써 경기수를 늘리고 관중들에게 좀 더 흥미있는 경기를 보이고자 생각해 낸 것이다.
본선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면서 대회 경기일정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종전 4개조에 4개팀씩 편성했던 거와는 달리 이번대회는 6개조의 4개팀이 예선을 치뤄 각조 1,2위 12개국이 다시 2차리그에서 4개조에 3개팀씩 나뉘어 경기를 치룬뒤 각조 1위 4개국이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루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50개국 추정인구 5억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펠리페 황태자가 호스트가 되어 조추첨이 이루어졌다. 본선진출국 수가 늘어나면서 시드를 배정받는 국가도 4개국에서 6개국으로 늘어났다. 전대회 우승국은 아르헨티나와 개최국 스페인이 시드를 배정받은 가운데 월드컵 3회우승의 빛나는 브라질과 2차례 월드컵을 제패한 유럽의 두 양대 산맥 서독과 이탈리아 역시 시드를 배정받았다.
나머지 1장의 시드를 놓고 프랑스와 벨기에, 잉글랜드가 경합을 벌였는데 마지막 시드는 잉글랜드에게 배정됐다. 프랑스와 벨기에는 2회연속 본선진출에 실패한 잉글랜드에 시드를 배정하는 건 부당하다며 항의했지만 대회장인 빌바오가 영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무역항이라 관중동원에 유리하다는 점이 우선시됐다. 그 어느때보다 치열했던 지역예선을 걸쳐 살아남은 24개국의 제12회 82.스페인월드컵 조편성은 다음과 같았다.
1조 : 이탈리아, 폴란드, 페루, 카메룬
2조 : 서독, 알제리, 칠레, 오스트리아
3조 : 아르헨티나, 벨기에, 헝가리, 엘살바도르
4조 : 잉글랜드,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쿠웨이트
5조 : 스페인, 온두라스,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
6조 : 브라질,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 1조 예선(이탈리아, 폴란드, 페루, 카메룬)
1982년 6월 14일 비고 발라이도스 스타디움 관중:33000
이탈리아[1무] 0 - 0 폴란드[1무]
이탈리아는 이번대회 시드를 배정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시드국가들에 비해 다소 평가는 낮았다. 2년전 자국에서 열렸던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스페인, 벨기에와 잇딴 무승부로 졸전끝에 결승진출에 실패하며 4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대표팀 성적은 극도로 부진했을 뿐만 아니라 4년 전 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스트라이커 로시가 마피아가 연루된 승부조작에 휘말려 3년간(후에 2년으로 단축)의 출전정지 처분을 받았다. 로시는 이번대회 대표팀 엔트리에는 포함됐지만 경기력 적응에서 문제를 들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득점력 빈곤에다가 전통적인 카타네치오 수비가 번번히 뚫리면서 이번대회를 앞두고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선수와 가족의 보호를 위해 군을 출동시킬 용의가 있다는 성명 발표까지 할 정도로 이탈리아 대표팀 전력은 약해보였다.
본선 첫경기에서 이탈리아는 폴란드를 맞아 고질적인 득점력빈곤을 들어내며 득점없이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나마 빗장수비로 버텨낸 덕이였다. 어째든 시드를 받은 이탈리아로써는 전혀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체 첫경기를 마쳤다.
1982년 6월 15일 라 코루냐 리아조르 스타디움 관중:11000
페루[1무] 0 - 0 카메룬[1무]
아프리카의 검은 사자라고 불리는 카메룬은 이번대회 처녀참가했다. 지역예선에서 과거 월드컵 경험이 있었던 강적 자이르와 모로코를 꺽고 출전해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카메룬이 본선에 진출하는 날은 공휴일이 됐다.
카메룬은 우승도박률이 2,000배였지만 아프리카 역사상 최고의 골기퍼라고 불리는 느코노와 프랑스리그에서 활약하는 로저 밀라가 포진되 있었다. 착실한 성장으로 실력을 검증받은 카메룬은 예선 첫 경기에서 전대회 2차리그 진출국 페루와 0:0으로 비기는 건투를 보였다.카메룬은 이경기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은 경기력을 펼치며 아프리카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1982년 6월 18일 비고 발라이도스 스타디움 관중:25000
이탈리아[2무] 1 (1-0) 1 페루[2무]
16. 브루노 콩티(이탈리아) 전반 18분
15. 토리비오 디아즈(페루) 후반 38분
폴란드와 접전끝에 무승부를 거둔 이탈리아는 두 번째 경기에서 난적 페루를 만났다. 페루는 첫 경기에서 처녀출전국 카메룬과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4년전 전력에 비해 많이 처져 있었다. 공격수 쿠비야스는 노쇄화로 득점찬스를 살려내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전반 18분 콩티가 선취골을 터트리며 먼저 앞서나갔다. 후반 들어 수비를 더욱 더 철저하게 걸어잠그며 수비에 중점을 둔 경기를 펼친 이탈리아는 종료 7분전 페루 디아즈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1:1 무승부
다잡은 승리를 놓친 이탈리아는 2무를 기록. 자칫 잘못하면 탈락할 수도 있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1982년 6월 19일 라 코루냐 리아조르 스타디움 관중:19000
폴란드[2무] 0 - 0 카메룬[2무]
1차전 페루와 경기에서 선전을 펼친 카메룬은 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맞았다. 페루와 비기긴 했지만 폴란드는 비기기도 버거운 상대로 여겨졌다. 그러나 명골기퍼 느코노의 멋진 선방과 로저 밀라를 앞세운 공격진은 폴란드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나갔다.
치열한 접전은 결국 득점없이 무승부를 끝났다. 폴란드와 카메룬 두 팀 모두 2경기에서 무득점에 2무승부를 기록. 남은 한경기에 운명을 걸수 밖에 없게 됐다.
1982년 6월 22일 라 코루냐 리아조르 스타디움 관중:25000
폴란드[1승2무] 5 (0-0) 1 페루[2무1패]
11. 블로디미에즈 스몰라레크(폴란드) 후반 10분
16. 그제고르즈 라토(폴란드) 후반 13분
20. 즈비그니웨 보니에크(폴란드) 후반 16분
13. 안드레야 분콜(폴란드) 후반 23분
15. 블로디미에즈 치올레크(폴란드) 후반 31분
19. 구일레르모 라 로사(페루) 후반 38분
두 팀 모두 지면 끝장이였다. 볼 것두 없이 예선탈락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1조의 4팀 모두 2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이 조에 속한 팀들의 운명은 모두 지면 탈락하는 넉다운 토너먼트제를 연상시켰다.
양 팀의 입장을 반영하듯 전반은 치열한 접전끝에 득점없이 마친체 맞은 후반전. 선취골은 바로 2차리그 진출을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였다. 그리고 후반 10분 마침내 스몰라레크가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이 선제골이 이후 페루는 급속도로 무너졌다. 후반에만 5골을 내주며 5:1로 참패당한 것이다. 폴란드는 라토, 보니에크, 분콜, 치올레크의 소나기골로 라로사에 한골을 만회한 페루를 대파했다.
페루는 지난 4년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도 2차리그 마지막 아르헨티나전에서 탈락한 이후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었다.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폴란드는 귀중한 이날의 승리로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페루는 남은 이탈리아-카메룬전과 관계없이 지난 1회대회 이후 62년만에 예선탈락이라는 쓴잔을 들었다.
1982년 6월 23일 비고 발라이도스 스타디움 관중:20000
이탈리아[3무] 1 (0-0) 1 카메룬[3무]
19. 프란시스코 그라지아니(이탈리아) 후반 15분
8. 그레고이레 음 비다(카메룬) 후반 16분
앞선 경기에서 폴란드가 페루를 대파.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이탈리아는 카메룬과 비겨도 다득점으로 올라갈 수 있는 조금은 안정된 상황이 됐다. 하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시드배정 국가가 예선에서 3무를 기록하고 2차리그에 진출하는 것도 망신이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축구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카메룬 역시 페루와의 무승부이후 폴란드와도 무승부를 기록하는 잇딴 선전으로 이탈리아전에서도 승리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선취골은 역시 이탈리아가 먼저 뽑아냈다. 후반 15분 그라지아니의 발끝에게 선제골이 터졌지만 카메룬은 곧바로 1분뒤 음 비다가 동점골로 응수했다. 카메룬은 역전골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철저한 수비중심으로 나온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를 열지 못하고 결국 1:1로 비겼다.
이탈리아는 천신만고끝에 카메룬에 다득점에 앞서 가까스로 2차리그에 진출했다. 카메룬은 비록 탈락했지만 세계축구의 중심인 이탈리아, 폴란드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치며 무승부를 기록. 아프리카 축구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편 이 경기는 이탈리아 자국신문이 승부조작의 의의를 제기했다. 이탈리아가 카메룬에게 10만달러를 주고 비겨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였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 베아르조트 감독은 "모두 날조된 얘기이며 우리팀이 전력이 더 월등했고 선취골까지 기록했는데 한수 아래 카메룬에게 뇌물을 주고 비겨달라는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며 사실을 부인했다.
1조 최종순위
1. 폴란드 1승2무0패 5득점 1실점 +4 승점 4
2. 이탈리아 0승3무0패 2득점 2실점 0 승점 3
3. 카메룬 0승3무0패 1득점 1실점 0 승점 3
4. 페루 0승2무1패 2득점 6실점 -4 승점 2
폴란드, 이탈리아 2차리그진출!
☆ 2조 예선(서독, 알제리, 칠레, 오스트리아)
1982년 6월 16일 기존 엘 몰리논 스타디움 관중:42000
서독[1패] 1 (0-0) 2 알제리[1승]
11. 라다흐 마제르(알제리) 후반 9분
11. 칼-하인츠 루메니게(서독) 후반 22분
10. 라크다르 벨로우미(알제리) 후반 23분
카메룬과 함께 아프리카에서 처녀 출전한 알제리는 프랑스의 강한 영향을 받아 개인기를 구사하는 축구를 전개하고 있었다. 경기전 서독의 데아발 감독은 "알제리에게 지면 기차를 타고 귀국해 버리겠다"며 승리를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데아발 감독의 생각과는 달리 알제리 축구는 무서웠다. 강적 서독을 맞아 전반 팽팽한 접전을 펼치며 득점없이 마친 것이다. 후반전. 드디어 알제리가 서독에게 먼저 골을 뽑아냈다. 후반 9분 마제르가 선취골을 터트린 것이다. 서독은 당황했고 후반 22분 루메니게가 동점골을 성공시켰지만 곧바로 1분 후 다시 벨로우미에게 결승골을 허용했다.
2:1 알제리의 승리. 대회 최대 이변이였다. 이 경기는 아직까지도 월드컵 4대 미스테리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처녀 출전국 알제리가 본선 첫 승을 월드컵 2회 우승에 빛나는 서독에게 따낸 것이다. 알제리의 맥루피 감독은 알제리 축구 최고의 날이라며 뽐냈고 데아발 감독은 경기 전 자만심에 대한 댓가를 혹톡히 치뤄야 했다.
1982년 6월 17일 오비에도 카를로스 타르티에르 스타디움 관중:22500
칠레[1패] 0 (0-1) 1 오스트리아[1승]
7.발터 샤치너(오스트리아)전반 21분
칠레는 8년만에 다시 본선을 밟았지만 대진운은 썩 좋지 못했다. 유럽의 두 강국인 오스트리아, 서독과 같은 조에 편성됐기 때문이다. 지난 62년 자국에서 열렸던 대회 이후 단 한번도 2회전에 오르지 못했던 칠레는 첫 경기에서 강적 오스트리아와 선전했지만 1:0으로 패했다.
오스트리아는 전반 21분 샤치너의 선취골이 그대로 결승점으로 이어졌다. 첫승을 올린 오스트리아는 깔끔한 출발을 보였다.
1982년 6월 20일 기존 엘 몰리논 스타디움 관중:42000
서독[1승1패] 4 (1-0) 1 칠레[2패]
11. 칼-하인츠 루메니게(서독) 전반 9분, 후반 12분, 후반 21분
13. 우베 레인더스(서독) 후반 36분
11. 구스타보 모스코소(칠레) 후반 45분
알제리에게 당한 충격의 패배는 2차전에서 서독선수들의 정신력을 재무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과거 월드컵에서도 그랬듯이 서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어서는 게르만민족의 후예였다.
칠레를 맞아 전반 9분만에 루메니게의 슛을 칠레 골기퍼가 어이없는 실수로 행운의 선취골을 따낸 서독은 후반 12분 루메니게의 헤딩슛이 골대맞고 안으로 굴절. 두 번째골을 기록하며 사실상 승부를 확정지었다.
21분에는 2:1 패스를 성공받은 루메니게가 골을 성공시키며 헤트트릭을 완성했다. 레인더스는 교체해 들어간지 3분만에 서독의 4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칠레는 종료직전 모스코소가 한골을 만회하는데 그쳤다. 4:1로 승리한 서독은 남은 오스트리아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2차리그진출을 바라보게 됐다.
1982년 6월 21일 오비에도 카를로스 타르티에르 스타디움 관중:22000
알제리[1승1패] 0 (0-0) 2 오스트리아[2승]
7. 발터 샤치너(오스트리아) 후반 10분
9. 요한 크랑클(오스트리아) 후반 22분
서독을 꺽은 알제리의 상승세를 몰아 오스트리아 마저 꺽고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을 테세였다. 서독전의 영광을 다시한번 재현하려던 알제리는 오스트리아를 맞아 전반 0:0으로 비기며 선전했지만 후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10분 샤치너의 선취골에 이어 22분 크랑클의 추가골로 2:0으로 무너졌다.
오스트리아는 2연승을 기록. 남은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수위로 2차리그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알제리는 남은 칠레전을 반드시 이기고 서독과 오스트리아와의 경기결과에 따라 2차리그 진출 여부가 판가름나게 됐다.
1982년 6월 24일 오비에도 카를로스 타르티에르 스타디움 관중:16000
알제리[2승1패] 3 (3-0) 2 칠레[3패]
7. 살라흐 아사드(알제리) 전반 7분, 전반 31분
9. 테드즈 벤사오울라(알제리) 전반 35분
20. 미구엘 네이라(칠레) PK 후반 14분
9. 후안 레텔리에르(칠레) 후반 28분
오스트리아에 패하긴 했지만 서독을 꺽은 실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칠레를 마지막 경기에서 만난 알제리는 초반부터 거세게 밀어붙었다. 전반 7분 아사드의 선제골. 그리고 31분 다시 아사드의 두번째 골과 전반 35분 벤사오울라의 3번째골까지 더해지면서 전반에만 3:0으로 앞선 알제리는 대승을 예고했다.
그러나 후반 들면서 경기의 주도권은 칠레 쪽으로 기울었다. 3전전패로 돌아갈 수 없다는 칠레는 후반 14분 네이라의 페널트킥과 28분 레텔리에르의 연속골로 2:3까지 추격해왔다.
알제리는 남은 시간 1점차를 잘 지켜내며 승리를 거뒀지만 막판까지 분전한 칠레의 선전도 눈부셨다. 알제리는 2승1패로 다음날 오스트리아가 서독과 비겨주기만 해도 2차리그에 올라갈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 됐다.
1982년 6월 25일 기존 엘 몰리논 스타디움 관중:41000
서독[2승1패] 1 (1-0) 0 오스트리아[2승1패]
9. 호스트 후루베시(서독) 전반 10분
전날 알제리의 승리는 서독 선수들에게 심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비겨도 탈락하는 절대위기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독에겐 마지막 상대가 이미 2차리그진출을 확정한 오스트리아였다는 점이 행운으로 다가왔다. 두나라의 이러한 입장은 경기를 묘하게 이끌었다.
전반 10분 서독이 선취골을 넣었음에도 오스트리아는 도무지 반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독 또한 추가득점에 뜻이 없는 듯 공격을 늦추며 경기를 조율해 갔다. 결과의 냉정한 계산으로 의한 것이라지만 알제리에 대한 동정도 한몫해서 스탠드에는 이 재미없는 경기에 야유와 함께 빈 깡통을 던지며 비난이 집중됐다. 결국 경기는 1:0 서독의 승리를 끝났다.
이날의 경기의 뒷 배경에는 오스트리아 선수가 서독 프로리그 소속이라는 점이 있었다. 알제리는 이 경기에 부정이 개입되있다고 FIFA에 제소했지만 기각됐다.
서독은 찜찜한 2차리그 진출을 이루어냈지만 자국 축구팬이 "전 독일의 수치"라고 항의하며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이 경기를 본 프랑스의 히달고 감독은 "노벨 평화상 감"이라며 비아냥거렸다.
2조 최종순위
1. 서독 2승0무1패 6득점 3실점 +3 승점 4
2. 오스트리아 2승0무1패 3득점 1실점 +2 승점 4
3. 알제리 2승0무1패 5득점 5실점 0 승점 4
4. 칠레 0승0무3패 3득점 8실점 -5 승점 0
서독, 오스트리아 2차리그진출!
☆ 3조 예선(아르헨티나, 벨기에, 헝가리, 엘살바도르)
1982년 6월 13일 바르셀로나 캄프 노우 스타디움 (개막전) 관중:95000
아르헨티나[1패] 0 (0-0) 1 벨기에[1승]
9. 에르윈 반덴베르그(벨기에) 후반 17분
스페인 대회 개막전은 전대회 우승국 아르헨티나와 12년간 기나긴 침체기를 겪고 다시 본선에 올라온 벨기에의 대결이였다. 아르헨티나는 2개월 전 잉글랜드와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국민들은 월드컵으로 그 굴욕감을 씻어버리고 싶은 기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 대회 우승멤버와 1979년 일본 세계청소년 대회에서 우승한 젊은 재주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아르헨티나는 이번대회에서도 막강한 전력을 뽐내고 있었다.
벨기에는 역대 5번(30,34,38,54,70) 본선에 오르긴 했지만 2회전 진출은 단 1차례로 하지 못한 유럽축구의 변방이였다. 그러나 이번대회 지역예선은 달랐다. 완벽한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전대회 준우승국 네덜란드를 지역예선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벨기에의 놀랄만한 성장은 본선 첫 경기에서도 강적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꺽을 정도로 무서웠다.후반 17분 반덴베르그가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한편 이대회 중계권을 가지고 있었던 잉글랜드는 포클랜드전쟁으로 앙숙이 된 아르헨티나의 이 개막전 경기대신 골프중계를 대신하는 등 아르헨티나에 대한 거북한 감정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었다.
1982년 6월 15일 엘체 누에보 에스타디오 스타디움 관중:23000
헝가리[1승] 10 (3-0) 1 엘살바도르[1패]
8. 티보르 니일라시(헝가리) 전반 4분, 후반 38분
11. 가보르 포엘로스케이(헝가리) 전반 11분
7. 라스즐로 파제카스(헝가리) 전반 23분, 후반 9분
4. 요세프 토트(헝가리) 후반 5분
14. 루이스 라미레즈(엘살바도르) 후반 19분
10. 라스즐로 키스(헝가리) 후반 24분, 후반 27분
12. 라자르 스젠테스(헝가리) 후반 27분, 후반 31분
4년 전 본선 무대에서 3전전패를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헝가리가 월드컵 역사상 기록적인 일을 만들어냈다. 10:1의 승리. 상대는 북중미 대표 엘살바도르였다. 엘살바도르는 70년멕시코대회에서도 본선에 참가해 3전전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첫 경기에서 헝가리는 6명의 선수가 10골을 합작해내며 월드컵 역사상 한 경기 가장 많은 골을 성공시켰다. 또 54년 스위스 대회에서 한국에게 넣은 9골을 넘는 신기록이였다. 10:1의 이 기록적인 스코어는 아직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스코어차와 한팀이 넣은 가장 많은 골을 넣은 경기로 기록되고 있다. 헝가리는 66년 영국대회 이후 16년만의 본선에서 승리를 맛봤다.
1982년 6월 18일 알리칸테 호세 리코 페레즈 스타디움 관중:32093
아르헨티나[1승1패] 4 (2-0) 1 헝가리[1승1패]
4. 다니엘 베르토니(아르헨티나) 전반 26분
10.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전반 28분, 후반 12분
1. 오스발도 아르딜레스(아르헨티나) 후반 15분
11. 가보르 포엘로스케이(헝가리) 후반 31분
개막전에서 벨기에에 일격을 당하며 위기에 처했던 아르헨티나가 헝가리를 꺽고 한숨을 돌렸다. 엘살바도르를 대파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던 헝가리는 시드 아르헨티나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전반 26분 베르토니의 선제골과 전반 28분과 후반 12분 마라도나의 연속골로 3:0으로 달아났고 아르딜레스의 마무리골을 더해 4:1로 승리했다. 한편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은 마라도나는 축구신동을 세계에 알리는 첫번째 무대가 됐다. 4번째 골을 넣은 아르딜레스는 필드플레이어로써는 보기 듬은 등번호 1번을 달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1982년 6월 19일 엘체 누에보 에스타디오 스타디움 관중:15000
벨기에[2승] 1 (1-0) 0 엘살바도르[2패]
10. 루도 코에크(벨기에) 전반 19분
헝가리전에서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엘살바도르에게 필요한 건 정신력 재무장이였다. 10골을 내주며 완패를 당한 선수들의 좌절감과 경기의 흥미를 잃는 것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상대는 아르헨티나를 꺽고 기세가 올라있는 벨기에였다.
엘살바도르는 철저한 수비중심의 축구를 구사했다. 로드리게스 엘살바도르 감독은 또 기록갱신을 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지만 어쩔도리가 없었다. 수비 중심에도 불구하고 전반 19분 벨기에 코에크에게 먼저 선취골을 내줬다. 이후 간간히 역습으로 찬스를 노려 봤지만 초반 골을 내준 것을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벨기에는 남은 헝가리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수위로 벨기에의 축구역사상 처음으로 2회전 진출을 노려볼 수 있게됐다.
1982년 6월 22일 엘체 누에보 에스타디오 스타디움 관중:37000
벨기에[2승1무] 1 (0-1) 1 헝가리[1승1무1패]
19. 요세프 바르가(헝가리) 전반 27분
21. 알렉산드레 체르냐틴스키(벨기에) 후반 31분
비겨도 올라갈 수 있었지만 벨기에는 왠지 불안했다. 헝가리의 엘살바도르전 대승으로 패할 경우 탈락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부담감은 역시 헝가리도 마찬가지였는데 반드시 이겨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전반 27분 환호성은 헝가리쪽에 먼저 터졌다. 바르가가 먼저 선취골을 따낸 것이다. 이 상태로 경기가 끝난다면 벨기에의 선전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헝가리의 리드가 계속된 후반 31분. 마침내 벨기에의 천금같은 동점골이 터졌다. 체르냐틴스키가 극적인 동점골이자 벨기에의 사상 첫 2회전진출을 확정짓는 골이였다. 1:1 무승부는 곧 헝가리의 탈락을 의미했다.
벨기에는 2승1무로 본선진출 6회째 만에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무패로 2회전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1982년 6월 23일 알리칸테 호세 리코 페레즈 스타디움 관중:32500
아르헨티나[2승1패] 2 (1-0) 0 엘살바도르[3패]
15. 다니엘 파사렐라(아르헨티나) PK 전반 22분
4. 다니엘 베르토니(아르헨티나) 후반 7분
비겨도 탈락하는 아르헨티나였지만 상대가 약체 엘살바도르였다는 점이 안심이 됐다. 헝가리전 대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벨기에와 접전을 펼친 엘살바도르는 그토록 바라던 월드컵 본선 첫 승점을 위해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반드시 이겨야 올라가는 아르헨티나의 절박함은 엘살바도르의 그것보다 더 다급했다.
전반 22분 파사렐라의 페널트킥으로 중압감을 이겨낸 아르헨티나는 후반 7분 베르토니가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2: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2승1패로 벨기에에 이어 조 2위로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포클랜드전쟁 여파와 개막전 벨기에전 패배로 어수선한 가운데 예선을 치룬 아르헨티나는 가까스로 전대회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3조 최종순위
1. 벨기에 2승1무0패 3득점 1실점 +2 승점 5
2. 아르헨티나 2승0무1패 6득점 2실점 +4 승점 4
3. 헝가리 1승1무1패 12득점 6실점 +6 승점 3
4. 엘살바도르 0승0무3패 1득점 13실점 -12 승점 0
벨기에, 아르헨티나 2차리그진출!
☆ 4조 예선(잉글랜드,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쿠웨이트)
1982년 6월 16일 빌바오 산 마메스 스타디움 관중:44172
잉글랜드[1승] 3 (1-1) 1 프랑스[1패]
16. 브리안 롭슨(잉글랜드) 전반 1분, 후반 22분
20. 제라드 솔러(프랑스) 전반 24분
11. 폴 마리너(잉글랜드) 후반 38분
잉글랜드는 2개월 전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대회 불참설까지 나돌았다. 아르헨티나와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거 조차 불쾌해했고 FIFA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번대회 본선진출한 영국 3개협회(잉글랜드,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 대신 루마니아,포르투갈,스웨덴의 대리 출전까지도 염두해 두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기권은 하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시드를 배정받았고 첫 경기에서 58년 대회 이후 역대최강의 전력을 구축했다는 프랑스와 만났다. 프랑스에는 6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 축구의 전설인 쥬스크 퐁텐을 이을만큼 초대형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미쉘 플라티니였다. 이미 그는 대회를 앞두고 조국 프랑스의 월드컵 첫 우승을 안길 존재로 국내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첫경기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잉글랜드의 1:3로 패했다. 경기시작 27초만에 테리 버쳐의 롱 드로잉을 받은 롭슨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왼발 발리슛으로 프랑스 골문을 가랐다.
프랑스는 당황했지만 전반 24분 플라티니의 자로 잰듯한 패스를 받은 제라드 솔러가 골기퍼와 맞서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터트렸다. 전반은 1:1로 마쳤지만 잉글랜드는 후반 22분 승리를 확정짓는 골을 성공시킨다.
트레버 프란시스의 센터링을 받은 롭슨의 헤딩슛이 결승골로 이어졌다. 마리너의 쐐기골까지 더한 잉글랜드는 서전을 기분좋게 승리로 장식했다.
1982년 6월 17일 바야돌리드 호세 조릴라 스타디움 관중:25000
체코슬로바키아[1무] 1 (1-0) 1 쿠웨이트[1무]
8. 안토닌 파넨카(체코슬로바키아) PK 전반 21분
16. 파이살 알 다킬(쿠웨이트) 후반 12분
체코슬로바키아의 첫상대는 아시아의 축구신흥강국 쿠웨이트였다. 쿠웨이트는 오일 달러로 돈을 벌어들여 축구의 많은 투자와 함께 우수감독 영입으로 세계 축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 애써왔다. 국가대표 감독에 파레이라 브라질 출신 감독은 영입하는 등 많은 노력으로 이번대회 지역 예선에서 한국, 뉴질랜드, 중국 같은 강팀들을 잇따라 꺽고 본선무대를 처음 밟았다. 쿠웨이트의 축구와 세계축구의 실력차를 검증해 볼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상대는 강적 체코슬로바키아였다.
체코는 70년 멕시코대회 이후 대회참가는 12년만이였고 62년 칠레대회 준우승 이후로는 월드컵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76년 유럽선수권을 우승했지만 주전들이 많이 노쇄화 되 있었다.
전반 21분 체코는 파넨카의 페널트킥으로 선취점을 얻어냈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후반 분전을 펼치며 12분 알 다킬의 동점골로 1:1로 비기는 건투를 보였다.
1982년 6월 20일 빌바오 산 마메스 스타디움 관중:41123
잉글랜드[2승] 2 (0-0) 0 체코슬로바키아[1무1패]
8. 트레버 프란시스(잉글랜드) 후반 17분
5. 요세프 바르모스(체코슬로바키아) 자책골 후반 21분
프랑스전에서 깔끔한 승리를 거둔 잉글랜드는 2차전에서 체코를 만났다. 체코는 확실한 1승상대였던 쿠웨이트와 비기면서 2차리그 진출에 먹구름이 낀 상태였다. 전반은 득점없이 무승부. 첫 골은 후반 17분 잉글랜드의 프란시스의 의해 터졌다. 4분뒤 어이없는 자책골까지 허용한 체코슬로바키아는 0:2로 패퇘하고 말았다.
잉글랜드는 2연승으로 남은 약체 쿠웨이트전과 무승부를 거둬도 조1위로 2차리그 진출이 유력해졌다.
1982년 6월 21일 바야돌리드 호세 조릴라 스타디움 관중:30043
프랑스[1승1패] 4 (2-0) 1 쿠웨이트[1무1패]
9. 베나드 겡히니(프랑스) 전반 31분
10. 미셀 플라티니(프랑스) 전반 43분
19. 디디에 식스(프랑스) 후반 3분
8. 압둘라 알 불로우시(쿠웨이트) 후반 30분
4. 멕심 보시스(프랑스) 후반 44분
프랑스는 2차전에서 쿠웨이트를 만났다. 전반 31분 베나드 겡히니의 그림같은 프리킥골로 선취점을 올린 프랑스는 전반 43분 플라티니의 추가골에 이어 후반 3분 플라티니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디디에 식스의 추가골로 3:0을 앞서나갔다. 쿠웨이트도 후반 30분 알 안바리가 프리킥찬스에서 프랑스선수들이 채 정비되기 전 알 불로우시에게 정확한 패스로 연결해줬고 골기퍼와 1:1 찬스에서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 후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월드컵 역사상 전대미문의 득점 취소 헤프닝이 연출된 것이다. 원인은 후반 35분 프랑스 기레세의 네번째 골이 터졌 나왔을때 부터다.
쿠웨이트의 알 타라볼시 골기퍼는 관중들의 호각소리를 주심의 호각소리로 착각해 경기를 중단했고 이 틈에 기레세의 골이 터졌다는 것이다. 양 팀이 호식각신 하는 동안 경기는 7분간 중단됐고 귀빈석이 있는 쿠웨이트의 축구협회장 파하드 왕자는 선수들에게 그라운드 철수명령을 내렸다.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주심은 다시 판정을 번복해 노골을 선언했고 그러자 이번엔 프랑스 측에서 항의가 벌어졌다.
결국 프랑스는 후반막판 보시스의 골로 4:1로 승리했지만 FIFA의 권위의 먹칠을 한 이 소련인 주심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으며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다. 쿠웨이트는 벌금 2만5천프랑을 물어야했다.
1982년 6월 24일 바야돌리드 호세 조릴라 스타디움 관중:28000
프랑스[1승1무1패] 1 (0-0) 1 체코슬로바키아[2무1패]
19. 디디에 식스(프랑스) 후반 21분
8. 안토닌 파넨카(체코슬로바키아) PK 후반 39분
프랑스는 남은 잉글랜드와 쿠웨이트전에서 잉글랜드가 패하지만 않는다면 체코와 비겨도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였다. 체코는 이겨도 2골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2차리그 진출이 가능한 상태였다.
프랑스는 부담없이 후반 21분 식스가 먼저 선제골을 터트렸다. 2골차로 이겨야하는 체코가 남은 시간 3골을 넣는다는 건 무리였다. 후반 39분 프랑스 보시스의 반칙으로 가까스로 파넨카의 페널트킥으로 동점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프랑스는 1승1무1패로 사실상 2차리그진출을 확정지었다. 프랑스가 본선 2회전에 오른 것은 58년 대회 이후 24년만의 일이였다.
1982년 6월 25일 빌바오 산 마메스 스타디움 관중:39700
잉글랜드[3승] 1 (1-0) 0 쿠웨이트[1무2패]
8. 트레버 프란시스(잉글랜드) 전반 27분
마지막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만난 잉글랜드는 이미 마음은 2차리그에 가 있었다. 전날 프랑스와 체코가 비기면서 이미 조1위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전반 27분 프란시스가 선취골을 터트리며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쿠웨이트는 본선 1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는 축구종가 잉글랜드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쉽게 1점차로 무릎을 꿇었다. 쿠웨이트는 비록 첫 대회에서 탈락의 쓴맛을 봤지만 체코와 비기고 잉글랜드와 접전을 펼치는 등 중동축구가 세계축구와 가까이 할 수 있는 게기를 만들었다.
4조 최종순위
1. 잉글랜드 3승0무0패 6득점 1실점 +5 승점 6
2. 프랑스 1승1무1패 6득점 5실점 +1 승점 3.
3. 체코슬로바키아 0승2무1패 2득점 4실점 -2 승점 2
4. 쿠웨이트 0승1무2패 2득점 6실점 -4 승점 1
잉글랜드, 프랑스 2차리그진출!
☆ 5조 예선(스페인, 온두라스, 유고슬라비아, 북아일랜드)
1982년 6월 16일 발렌시아 루이스 카사노바 스타디움 관중:49562
스페인[1무] 1 (0-1) 1 온두라스[1무]
15. 헥토르 젤라야(온두라스) 전반 7분
11. 로페즈 우파르테(스페인) PK 후반 20분
스페인 역대월드컵 본선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고의 프로리그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지역갈등으로 인해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대표팀 차출에 계속해서 방해물이 되어왔다.
이 결과 스페인은 50년 브라질대회 4위 이후 3번(62,66,78)의 본선무대에서 예선탈락의 고배를 들어야했다.
그럼에도 이번대회를 개최한 스페인은 개최국의 체면을 걸고 팀 강화에 노력해 왔다. 또한 홈에서 매우 강한 스페인 팀의 특성상 국민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50%가 차지하고 있는 카탈루냐 지역의 국민들은 대표팀을 신뢰하지 않았다.
스페인은 개최국으로 시드를 배정받아 유고, 북아일랜드, 온두라스 같은 비교적 손쉬운 상대들과 예선 5조에 속했다. 첫 경기는 온두라스와의 경기였다. 발렌시아에서 열린 이 경기에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국기를 흔드는 많은 관중들 사이에 조국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조직위원회 명예회장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소피아 왕비 펠리페 황태자도 모습을 보였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성원은 오히려 스페인 선수들의 부담으로 작용되고 말았다. 첫 경기에서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온두라스와 졸전끝에 1:1로 비긴 것이다.
전반 7분만에 온두라스 젤리야에게 선취골을 내주며 시종일관 끌려다니던 스페인은 후반 20분 가까스로 로페즈의 페널트킥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불안한 스페인의 출발은 월드컵 역사상 첫 개최국 탈락이라는 위기가 스페인 전역에 드리워졌다.
1982년 6월 17일 사라고사 라 로마레다 스타디움 관중:25000
유고슬라비아[1무] 0 - 0 북아일랜드[1무]
1980년 영국 선수권 대회에서 66년만의 우승을 장식한 북아일랜드가 24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모습을 나타냈다. 북아일랜드는 58년 스웨덴대회 8강진출이후 긴 침체기를 걸친 끝에 2번째로 본선에 진출했다.
실력이 꽤 열약해 보였던 북아일랜드는 본선 첫 경기에서 8년만에 본선에 올라온 유고슬라비아와 득점없이 비겼다. 북아일랜드 선수들은 월드컵 같은 큰대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지만 영국 축구 특유의 힘과 조직력을 앞세워 강적 유고와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1982년 6월 20일 발렌시아 루이스 카사노바 스타디움 관중:48000
스페인[1승1무] 2 (1-1) 1 유고슬라비아[1무1패]
3. 이반 구델리(유고슬라비아) 전반 10분
7. 후아니토(스페인) PK 전반 14분
15. 사우라(스페인) 후반 21분
첫 경기에서 온두라스와 비기면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스페인은 유고슬라비아와의 2번째 경기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반 10분만에 유고 구델리에게 선취골을 허용하는 등 불안한 모습은 여전했다.
스페인 전반 14분 페널트킥으로 간신히 동점을 이루어냈는데 그나마 이것도 주심이 스페인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데 비롯된 것이다.
불필요한 페널트킥 선언과 실패하면 다시 차도록하는 등 개최국에 유리한 판정으로 스페인은 힘겹게 1승을 거둘 수 있었다.
스페인은 후아니토의 페널트킥과 후반 21분 교체해 들어간지 3분만에 결승골을 터트리며 맹활약한 사우라의 결승골로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귀중한 승리를 거뒀다.
1982년 6월 21일 사라고사 라 로마레다 스타디움 관중:15000
온두라스[2무] 1 (0-1) 1 북아일랜드[2무]
9. 게럴드 암스트롱(북아일랜드) 전반 9분
7. 에두아르도 라잉(온두라스) 후반 15분
개최국 스페인에게 후반 중반까지 앞서며 선전을 펼친 온두라스와 북아일랜드가 2차전에서 격돌했다. 객관적 전력상으로는 북아일랜드가 한수 앞서 있었지만 온두라스 역시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저력으로 충분히 통할 수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북아일랜드는 전반 9분만에 스트라이커 암스트롱의 선제골로 전반을 1:0으로 앞섰지만 온두라스는 후반 15분 라잉의 동점골로 양팀은 무승부를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이 무승부로 인해 개최국 스페인의 2차리그진출은 한결 더 수월하게 됐다.
1982년 6월 24일 사라고사 라 로마레다 스타디움 관중:25000
온두라스[2무1패] 0 (0-0) 1 유고슬라비아[1승1무1패]
7.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유고슬라비아) PK 후반 43분
온두라스는 이기면 2차리그진출이 확정이였다. 유고슬라비아 역시 반드시 온두라스를 꺽고 남은 북아일랜드-스페인 경기결과에 따라 2차리그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다.
온두라스는 심리적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반 내내 수비의 중점을 둔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결과는 패배였다. 종료 2분전 유고에게 페널트킥을 허용한 것이다. 온두라스 선수들은 강력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페트로비치가 침착히 골을 성공시켰다. 1:0 유고의 승리
유고는 승점 3점을 확보하며 남은 스페인과 북아일랜드전에서 스페인이 이겨주길 바라고 있었다.
온두라스는 스마소 고르도바 대통령이 2차리그에 진출하면 한사람당 1만달러의 보너스를 약속하며 선수들을 격려했지만 결국 예선탈락의 고배를 들었다. 이날의 패배로 너무나 비통해한 한 축구팬은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그러나 어째든 처녀출전해 스페인,북아일랜드와 비기는 건투를 보인 온두라스는 귀국 후 국민들에 대환영을 받았다.
1982년 6월 25일 발렌시아 루이스 카사노바 스타디움 관중:49562
북아일랜드[1승2무] 1 (0-0) 0 스페인[1승1무1패]
9. 게럴드 암스트롱(북아일랜드) 후반 2분
스페인은 비겨도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였지만 왠지 불안했다. 개최국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고 유고슬라비아전에서도 힘겹게 심판의 도움 덕에 1승을 올렸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는 강한 팀은 아니였지만 쉽게 지지않는 특유의 근성을 보이고 있었다. 스페인은 우승확률 1,000분의 1이라는 이 팀에게도 졸전 끝에 0:1로 패했다. 후반 2분 북아일랜드 암스트롱이 결승골이 북아일랜드를 2차리그 진출으로 이끌었다.
스페인은 천신만고끝에 유고슬라비아에 다득점에 앞서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월드컵 최초 개최국 탈락의 불명예스러운 사태는 간신히 면했다. 그러나 2차리그에 진출 할 정도의 실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 국민들에게는 더 큰 실망감으로 남았다.
5조 최종순위
1. 북아일랜드 1승2무0패 2득점 1실점 +1 승점 4
2. 스페인 1승1무1패 3득점 3실점 0 승점 3
3. 유고슬라비아 1승1무1패 2득점 2실점 0 승점 3
4. 온두라스 0승2무1패 2득점 3실점 -1 승점 2
북아일랜드, 스페인 2차리그진출!
☆ 6조 예선(브라질,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
1982년 6월 14일 세비야 산체스 피주안 스타디움 관중:68000
브라질[1승] 2 (0-1) 1 소련[1패]
12. 안드레이 발(소련) 전반 34분
8. 소크라테스(브라질) 후반 30분
11. 에데르(브라질) 후반 43분
브라질은 이번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 중 한팀이였다. 출발 역시 지난 두번의 대회와는 달리 첫승을 올리며 좋은 경기를 펼쳤다. 브라질은 스피드와 기교가 풍부하고, 삼바의 리듬을 탄 축구로 1977,1981,1982년 남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 지코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 파르칸, 토니뇨 세레조의 미드필드는 황금의 4중주로 극찬을 받을 정도였다.
본선 첫경기 상대는 소련이였다. 소련은 야신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난 1970년 멕시코대회를 끝으로 12년만에 다시 본선무대에 올랐다. 전반은 소련이 34분 발의 선취골로 1:0으로 앞섰지만 브라질은 후반 30분 소크라테스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종료 2분전 에데르의 역전골로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뒀다. 모처럼 본선 무대에서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끈 브라질은 강력한 우승후보의 명성을 이어갔다.
1982년 6월 15일 말라가 라 로살레다 스타디움 관중:36000
스코틀랜드[1승] 5 (3-0) 2 뉴질랜드[1패]
8. 케네트 달그리쉬(스코틀랜드) 전반 18분
10. 존 와크(스코틀랜드) 전반 29분, 전반 32분
10. 스티브 섬너(뉴질랜드) 후반 9분
9. 스티브 우딘(뉴질랜드) 후반 19분
11. 존 로버트슨(스코틀랜드) 후반 28분
18. 스티브 아치발드(스코틀랜드) 후반 34분
3회 연속 본선진출에 성공한 스코틀랜드가 본선 첫 경기에서 오세아니아 대표이자 처녀 출전국 뉴질랜드와 만났다. 뉴질랜드는 세계 축구계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힘과 스피드, 체력조건에서는 유럽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신체적인 여건은 좋아보였다.
지역예선에서 호주, 중국을 격파하며 본선에 진출해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세계 축구와 가까워지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스코틀랜드는 전반에만 3골을 몰아치며 3:0으로 앞섰다. 뉴질랜드는 후반 9분과 19분 섬너와 우딘의 연속골로 3:2까지 추격해왔지만 스코틀랜드는 다시 로버트슨과 아치발드의 골로 5:2 승리를 거두며 첫승을 올렸다.
2회연속 예선탈락의 쓴맛을 맛본 스코틀랜드로써는 월드컵 사상 첫 2회전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귀중한 승리였다.
1982년 6월 18일 세비야 베니토 빌라마린 스타디움 관중:47379
브라질[2승] 4 (1-1) 1 스코틀랜드[1승1패]
14. 데이비드 나레이(스코틀랜드) 전반 18분
10. 지코(브라질) 전반 33분
3. 오스카르(브라질) 후반 3분
11. 에데르(브라질) 후반 18분
15. 팔카오(브라질) 후반 42분
우승을 노리는 브라질 앞에 스코틀랜드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선취골을 허용하고도 4:1로 역전승한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먼저 18분 나레이의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브라질 선수들은 전혀 동요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지코가 33분 동점골로 전반을 1:1로 마친 브라질은 후반들어 저력을 발휘하며 3골을 몰아넣었다.
오스카르, 에데르, 팔카오의 연속골로 4:1로 낙승한 브라질은 2연승으로 사실상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1982년 6월 19일 말라가 라 로살레다 스타디움 관중:19000
소련[1승1패] 3 (1-0) 0 뉴질랜드[2패]
9. 유리 가브릴로프(소련) 전반 24분
11. 올레그 블로킨(소련) 후반 3분
5. 세르게이 발타샤(소련) 후반 23분
소련이 12년만에 본선에서 승리를 맛봤다. 그 제물은 뉴질랜드였다. 뉴질랜드는 세계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한 대회였다. 소련은 전반 24분 가브릴로프의 선제골과 후반 3분,23분 블로킨,발타샤의 연속골로 3:0으로 승리했다. 소련은 1승1패를 기록하며 남은 스코틀랜드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남은 2차리그 진출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뉴질랜드는 2패로 탈락이 확정됐다.
1982년 6월 22일 말라가 라 로살레다 스타디움 관중:45000
소련[1승1무1패] 2 (0-1) 2 스코틀랜드[1승1무1패]
15. 조 조르단(스코틀랜드) 전반 15분
3. 알렉산드르 쉬바제(소련) 후반 14분
7. 라마즈 센겔리아(소련) 후반 39분
4. 그람 수네스(스코틀랜드) 후반 41분
브라질이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음으로써 남은 한자리를 놓고 소련과 스코틀랜드가 마지막 경기에서 격돌했다. 소련은 뉴질랜드전 대승으로 비겨도 올라갈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이였다. 스코틀랜드는 브라질전 3골차 패배가 뼈아팠다. 스코틀랜드에게 필요한 건 오직 승리뿐이였다.
그리고 집중력이 빛난 스코틀랜드가 먼저 전반 15분 조르단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전반을 1:0으로 앞섰지만 이제 급한 건 소련쪽이였다.
소련은 수비수까지 공격에 가담해 수비수 쉬바제가 후반 14분 천금같은 동점골을 터트렸다.소련은 다시 수비중심으로 게임을 전개해갖고 이번엔 스코틀랜드가 대공세를 퍼붓었다.
스코틀랜드는 파상공격으로 소련을 압박했지만 후반 39분 소련의 단한번의 역습에 무너지고 말았다. 센겔리아의 역전골이 터진 것이다. 이 골은 사실상 소련을 2차리그로 끌어올린 골이였다. 스코틀랜드는 수비수 수네스가 재동점골을 성공시켜 필사적으로 역전골을 노렸지만 결국 2:2 무승부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소련는 스코틀랜드와 승점에서 동률을 이뤘지만 골득실차에 앞서며 조 2위로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었다. 스코틀랜드는 74년 서독대회 이후 3회연속 예선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1982년 6월 23일 세비야 베니토 빌라마린 스타디움 관중:43000
브라질[3승] 4 (2-0) 0 뉴질랜드[3패]
10. 지코(브라질) 전반 28분, 전반 31분
15. 팔카오(브라질) 후반 19분
9. 세르징유(브라질) 후반 25분
이미 조 1위로 2차리그 진출을 확정지은 브라질은 최종전에서 뉴질랜드를 맞았다. 뉴질랜드도 이미 2패로 예선탈락이 확정되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한 경기는 아니였다.
그저 브라질이 2차리그를 준비하는 연습경기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뉴질랜드는 연습상대였다. 전반 지코의 2골로 2:0으로 앞선 브라질은 후반 팔카오와 세르징유의 연속골로 4:0으로 승리. 예선전 3전전승을 기록하며 역시 우승후보다운 저력을 과시했다.
6조 최종순위
1. 브라질 3승0무0패 10득점 2실점 +8 승점 6
2. 소련 1승1무1패 6득점 4실점 +2 승점 3
3. 스코틀랜드 1승1무1패 8득점 8실점 0 승점 3
4. 뉴질랜드 0승0무3패 2득점 12실점 -10 승점 0
브라질, 소련 2차리그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