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씨름경기
둘은 마치 천하장사 도전자들처럼 진지한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이는 태양이만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른 사람들은 창밖을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창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다양했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는 궁금증과 소통의 욕구였다. 만약 창밖을 바라볼 수 없다면, 혹은 창이 없다면 그곳은 감옥과 다를 바 없는 곳일 것이다. 창을 내다보며 밖의 상황을 살필 수 있고, 날씨를 알 수 있고, 언젠가 밖으로 나갈 일을 꿈꾸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릴없이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밖은 조용했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날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보다 여유시간이 너무나 많았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즐겼고, 또 어떤 사람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마치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기분을 느낀 것이다.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는 것에 대해 심하면 죄책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정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집에 머무는 것이 현재로써는 최선의 길이라 여겼다. 그래서 아침에 눈뜨면 뉴스를 시청하고, 이후엔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때마침 보기 드문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발견했다. 씨름 경기! 그것도 어르신들의 경기라니! 갑자기 없던 기운이 솟아나고 별일 아님에도 신이 나는 것이었다. 소극적인 이들은 창을 통해 바라보길 선택했고, 조금 적극적인 이들은 복도로 나와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으며, 더 적극적인 사람들은 아예 1층으로 내려와 가까이에서 보려했다. 만나는 이웃에게 조용히 눈인사를 건네며 경기하는 둘에게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호기심어린 눈길로 지켜봤다. 대부분은 경비를 응원했다. 사람들이란 모르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두들 침묵했다. 사방은 고요했고 새소리만 들려왔다. 햇볕에 앉아 졸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만이 야옹 소리를 내며 마치 심판이라도 되는 양 두 선수의 주위를 맴돌았다. 차우리와 새봄도 복도에 나와 있었다. 차우리는 휠체어를 타고 새봄은 스툴을 내놓고 옆에 앉아있었다. 둘은 단백질 파우더를 마시며 복도에서 놀이터를 내려다보며 관전하고 있었다.
정작 씨름경기를 하는 당사자들은 아무도 몰랐다. 둘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열중했다. 먼저 덩치 큰 시위맨이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어딜!
경비원 김씨가 재빨리 몸을 뺐다. 둘은 다시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시위맨이 다시 안짱을 걸어왔다. 이번에도 김씨는 재빨리 하체를 뒤로 뺐다. 시위맨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 졌다.
멧돼지처럼 돌진했으나 실패해서 약이 올랐다.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쏙쏙 피하기만 하깁니까?
-어허! 경기는 말로 하는 게 아니지.
시위맨이 씩씩대며 다시 밀어치기를 시도했다. 경비원 김씨는 왼쪽으로 피하며 동시에 시위맨의 왼다리를 걸었다. 시위맨이 옆으로 넘어져 모래밭에 처박혔다. 경비원 김씨가 엄치를 치켜들며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승!
-와! 짝짝짝!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비 김씨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파트 주민들이 창문으로, 복도에서, 1층 마당에서 응원하고 있었다. 놀랍고 동시에 부끄러웠던 경비는 두 팔을 흔들며 관중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시위맨은 진 것도 서러운데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김씨를 응원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더 우울해졌다.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일 같은 편이고 혼자만 다른 편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비 김씨가 오른 팔을 뻗어 시위맨에게 내밀었다. 시위맨은 손을 잡고 일어섰다. 김씨가 시위맨의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었다.
-아직 힘이 여전하네.
-축하합니다! 우리 형님, 대단하십니다!
시위맨은 두 팔을 벌려 상대를 안았다. 둘은 한참 부둥켜안고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들이 다시 한 번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햇살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고, 아파트가 갑자기 조금 환해 진 듯했다. 그때 느닷없이 경비 김씨와 시위맨의 문자가 동시에 울렸다.
-코로나감염자 밀접 접촉, 코로나 검사요망
-코로나감염자 밀접 접촉, 코로나 검사요망
첫댓글 역시 기대대로 필력이 날아다니는군요.
힘 내어 오늘도 달려보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