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조선19대
임금숙종
1661~1720
의후궁이다
숙종의
왕비
인경왕후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3명의
황후를
보초세우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숙종
임금과
자기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조선의
20대임금
경종으로
즉위를
시킨
물건이다
장희빈은
1659년
음력9월~
한양에서
태어나
숙종27년
1701년
음력10월
창경궁
취선당
에서
42세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다
인현왕후가
죽은뒤
영조재위
1724∼
1776의
생모
숙빈
최씨의
발고로
장희빈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에
신당(굿당)을
차려놓고
인현
왕후가
죽기를
빌었다는
혐의를
받아
남편
숙종임금이
내린
사약을받고
사사
賜死
임금이
내린
독약을
마시고
사망하였다
장옥정은
후궁으로
숙원
소의를거쳐
잠시
왕비가
되었다가
다시폐비로
강등을
거쳐
희빈으로
살았다
숙원은
조선
시대의
내명부
소속의
후궁에게
내린
직위로서
내명부의
여덟번째
자리
맨끝이며
품계는
종4품이다
소의는
역시
내명부의
후궁에게
내린
품계의
하나로
빈
귀인
다음가는
정2품
직위였다
장희빈은
숙종
임금
보다는
2년
연상이었다
아버지는
통역관
출신인
장형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첩실
윤씨이다
장옥정
그녀는
조선
왕조27대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에서
왕비까지
오른
여인이다
장옥정이
궁궐에
들어간
시기는
불분명하나
숙종
실록에는
머리를
스스로
땋아
올리기
전에
입궁
하였다는
기록이있다
1680년에
숙종
임금의
첫부인
인경왕후
김씨
1661~
1680
천연두로
요절했다
19세였다
분명
하지는
않지만
이때부터
장옥정이
숙종의
사실적
후궁이
되었다는
설이있다
하지만
그해
숙종의
어머니
대비
명성왕후
김씨에의해
강제로
출궁되었다
천출
천민출생이
표면상의
이유였지만
당파
정쟁이
원인이다
2년뒤인
1683년
10월숙종이
두질
천연두을
앓았다
이때
왕대비
김씨는
중전
민씨와
함께
무당의
권고를듣고
금식
하면서
매일속옷
차림으로
냉수욕을
하며
공을
들이다가
감기에
걸렸는데
숙종의
질병이
낳기도전에
먼저
황천길로
들었다
그모친상
3년이
지난후
장희빈은
다시
숙종의
곁으로
입궐한다
돌아온
장옥정
그녀에대한
숙종의
총애가
지극하자
서인과
인현왕후
민씨의
반발이
격렬했다
궁궐
반목질시의
불길이
타오른
것이다
이러한
궁궐의
분탕속에서
1688년
10월
숙종의장남
이윤이
탄생한다
장옥정의
뱃속
태반에서
열달간
자란왕자
그가후에
조선
왕조
제20대왕
경종
1688~
1724
이다
1689년
1월
숙종은
아들
윤에게
원자
왕의
큰아들로
명하고
종묘사직에
고한다
소의
장옥정은
정1품
빈으로
책봉하여
귀인김씨를
제치고
후궁
서열
1위로
만들었다
이후
숙종은
궁녀출신
장희빈을
왕비로
선포하고
원자윤이
왕세자로
책봉
되었다
이후
장옥정은
둘째아들
성수를
출산
하지만
탄생한지
100일이
되지않아
사망한다.
이후
장옥정은
폐비와
강등을
거치는
파란을
겪다가
1701년
8월
지병을
앓던
인현왕후
사망후
굿당에서
인현왕후
사망을
기원
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린다
이때
숙종
임금은
화면이
붉으락
푸르락
거리면서
씩씩
대드니
장희빈에게
자진을
명하는
비망기를
내렸다가
사사한다
1701년
10월
장희빈
나이
42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