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못 / 최종희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빗물이 세상의 잡다한 먼지를 씻어낸 덕분인지 산사의 싱그러운 공기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몇백 년이나 됨직한 앞마당의 소나무는 빗물을 머금어 푸름이 더욱 짙다. 극락전 옆의 석축이 말갛게 세수한 얼굴로, 우산을 쓰고 느린 발걸음을 옮기는 나그네를 맞는다.
불국사는 산비탈에 자리를 잡은 터라 평지로 환원시키기 위해 엄청난 축대를 쌓았다고 한다. 자연석을 밑에 깔고, 그 위에 인공적으로 돌을 깎아 맞물려 놓았다. 둥근 돌, 네모난 돌, 넓적한 돌, 길쭉한 돌....., 생긴 모양 그대로인 자연괴석과 잘 다듬어진 장대석들을 자유롭게 장단 맞춰, 안정감 있고 신비스러운 신라의 정서를 뿜어낸다. 투박한 멋과 율동적인 선의 조화에 감탄사가 저절로 쏟아진다.
그들 사이에 유별나게 툭 튀어나온 작고 네모난 돌이 눈에 띈다. 석축의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 돌로 만든 못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석축의 든든한 의지처가 되어준 숨은 공로자임이 틀림없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기쁨 가운데 가냘픈 언니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칠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큰언니는 우리 집안의 돌못과도 같았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옛말이 얼마나 큰 부담감으로 와 닿았을까 싶다. 언니는 초등학교를 끝으로 일찌감치 학업을 접어야 했다. 여린 소녀의 몸으로 낮에는 동생들 뒤치다꺼리에다 고된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산길을 가로질러 읍내 야학에 다녔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늦을세라 밤마다 종종걸음을 치며 등잔불을 들고 마중을 나갔다. 야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언니의 윤곽이 어슴푸레하게 보이면, 어머니는 안쓰러움에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눈물을 찍어내곤 하셨다. 진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부엉이 울음소리와 총총히 박혀 있는 밤하늘의 별들은, 가끔 어머니를 따라나섰던 어린 내 가슴에도 뭔지 모를 서러운 기억을 안겨 주었다.
그런 언니였지만, 그나마 야학을 다니는 호사마저 누릴 수가 없게 되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하게 된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처음 시작에 불과했다. 줄줄이 사탕처럼 기다리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더 이상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틈이 없었다. 꽃다운 시절을 동생들의 학비를 대는 젖줄이 되어 삶의 터전으로 내몰렸다. 열악한 공장 생활로 인해 언니의 손발은 얼어 터졌다. 퉁퉁 부어 벌겋게 피멍이 든 발가락이 보기에 징그러울 정도였다. 선연히 남아 있는 뱀 대가리 같은 흉터는, 사고로 손가락이 잘릴 뻔했던 가슴 서늘한 아픔들을 일깨워준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죄인처럼 묻어둔 비밀이 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언니와 함께 자취를 했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교문을 나서다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언니를 보았다. 순간 당황해 함께 쓰고 가던 친구의 우산으로 얼굴을 황급히 가렸다. 비 맞을 동생이 염려되어 작업복을 갈아입을 경황도 없이 뛰어왔던 모양이었다. 교복 뒤에 꽁꽁 감추어 둔 자존심을 공순이 언니가 들통 낼 것만 같았다. 친구들에게 초라한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언니가 환갑이 가까운 고개를 넘어서던 어느 날이었다. 언니는 불현듯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 그 옛날 밤길을 오가면서 야학을 다니던, 언니의 미완으로 남아 있던 학업을. 배움에 목이 타도 동생들에게 건네주기 바빠, 막상 자신은 한 바가지 물도 마실 겨를이 없었다는 사실을 왜 이제껏 헤아리지 못했을까.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에 뛸 듯이 기뻐하던 언니의 얼굴이 잊혀 지질 않는다. 이제는 당당하게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겠다며 언니는 해맑게 웃었다. 한자와 영어로 된 책이 그다지 낯설지 않아 뿌듯하고, 길거리에 있는 간판을 찾을 때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알아보지 못하는 꼬부랑글자 때문에 주눅이 들지 않아서 좋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작은 행복에 감사하기까지 배우지 못한 설움을 남몰래 삭였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릿하다.
어느 역사학자는 외국 손님이 오면 불국사를 꼭 보여준다고 한다. 불국사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난 뒤에 숨겨놓은 보물을 자랑하듯 석축으로 안내한다고 들었다. 여기에서 대부분의 외국인은 인공과 자연의 조화에 얼마나 많은 공력과 계산이 소모되었는가를 인정하며 자지러지듯 놀란다고 했다. 그러면 역사학자는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것이다. 불국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공도 석축이 한몫한 것임이 틀림없으리라. 그렇다면, 석축을 지탱해 준 돌못의 중요함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을 성싶다. 아랫단은 자연미 나게, 윗단은 인공미 나게 쌓아 엮어 올린 아름다운 벽화는 돌못이 없으면 가능하지 못할 일이다. 똑같은 돌로 태어나 자신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다른 돌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역할을 거뜬히 해냈다.
누가 내게 우리 집안의 내력을 묻는다면, 숨겨놓은 가보가 있다고 말하리라. 철없던 지난날 부끄러운 존재로 여겨 감춰 둔 언니를 자랑스럽게 드러낼 것이다. 똑같은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을 위한 길은 닦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언니, 힘든 나날을 참고 견디며 오로지 동생들이 발돋움해 나갈 수 있도록 애쓴 언니의 삶도 돌못과 다를 바 없으리라. 우리가 모가 난 세상살이에 부딪히더라도 때로는 둥글고, 때로는 길쭉하고, 때로는 넓적하게, 갈고 다듬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언니는 바랐을 터이다. 언니 덕분에 입을 수 있었던 교복은, 어쩌면 언니가 평생 간절한 바람으로 가슴에 품어 온 옷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꿈을 포기한 대가로 얻을 수 있었던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삶의 고비마다 지칠 때도 더러 있다. 세상에는 참 부러운 이들도 많다. 비록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언니가 있기에 최고의 삶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지 않을까. 호들갑스럽지 않고 묵묵히 베푼 손길은 세월이 지날수록 감동이 짙어지는가 보다.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애틋한 고마움이 훈훈한 향기를 내뿜으며 꽃망울을 피운다.
청춘이라는 계절을 후다닥 흘려보내고, 농익은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에 서 있다. 별 탈 없이 지내는 평범한 일상도, 알게 모르게 구석구석에서 내미는 이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그렇다면, 나도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세상살이에 지쳐 쓰러지는 이에게 훈훈한 정을 담아 보낼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돌못 같은 존재를 귀히 여길 줄 알고, 그를 닮은 이가 더 우러러보이는 혜안을 지녔으면 좋겠다. 어느 누군가의 가슴 깊숙한 곳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의 여음이 촉촉하게 적셔 온다. 석축이 빛나 보이는 건 돌못이 품은 의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윽한 눈길로 돌못을 바라보며 그 마음 씀씀이를 되새긴다. 내 삶의 역사에서 돌못을 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 <끝>
“문학적 형상화 넘어 체험서 찾은 의미
현재 삶과 연결한 작품 찾기 주력”
전국수필대전 심사평
대구일보사가 주최하고 경상북도가 후원한 ‘제4회 경북문화체험 한국수필대전’에 지난해 255편보다 많은 323편이 응모됐다. 경상북도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 체험을 수필로 기록함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고 감동을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수필대전은 문화와 수필의 멋진 만남이 되고 있다.
불교문화, 유교문화, 가야문화를 말하지 않아도 경북 전역에는 살아 숨 쉬는 문화재가 많다. 응모자의 분포가 전국을 망라하고 있으며, 찾는 발길도 몇몇 지역의 편중에서 벗어나 울릉도까지 경북 전 지역으로 넓혀지고 있음은 이 대회가 해를 거듭할수록 영역의 확산을 통해 대회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82편의 작품들은 그 기량들이 일정수준에 닿아 있었다. 공모전의 특성상 이 대회가 지향하는 취지와 목적에 근접하면서 수필 문학의 작품성을 살린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참신성과 대상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한 편의 수필로 꽃 피우는 작품성, 또한 욕심 같지만, 형상화를 넘어 문화체험에서 찾은 의미를 현재의 삶과 연결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사실을 잘 알리는 홍보의 역할과 문학성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전하는 수필 쓰기를 한 그릇에 담아내는 작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차별화에 성공한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컸다.
최종희의 ‘돌못’을 대상으로 뽑기까지 심사위원들은 세 편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난형난제란 말이 적절한 표현이리라. 석축의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 유별나게 툭 튀어나온 작고 네모난 돌로 만든 못, 돌못.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 집안의 돌못 역할을 한 언니의 삶을 생각하며 애틋해하는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감동이 ‘대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했다.
도무웅의 ‘불광’은 은해사에서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불광의 깨우침’을 얻기까지의 체험담이 돋보였다. 이혜경의 ‘문(門)에서 문(問)으로’는 제목이 주는 매력과 직지사에 있는 여섯 개의 문을 들어서며 인생길에서 만난 수많은 문을 떠올리며 물음을 던지는 점층적 기법이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수필의 어원은 ‘실험하다’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기술하는 감상자의 자리에서 한 단계 도약하여 문화에 배어 있는 아름다운 정신이 글쓴이의 가슴에서 읽는 이의 가슴으로 전해질 수 있는 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지난 입상작을 닮기보다 나만의 방법을 찾는 실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