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십자가 위의 강도는 그 날('오늘') 낙원에 갔는가? | 남대극 교수
https://youtu.be/h0V04yVvORM
안녕하십니까? 또다시 에스라엘 나무 강단에서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성경의 어휘를 연구하고 있는 목적은 앞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생략하고 지나갑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신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어휘, 즉 단어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 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보니까 단어가 제일 중요합니다. 단어 없이는 개념을 나타낼 수가 없고, 그 개념을 바로 이해하지 않고는 신학을 바로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어휘 연구를 시작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학 연구의 약 85%는 단어학, 즉 단어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오늘은 성경의 어휘 연구 스물여섯 번째 공부입니다. 오늘은 '오늘'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연구하겠습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이해고 올바른 번역인지 오늘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는 그날(오늘) 낙원에 갔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시작하려 합니다.
십자가 위에 두 강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예수님은 가운데 계시고 오른쪽에 한 사람, 왼쪽에 한 사람 달렸는데, 그들은 강도라고도 불렸고 또 한 복음서에는 행악자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있는데, 그중 달린 행악자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예수님을 보고 조롱하며 비방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너 평생에 사람도 살리고 했잖아." 이런 투로 빈정거립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다른 하나는, 흔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생각으로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인데, 그는 왼쪽에 있는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은(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은) 행한 것이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꾸짖듯이 이야기합니다.
오른편 강도는 아마 예수님에 대해서 평상시에 많이 들었고, 그가 하는 일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이 하는 일 중에 틀린 것 없다. 다 옳은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예수님이 받아 주셨습니다. 그 심정에 있는 예수님을 향한 선한 뜻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편 강도가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이것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죽어가는 이 마지막 마당에 예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표출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만약 이 우리말 번역이 성경의 원문을 올바로 번역하고 대변하는 것이라면, 강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날(오늘) 낙원에 갔어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그것을 한번 심층적으로 연구해 보는 것입니다. 영어 리바이스 스탠더드 버전(RSV) 등을 보면 "Truly, I say to you,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라고 되어 있어서 대동소이합니다. 단어가 좀 달라도 의미는 똑같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끔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써서 죄송합니다만, 뜻을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한 제 노력이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 때 이 아멘은 원래 히브리어인데 헬라어로 그대로 글자만 바꿨습니다. 우리가 기도 끝에 아멘 하듯 '진실로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헬라어 문장(Amen lego soi semeron met' emou ese en to paradeiso)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진실로 너에게 내가 말한다, 오늘 나와 함께 네가 있으리라 낙원에"가 됩니다. 자, 이 구절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뜻인지, 아니면 "오늘 진실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낙원에 나와 함께 있으리라"라는 뜻인지 우리가 좀 깊이 새겨봐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과 약속을 받은 오른편 강도(전설에는 이름을 디스마스라고 부릅니다)의 행적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운명하시고 장사 되셔서 제3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다 아시는 사실입니다. 그때 부활하신 날 새벽에 마리아가 온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그녀를 부르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6절에 마리아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마리아야" 하시자, 마리아는 "라보니(나의 선생님이여)"라고 대답하면서 반가워서 그분의 옷자락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아직 올라가지 않으셨습니다. 올라가셨다가 부활하신 날 저녁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이라고 말씀하신 그 전전날 금요일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 말씀하시기를 "아직은 안 올라갔다"고 하셨으니 금요일에 낙원에 안 올라가신 것은 확실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은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아무 의식이나 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9장 4절과 5절에도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오른편 강도가 죽어서 그날 하늘 낙원에 가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 구원을 약속받은 강도도 그날 낙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원래 헬라어는 띄어쓰기와 구두점(쉼표)이 없이 단어들을 쫙 붙여 썼습니다. 헬라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디서 띄어 읽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말도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붙여 놓으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읽을 수 있듯이 띄어쓰기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고대 문서들은 이렇게 붙여 쓰다가 후대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띄어쓰기를 하고 구두점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구두점은 찍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르게 찍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너에게 내가 말한다 오늘 나와 함께 네가 있으리라 낙원에"라는 문장에서 이 '오늘'이 앞 문장에 붙는 것인가, 뒷문장에 붙는 것인가에 따라 뜻이 아주 달라집니다. 쉼표를 '오늘' 뒤에 찍으면 "진실로 오늘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가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신약 학자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애드번트 대학교(AdventHealth University) 신약학 교수인 윌슨 파로스키(Wilson Paroschi) 박사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왔을 때 제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만나기 전에 그분이 쓴 논문을 학술지에서 보았는데, 참 훌륭한 논문이라고 제가 치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니스트리(Ministry)》 잡지 2013년 6월호에 〈쉼표의 중요성: 누가복음 23장 43절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이 실린 잡지 표지를 보면 우리가 읽었던 누가복음 23장 43절이 옛 헬라어 대문자 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유일한 이방인 기자이자 의사였던 누가는 그의 저서에서 '오늘(세이메론, σήμερον)'이라는 부사를 총 20회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20회 중에서 14회는 '오늘'이 그 앞에 있는 동사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내가 오늘 너에게 말한다"처럼 앞에 붙는 것입니다. 나머지 6번은 인용문이거나 접속문이어서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뒤에 오는 동사와 연결된 경우였습니다.
인용문이나 접속문이 아닌 누가의 일반적인 기술에서는 '오늘'이라는 단어가 14번이나 앞에 있는 동사와 연결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도 '오늘'은 그 앞에 있는 동사인 '레고(내가 말하노니)'와 연결되어, "내가 오늘 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아주 합당하고 훌륭한 연구 결과입니다. 그래야 성경의 다른 부분과 조화가 됩니다.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은 죽으면 일단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잠자는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잠들었을 때 주님이 깨우러 가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파로스키 박사의 연구 결과는 성경 전체의 맥락과 매우 잘 조화됩니다.
또한 파로스키 박사는 고대 성경 사본들의 증거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가장 권위 있는 사본 중 하나인 4세기의 바티칸 사본을 보면, '오늘'이라는 부사 다음에 점이 찍혀 있습니다. 이는 '오늘'을 앞 문장에 붙여서 해석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둘째, 13세기의 헬라어 소문자 필사본인 '339번 필사본'을 보면, '오늘'이라는 단어 다음에 점이 찍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단어와 다음 단어 사이에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두 단어가 분리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번역은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가 맞습니다.
십자가 위의 강도는 그 금요일 날 당장 낙원에 가지 않고, 낙원에 갈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낙원에 가는 것은 미래의 일이며 주님 재림하실 때 이루어집니다. 성경 전체에서 '오늘'이라는 말은 총 376절에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는 329절에 나타나는데, 그중 신명기에만 71절이 나타납니다. 구약 사용량의 21.9%, 신구약 전체의 18.9%가 신명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상투어였습니다. 모세는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엄숙한 어조를 만들기 위해 이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오늘 내가 너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 "내가 오늘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라" 등 명심하라는 뜻으로 단단히 말할 때 썼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오른편 강도에게 "내가 오늘 네게 진실로 말하노니"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던 것이 사리에 가장 잘 맞습니다.
결론적으로 "십자가 위의 강도는 그날 낙원에 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안 갔다"입니다. 예수님도 이틀 뒤 부활하셨을 때 아직 아버지께 안 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지만 강도는 부활하지 않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낙원에는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한 단어 '오늘'이 어떤 용법으로 쓰였고, 쉼표를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굉장히 중요한 교리적 의미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을 읽을 때는 '오늘'을 앞 문장에 붙여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어휘(단어) 연구의 중요성: 신학 연구의 약 85%는 단어를 연구하는 단어학입니다. 올바른 단어 이해 없이는 개념을 정립할 수 없고 신학을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의 쟁점: 전통적인 번역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강도가 죽은 당일에 낙원에 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성경적·언어학적 검증을 통해 교정이 필요합니다.
사후 상태에 대한 성경적 증거: 예수님은 금요일에 운명하신 후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을 때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고 명시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죽음을 주님 재림 때까지 의식이 없는 '잠자는 상태'로 묘사하므로, 강도가 당일에 낙원에 갔다는 것은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과 모순됩니다.
헬라어 원문 구조와 쉼표의 위치: 고대 헬라어 문장에는 띄어쓰기와 구두점이 없었습니다. 쉼표를 '오늘(세이메론)' 뒤에 찍어야 문맥에 부합합니다.
바른 해석: "내가 오늘진실로 네게 말하노니, (장차)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사본학적 및 언어학적 근거(파로스키 박사의 연구):
기자 누가의 용법: 누가는 그의 저서(누가복음·사도행전)에서 '오늘'이라는 부사를 사용할 때 문맥상 대부분(20회 중 14회) 앞에 있는 동사와 연결하여 엄숙한 강조(모세의 신명기적 상투어 표현)로 사용했습니다.
고대 사본의 증거: 4세기 바티칸 사본과 13세기 339번 소문자 필사본 등에는 '오늘'이라는 단어 뒤에 점이 찍혀 있거나 여백을 두어 뒷문장과 분리하고 있습니다.
결론: 십자가 위의 강도는 십자가에 달린 그날(오늘) 낙원에 간 것이 아니라, '바로 그날 구원의 확실한 약속'을 받은 것이며, 실제 낙원 입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