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찾지 않는 악-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살인이나 도적질 같은 사람들이 보는 행위적 죄가 난무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만일 사람들이 볼때 행위적인 악함이 심하였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들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노아 한사람 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들임은 사람이 보는 행위적인 악이 아닌 하나님이 보는 마음과 생각의 악이 었다.
사람이 볼때 말과 행동의 표면적 나타남을 보고 선과 악으로 규정 하지만 하나님은 표면적 선과 악을 판단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내면적 중심을 보시고 선과 악으로 규정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피조물 중에서 구별된 마음과 생각을 지어 이성적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함으로 하나님과 친구와 같은 사귐을 가지려고 지으셨다.
아담이 홀로 독처하면 아담의 존재가 무의미하기에 그와 사귐의 하와(교회)를 지음과 같이...
이러한 사귐의 목적 과녘에서 벗어 남은 마음과 생각에서 항상 하나님을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찾지를 아니함이다.
노아때는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에 의하여 여덟명이 처음으로 엄청난 큰 배를 지을수 있음은 고도의 장비와 고도의 기술이 있는 현 문명 보다 더 높은 문명을 가름할수 있다.(현대 기술로 그러한 심판에 견딜수 있는 방주 규모의 배를 지을수 없음)
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먹거리 마실거리가 수없이 많아지기에 사람들 마음과 생각이 보이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항상 찾아도 하나님은 찾지 않는다.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정한 배우자가 아닌 물질, 학벌, 성격등을 비교하며 배우자를 열심히 찾아 다녀 "시집가고 장가" 가지만 하나님과 남편의 사귐을 위하여는 찾지 않는다.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사고 팔고"하며 부를 쌓기 위해 돈을 찾아 다니지만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선한 행위를 나타내려 만을 하고 성경을 읽어도 자기를 위한 성경이 되고 마음과 생각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면 돈을 구하기 위하여 열심히 찾아 다니고 몸이 아프면 병원이나 약을 찾아 달려가기 바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아 하나님을 믿는 무늬만 있으며 하나님 존재 가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어찌 마음과 생각에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함 속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랴!
지난 역사 속에 사람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버림으로 그 지으심을 한탄 하심으로 코로 호흡하며 살아 있는 자들과 생물 까지 물로 싹 쓸어 버렸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해요. 방패로 상징하고 있다.
그 상징하는 태양이 생명의 빛과 소멸의 불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듯이 하나님은 생명을 향한 무한한 사랑과 불같은 진노로 생명을 진멸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명심 하여야 한다.
지난날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그 지으심을 한탄으로 물로 심판 하였고 또 다시 노아 때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먹는 것, 마시는 것, 배우자 얻는 것, 심고, 사고 파는 것은 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존재 가치는 벌로 여기는 마지막 때가 옴을 예수는 예언하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아말렉의 것들을 큰 가치로 여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사울의 마음과 생각이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과 생각이라.
그 결과는 복 받는 위치에서 하나님으로 부터 버려지는 화를 받는 결과를 초래한다.(생>사 / 복>화)
베드로후서 3장에 마음과 생각을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찾아 나오기 위한 자들을 향한
천년이 하루 같이 하루가 천년 같이 길이 기다려온 은혜가 끝나고 온 세상을 소멸하는 불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불심판에 대한 확정은 아니지만 이러한 심판을 예상해 본다.
지금에 홍수를 알기에 물심판이 있다면 믿을수 있지만 당시는 사람의 상식으로 이해 할수 없었던 것과 같이 마지막 때에 불심판도 그러하다.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세상 속에 순식간에 일어 나는 하루 아침의 날벼락과 같다.(노아때도 그러 하였다)
사람이 만든 것으로 인위적으로 일어 나는 심판이 아닌 자연의 질서의 변동으로 인한 심판이었다.
지난날 바다에 명하여 풍랑을 잠잠케 하였고 태양에 명하여 궤도에서 멈추게 하시고
뒤로 물러가게 하신 하나님이 태양의 궤도를 생명의 지구 가까이 이동시켜 수성을 삼키고 금성을 삼켜 금성 위치에 멈추면 지구는 불에 체질이 녹아 뜨거운 현 수성과 같이 되며 화성은 현 금성과 같이 되고 목성(왕자의 별)이 지구와 같은 궤도로 생명이 약동하는 별로 탄생 된다.
홍수 심판때 예수 몸을 예표하는 노아 방주가 온전케 보존 되듯이
불심판 때에 차원 높은 신령한 예수 몸(신령한 떡)으로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된 부활의 몸을 받은 자들이 온전케 되어 노아로 새시대를 열듯이 그들로 생명의 별에 새 역사를 창조한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많은 물질을 드리며 성경을 열심히 읽을 지라도 그의 마음과 생각이
실존하는 하나님을 항상 찾지 아니하고 세상에 썩어질 허상을 찾아 그 허상에 마음과 생각이 늘 붙어 다닌다면 불 심판 아래 던져져 있음과 같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는 마음과 생각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 자들의 그 중심을 보시고 그들을 향하신다.
태양의 양면성과 같이 그분의 양면성을 보아야 두려움과 떨림을 가질수 있다.
두려움과 떨림은 경외심의 근본이며 가나안 정복 때에 기브온 족속이 하나님을 향한 간담이 서늘한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기에 진멸 속에서 약속을 받아 내어 구원을 얻듯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지 아니하고 오늘 이시간도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
나오는 자들의 외형적 행위를 보지 않고 그 마음과 생각의 내면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기 위하여 달려 오신다.
항상 마음과 생각이 세상 마귀의 썩을 것(악)과 연결되 있지 않고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영원한 것(선)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늘 마음과 생각이 연결되 있음은 선이요, 의이며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이 끊어져
있음은 악이요. 죄이다.
(마귀는 물질 문명을 세워 눈으로 보는 그 물질 속에 사람의 생각을 가두어 그 물질들에 의지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밀어내 버리고 하나님은 그 물질들을 파괴하여 연약한자, 없는자, 부족한자가 되어 하나님을 향해 찾아 "의지"하게 하신다)>몸은 고도로 발전하는 물질 문명에 살고 있을 지라도 마음과 생각은 항상 하나님 안에서 살아 가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