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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같은 시간, 같은 말, 같은 고백을 하는 도경수와 변백현이었다. 귀와 눈이 먹먹해져왔다.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려 뭉게뭉게 흩날리듯이, 크게 요동치는 소리가 내 귓가를 막고 소리를 차단해버린 것처럼 지금의 내 상태는 그랬으며 지금의 내 상황 또한 그러했다.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핑 도는 느낌이었다. 툭툭 말라 갈라진 목소리로 내게 고백한 경수도, 여전히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이내‘미안해’로 시작해서‘너 좋아해’로 끝나버린 변백현도, 그저 여전히 팽이가 도는 듯 멍한 머릿속을 지탱하며 크게 들려오는 가느다란 호흡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뿐이었다.
-지금 대답하라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난……꼭 오늘 말하고 싶었어. 오늘은 생일이니까. 네가 그랬잖아, 생일은 대수라고. 그래서 고백하는 거야.
죽어가는 적막을 제일 먼저 깨버린 건, 변백현도 아닌 나도 아닌 다름 아닌 도경수였다. 굳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앞에 선명한 물감 자국처럼 그려지는 얼굴이 참 저릿했다. 아마 또 여자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처음이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간신히 한 글자를 내뱉고 있을 거다. 묘연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제 도경수에 무슨 부분에서든 누구보다 잘 캐치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나 신기했다. 그러니 물론 대답은 하나다. 내 마음이 향해있는 곳으로 움직이면 그만 아니겠냐.
-지금 대답 안 해도 돼.
“…….”
-나도 지금은 아빠 때문에 정신도 없고, 그래도 생일이 끝나기 전에 말하고 싶었어. 대답 강요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내 마음이 그래.
짧게나마 자신의 생각을 다 전한 건지 이내‘먼저 끊을게, 얼른 집에 들어가’라는 말을 전하는 경수였다. 평소 잔잔하게 흘러갔던 음성이 아닌 삭막하게 갈라진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인상이 쓰일 지경이었다. 끊긴 전화에 느릿하게 휴대폰을 내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숨을 토해냈다. 따지고 보면 설레다 못해 행복하고, 행복하다 못해 눈물까지 나야하는 상황이었다. 기분 좋게 경수와의 전화를 끊고 얼굴에는 자욱한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는……그래, 분명 그러면 되는 거였다. 지금의 알 수 없는 이 묘한 감정만 철저하게 배제한다면.
“……미안해.”
“…….”
“미안해, 미안해 ○○○.“
연신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변백현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놈의 사과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난 분명하게 화가 나지 않았고, 그러니 사과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으냐. 잘못은 내가 했다. 놈의 의도를 이해 못하고 무조건 배척하려만 했던 내 잘못이다. 도망 치려해도 도망칠 수가 없었다. 지끈지끈, 머릿속이 아파왔다. 분명 경수가 고백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좋다고 대답하면 되는 거였고, 단호하게 이 자리를 벗어나면 그만인데도, 두 다리는 멍청하게 굳어버려 아무 움직임을 취할 수 없었다. 왜 난 머리로는 결정을 내려놓고 바보같이 아무런 실행에도 옮기지 못하는 걸까. 마치 등신처럼.
“끝까지 숨기려고 했어, 그리고 진짜 너랑 도경수랑 이어지면 다시는 안 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너랑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미치겠더라.”
“…….”
“나 이해 안 되는 것도 알고 화나는 것도 아는데, 도경수가 너한테 고백해버리면 정말 끝이잖아……그래서 그러기 전에 그냥 다 말하고 끝내려고. 어차피 이제 3학년 올라가면 볼 가능성도 적어지고 그리고…….”
“…….”
“○○○.”
“…….”
“○○○.”
“……응.”
" 나좀 봐. "
'미안해, 끝이잖아, 숨기려고 했어'
꽤나 자신과 안 어울리는 단어들만 주구장창 내뱉는 놈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두개의 돌덩이 사이로 작은 자갈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니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떠한 작은 바람도 들어올 수 없는 돌덩이들로 꽉 막힌 상태였다. 이것저것 골치 아픈 걱정들을 다 집어치우고 생각해보면 놈은 내 앞에 있었고, 난 그런 놈과 눈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내게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는 변백현에게 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겹쳐오는 이 상황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 그런 놈에게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미안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 말이다. 거짓말이라도 해야하나 싶었다. 그게 정답이라면 그렇게라도 할 셈이었다.
“나 이제 네 연애코치 안 할 거야.”
“…….”
“난 너랑 친구로 지낼 자신 없는데 넌 그럴 자신 있어?”
“……변백현.”
“네가 그럴 자신이 있다면 나도 그래볼게.”
“……난.”
“…….”
“……나도 자신 없어, 이 말 들은 이상 친구로 지낼 자신도 없고.”
“…….”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텅 빈 상태가 돼버렸다. 차마 턱 끝까지 올라오는 마지막 말을 간신히 쓸어 넘기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난 너랑 더 이상 친구도 못할 것 같아. 마지막 말은 짧고도 굵게 스며들어갔다.
“알겠어.”
“…….”
“학교에서 마주쳐도 도망가지 마.”
“…….”
“도망은 내가 칠게.”
그제야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특유의 익살스러운 웃음을 보이는 변백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내 머리 위로 올리려던 놈이 이내 허공에 손을 멈춘 채 그 자리 그대로 굳어져갔다. 한참을 뚫어져라 머리 위 손만 올려다보던 변백현이 이전과는 다르게 그저 가만히 손을 얹은 채로 작은 미소만 띨 뿐이었다.
“갈게.”
“…….”
“밥통.”
천천히 몸을 돌려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며 점차 불빛 사이를 벗어나는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마침내, 놈이 이 한적하고 공허한 골목에서 완전히 제 모습을 감추고 나서야 아까 전 턱 끝까지 차오르던 말을 조심스럽게 곱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 이렇게 내 가슴께를 꽉 막고 있는 돌덩이를 깨트릴 방법을 모르겠다고, 그 돌덩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주일 뒤면 너네 다 방학인 거 알지? 예비 고3한테 방학은 무슨 의미인 것도 알고?”
“아아…….”
“그럼 조례 끝, 자세한 건 종례 시간에 말해줄게.”
문이 닫히자마자 서로 흥에 올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의 잡다한 소음이 귓가에 꽂혀왔다. 굳이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제 했던 음악방송 이야기, 썸남이랑 영화 보러간 이야기 등등. 다소 시답잖은 이야기꽃들을 피우며 발그레한 볼에 홍조를 띄우는 친구들에 비해 금방이라도 땅이 꺼질세랴 한숨을 쉬고 있는 건 오로지 나 하나뿐인듯 싶었다. 이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에게 다가가려하지만, 마찬가지로 조례가 끝나자마자 제 친구들에게 가버린 변백현과 꼼짝없이 눈이 마주하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나고 만다.
“…….”
“…….”
어제 한 약속처럼 변백현은 내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전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을 피했다면 이번엔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고개를 돌려버리는 놈이었다. 딱히 씁쓸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이게 저한테도 편했고 나한테도 편했으니까. 그저 그동안 놈과 있었던 추억은 무감각하게 잊어버리면 되는 거였…….
“야, ○○○!”
“응?”
“아, 팩트 다 깨졌잖아…….”
“아, 미안해……내가 똑같은 거 사줄게.”
“아, 오늘 이거로 화장하고 남친 만나려고 했는데.”
“……미안해.”
그래, 무감각하게 잊어버리면 되는 거였다. 점차 그렇게. 변백현의 뒷모습에 꽂혀있던 시선을 황급히 아래로 내려 실수로 떨어뜨린 친구의 파우치 안 화장품을 하나 둘 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동강이 난 아이라인을 보고 다소 짜증스런 욕을 하며 내가 들고 있던 미스트를 거칠게 뺏어버리는 친구의 모습에 비참한 감정이 들기까지 했다. 저 멀리 떨어져있는 셰도우 스틱을 줍기 위해 몸을 움츠리곤 손을 뻗는데…….
“비켜, 내가 주울게.”
“…….”
저 끝에 있던 놈이 언제 다가온 건지 나보다 먼저 화장품을 집어 들곤 친구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변백현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당황한 친구가 어색한 입꼬리를 당기며 화장품을 받아들었고, 이내 변백현은 그런 나를 지나쳐 다시 저의 친구들에게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아, 이상한 탄식이 나왔다. 어색했다. 또 불편했다. 대놓고 그런 감정이 든다는 게 낯설었다. 정말 놈과 어색해졌구나, 실감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알싸하게 퍼져오는 노근함에 저절로 눈이 감겨왔다.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눈을 붙여보자는 다소 무리한 생각과 함께, 제 팔을 굽혀 밝은 시야를 차단해버렸다. 검정 화면 밖에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책상 위로 파묻은 고개를 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하루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위해서는 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제일 먼저 경수의 고백에 대한 대답을 해줘야했다. 분명 마냥 설렐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깊고도 예쁜 눈을 비추며 지난날의 이야기를 꺼내던 경수가 생각이 났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진정한 모습을 좋아해주는 여자아이를 찾고 있다고 했고, 그 여자아이는 내가 되었다는 말이다. 변백현과 화해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버려 화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렸다던 그 이야기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김종인 넌 왜 아까부터 우리 반 오고 지랄인데, 너희 반 가 병신아.”
“야, 오늘 도경수네 아버지 입원하셔서 학교 못 왔어. 간호해야한대.”
“도경수네 아버지? 많이 다치셨어?”
“그냥 금 가신 거라던데……좀 입원하셔야 하나 봐.”
“…….”
“……변백현 너 병문안 가볼래?”
“내가 병문안을 왜가, 그 새끼랑 나랑 친한 것도 아니고.”
“시발, 너네가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치고 박고 싸운 것도 아니면서 그냥 좀 사과하고 화해해.”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뭘 사과해.”
“그냥 네가 먼저 사과해라 좀. 도경수 성격에 그런 거 어려운 거 알잖아. 그리고 지금 도경수 너 안 싫어한다니까?”
“아, 그딴 소리 할 거면 반으로 가라 시발.”
“너도 도경수 안 싫어하잖아, 등신새끼야.”
“…….”
“아, 휴대폰 그만 만지고 얘기 좀 하자고.”
“……맞아, 나 그 새끼 안 싫어해. 전부터 지금까지 안 싫어했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걔랑 나랑 사이가 이렇게 된 거냐? 걔랑 내가 서로 안 싫어해서 여태 화해도 못하고 이 상태로 안 좋아진 거냐고.”
“……야, 변백현.”
“이제 그 새끼랑 나 화해 못해, 병문안 갈 거면 너 혼자 가고 아니면 내 앞에서 도경수 이름 꺼내지마.”
아, 차라리 이렇게 엎드려 있기를 잘했다 생각했다. 아마 교실을 나간 것으로 느껴지는 변백현과 여전히 의자에 앉아 마른 한숨만 쉬어대는 김종인의 한숨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지금 이 상황에선 나도, 김종인도, 변백현과 도경수도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스럽다. 누가 보면 왜 서로 미워하지 않으면서 화해를 못해? 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러기엔 두 사람 사이의 오해가 너무 깊었고, 그 오해를 채우기에는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느냐. 두 사람의 말라버린 감정에 김종인과 내가 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때였다. 여전히 고개를 파묻은 채로 엎드려있다 이내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소리에 느릿하게 휴대폰을 들어 수신자를 확인하면.
[도경수]나 학교 못 갔어
[도경수]오늘 끝나고 뭐해 병원 올래?
[도경수]커피 사줄게
[도경수]병원 자판기 커피
" 왔어? "
가볍지만은 않은 발걸음을 옮겨 경수가 알려준 병원으로 향했다.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야 경수네 아버지가 있는 병원에 제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지난 날이 생각났다. 하루사이에 꽤 많이 수척해진 얼굴로 나를 보고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경수가 보였다. 가슴부근에 알싸한 고통이 일렁였다.
“너 집에 들려다 오는 거 아니야?”
“응, 바로 왔어.”
“편한 걸로 갈아입고 오지.”
“괜찮아.”
“불편해 보이는데.”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놈의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아마 제대로 된 세수도 못한 건지 까칠해진 피부만큼이나, 건조하게 부르튼 음성에 저도 모르게 묘연한 인상이 쓰일 지경이었다.
“엄마는 사정이 있어서 병원에 못 오고, 아빠는 허리에 금 가셔서 계속 내가 옆에 있어야 해. 처음에는 가벼운 타박상이라고 했는데 정밀검사 해보니까 그렇게 나오더라.”
“……밥은 먹었어?”
“대충, 병원 밥.”
“병원 밥 맛 맛있던…….”
“병원 밥 완전 맛없어.”
누가 보면 나 돼진 줄 알겠네.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병원 밥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수의 모습에 내 입술이 다시금 닫혀버린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곤 힘 빠진 웃음을 내뱉으며 제 손등으로 두 눈을 가린 채 큭큭 거리며 웃음을 참는 놈이었다. 마음이 아프다, 힘들어 보이는 게. 가슴이 아프다, 고달파 보이는 게.
“아, 그래도 말할 사람 있으니까 살 거 같아.”
“병원 사람들은?”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왜, 가서 드라마 이야기하면서 좀 친해져 봐.”
“……나 약올리지.”
능구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수의 얼굴에 저절로 작은 실소가 튀어나왔다. 혹시나 싶어 사온 바나나 우유라도 건네기 위해 책가방을 열었지만 그런 내 손에 잡히는 건 야속할 만큼 두꺼운 책들뿐이었다. 다시금 머리를 굴려 이전 상황을 생각해보니, 1층 화장실에 바나나 우유를 두고 그대로 나와 버린 등신 같은 내 모습이 재생된다. 아, 제대로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과 다름 없었다. 경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 말하며 황급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양 손 가득 두둑이 쥐어진 두개의 바나나 우유를 들고 다시 위층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나였다. 그때였다. 어, 하고 당황스러운 탄식이 튀어나왔다. 텅텅 빈 벤치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갸우뚱 돌아가는 거였다. 그 짧은 시간에 어딜 간 거야. 힘 빠진 다리와 함께 책상 위에 바나나 우유를 내려놓고 홀로 의자에 제 엉덩이를 붙여놓고 앉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의아해진 내가 혹여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하는 두려움에 덮쳐 황급히 아까 전 문자로 받은 병실 번호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씨발, 넌 말을 그딴 식으로 하면 좋냐?”
“그럼 내가 널 좋다하고 반겨줄까?”
“그럼 내가 사과라도 할 수 있게 말이라도 하던가.”
“네가 사과할 거 없어, 나도 잘못한 거니까.”
“야, 도경수.”
“다시 말하지만 너 잘못한 거 없어, 그러니까 사과 할 필요도 없어.”
“…….”
“너랑 내가 화해한다 해도 그때처럼 돌아갈 수도 없고, 그리고 또 너랑 같은 문제로 싸울 것도 싫다고.”
“그럼 똑바로 말을 하라고 개새끼야, 너랑 내가 같은 문제로 싸우는 게 뭔데.”
“……넌 존나 변한 게 없어. 그런데 뭘 해? 화해? 난 애초에 너랑 싸운 게 아니야, 그냥 너한테 화가 나서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낸 거지.”
“…….”
“내가 모를 것 같아? 너 ○○○ 좋아하잖아.”
“야.”
“네가 좋아하는 애를 찾았다고 해서 네가 ○○○한테는 상처 안 줄 것 같냐고. 똑같아, 너 그러고서 다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자랑 사귈 거잖아.”
“도경수, 제대로 알고 말해.”
“제대로 알고 말하라고? 여기서 어떻게 더 제대로 말해. 넌 남자가 좋아하면 모든 게 끝났다고 했지? 누구를 좋아하게 될지 모르니까,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일단 사귀고부터 보는 거잖아 너. 근데 ○○○ 좋아하면 쭉 좋아할 거 같아? 아니, 바뀔 수도 있어. 예전에도 그랬잖아.”
“…….”
“또 기분 더럽겠지, 이유 없이 욕 들었으니까. 난 네가 이 말을 이해하기 전까지 너랑 절대 화해 할 생각 없어.”
유난히도 무게가 느껴지는 두개의 바나나 우유를 든 채로 그저 멀리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경수가 왜 저렇게 단호하게 거절을 하는지도,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는 변백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차츰 드러나는 그림자가 이내 내 시야를 감싸고 들어왔다. 그 그림자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난 그제야 그 주인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변백현, 그게…….”
“미안해, 네가 도망가라 오늘은.”
“…….”
“너 두고 도망치기 싫어.”
간절한 말투로 내게 부탁하듯 말을 건네는 변백현의 말에 난 그저 죄인마냥 몸을 돌려 병원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눈물을 애써 꾹꾹 눌러 삼키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나 세게 힘을 준 탓에 입술 사이엔 괴사한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힐 지경이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거지 같은 눈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렇게만 되어야 하는 건지, 왜 저렇게 화해하는 게 어려운건지. 그리고 난 왜 그 상황에서 도망쳐버린 건지. 지금 내 가슴 속의 돌덩이들 사이로 자꾸만 금이 가는 것도. 어딘가 이상기후가 일어날 것 같은 이 날씨도. 분명 화해를 하고 싶으면서 그렇게나 모질게 말해버린 경수도, 끝내 찾아오지 않는다면서 결국 병문안에 온 변백현도, 어딘가 모두 핀트가 어긋나 버린 상황이었다. 집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반사적으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느릿하게 감겨오는 눈꺼풀에 몸을 웅크린 채로 눈부터 감아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대체 왜, 우린 모두 처음 예상했던 장면과 다르게 행동했던 걸까. 지금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는 도경수에게 받은 고백에 대한 대답도 아니었으며, 변백현에 대한 답답한 감정도 아니었다. 그저 두 놈들의 사이가 어쩌다 그렇게 멀어진 걸까, 영영 화해를 못 하는 걸까. 둘이 다시 친해지기는 어려운 걸까, 라는 고민뿐이었다. 누가 들으면 네가 신경 쓸 고민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알았다. 경수도 변백현도,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어쩌면 그 누구도 진짜 자기의 진심을 아예 모를 수도 있다는 걸. 그러기에 둘 사이에 화해는 그 무엇보다 어렵다는 걸.
와...연애코치 진짜 제가 이걸 글이라고 썼었는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심각하네요...수정할 게 엄청 많아요......
아, 아무튼 연애코치는 지금 제본 입금 받고 있습니다!
제본 입금 중에도 꾸준히 재업로든 할 예정입니다! 다만 업로드 속도가 좀 많이 느리다는 점 이해해주세요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