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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르완다 소개 ◈
Rwanda
(르완다)
'천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나라(Land of a Thousand Hills)’ 로 알려진 르완다는
아프리카 중앙 동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 북쪽으로는 우간다, 동쪽으로는 탄자니아, 남쪽으로는 부룬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르완다는 풀이 무성한 고원과 완만한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지형으로도 유명합니다.
희귀한 마운틴고릴라 등 야생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자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르완다’라고 하면 1994년의 대학살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르완다는 그 이후 경제 인프라와 사회 결속력을 개선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르완다는 완전하게 평화를 되찾았으며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수도 키갈리는 청결함, 평화 및 안전 측면에서 인정을 받아 아프리카 도시 중 처음으로 주거 환경 영예 대상
(Habitat Scroll of Honor)을 수상했습니다.
국제적으로 르완다는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로서 바른 정치(good governance)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관광 산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GDP는 지난 14년간 연평균 6%의 고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은행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르완다의 경제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세계은행은 또한 기업 환경 보고서(Doing Business report) 2009에서 르완다가 세계 20위권 내에 드는
개혁 국가라고 소개했습니다.
Vision 2020로 알려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으로 과거의 분열된 정치 상황
에서 벗어나 번영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출처 : 주한르완다 대사관
◈ 정식 명칭은 르완다 공화국(Republic of Rwanda)이다.
남쪽은 부룬디, 동쪽은 탄자니아, 북쪽은 우간다, 서쪽은 콩고 민주공화국과 접한다.
아프리카 최고의 조밀지역이다. 행정구역은 12개 주(province)로 이루어져 있다.
◈ 르완다 국기의 의미(국기의 색깔과 구조)
(르완다왕국 국기 1959-1962) (르완다 국기 1962-2001) (르완다 국기 2001-지금현재)
르완다의 국기는 2001년 10월 25일에 제정되었다.
파란색 띠는 노란색 띠와 초록색 띠에 비해 폭이 넓으며 파란색 띠 오른쪽에는 24줄기의 노란색 태양이
그려져 있다. 파란색은 사랑과 평화, 행복을, 노란색은 경제발전을, 초록색은 번영의 희망을,
노란색 태양은 르완다 국민의 계몽을 의미한다.
1962년부터 2001년까지는 범 아프리카 색인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세 가지 색의 세로 줄무늬 바탕
가운데에 검정색 R이 새겨진 형태의 디자인을 한 국기를 사용하였는데 검정색 R은 르완다의 알파벳
첫 글자임과 동시에 혁명(Revolution)에 의해 탄생되었고 국민 투표(Referendum)를 통해 승인된 공화국
(Republique)임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르완다 국민들로부터 빨간색이 1994년에 일어난 르완다 학살과
유혈참사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게 되자 2001년 10월 25일에 현재의 국기로 교체하였다.
◈ 르완다 국장
◈ 위치 : 아프리카 중앙
◈ 경위도 : 동경 30o00 남위 2o00
◈ 연평균기온 : 19oC
◈ 계절 : 1~2월, 10~12월 우기,
3~4월은 소 건기(乾期), 5~9월은 대 건기(乾期).
◈ 연평균강수량 : 1,270mm 정도.
◈ 면적 : 26,338㎢
◈ 인구(명) : 11,689,696 (2012년 7월 현재 - 세계 73위 / 아프리카에서 최고밀도)
◈ 평균수명(세) : 58.44세 (2011 est.)
◈ 출산율(명) : 인구 1000명당 36.14 명 (2011 est.)
◈ 시간대 : TC+2
◈ 수도 : 키갈리
◈ 종족구성 : 후투족(반투) 84%, 투치족(하미틱) 15%, 트와족(피그미) 1%
◈ 공용어 : 키냐르완다어, 프랑스어, 영어
◈ 종교 : 로마카톨릭 56.5%, 개신교 26%, 그리스도 재림교 11.1%, 무슬림 4.6%,
토착신앙 0.1%, 무종교 1.7% (2001년 통계)
◈ 독립일 : 1962년 7월 1일
◈ 정치체제 : 공화제
◈ 국가원수 : 폴 카가메(Paul Kagame) 대통령 (2003. 8 / 2010. 8. 9 재선 - 임기 7년
◈ 국제전화 : +250
◈ 통화 : 르완다 프랑(Rwanda franc)
◈ 인터넷도메인 : .rw
◈ 1인당 GDP($) : $1,300 (2011 est.)
◈ 수출규모(억$) : $293 million (2011 est.)
◈ 수입규모(억$) : $931.7 billion (2011 est.)
◈ 르완다의 역사
르완다 지역은 14세기경 북방에서 이주해온 투치족이 주변의 바후투족을 병합, 부근의 다른 투치족과
싸움을 계속하면서 왕국을 세웠으나, 유럽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독일의 G. 괴첸이 이
지역을 답사한 후이다.
1895년부터 부룬디와 함께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며, 1897년 독일이 보호령이 되었다.
1916년 콩고를 거점으로 한 벨기에군(軍)이 키갈리를 점령함으로서 1919년에는 벨기에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25년 통치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국왕 및 추장에 의한 전통적 지배체제가 근대화 되었고,
1930년에는 식민지로서의 정치제제는 물론 교육 시설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는 벨기에의 신탁통치령으로 바뀌었고,
1956년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지방평의회(地方評議會)가 설치되고, 뒤이어 부총독의 자문위원회가 전국
평의회로 개혁되었다.
1959년에 바후투족의 반(反)투치족 폭동이 일어나 믕와미(Mwami) 체제가 붕괴되고,
16세기부터 지배층을 형성해온 투치족 중에서 약 8만 명이 국외로 밀려났으며, 마지막 군주인 키게리
1세도 망명하였다.
1961년 6월,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신탁통치이사회의 감시로 실시된 주민투표와 총 선거에서
바후투족의 정당인 공화민주운동당(MDR)이 승리하였으며, 그해 1월에 선언되었던 공화제가 확인되고
MDR이 자치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그해 10월 벨기에의 승인을 받았으며,
1962년 1월 1일 정식으로 내정자치제가 허용되었다.
1962년 4월에는 부룬디와 통화관세 동맹을 맺고, UN의 결의로 신탁통치협정이 끝났으며,
1962년 7월 1일에는 르완다공화국으로 독립, MDR의 당수 그레구아르 카이반다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벨기에로부터 독립하기 3년 전인 1959년 다수 종족인 후투족이 투치족 왕족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 했다.
1965년 후투계 1당 독재가 시작되었고, 이 후 수년에 걸쳐 수천 명의 투치족이 학살되었고,
15만 명 이상의 투치계 주민이 주변국가로 피난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르완다 애국전선(RPF ; Rwanda Patriotic Front)을 결성하고 1990년 내전을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벨기에, 자이르는 후투계 르완다 정부를 지원했다.
1994년 4월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의 탑승기가 피격 당해 대통령이 사망하자 이 후 3개월간
후투계 정권은 80만 명에 달하는 투치 및 온건 후투족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우간다 등에 피신해 있던 투치계 RPF가 후투 정권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1994년 7월
마침내 정권을 쟁취했다.
이에 약 200만 명의 후투족은 투치족의 보복 살인을 두려워해 부룬디, 탄자니아, 우간다, 자이레 등 주변
국으로 피난을 떠났다. 이 후 대부분의 후투족은 르완다로 귀환했지만 수천 명은 여전히 자이레에 남아
반군을 조직하여 르완다 정부에 맞서고 있다.
◈ 르완다의 정치
1963년 강제 추방된 부룬디의 투치족이 르완다를 기습공격하자 르완다에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르완다
내부의 투치족 수천 명을 죽이고 1만 명을 우간다와 부룬디로 추방하였다.
이러한 불안 속에서 1973년 후투족 출신의 국방장관 주베날 하뱌리마나의 쿠데타로 국가개발혁명운동
(MRND) 이 결성되고 장기집권해온 카이반다가 실각(失脚)하였다.
같은 해에 하뱌리마나가 태통령이 취임하였고, 1978년 12월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된 이후부터는
민간인과 군 장교로 구성된 국가개발혁명운동이 단일정당이 되어 1당독제로 최고 권력을 보유하였다.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집행권을 가지고, 18명의 각료를 지명하여 내각을 구성하는데,
입법권은 MRND가 추천한 후보자 가운데 보통선거를 거쳐 선출한 7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국가
개발위원회가 가지고, MRND창립자이며 대통령인 하뱌리마나는 1988년 3선에 이른다.
1919년에는 복수정당제를 도입하였다.
1990년 10월부터 우간다에서 무장한 르완다인(투치족) 난민이 본국으로 들어오면서 내전이 격화
되었으나 1993년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아루샤(Arusha) 평화협정체결로 종식되고 과도거국내각을
수립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4년 4월 하뱌리마나의 비행기를 대통령친위대가 격추시킨 것이 발단이 되어 내전이
거듭되는 대학살의 참사를 맞았다.
안팎의 개혁압력에 많은 것을 양보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가진 보수파의 정치적 목적에 인종갈등이
더하여 참사를 초래하였는데 50~100만 명에 이르는 투치족과 후투족 융화파
시민이 학살되었다.
내전 이후 1994년 7월에 투치족 반군조직인 르완다애국전선(RPF)이 정권을 획득하였다.
내전 동안에 투치족이 우세해지자 후투족 시민들은 보복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탈출하였는데,
이후 난민이 130만 명이 1996년부터 귀환하였고, 모든 분야에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2000년 3월 후투족 출신의 대통령 비지문구가 사임하고 4월에 투치족 출신인 폴 카가메(Paul Kagame)가
대통령에 취임 하였으며, 양 종족간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의회제도는 양원제이며 상원 26석 하원 80석 등 총 106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정당으로는 르완다애국전선(RPF)과 후투족의 민주공화운동(MDR), 사회민주당(PSD), 자유당(PL),
온건민주당(PDC), 르완다대중민주연합(UDPR) 등이 있다. 2003년 실시된 하원의원 선거에서 RPF가 40석,
PSD가 7석, PL이 6석을 차지했고, 그 외 27석은 간접 선거를 통해 채워졌다.
병역제도는 지원제이며, 1993년의 평화협정에 따라 1만 3000명의 통합군을 창설하였다.
GDP 대비 국방예산의 비중은 2.9%(2006년 추정치)이다.
◈ 르완다의 경제
르완다는 인구가 과밀하고 천연자원이 없는 내륙국이어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편이며,
취업 인구의 9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커피가 주산물이다.
현 정부는 르완다의 실정에 맞게 경제 성장의 기본전략으로 인력개발 등 교육 분야 중점 육성 전략을
추진 중에 있다. 르완다는 건실한 경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여러
규제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07년 GDP 성장률(추정치)는 6.6%이다.
르완다는 수도인 키갈리를 아프리카의 Dubai로 건설하여 무역 및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 있다.
산업별 GDP 비중을 살펴보면(2007년 추정치), 농업 38.2%, 제조업 20.1%, 서비스업 41.7%이다.
노동력의 9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르완다는 극심한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수출품은 커피, 차(茶), 주석광, 피혁, 중석, 텅스텐 등이고,
수입품은 소비재, 식량, 원유, 의류 등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중국, 독일, 미국, 등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케냐, 독일, 우간다, 벨기에 등이다.
전력은 대부분 수력발전에 의존하며, 콩고민주공화국의 무루루 수력발전소에서 절반을 수입한다.
2006년 기준으로 총 9개의 공항이 있으며 이 중 4개만이 포장된 활주로를 가지고 있다.
도로 총연장은 14,008km이며, 이 중 2,662km가 포장도로이다.
◈ 르완다의 사회
르완다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하여 인구밀도가 높으며, 이것이 최대의 사회경제문제가 되고 있다.
1994년 이후의 내란으로 많은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이웃나라들인 부룬디,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난민수용소들이 국제구호단체들의 도움으로 세워졌지만 의료품 및 식량 부족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한국도 1995년 10월 ‘한국이웃사랑회(현 굿네이버스)’가 이들 난민촌을 방문하여 구호품을 전달 하였다.
교육은 8년(7~13세)의 의무교육제로 되어 있으나, 학령아동의 취학률은 약 70%이다.
남부의 부타레에는 1963년에 창립된 국립종합대학 르완다 대학교가 있다.
15세 이상 문맹률은 35.1% 이다(2004년).
언론매체는 주간지와 TV방송국 2국과 라디오 방송국으로 ‘라디오르완다’ 등 4국이 있다.
2만 2천개의 유선 전화 회선을 보유하고 있고,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29만 명에 달한다(2005년).
인터넷 호스트 수는 1,592(2007년)이며, 65,000명의 인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2006년).
◈ 르완다의 문화
1) 르완다 문화 형성의 배경들.
- 소국(小國)의 배경
- 내륙(內陸)에 위치
- 오랜 식민지 생활
- 농경사회 위주의 배경
- 전체적인 수입 의존에 의한 경제 운영과 이에 영향을 받는 개인 생활의 배경
- 외국원조(外國援助)에 의한 (국가재정의 50%가 외부 원조) 국가 운영.
- 부족 간의 내전으로 인한 아픈 과거와 상처들의 배경.
- 종교적 배경 (카톨릭 위주의 종교적 배경)
-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아프리카적 특성의 배경
2) 르완다 문화의 몇 가지 형태들
의복(衣服) 문화
- 평상시 때에도 어떤 의복을 입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달리 보는 경향(傾向)이 있다.
- 과거에는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개념에서 바뀌어 바지를 많이 입고 다니는 문화로 바뀜.
- 평상복은 르완다 자체 생산에 의한 의존보다는 아직까지는 수입품이나 구호물품(중고품)에서
나온 의복들을 의존하고 있는 상태. (거리에서 한글이 쓰인 티셔츠를 가끔 볼 수 있다)
- 결혼식 때 축하객 여자들은 전통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경제적인 빈곤 상태에 비해
결혼 당사자나 하객들 모두 화려함.
- 학교에서는 교복 입는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가격 문화
- 르완다의 가격 문화는 똑 같은 물품이라 할지라도 천차만별이다.
보통 한 물품의 가격이1,500 ~ 2,000Frw 의 차이가 나는 것도 있다. 가게에 따라 다르다.
- 가격이 수시로 변동되고 있다. 이유는 수입되는 시점의 수입가격에 따라 물가가 달라진다.
- 어떤 때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현지인이 사는 가격보다 2배정도 비싸게 부르는 때도 있다.
- 공산품 가격이 비싸다. 품질은 떨어지는데 어떤 것은 한국 보다 3~4배 비싼 것도 있다.
- 소고기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싸지만 닭고기와 생선은 비싸다.
- 때로는 정찰가격 표시가 있어도 가격 흥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교육 문화
- 대학진학에까지 이르는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고급인력에 속하며, 직업을 가질 경우 대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과의
수당차이가 심하다.
- 외국 계열의 학교가 계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 르완다의 국어인 키냐르완다어는 초등학교까지만 가르친다.
- 학교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불어, 영어, 키냐르완다어를 쓰고 있다.
- 학년에 비해 약간의 나이차이가 있어도 학비만 마련하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몇 개의 학교를 제외하고는 수업커리큘럼조차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는
상태가 있기도 하다.
특히 어린이 학교의 경우 선생님들 자체가 교육 방식과 그 방법론에 대한 열악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 국가 행정의 개편으로 인한 영어 교육의 활성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 르완다에서는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정도의 교육조건이다.
결혼 문화
- 남자가 거의 결혼 비용을 부담.
옛 풍습에서 볼 수 있는 약간의 잔류가 남아 있는 듯하다. - 여자를 돈 주고 사오는 개념.
- 결혼식과 그와 관련된 행사 시간이 길다.
- 빚을 내서라도 화려하게 치루는 결혼식 성향이 있다.
- 결혼 대상자 선택의 변화 - 과거는 뚱뚱한 여자 / 지금은 날씬한 여자.
- 결혼에 대한 절차는 해당 관서에서, 교회를 통해, 그리고 결혼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 나이가 많지 않아도 일찍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의외로 나이가 든 미혼 남녀가 많다.
결혼비용 마련의 유무에 따른 차이.
뚜렷하게 보이는 주종(主從)관계의 문화
- 주인과 종의 형태의 분위기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집안의 헬퍼나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경우
심한 차별을 두고 있다.
- 외국인이 직원이나 도우미를 고용할 경우 법적인 적용과 계약서를 중요시하지만,
현지인 고용주가 도우미나 기타 일군을 고용할 시 싼 임금과 계약서 없이 언제든지 해고 조치 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문화.
- 주인이 아니더라도 신분적 지위가 높다고 생각죄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 이런 주종관계의 구별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적배경은 식민지 생활 속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뚜렷했던 그 생활 방식이 그대로 전가되고 체질화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관공서 업무처리 문화
- 업무 절차는 세분화되어 있어 정확성을 기하나 때로는 일처리에 대한 신속성 결여.
당사자가 서둘러 확인하고 점검하지 않으면 잘 진행되지 않는 업무처리.
- 필요한 업무처리를 한 번에 처리하지 않고 여러 번 오게 하는 문화.
내일 오라는 문화. (업무처리 당사자 중심이 아닌 관공서 직원중심)
- 약간의 공무공권력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문화.
- 한 건의 업무처리에 있어 그 업무처리의 과정과 그와 관련된 비용의 종류가 많고 비싼 편이다.
거리 문화
- 이동 전화와 이동 물건판매 문화.
- 아직도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보이고 있다.
도심지를 벗어나 다른 지역에는 조금 더 심한 편이다.
- 대체적으로 거리는 깨끗한 편이다.
- 수시로 도로보수 하는 거리문화.
외국인을 대하는 문화
- 무중구라는 표현 ; 백인이라는 의미와 침략자라는 의미가 포함됨.
- 아직도 낯선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의례적이다.
- 외국인이면 무조건 돈이 많다고 인식하는 문화.
- 외국인과 연결되어 일하기를 원하는 문화 (재정적인 부분 때문)
- 그래도 동양인이나 남미보다는 동양인을 무시하지 않는 문화.
- 특히 한구사람에겐 중국 사람으로 불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종교문화
- 종교자유가 있는 문화.
- 카톨릭의 많은 영향력과 그 모습들. 그러나 내전이후 그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
- 오순절 계통의 기독교 성장률이 현저한 상태.
- 모슬렘 세력의 성장추세.
- 교회 자체 내의 예배 모습들은 대부분 열정적이며, 아프리카 특유의 춤과 하모니를 기본으로 예배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국가 정책상의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들이다.
- 보통 예배 시간은 2 시간 ~ 3 시간 정도이다.
통신 문화
- 집 전화보다는 핸드폰 문화가 먼저 보급되고 보편화 됨.
- 인터넷 카페가 타운 여러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인터넷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또한 큰 사무실이나 호텔들을 위주로 보급시키고 있다.
- 유선 방송 시스템이 보급되고 있다.
기타
- 질서문화는 아직도 잘 정착이 되지 않는 상태라 본다. (관공서나 은행에서는 대체적으로 양호)
-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문화.
-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진입을 원하는 드림문화.
르완다의 문화에는 옛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통 문화 유산으로는 투치 왕권의 합법성을 주장하기 위한 춤, 음악, 시가 많이 있고
1962년 독립 이후에는 후투족 유산을 강조하는 문화 흐름을 강조했다.
종교적인 춤이 각광을 받고 있고 바구니 공예, 세라믹 제품, 철 공예품, 직물 등은 과거의 전통을
살리고 있다. 국립 발레단은 전통 민속춤을 주로하며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임파라 오케스트라는
국가 문화생활에 기여하고 있다. 르완다 국립박물관에는 전통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 대한관계
르완다는 한국과 1963년 3월에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한국은 1970년, 1972년 두 차례에 걸쳐 소규모 원조를 제공하였다.
한국은 1972년 공관을 설치하고 1975년 철수하였고 1987년 재설치, 1990년 재 철수를 하였다.
1970년 4월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함에 따라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 되었다.
2000년 이후 주요 인사의 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는데 2006년 5월 반기문 당시 외무장관이 르완다를
방문했고,
2003~2006년 외무장관등 주요 관리가 한국을 방문했다.
2005년 10월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및 KOICA봉사단 파견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Paul Kagame)의 한국 방문이 2008년 6월에 있었고
2009년 1월에 한국에 르완다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IT 산업과 관련하여 한국의 기술을 토대로 한 고속인터넷 시스템 재구축이 한국통신(KT)에 의해
진행 되고 있는 중이다.
2004년 대(對)한국 수입은 7만 달러, 수출은 50만 달러이며
주요 수입품은 플라스틱, 전기기기, 섬유류이다.
▷ 위의 르완다 정보에 관련한 사진이나 글들의 출처는 미국 CIA, 주한 르완다 대사관을 비롯한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들과 직접적인 개인의 정보수집에 의해 조합된 자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