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誠)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성(誠)은 사물의 종(終)과 시(始)이니, 성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실히 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성(誠)은 스스로 자신을 이룰 뿐만 아니라 남을 이루어 주니, 자신을 이룸은 인(仁)이요, 남을 이루어 줌은 지(智)이다. 이는 성의
덕이니 내외(內外)를 합한 도이다. 그러므로 때로 조치함이 마땅한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誠者 物之終始 不誠 無物 是故君子 誠之爲貴
○誠者 非自成己而已也 所以成物也 成己 仁也 成物 知也 性之德也 合內外之道也 故時措之宜也〕
도는 천명(天命)의 총괄적인 명칭이다. 배우는 자로 하여금 도를 떠나지 않게 하려면 장차
어떤 말로 간절하게 일러주어야 하는가? 이 때문에 곧장 ‘도자(道者)’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이(而)’ 자를 ‘도(道)’ 자 앞에 붙였다.
여기에서의 ‘이(而)’ 자의 뜻은 ‘개(蓋)’ 자, ‘차(此)’ 자, ‘기(其)’ 자 사이에 있다. 문장의 기세가 낮아지다가 다시 높아지고,
말의 뜻이 비어 있는 듯하다가 도로 간절해져 배우는 자로 하여금 듣고서 경각심을 가지고 특별히 보게 하여, 즉시 이 도(道)야말로 내가 진정
스스로 행해야 할 것임을 깨닫게 한다. 주자가 ‘도(道)’ 자를 단독으로 제기하지 않고 ‘이(而)’ 자에 붙여 풀이한 것은 훈고(訓詁)의
변례(變例)이니, 그 의미가 깊다.
또 성(誠)을 풀이하면서 ‘언(言)’ 자로 시작한 것도 변례이다. 자사(子思) 문장의
오묘함을 깊이 완미한 자가 아니면 또한 주자의 이 ‘언(言)’ 자와 ‘이(而)’ 자의 오묘함을 알지 못한다. 이 장에서 ‘성(誠)’ 자를 비로소
자세히 말했다. 마음에 간직된 것이 성실하기에 시(始)가 있고 종(終)이 있는 것이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허위와 망녕이 있다면 사물이 없다.
“남을 이루어 줌은 지이다.〔成物知也〕”의 ‘지(知)’ 자와 ‘지(知)ㆍ인(仁)ㆍ용(勇)’의 ‘지(知)’ 자는 면목이 조금 다르다. 그러나 또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만일 지(知)의 밝음이 아니면 어떻게 만물을 두루 알 수 있겠는가.
성(誠)은 한결같다. 한결같기 때문에 진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과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없다. 그리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과 편벽되거나 치우침이 없기 때문에 만사에 응할 수 있고, 만물을 재단할 수 있으며,
때에 맞게 조처할 수 있다. ‘때에 맞게 조처함이 마땅함’은 바로 수장(首章)의 이른바 ‘달도(達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