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회재공(휘 정철)의 갑산도호부사 교지입니다.
숭덕7년(인조20년,1642년) 9월21일...
'교지 위정철위통정대부행갑산도호부사자'
숭덕7년 9월 21일'
정3품은 통정대부와 통훈대부로 나뉘는데
통정대부는 정3품 당상관의 작위이며
통훈대부는 정3품 당하관의 작위입니다.
'심양왕환일기(瀋陽往還日記)’의 저자로 알려진 만회재공의 교지로 추정됩니다.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값진 교지입니다.
재치...
◎댓글◎
●원산- 어떤 교지보다 중요한 교지가 나왔네. 그러니 종가 또는 방촌유물관의 교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 통정대부는 정3품의 품계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行은 품계보다 낮은 직책을 맡을 때 붙인 것이다.
●야운- ◆위정철(魏廷喆)을 갑산부사(甲山府使)로!
승정원일기 4책 (탈초본 82책) 인조 20년 9월 11일 무인 5/8 기사 1642년 崇禎(明/毅宗) 15년
⊙具鳳瑞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규장각 원본
⊙국역
○ 有政。吏批, 以具鳳瑞爲承文副提調, 安廷燮爲戶曹正郞, 李壽仁爲禮曹正郞, 魏廷喆爲甲山府使, 宋國澤爲同副承旨, 邊孝誠爲掌樂院正, 尹珩爲兼司憲府掌令, 許穡爲兼春秋館記注書, 崔應國爲軍資監主簿, 柳?爲儀賓莩事, 洪茂績爲刑曹參議, 鄭信道爲長淵府使, 李汝澤爲兼高山察訪, 李厚源爲承政院左副承旨, 李俔爲承政院右副承旨, 尹瑛爲奉常寺參奉, 李更生爲羅州牧使。出政目
⊙인조 20년 임오(1642, 숭정15)
⊙9월 11일(무인) 맑음
⊙좌목
⊙20-09-11[05] 정사가 있었다
정사가 있었다. 이비가 구봉서(具鳳瑞)를 승문원 부제조(承文院副提調)로, 안정섭(安廷燮)을 호조 정랑으로, 이수인(李壽仁)을 예조 정랑으로, 위정철(魏廷喆)을 갑산 부사(甲山府使)로, 송국택(宋國澤)을 동부승지로, 변효성(邊孝誠)을 장악원 정으로, 윤형(尹珩)을 겸 사헌부 장령으로, 허색(許穡)을 겸 춘추관 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으로, 최응국(崔應國)을 군자감 주부로, 유훤(柳?)을 의빈부 도사(儀賓莩事)로, 홍무적(洪茂績)을 형조 참의로, 정신도(鄭信道)를 장연 부사(長淵府使)로, 이여택(李汝澤)을 겸 고산 찰방(兼高山察訪)으로, 이후원(李厚源)을 승정원 좌부승지로, 이현(李俔)을 승정원 우부승지로, 윤영(尹瑛)을 봉상시 참봉으로, 이경생(李更生)을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삼았다.
- 정목에 의거함 -
[주D-001]겸 춘추관 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 : 원문은 ‘兼春秋館記注書’로 되어 있는데, ‘書’는 ‘官’의 오기로 판단하여 고쳐 번역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혜경 (역)
○야운- ●崇德(숭덕)
청 태종(太宗) 애신각라 ㆍ황태극(?新??ㆍ皇太?)의 두 번째 연호로 1636년 국호를 금(金)에서 청(?)으로 변경하며 개원하였고 1636~1643의 8년간 사용되었다.
●재치- 위이환 숭덕은 청의.연호...숭정은 명의 연호...공식문서에는 숭덕...개인적으로 쓰거나 대충 공문서는 숭정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원산- 조선의 崇明 反淸사상
벽천- 우리 문중의 유물 중 개인이 소장하고 계신 것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는 것이 많음을 단적으로 증명한 사건입니다. 보관하고 계신 유물을 알려주시면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문중 역사의 자료로 공유하고 사료적 가치를 연구하는 게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야운- ●政目(정목)
관원(官員)의 임명?해임(解任), 그 밖의 중요한 사실을 기록한 문서.
●야운- 용례: 장령 김지경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삼가 이달 11월 초8일의 정목을 보니, 의정부와 이조?병조의 낭원이 모두 다 초자되었고, 또 홍원용을 호조 참의로 삼았습니다.…” 하였다. ; 掌令金之慶等 上疏曰 臣等 伏見今十一月初八日政目 議政府及吏兵曹郞員 ?皆超資 又以洪元用 爲戶曹參議… [단종실록 권제9, 22장 뒤쪽, 단종 원년 11월 25일(정축)]
●선암-,통정대부 정3품 품계를 고지를 발견했네그려,
중요한 문중조상님 유물을 발견 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