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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들린 소리(눅3:15-22)
1. 누가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공생애 취임식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취임식-데뷔 무대는 세례 요한에 의해 준비되었어요.
"예수님은 왜 공생애를 바로 시작하지 않으시고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그의 소개로 공생애 데뷔를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협력 없이도 모든 일을 독자적으로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독불장군으로 일하지 않으시고 항상 사람들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일하기를 좋아하세요.
요한이 먼저 회개의 사역을 통하여 정지작업을 해놓고,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분-그리스도께서 주인공이시라고 소개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자신의 사명은 어디까지 인지 만족할 줄 안 정말 대단한 사역자였다.
2. 세례 요한의 신앙인격과 사역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납니다. 15절,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의 사역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는 것이었어요.
그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소리였습니다.(이사야40:3-4 예언의 성취)
놀라운 것은 그의 독설에 가까운 거친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유대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의 설교를 경청한 것이에요.
현대인들은 회개를 외치는 거친 설교를 듣기 원하지 않아요.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인 휴스턴의 레이크우드 교회에서는
죄나 회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요.
조엘 오스틴은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설교만 합니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교회에요.
그래서 세상이 그를 향해, 당신 교회가 교회냐?
당신이 목회자가 맞냐?는 비난의 소리를 들어요.
오늘 한국교회에서도 죄나 회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기복적 설교만
하는 목회자가 지혜롭다고 여깁니다. 교인들은 우리는 단지 기복적
설교를 원한다고 해요. 제가 전통교회 목회를 하며 직접 들은 말.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죠!
이런 점에서 세례 요한의 거친 회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당시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몰려왔으니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것을 영적 부흥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요한의 거친 설교를 듣고 마음을 열어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우리가 어찌 할꼬) 묻고 결당하고, 회개의 세례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반응하는 시대는 희망이 있어요.
메시야께서 곧 공생애 데뷔를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세대에도 이러한 희망을 기대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고 여기저기서 “우리가 어찌 할꼬” 하는 소리가.
세례 요한은 말씀만 잘 전한 사역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앙인격은 거의 완전할 만큼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 사람들이 요한이 혹 그리스도가 아닌지
기대한 것이에요. 사람들이 그동안 세속주의에 빠진 종교인들에게서
전혀 발견하지 못한 순수성을 요한에게서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회개운동은 대단한 영적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알렉산더 맥클라렌은,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손에 성경을 든 사람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고 했는데,
세례 요한이 이런 사람이었어요. 그를 통하여 400년 만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말씀은 어둠을 비치는 빛이에요.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는 영적 암흑기의 이스라엘에 임한 광명이었어요.
요한이 회개의 말씀을 선포할 때 유대인들은 그의 메시지 선포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운동이 엄청나게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3. 세례 요한의 신앙인격의 위대함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 것입니다. 지당해 보이는 일이나 이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요한은 빨래를 할 필요가 없는 가죽 옷을 입었거나
요리할 필요가 없는 메뚜기나 들의 꿀을 먹었습니다.
요즘 말로 요한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했어요. 자기생활에 절제를 했다는.
서울 어느 대형교회 목회자가 주일 점심 식사로 매주일 25만원을 구설수에...
전문 요리인을 불러다가 자기만을 위해 점심을 준비하게. 잘 나갈 때 절제할 수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아요. 최근 영상을 보니 이 목사님이
자기는 이런 사람이라고...하나님 이야기가 없어요.(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요한은 서울 대형교회 목사와 비교할 수 없이 잘 나갈 때에도 그는 이렇게
절제했어요. 요한은 옷과 음식만 절제한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보다 위대한 절제는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선포한 것이에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은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미혹의 영을 이겨냈어요.
이것이 사실 가장 이겨내기 힘든 자기 절제에요.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죠!
우리나라에도 자칭 그리스도-메시아들이 많이 있잖아요.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메시아로 사칭하지 않습니다.
나름 영적운동을 전개하다가 사람들이 자기를 따르고 좀 모이면
태도가 점차-서서히 돌변해요. 자신이 재림한 그리스도라고 사칭하기 시작해요.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천지 교회처럼 사람들을 미혹할 때 처음에는 이 사실을
감춥니다. 하지만 단계별 학습이 이뤄지며 미혹의 영에 걸려들 즈음 속내를
드러내요. 그들의 교주, 이만희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합니다.
이렇게 미혹하는 교주도 넘어지고 미혹당하는 사람들도 넘어지게 하는
불쌍한 영혼들이에요. 미혹의 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박보희의 경험-문선명에게 훈계하러 갔다가 당한 이야기.
하루만 더 기도하고 내게 다시 오라. 밤에 자는데 꿈속에서 문선명이
자기가 메시야라고 했다고. 여기에 박보희가 속았고, 문선명의 오른팔이 됨.
정명석이도 이런 경우가 있고, 과거 천부교의 박태선 등
도무지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4. 세례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소개했어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메시야-그리스도이시라고.
이 마땅한 선포가 현대판 자칭 메시야들에게는 절제할 수 없는 미혹이에요.
요한은 이 미혹을 완전히 물리치며 그리스도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16-17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은 그리스도가 누구라고 선포합니까?
그리스도는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차원이 다른 분이라고 했어요.
자신은 그리스도의 신발을 섬기는 노예도 되지 못한다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면, 이런 자세는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기에 사람들이 교만하고 날뛰고 미련한 모습을.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세례와 그리스도께서 베푸는 세례의 차이도 말합니다.
그것은 물과 불의 차이와 같다고. 물은 겉만 씻지만 속은 씻지 못해요.
불세례라야 속사람까지 씻는다는 말씀이에요. 또한 그리스도는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쭉정이를 불에 태울 심판자시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는 자신과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선포!
요한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구약 시대를 종결하는 마지막 인물이에요.
요한은 불의한 헤롯왕의 죄를 지적할 줄 아는 선지자였어요.
예언자가 악한 통치자를 향해 정죄를 선언하면 핍박이 따르죠!
요한이 이것을 몰랐겠습니까? 핍박을 두려워하여 악인의 행위를 정죄하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선지자가 아니에요.
현대교회에서는 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목회자를 지혜롭다고 합니다.
참 어두운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어요.
이런 자들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자기 안위를 추구하는 직업인일 뿐이에요!
구약 시대에 이런 선지자들을 거짓 선지자라 불렀어요. 악인을 향해서
침묵하거나 잘한다고 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 거짓 목자들입니다.
당시 헤롯의 죄에 대해 종교인들이 모두 침묵했는데, 요한은 책망했어요.
요한은 헤롯왕을 책망한 일로 옥에 갇히고 죽임 당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혼탁하고 무질서한 것은 목회자들이
선지자 역할을 하지 않고 지혜롭게 살기 때문이에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미련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이 지혜롭게 행하셨다면,
주님은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죠! 주님은 그 지혜를 버리고, 스스로 고난당하는
미련한 길을 선택하셨어요. 주님이 미련한 그 길을 가셨기에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미련한 길을 택하지 않고,
지혜롭게-쉬운 길을 택하여왔어요. 교회성장주의-성공주의-출세주의 등.
주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들을 누가 신뢰합니까?
맛 잃은 소금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빛과 소금의 비유를 말씀하신 그대로.(산상수훈, 마5:13)
5.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이 겸손하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시는 주님을 보고 거절했어요.
자기가 주님에게 세례를 받아야지, 어찌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수 있냐고!
예수님이 요한에게 뭐라고 말씀하셨기에, 요한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를 주었습니까?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예수님과 요한 네가, 이처럼 협력하여 모든 의-
하나님이 세우신 법도와 앞으로 이루실 모든 뜻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
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주님이 하시는 일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한이 부정되면 주님이 하는 일도 부정되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요한을 인정하고 그의 사역을 인정할 때, 요한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메시야로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것을 주님이 잘 아셨습니다.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왔는데,
둘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요한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받으셨어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세례는 죄인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죠!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할례에 이어
세례를 친히 받으신 것은 그가 죄 없으신 의인이시지만, 우리 죄를 담당하실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그리스도는 신성화된 인간도 아니셨고, 인간화된 신도
아니셨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셨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누가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강조해요. 이후에 다시 광야로 40일 금식기도를.
주님은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이별하기 전에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누가가 사도행전에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기록.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달려있다고 지난주일 나눴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도에요. 사람들은 체험을 원하고 응답을 기대하면서
기도는 잘하지 않아요. 체험과 응답은 몸으로 시간을 채워 기도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운동 시간을 채워 땀을 흘리는 자가 건강을 누리듯이.
저는 운동할 때도 시간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처음에는 아까웠어요, 내가 뭐하나?)
기도할 때에도 시간을 아깝게 여기지 않아요. 교제의 시간을 얼마나 갖느냐
하는 것은 그분과의 친밀함 정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다면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죠!
6.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강림하시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어요.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분명하게 선포하는 귀한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렸습니다. 여기 삼위일체 하나님이 동시에 나타났어요.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성령은 비둘기 같은 형체로, 성부는 말씀하시는 분.
삼위일체 하나님은 항상 분리되지 않고 하나이십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 닫혔던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예수님이 사람들을 향해 굳게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여셨어요.
하늘 문이 열렸으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를 부르기 시작하셨어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예수님이 친히 선포하신 것처럼, 이후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의 나라에 들어가며, 주님처럼 기도할 때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누리며 살 수 있어요. 마18:19,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
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아이디어나 능력에 모두 무궁무진하셔서 언제나 어디서든지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을 보지 마시고
그 문제를 능히 풀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의 교회개척도 그렇고, 여러분 건강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모든 것들이 하늘 문이 열리면 해결됩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고 이런 일들을 모두 경험하고 있어요.
여러분 그 문으로 들어가 볼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