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의주대로 70리를 가다
1. 파주시에서 개설한 『임원경제지』-<상택지학교>의 파주 의주대로 답사에 참여했다. 파주시의 의주대로 구역은 고양시와 경계인 ‘혜음령’에서 민통선 내부의 JSA입구까지 약 28km(70리)이다. 이 길은 서울과 북쪽을 연결하는 오랜 역사와 문화의 자취가 새겨져있는 공간이다. 파주 혜음원에서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혜음원을 설립하게 된 이유를 제공했던 험준한 ‘혜음령’으로 이동했다. 진행자(이우형:헌강역사문화연구소장)는 이 고개가 함경도에서 서울까지 길 중에서 가장 험한 길이었고 그래서 호랑이와 같은 맹수와 도둑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이번 답사에는 의주대로의 명소 뿐 아니라 <상택지>에서 지정한 파주의 명당자리도 포함되었다.
2. 민통선을 넘어가기 전에는 옛 파주의 중심지 파주목이 있던 현재 <파주초등학교>와 그 주변의 <마산역지>를 답사했다. 파주목이 있던 곳은 ‘파주’라는 지명과 전혀 관계없으며, 파주라는 ‘언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은 ‘장파리’의 ‘장마루’에서 따 온 말이라고 한다. 장파리와 금파리에 걸쳐있는 약 3km 연장의 ‘장마루’ 언덕의 황토색 등성이를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추정되는 것이다. 이 지역은 최근 선사시대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진행자는 연천의 <전곡리유적> 지대 못지않게 많은 선사시대 유구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3,과거 파주목이 있었던 파주읍은 일본의 도시 정책에 의해 쇠락한 지역이다. 1905년 경의선이 준공되자 일본은 역이 있는 문산 지역을 중점적으로 계발하였고 원래의 중심지였던 파주읍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던 것이다. 이런 도시 정책은 철도가 들어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조선시대 번창했던 많은 장소들이 사람들이 찾지 않은 폐허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파주 초등학교 뒤에는 파주의 진산인 <봉서산>이 있고 그 옆에는 <파주향교>가 있다. 조선시대 유교적 예법에는 ‘좌묘우사’라는 원칙이 있어 동헌이 바라보는 방향의 왼쪽에는 향교를 오른쪽에는 사당을 배치한다. 이러한 원칙은 조선의 정궁 경복궁의 왼쪽에 <종묘>가 오른쪽에는 <사직단>이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4. 민통선으로 들어가자 오래전에는 번창하였지만 이제는 흔적도 거의 남지 않은 의주대로 중심지를 답사했다. 그곳에는 중요 파발기지였던 <동파역지>가 있고, <구 장단면 읍지>가 있으며, 고려 공민왕때 수도를 옮기려 시도했던 <고려 장단신궁지>가 있다. 지금은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이 지역이 과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진행자는 특히 <장단신궁지>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우리의 역사가 쉽게 발굴할 수 있는 정보에만 편중하여 균형잡힌 시각을 잃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5. 마지막으로 답사한 곳은 <정자포>이다. 이 곳을 가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약 30분 정도 임진강을 따라 걸어야 했다. 민통선 안에서 걸을 수 있는 행복한 기회를 얻은 것이다. 짧아진 해가 저물어가는 임진강을 일행보다 앞서 빨리 이동하면서 ‘나만의 답사’를 시작했다. 앞에 아무도 없으면 그것은 혼자만의 답사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정자포’는 <임원경제지>에서 말한 대표적인 명당자리이다. <상택지>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땅은 삼남 지방처럼 비옥하다. 동남쪽으로 삼각산이 바라다 보이고 험준하고 우뚝 솟은 것이 커다란 홀과 같다.” 안내가 없다면 그냥 평범한 논과 땅일 뿐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제법 편안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다시 버스를 돌아오면서 저녁놀의 강렬한 빛을 받으며 통일대교를 향해 걸었다. 이번 답사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문화적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답사보다도 진행자의 설명이 깊었고, 파주의 지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임진강 하류 지역을 마음껏 걸을 수 있었다는 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첫댓글 - 사라져가는 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걷는 길은 삶의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 지나온 길, 지금의 길, 앞으로의 길...... 삶은 길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