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한계를 뛰어넘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범위 그 이상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들의 한계부터 뛰어 넘습니다. 억, 조, 혜, 경
붕새가 남쪽바다로 갈 때 삼천 리를 난 다음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올라가서..
항상 이야기를 할 때 5만년전에, 5만년동안, 5만리를 넘어서
좀 다른 의미일수도 있지만. 저는 언어의 한계가 생각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므로써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생각도 합니다. = 즉 다시말해서 표현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거죠.
영화 = 루시 라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뇌의 100%를 사용하면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개념 가운데 시간 말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인간들은 편의를 위해 1+1 = 2 라고 규정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생각의 한계가 생겼다. 1+1은 2가 아니다.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부정하고 새롭게 정의하고 정립하라. 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 즉 우리가 진리, 혹은 과학이라는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그렇게 하자’ 라고 정해진 거지. 진리 그 자체는 아니다.
사회적 합의 = 상식 = 사회적 안정 = 생각의 한계 = 틀 = 구조적 모순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공자 = 천명사상 = 왕/ 제후 / 귀족 중심 (위로부터의 지배)= 출세 = 세상으로 나가라. - 유가
노자 , 장자 = 무위사상 = 서민 중심 (아래로부터의 요구) = 심리적, 내적인 힘, 은둔 - 도가
노자와 장자를 비교해본다면
노자는 잠언 형식, 간략한 문구, 정치 지도서적, 도의 근원을 묻고
장자는 광대, 풍부한 문장, 이야기 형식, 개인의 삶에 관심. 도의 생성 , 변화를 강조 -> 순환한다는 개념
굉장한 달변가 = 풍부한 비유, 시의 적절한 예시.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풍부하고 자유분방하다.
“크게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듯 보인다”
-> 가득차 있는 것은 무릇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수기 물통이 가득차 있으면 차있는지 비어있는지 모른다)
노자와 장자는 인간이 겪는 많은 모순들은 제 스스로 존재하는 많은 사물들에게 이름을 붙인 다음, 그것들을 각각 크다느니 작다느니 희다느니 검다느니 이것은 저것과 ㄷ르고 저것은 이것에 비해 옮다거나 그르다는 등 구별하고 차별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는데서 생긴다고 말함.
따라서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사물을 동등하게 보아야 한다. 이를 제물이라 한다. =가지런히 할(다르를)제, 물건 물
=> 아는 형님의 서장훈의 느낌 –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장자는 우물 안 개구리의 비유를 들며 차별의 세계를 넘어서 위대한 정신에 도달하라.
무위 , 무용 = 조작적인 행위가 아닌 자연스럽게 살라는 의미.
무용 = 쓸모 없는 것이 참으로 쓸모있는 것이다.
소요 = 산책하듯이 사는 것.
선유후도 = 먼저 유가를 배운다음 나중에 도가에 귀의함.
예시 : 소를 잡는 백정 / 근육은 조심 ,
장자 = 관념의 한계를 넘어 생각하라.
생각을 자유롭게 노니어라. 의미를 찾지 말라.
크게 생각하라. 큰 사람이 되어라.
시비선악을 분별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