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전사들은 2002년 6월 25일 20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4강전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요코하마행 비행기표에 대한 예약이 폭주할 정도였다.한국은 상대적인 체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0-1로 무릎을 꿇었다.한국은 특유의 정신력과 조직력으로 독일 문전을 위협했다.
그 때마다 독일의 골키퍼 올리버 칸의 손에 막혀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결국 후반 30분 한 번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미하엘 발락이 결승골을 터뜨렸다.한국팀은 0:1로 독일에 석패했다.
"거리응원을 나온 7백만명의 한국인들은 영웅들이 쓸쓸히 퇴장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이룬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영국 BBC방송
“한국의 응원단은 낙담하지 않고 경기에 진 선수들을 기립박수로 격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AP통신
2002년 6월 25일 한국이 역사적인 독일과의 4강전을 치른 뒤 세계 주요 언론들이 한국의 축구팀과 한국의 거리응원단
'붉은 악마'에 무한한 격려와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뉴욕타임스는 30일 인터넷 판에서 "2002 월드컵대회는 한국인에게 환희와 절도 있는 축제로 일종의 '축구판 벨벳(무혈) 혁명'이었다"고 보도했다.이 신문은 '어떻게 축구가 한국을 활기차게 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한국 전역을 뒤흔든 열광의 현상을 분석했다.이 신문은 특히 "폭력도 너저분한 행위도 없이 단지 환희와 절도있는 축제만 있었던
축구판 벨벳혁명"이라고 강조했다.

독일과의 4강전이 벌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초만원을 이루었다.그날도 관람객들은 축구경기에 관심을 쏟았다.
동시에 그날 그날 달라지는 '붉은 악마' 응원단의 프랑카드에 등장하게 될 메시지와 응원전에도 관심이 적지 않았다.
소설가 이순원 씨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입장해서 그날 '붉은 악마' 응원단이 펼칠 카드섹션을 기대하면서 그날의 경기를
관람했다고 했다.그는 독일과의 4강전 관람기를 경향신문에 기고하였다.그 기고문을 아래 옮긴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로 지난 25일 독일과 벌인 4강전 경기 때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그날 우리의 ‘붉은악마’가
선보일 카드섹션의 테마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폴란드전에서는 ‘Win 3:0’이었고, 미국전에서는 16강으로 가자는
뜻으로 ‘Go KOR 16’, FIFA 랭킹 5위인 포르투갈전에서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선보였다.
그러다 이탈리아와 치른 16강전에서는 1966년 북한이 이탈리아를 16강전에서 이겼을 때의 일을 상기시켜
‘Again 1966’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는 ‘Pride of Asia’를 민주성지 광주 월드컵경기장에 아로새겼다.
그리고 서울 월드컵경기장까지 왔다. 많은 사람들이 결승을 염두에 두고 ‘Go Yokohama’쯤 되지 않을까 여겼다.
독일을 누르고 결승전이 열리는 요코하마로 가고 싶은 마음이야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4천7백만 우리 국민
모두 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의 메시지이길 바랐다.
선발 선수진의 명단보다 응원석 카드섹션의 테마가 더 궁금했던 것도 그 테마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심어주는 각별한
의미 때문이었다. 본선 조별 경기에서부터 한게임 한게임 쌓아올린 우리의 승리는 운동장에서 뛴 선수들뿐 아니라
4천7백만 국민 모두의 염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루어낸, 그 자체로 이미 우리 역사에 빛날 금자탑이었다.
그리하여 아로새겨진 테마, ‘꿈은 이루어진다’. 이보다 더 크고 아름다우며 미래지향적인 테마가 있을까.
축구장에서 나는 가장 짧고도 가장 시적이며 가장 큰 우리의 꿈을 보았다. 그 테마 아래 우리 선수들은 장신의
독일 선수들과 싸웠다. 이기면 당장 결승을 치르러 요코하마로 가는 하나의 기적같은 꿈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아니, 졌다. 키 큰 저들의 공격을 막고 또 막으며 틈날 때마다 전열을 가다듬어 기습을
노렸지만 경기의 승부에서 우리는 아깝게 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정말 진 것이 아니다. 요코하마로 가는 꿈은 접어야 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당당하게 싸웠고,
또 열심히 마음을 합쳐 응원했으며, 그 속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 꿈을 이루어냈다.
그것은 터키와 가진 3·4위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스포츠에서 승리 이상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고,
또 그것을 얻어냈다.보다 좋은 것은 언제나 내일에 있다. 당장 얻게 되는 한게임의 승리가 우리 꿈의 모든 것이 아니다. 이번 대회 기간 우리는 축구 그 이상의 것을 이루어냈다. 그래,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려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고, 진행형으로 아직 미완인 미래의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축제는 끝나도 나는 그 이름이 자랑스럽다. 오, 대한민국!
한일월드컵대회 기간 내내 붉은 악마 응원단이 내놓은 카드섹션의 문구는 뭇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경기 당일까지 누구도 그 문구는 알 수 없었다.언론에서 다투어 서로 그 문구를 미리 빼내려고 해도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은 카드섹션 내용이다.독일과의 4강전을 앞두고 생긴 카드섹션의 촌극도 아주 극적이고도 아슬아슬하기까지 했다.
사이버공간에서 본 글이다.글 제목은 <2002 월드컵 카드섹션 후기 <7> 독일전. 꿈은 이루어진다>다.
그 내용 일부를 옮겨 보려고 한다.표현은 인터넷 글이라 딱딱하고 좀 그렇다.그러나 실감나는 표현이라 재미가 있다.
4강까지 올라오고 나니까 카드섹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했어.
언론쪽의 인터뷰 요청도 끝도 없이 쇄도했지.
특히 연합뉴스 기자는 거의 매일 전화를 하는데 이분 근성이 대단하더라고. 계속 전화야.
해줄 말도 없는데 전화가 자꾸 오니까 사무국에 더이상 전화번호 알려주지 말라고 요청하고 작업을 시작했어.
신문에 자꾸 '극비리에 카드섹션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뜨네...--;
사실 카드섹션은 미리 공개가 되면 효과가 떨어지니까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어차피 정해진게 없어서 알려줄 수도 없는건데 분위기가 영 적응이 안되더라.
게다가 '이번에는 더욱 강력한 카드섹션 문구를 구상중이다'라는
기사가 자꾸 나오고 주변사람들도 '야 이번엔 뭐냐? 쎄게 나갈꺼라며?'
라고 묻는데 뭐라고 할말이 없더라고..
그래서 우리끼리 얘기했지.
'야 이거 감당 안된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맞춰줘.
차라리 이번엔 감성에 호소하는 부드러운 스타일로 가자'
경기장을 살펴보고 다음날 아침 일찍 경기장에 가서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 다음날 카드섹션을 지휘할 사람 대여섯명이 같이 묵게 됐지.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뭘로 해야할지 정하질 못했어.
몇가지 아이디어는 나왔는데 딱 이거다 싶은게 없었지.
가끔 애들한테서 전화가 오는데
'야 이번에 카드섹션 독일 나치 까는걸로 한다며? 지금 인터넷에서 욕 무지하게 올라온다'
'차범근 얘기로 카드섹션 한다던데 진짜냐?'
'625를 소재로 할꺼라며?(경기날이 6월 25일이었음--;)'
징하다 징해...
밤 2시가 됐는데도 여전히 뭘로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어.
다들 지쳐서 해롱대고 있는데 TV에서 월드컵 얘기가 나오더라구.
이재후, 신영일 아나운서가 나오는 월드컵 프로였는데 여기서도 카드섹션 얘기를 하더라.
"네 여러분 붉은악마가 이번엔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강력한 카드섹션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아~ 뭘까요 기대되는데요. 그렇죠?"
여기까지보고 두손두발 다들었다..
우린 뭘할지 정하지도 못하고 밤새 찌질대는 중인데..ㅎㅎ
암튼 회의는 계속됐고
다른 담당자 애의 의견은 Dreams come true를 쓰자는 거였어.
나는 반대의견이었지. 좌석에 그 글자를 다 썼다간 무슨 얘긴지 알아보기 힘들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얘가 다시 머리를 쥐어 짜낸게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꿈과 은 사이에 우승을 상징하는 별을 넣는 거였지.
내가 생각해낸 문구는 아까 얘기했던 감성에 호소하는 스타일의 문구였는데
최종적으로 두개를 놓고 뭘로할지 결정해야했어.
나는 내가 생각한 문구가 더 났다고 생각했고
다른 애는 또 자기가 생각한 문구가 좋다고 생각해서 결론이 안났지.
직책상 먼저 카드섹션을 담당한 애가 담당자였고 나는 부담당자였는데
자꾸 내가 우기면 나이빨로 밀어붙이는 꼴이 될것 같았어.
내가 몇살 더 많았고 오래 알던 사이라 걔가 직책으로 밀어붙이기가 좀 그랬거든..^^
그래서 거기서 정리해야했지.
꿈은 이루어진다로 가자

월드컵이 열린 2002년의 6월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은 특별했다. 장애도, 차별도, 반목도, 질시도 없는 꿈같은 세상이었다.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병상의 중환자들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손에 땀을 쥐었고, 마침내 감동했다. 월드컵은 결코 ‘가진 사람들’이나 ‘힘센 사람들’의 잔치가 아니었다.
한국사회의 그늘진 곳에 깃든 소외된 사람들조차 외로움을 잊었고, 골고루 행복했다. 월드컵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다.
붉은 6월의 한복판에서 한국인들은 꿈꾸어왔던 한국의 모습을 완성된 퍼즐처럼 분명하게 바라보았다.
2002 월드컵은 한국 스포츠 사상 최대 사건이었는지 모른다. 이미 올림픽을 치렀고, 세게 10대 스포츠 강국의 하나로 분류될 만큼
국제 무대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월드컵만큼 한국을 송두리째 뒤흔들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을 밝혀준 이벤트도 없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이벤트를 유치해 완벽하게 성공시킨 한국인의 자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