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릉 (집안지역) * 백탑 (심양지역)
이제는 더 뛰지 말 것이다
아프리카에는 이상한 미신(迷信)을 믿고 사는 종족(種族)이 있다고 한다. 열병(熱病)에 걸린 환자(患者)는 무조건 앞을 보고 전속력으로 뛴다는 것이다. 병(病)이 자기를 쫒아오지 못하도록 빨리 달아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뜩이나 신열(身熱)로 들뜬 환자가, 가뜩이나 숨이 찬 그 환자가, 가뜩이나 사지(四肢)의 힘줄이 풀려진 병약자(病弱者)가 이렇게 질주를 한다는 것은 도리어 죽음을 재촉하는 일로 보인다.
그러나 남의 일 같지 않다. 문명(文明)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도 대개는 다 그런 행동을 한다. 가난의 자리에서 떠나기 위해서, 폭력(暴力)의 위험(危險)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불행한 모든 운명(運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저렇게들 뛰고 있지 않는가?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헐떡거리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침이나 저녁이나 뛰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도피자(逃避子)들은 토인(土人)들의 눈처럼 그렇게 슬퍼 보이는가 보다.
그러다가 더욱 가난해지고 더욱 위험(危險)해지고 더욱 운명의 함정에 깊숙이 빠져든다. 어디를 향해서 뛸 것인가? 아무리 뛰고 또 뛰어도 토인들은 자기의 숲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새 지평(地平)이나 섬에 이르기 전에 그들보다 먼저 앞질러 서 있는 열병(熱病)을 본다.
나의 詩人들아, 이제는 더 뛰지 말자. 그러나 주저앉지도 말아라. 차라리 체온계를 입에 물고 하얀 수은(水銀)이 가리키는 눈금을 읽을 것이다. 너의 신열(身熱)을 그래프에 그리며, 36도 5분의 행복했던 일상의 체온을 추억하라. 마치 산맥처럼 오르내리는 신열의 그래프 선보다 더 높은 산정(山頂)에 올라 너의 고통을 굽어볼 일이다.
나의 詩人들아 도피(逃避)는 미신(迷信)이다. 아직 낳지도 않은 어린 生命들에게 미리 이름을 지어 놓듯이, 詩人이여 치유(治癒)의 날을 위해 言語를 예비해 두라. 그 날이 영영 오지 않더라도, 36도 5분이 人間의 평상체온(平常體溫)임을 알려 주거라. 열병(熱病)에 들뜬 사람들의 질주를 멈추게 하고, 다시 그들을 빈 집으로 돌아오게 하라. 환자(患者)의 머리맡에는 등(燈)불이 켜져 있어야 할 것이며 열(熱)을 식히는 얼음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너의 言語는 얼음처럼 차고 또 등불보다 더욱 환하거라.
지은이: 이어령
출 처: 『문학사상』.1975.05
마음의 운율
바다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바다가 너른 품이다. 마음이 소란할 때는 내가 자란 바다에 다녀왔다. 신발을 벗고 모래를 보독보독 밟고서 바다 가까이 다가갔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갔다. 파도는 때때로 발에 닿았다. 바닷물이 차게 스며들고 소소소 모래가 빠져나갔다. 발아래 내 자리만큼만 미세하게 움푹해졌다. 맨발로 젖은 모래 위에 오도카니 서서 바다를 지켜보았다. 쏴아아 쏴아아. 밀려오고 닿았다가 밀려가고 사라진다. 나에게 닿을 때도 있고 닿지 못할 때도 있지만, 결국 파도는 닿게 되리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나는 바다를 보고 들었다.
살아가면서 지키기 힘든 건 언제나 마음이었다. 내 마음 썰물 같아 한없이 밀려가 소진되어 버릴 때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을 때마다, 모르는 새 익숙해진 노랫말처럼 어떤 문장을 읊조렸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바다에서도 그랬다. 일정하게 반복되고 되돌아오는 풍경과 소리. 지금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바다의 운율이라면, 내 삶의 운율도 마치 바다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다가 잠시 멈춰 선 지금 내 마음은 어떤지 궁금했다.
“살 만큼 살아보니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어. 그런 사람들은 자기 얘기만 해. 하려는 말일랑 이미 답이 정해져 있고 상대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은 참 귀하단다. 딸아, 세상을 잘 들어보려고 애쓰는 사람을 곁에 두고, 너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좀 겸허해지라는 말이야. 살아보니 행복도 불행도 겪어볼 만은 하다.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가까이 다가가렴. 너무 좋아하지도 말고 너무 싫어하지도 마. 왔다가도 간다. 다시 오더라도 다시 가. 오고 간다, 삶이라는 게. 오고 가는 일들 모두 겪어보자면 마음이 잔잔해지는 때가 온단다. 오늘 평온한 바다처럼.”
새벽녘과 해 질 녘의 바다의 얼굴, 발바닥에 남은 파도의 감촉, 모래 틈에 반짝이는 조개껍데기, 주머니와 운동화에 바작거리는 모래알, 그리고 같이 바다를 걸었던 엄마의 말을 주워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일상이었다. 책장을 뒤져 앨리스 메이넬의 산문 ‘삶의 리듬’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번에는 다른 문장이 주머니에 모래알처럼 남는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창밖은 파랑. 평온한 바다를 닮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다. 내 마음의 파도는 지금도 오고 간다. 바다에도 삶에도, 그리고 내 마음에도 운율은 있다. 오늘은 나, 행복하겠다고 마음을 움직여본다.
지은이: 고수리, 에세이스트
출 처: 동아일보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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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시편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 테요
五月 어느 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떨어져 누운 꽃닢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 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오 월>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진다
바람은 넘실 천(千)이랑 (萬)이랑
이랑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여태 혼자 날아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 빛난 길이 어지럴 뿐
얇은 단장하고 아양 가득 차 있는
산봉우리야 오늘밤 너 어디로 가버리련?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교흔 봄 길 우에
오날 하루 하날을 우러르고 ᅟᅵᇁ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詩의 가슴을 살프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애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 싶다.
오월 하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강원도 산악지역에 눈이 두텁게 내렸지요. 반팔 소매의
옷을 입고 다니는 이도 보였는데 눈을 내리시다니요.
저는 오월 초순에 '고구려 산성답사'를 위해 중국 길림성과 요동성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왔습니다.
압록강가에는 겹벚꽃이 만발했고, 동명성왕이 성을 쌓았던 졸본성에는 진달래가 한창이었습니다. 집안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를 먹었는데 크고 달고 살이 단단했습니다. '대구 사과'의 명성이 퇴색되면서 사과의
재배지가 북으로 북으로, 집안지역, 옛 만주지역으로까지 올라갔습니다.
유정의 독서 모임, 5월 22일 수요일 18시부터 커먼즈 필드에서 진행됩니다. 이번에 함께 읽게될 작품은
김유정의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입니다.
수요일 오후에 뵙겠습니다.
2024.05.19 강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