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우의 <성공 시대>
1. 88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개봉된 장선우 감독의 <성공 시대>는 8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시대적 전환을 상징하는 작품인지 모른다. 이제 한국 사회는 특정한 집단의 권력보다는 자본이라는 추상적이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지배되는 ‘이익’ 추구의 세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날카롭게 재현하고 있음에도, 1980년대를 지배했던 억압의 문제, 체계의 문제에 대한 좀 더 명확한 해결을 제시하지 못한 채 변화된 세계 속으로 급격하게 전환하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2. 여전히 군사적인 위계질서와 강압적인 명령이 지배하는 식품 회사에 입사한 김판촉(안성기 분)은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과 온갖 비열한 방법을 동원한다. 그가 선택한 전략은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정공법적인 시도가 아니라, 화류계를 활용한 핵심 정보 취득, 상대 회사에 대한 흑색 선전, 내용보다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만드는 선전 효과의 활용 등이다. 결국 집요하면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하여 그는 3년 안에 시장 지배권을 역전시키고 그 또한 급속도로 이사로 승진하게 된다.
3. 하지만 빠른 성공은 급격한 몰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이용한 여성에 대한 배신, 오직 성공이라는 목표에 올인하면서 생겨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내용의 충실도가 아닌 광고라는 허상의 가치를 통한 성공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했다. 상대 회사 또한 새로운 홍보 환경에 적응하면서 똑같이 비열하면서도 비밀스런 전략을 수립했고, 배신당한 여성을 역이용함으로써 다시금 시장 지배권을 획득하게 된다. 김판촉은 문책인사로 이사 자리에서 지방 판매소 소장으로 강등당한다.
4. 강등당한 김판촉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한국 ‘자연의 맛’이라는 제안은 무시되고 분노로 도로를 질주하던 그는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오직 성공과 부에 집착하던 한 인간의 불행한 몰락이 펼쳐진 것이다. 영화 <성공 시대>는 김판촉을 통해 자본과 부의 이데올로기가 확산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천박성과 집단적인 광기를 예측하고 있다. 당시의 경제적 호황은 사람들을 새로운 가능성과 욕망으로 들뜨게 만들었다. 회사들은 무리하게 규모를 확충하였고 사람들에게 절제와 속도조절은 금기어였다. 매출의 증대, 규모의 확장은 한국 사회의 ‘성공’ 시대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모두 믿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10년도 채 안되어 1997년 ‘IMF 사태’라는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사건이 터지게 된다.
5. <성공 시대>는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질서로의 진입을 분명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판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성공에 대한 개인적 야심과 오직 시장 지배권에만 몰두하는 회사의 경영 등 자본주의적 문제를 도입하였지만, 문제 제기의 방식이 지나치게 희화적으로 그려졌고 코믹한 상황을 과다하게 사용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관객의 흥미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주제의 선명도를 희생하는 ‘흥미’를 우선시 하는 태도는 영화가 비판한, 내용보다 포장을 중시하는 회사의 정책처럼 아쉬움을 남긴다.
6.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는 분명 민주화의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 제기했던 ‘함께 잘살자는’ 민중적인 가치는 급격하게 사라졌고 올림픽의 열기와 경제적 호황이 가져온 분위기 속에서 급속도로 개인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적 분위기로 변모하였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했을 부의 지속적인 분배 문제, 사회적 민주화 등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대통령 직선제만이 민주적 항쟁의 목표가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에게 자유, 민주주의, 평등, 공정의 문제는 사라졌다. 결국 이러한 불확실한 마무리는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로 남게 되었고 해결을 위한 더 큰 댓가를 치러야 했다.
첫댓글 성공이라는 신화를 향한 몸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