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냄새, 발 냄새도 향기로워
박은자 (예은교회 사모, 동화작가)
목사님의 설교가 거의 끝나 갈 무렵입니다. 문이 살그머니 열렸습니다. 순간 돼지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김천수 성도님입니다. 김천수 성도님은 조용히 들어오더니 맨 뒷줄에 앉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늦게라도 오는 것을 보고 목사님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핍니다. 아마 일을 하다가 허겁지겁 달려온 것 같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은 평일에는 도축장에서 일하고 일요일에는 잔칫집에서 주문한 머릿고기를 만드느라 바쁩니다. 일요일엔 새벽 2시나 혹은 3시에 일어나서 고기 삶는 일을 시작하건만 주일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고 무척 안타까워합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일어나고는 했습니다. 핸드폰을 끄지 않아서 핸드폰이 여러 차례 울리기도 했고, 그 핸드폰을 예배 중에 받는 것입니다. 그 목소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이 그만 뒤를 돌아다봅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나가지만 너무 큰 소리로 전화를 받기 때문에 그 목소리가 목사님의 설교보다도 더 크게 들립니다. 전화를 받고 들어온 김천수 성도님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급한 전화라서요.”
‘아, 그래요?’ 라고 누군가 말을 한마디라도 해 주면 김천수 성도님은 아마 계속해서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에 김천수 성도님을 행해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 김천수 성도님은 얼른 알아채고 자리에 앉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6개월쯤 지나자 김천수 성도님은 예배시간에 늦게 들어오다가 말을 하는 일도, 핸드폰이 울리는 일도 없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예배시간에 늦는 일도 없겠지요. 어디 그 뿐일까요? 예배를 드리러 오기 전에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오게 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따라 김천수 성도님에게서 돼지 냄새가 더 심합니다. 옆에 앉은 분이 저를 툭 치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예배시간이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저는 가만히 웃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 돼지냄새도 향기로워.”
그렇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돼지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천수 성도님이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돼지냄새가 나도 어찌 그리 반가운지요. 늦게 와도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 어찌 그리 좋은 지 제 마음에 기쁨이 피는 것입니다. 그러니 돼지냄새가 향기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공동식사를 하기 위해 1층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콩나물밥입니다. 목양교회 이희숙 장로님이 가져다준 콩나물이 다섯 봉지나 있었고, 삼일식품에서 일하는 이용길 집사님도 콩나물을 가져왔습니다. 맛있는 콩나물밥을 성도님들에게 드리고 싶어 느타리버섯을 한 상자 사다가 데쳐 놓았습니다. 어머니 윤 권사님은 무나물과 시레기나물을 만들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감자를 넉넉히 썰어 넣고 끓인 미역국 맛도 일품입니다. 양념간장 옆에 시어머님이 보내주신 맛있는 고추장을 놓았더니 아주 맛있는 콩나물 비빕밥이 되었습니다. 차준미 성도님은 남편에게 주고 싶다며 싸 줄 수 있느냐고 묻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맛있어서요. 나 혼자 먹고 가기에는 남편이 걸리네요.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차준미 성도님에게 콩나물밥을 싸 드리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습니다. 두부와 김치까지 봉투에 담자 차준미 성도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콩나물밥을 한 번 더 할까요?”
그런데 후식으로 식혜를 내오시며 윤 권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다음 주일에는 우리 오곡 찰밥을 먹어요. 그 때도 국은 오늘처럼 미역국을 끓이는 게 좋을 것 같죠?”
윤 권사님의 말씀에 성도님들은 정월대보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헤아려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밥을 먹은 후에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김천수 성도님이 아직 일이 남아 있다며 먼저 일어났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가자 어느 성도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휴, 정말 냄새가 지독해요.”
“돼지냄새요? 향기롭잖아요.”
“돼지냄새 말고 발 냄새 말이에요.”
“발 냄새도 났어요? 저는 발 냄새는 못 맡았는데....”
목사님이 나서서 한마디합니다.
“땀 냄새지요. 새벽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다가 예배시간은 늦었고, 교회에는 빨리 와야 하고.... 그래서 발 냄새가 나는 거지요.”
그러자 어느 성도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맞아요. 김천수 성도님의 발 냄새 돼지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라고요.”
그만 모두가 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한 마디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김천수 성도님이 머지않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위해 모든 일을 중단하고 목욕을 한 후에 옷까지 갈아입고 올 날이 있을 거여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렇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믿음이 조금씩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 언젠가 믿음의 큰 나무가 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사실 김천수 성도님은 우리 예은교회의 자랑입니다. 김천수 성도님은 참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선한 일을 부지런히 찾아다닙니다.
김천수 성도님은 참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는 일도 도살된 가축을 만지는 일이니 냄새가 몸에 배여 있습니다. 그러나 김천수 성도님에게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는 곳을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일이 끝나는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여기저기 찾아다닙니다. 비인가 장애인 시설과 양로원, 그리고 장애인 작업장 등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이 빈손으로 가는 일은 없습니다. 도축장에서 받은 하루 일당 3만 원을 털어서 과일도 사고 도축장에서 얻은 고기와 선지를 들고 찾아갑니다. 그래서 김천수 성도님의 차에는 늘 먹을 것이 있습니다.
그런 김천수 성도님에게 매월 2만 원씩 후원하는 아주머니가 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분인데 벌써 5년 동안이나 후원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김천수 성도님은 그 아주머니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누구를 만나든지 이야기를 합니다. 정육점을 하는 친구가 더러 돼지 한 마리를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김천수 성도님은 입이 함박만해집니다. 가난하다보니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할 때가 많은 김천수 성도님의 마음이 늘 안타까운 때문입니다. 올해는 우리 예은교회에서도 매월 5만 원씩 김천수 성도님에게 드리기로 했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김천수 성도님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기쁨과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을 우리가 직접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후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천수 성도님에게서 나는 돼지냄새와 발 냄새, 그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입니다.
(크리스챤신문. 2004. 2. 9)
http://www.cwmonitor.com/news/articleView.html?idxno=9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