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겨울호 신인상 당선자 발표 | 수필 부문 |
귀락정歸樂停
서재일
우리의 삶은 집에서 시작됩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태어나지만, 예전에는 모두 친가든 외가든 가족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밖에서 태어나면 천대받는다고 아무 데서나 태어나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 가족 누군가가 집 밖에서 죽으면 집안에 흉한 일이 생긴다고 하여 객사를 꺼려했습니다. 죽음은 어떻게 해서든 꼭 집에서 맞이해야 했습니다.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라는 말도 있지만, 잠은 늘 자기 집에서 자야 한다고 선조들은 말했습니다. 살면서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뜻이겠지요. 집이란 모든 것을 다 받아 주고 해결해 주는 장소입니다.
집은 참으로 소중한 곳입니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지친 몸으로 찾아가는 곳, 집은 휴식처이자 여유롭고 은밀한 공간입니다. 이런 집이 있으므로 힘들어도 참아 내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내 집 갖는 것이 삶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모든 것은 집을 가진 후에 이루어집니다.
젊은이들의 결혼의 첫 번째 혼수품도 집입니다. 숟가락 젓가락 두 벌만 있어도 결혼할 수는 있지만 내 집이든 남의 집이든 집이 있어야만 밥을 해 먹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마지막 희망이 살아 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방황하고 헤맬 때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은 나 혼자만의 안식처가 아닙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며, 어떠한 어려움도 대화로 풀어 나가고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 공동의 장에 불화가 생겨서 삐꺽거리는 소리가 날 때 그 소리는 가족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족 공동체에서 불화가 일어난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힘들어집니다. 그보다 훨씬 강도 높은 자극이 가해집니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기 전에 가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가족은 절대로 나쁜 쪽으로 내몰지 않기 때문에 대화로 모든 문제점을 풀어 나가면 됩니다.
가족은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가족공동체만큼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가족이 무너지면 각자가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가족은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합니다. 가족이 사는 곳인 집이 편안해야 돌아오는 길도 편안합니다. 가족 없이 혼자서 사는 집은 늘 허전합니다. 혹여 반겨 주는 이가 없더라도 집은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되돌아올 수 있는 곳입니다.
집은 작은 문화공간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만들어 놓는가에 따라 다양한 문화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호텔 같은 침실을 만들어서 안락한 분위기로도 만들 수 있으며, 취미에 따라서 오락을 즐기고 싶으면 그런 공간도 만들 수 있고, 컴퓨터를 놓고 게임도 즐기고, 놀이방을 꾸미기도 합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연출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즐기면 됩니다.
그런데 혼자서 살 때는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해도 여러 명이 함께 산다면 그렇게는 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자기 공간만큼은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꾸며 놓고 살 것입니다. 이런 공간도 집이 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집은 내가 주인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는 공간이니 얼마나 행복한 곳입니까. 이런 곳이 집에서만은 성립됩니다. 행복한 공간을 마음껏 활용하고 즐기고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집입니다.
집은 자신만이 비밀스럽게 만들어 놓은 아지트일 수도 있습니다. 간섭받지 않고, 숨기고 싶은 공간에서 자신만이 즐기는 공간이자 감추어 두고 싶은 비밀을 노출하지 않고 살다가 어떤 젊은이들은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은둔형 외톨이 신세가 되어서 부모님께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과 대면하기 싫어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집 안에서만 사는 많은 젊은이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집은 이렇게 숨을 곳도 많습니다. 때로는 집에 오래 있으면 숨 막혀서 못 살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랑하다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집이라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기본조건은 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연어들이 수천만 킬로의 길을 떠나서 회귀본능으로 돌아오듯이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집으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겨 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집입니다. 아무리 밖에서 어려운 일을 겪어도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빚으로 독촉을 받아도 집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데 그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되거나 잃어버리게 되면 한순간에 희망이 사라집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집은 저당 잡히면 안 됩니다. 가족이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버리면 안 됩니다.
집보다 더 큰 나라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은 그 서러움을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이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적들이 대한민국을 우습게보지 못하도록 미리 튼튼하게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몸과 마음을 닦아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나아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뜻입니다.
크게는 나라를 지켜야 할 사명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일이 먼저입니다. 자신의 집이 안정되어야 바깥일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서 도와줄 것인지 생각하지 마시고, 항상 강인한 체력을 지키고,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도 이겨 나갈 수 있는 정신력도 중요합니다.
인생길 60년의 세월이 흘러가면 중년의 길에서는 생각은 강인하게 해도 몸이 따라 주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살아가는 주체는 자신이기 때문에 항상 주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자신만의 미션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집의 뼈대가 골조이듯이 자신만의 골조는 사명감입니다. 절대로 잊어버려서 안 될 사명감은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길에서 잠시 방황하여 길을 잃어버려도 정신 차리고 주체를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금방 다시 환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를 잃어버리면 지속적으로 자신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방황의 끝을 잡지 못하여 무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법이지요.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체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울 것입니다. 그때는 자신을 찾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방향감각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준다면 빠른 회복이 될 것입니다. 집을 제대로 찾아오는 법은 방향감각부터 익히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는 잘못 찾아가지 않도록 설명만 잘해도 그들은 앞으로 잘 찾아올 것입니다.
저의 집 현관에 ‘歸樂停귀락정(돌아와 즐거움이 머무는 곳)’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현관에 붙어 있어서 들어갈 때마다 한 번씩 쳐다봅니다.
오늘도 나의 안식처는 변함없이 나를 기다려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집으로 무사히 귀환해서 고맙습니다.’ 하고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잠을 청합니다.
값비싼 오성급 일류호텔의 하룻밤도 좋지만, 평생 우리 가족을 지켜 주고 평화를 감싸 안으면서 동고동락하는 내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휴식처입니다.
서재일 | 2023년 연작소설집 『개로 살 만해 vs 살기 힘들어』로 소설가 등단. 경기도 광주 문인협회, 한국 소설가협회 회원. 현재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소재 이솝동물병원 원장.
| 2023년 겨울호 신인상 당선자 발표 | 수필 부문 | 당선소감 |
삶의 에너지를 얻고 싶다
아픈 강아지를 진료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려 굼뜨게 받았는데, 수상 소식이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가슴이 설레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공감과 감동, 삶의 가치를 정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 하나로 남의 글도 많이 읽고, 나 또한 열심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탈고하기까지 나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 왔다. 그러고도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면 그 글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독자를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 자신 내 글에 생명을 주고, 거기서 다시금 삶의 에너지를 얻고 싶다.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을 계기로 삶의 본질을 보다 깊게 사유하고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한 일들을 진솔하게 풀어낼 만한 능력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내 글을 뽑아 주신 『문예바다』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 2023년 겨울호 신인상 당선자 발표 | 심사평 |
개의 시선으로 본 세상의 각종 부조리를 신랄하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풀어낸 『개로 살 만해 vs 살기 힘들어』의 저자 서재일 씨의 수필 「귀락정」 외 2편을 이번 겨울호 신인상으로 선정한다.
소설 『개로 살 만해…』가 그렇듯, 서재일 씨의 수필도 물 흐르듯 잘 읽힌다. 우선 문체가 부드럽고, 내용의 이해도 쉽고, 작품에서 주는 공감대도 높은 편이다.
예컨대 「귀락정」에서 보여 주는 ‘집’의 정의가 그러하다. 으레 집은 나 혼자만의 안식처로 인식하기 쉬운데, 가족 공동체로서의 동거인 모두가 편안한 안정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의 ‘집’이 된다고 서재일 씨는 주장한다. 서재일 씨의 수필은 마치 ‘내가 왜 여기 우뚝 서 있는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써내려 간 비망록과도 같다.
앞으로 더 많은,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수필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심사위원 : 백시종(글)・최문희・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