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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짬피 건실이의 행방불명
여느 때처럼 평화롭던 어느 가을 날 아침.
건실이가 행방불명되었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산중턱에 위치한 작전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중대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건실아! 들리면 대답 좀 해보거라! 건실아!!!"
사통반장 최진호 원사는 목이 찢어져라 소리지르며 창고로 쓰이는 컨테이너 주위를 안절부절 왕복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바로 옆에는 온갖 사육실장용품이 가득 들어있는 실장 하우스가 주인을 잃은 채로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적당히 눈치를 보며 최원사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경례를 하고 맞후임인 김민철 상병을 찾아갔다.
"아, 이병장님 오셨습니까?"
김상병을 비롯한 병사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중대 주변 풀숲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상병에게 물었다.
"민철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그것이 말입니다..."
나는 김상병에게서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평소와 같이 관사에서 가장 먼저 출근해서 건실이에게 아침 밥을 주려던 부서의 막내 간부 정하사가 건실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황한 정하사는 건실이를 찾기 위해 중대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건실이는 귀신이 채가기라도 한 듯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최원사를 비롯한 다른 간부들이 대기실에 도착했다.
건실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최원사는 안색이 새파래진 채로 중대 주변을 쥐잡듯이 뒤지기 시작했고, 뒤이어 병사들이 도착하자 병사들을 수색작업에 투입하여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고야 만 것이었다.
"아니,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부탁하는데 어떻게 안하겠다고 내뺀답니까?"
최원사는 어디까지나 부탁이라고 했다지만 이건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군복무 기간이 많이 남은 병사들 입장에서 소속 부서의 반장에게 밉보이는 일은 어지간한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피하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참 신기한 것이 분명 건실이의 집은 안에서 잠그고 여는 구조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게 열려있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문단속 꼼꼼하게 잘하던 녀석이 어쩌다가 그랬는지..."
"그러고보니 저번에 혹시 모른다고 건실이한테 위치추적 기능이 달린 칩같은 거 심어놓지 않았냐? 그거 사용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거 아냐?"
"저번에 칩 심으려고 했다가 포대장님께 반려당했답니다. GPS기능이 달린 물건은 못 쓴다고..."
"부대에서 스마트폰 쓰고 있는 세상에 이제와서? 거참..."
"그나저나 건실이도 참 불쌍하게 됐습니다. 다른 똥벌레들이랑은 다르게 예의도 바르고 착실한 녀석이었는데... 정황상 들실장들이 채간거 같은데 지금 쯤이면 아마..."
나는 김상병의 말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예의도 바르고 착실한 녀석이라.
건실이의 본 모습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김상병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건실이는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똑똑하고 착한 사육실장이 아니다.
녀석은 아주 교활하고 잔혹한 면모를 지닌 폭군 그 자체다.
"만나서 반가운데스, 신병상! 와타시는 건실이라고 하는데스! 앞으로 잘 부탁드리는데스!"
건실이와 나의 첫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신병의 신분으로 전입신고를 마친 나는 다음 날 작전대기실로 출근했고 그곳에서 건실이를 만나게 되었다.
건실이는 사통반장인 최진호 원사가 데려온 사육실장이다.
평소 애호파로 활동하던 최원사는 사육실장을 기르고 싶어 했으나 실장석을 극도로 꺼려하는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집에서 실장석을 기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최원사는 궁리를 하다가 사육실장을 군 부대에서 기르기로 결심하고 부서로 한 마리의 실장석을 데려오게 되었는데 그 녀석이 바로 건실이었다.
처음보는 건실이는 놀라울 정도로 예의 바른 사육실장이었다.
작전대기실로 들어가기 전 창고 근처에서 출근하는 선임들과 간부들을 볼 때마다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이것이 바로 올바른 사육실장의 표본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그런 건실이를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나의 장비 맞선임이었던 강병장이었다.
전역이 머지 않았던 강병장은 나를 볼 때면 마치 불쌍한 녀석을 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강병장이 어째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지 궁금하였으나 강병장은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 몰라도 된다. 모르는 편이 행복할 거야."
하지만 내가 재차 묻자 강병장은 실소하다가 눈을 질끔 감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휴, 불쌍한 놈. 어쩌다가 너도 그 새끼 눈에 들어와서..."
나는 그 이후로 강병장이 말한 그 새끼가 누구인지 고민하며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혹시 선임 중에 날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것인가?
내가 대체 무슨 실수를 했던거지?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한동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고 나는 강병장의 말을 그냥 신병을 겁주기 위한 짖굳은 농담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강병장이 전역하는 날.
강병장은 나에게 한 마디를 남기며 부대를 떠났다.
"...고생해라."
그리고 나의 지옥같은 군생활이 시작되었다.
강병장이 전역한 날 오후, 작전대기실에 단 둘만 남자 녀석은 본성을 드러내었다.
"오마에, bx가서 콘페이토 사오는데스."
"...뭐?"
나는 나의 두 눈과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방금전까지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을 건네오던 건실이가 삐딱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째려보고 있었다.
"말귀 못 알아먹은데스? 짬찌 똥닝겐 주제에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란데스."
"아니, 이 자식이 갑자기 분충끼가 도졌나?"
"...??? 오마에, 선임 똥닝겐한테서 아무것도 못 들은데스?"
건실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건실이를 바라보았다.
우리 둘 사이에 잠시 적막한 침묵이 흘렀다.
"...빌어먹을 똥닝겐이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하고 간 데스! 시발 데스!"
"어허! 건실아, 너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만 그런 분충같은 말투는 쓰는거 아니야!"
"닥치고 와타시가 하는 명령이나 듣는 데스. 짬찌 똥닝겐은 상관이 하는 명령에나 복종하면 되는 데스."
"뭐? 상관?"
"오마에는 와타시의 파파보다 계급이 높은 데스?"
건실이가 말하는 상관이란 최원사를 말하는 것이리라.
"건실아. 너가 뭘 잘못 알고 있는 듯 한데 나보다 계급이 높은 건 반장님이지 너가 아니야. 애당초에 넌 사육실장이지 군인도 아니잖..."
"어디서 상관한테 꼬박꼬박 말대답인 데샤!!! 명령 불복종으로 슬픈 일을 당하고 싶은 데샤?!!!"
"아이고, 미치겠네! 반장님께 말씀드려서 재교육이라도 시켜야지 원...."
"...오마에, 후회하게 해주는데스."
건실이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이내 잔뜩 화난 표정으로 작전대기실 문지방으로 걸어갔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건실이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는 문 모서리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쾅!
"데갸아아아아아!!!"
반력을 버텨내지 못한 건실이의 육중한 몸은 큰 소리와 함께 모서리에서 튕겨나왔다.
모서리에 찍힌 건실이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건실이의 돌발행동에 벙찐 상태로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충격으로 얼굴이 함몰된 건실이는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잠시 여유롭게 담배타임을 가지고 있던 최원사와 선임 병사들은 건실이의 비명을 듣고 작전대기실로 뛰어들어왔다.
건실이는 중대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으로 잠시 주변을 힐끔 쳐다보고는 이렇게 외쳤다.
"학대...! 학대파인 데샤아아! 신병상은 학대파였던 데샤!!!"
""뭐?!""
최원사와 나는 서로 다른 의미로 경악하며 건실이를 바라보았다.
"건실아!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건실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비명만 질러댔다.
그러자 최원사는 눈에서 불을 뿜을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분노에 가득찬 최원사의 목소리에 나는 벌벌 떨 수 밖에 없었다.
"아...아닙니다, 반장님! 여기에는 큰 오해가..."
"와타시! 신병상과 친해지고 싶었던 데스! 귀여움 받고 싶었던 데스! 그래서 건실이 노력한 데스! 그런데 신병상은 건실이를 역겹다는 듯이 쳐다본 데스! 마구 때린 데스!"
건실이는 최원사를 바라보며 색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건실이는 아파도 참은 데스! 신병상에게도 사랑받고 싶었던 데스! 하지만 무리였던 데스! 신병상은 오늘도 건실이를 걷어찬 데스!"
"그러니까 이건 오해..."
"오해? 오해라고?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오해라고!!!"
"파파! 건실이는 이제 파파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데스! 닝겐상들이 무서운 데스! 데에엥! 데에엥!"
최원사는 이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나가! 너 필요없으니까 당장 나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 영창보내고 부대 전출시킬 거니까 그렇게 알아!!!"
나는 그렇게 작전대기실에서 쫓겨나 갈 곳을 잃어버린 채로 정처없이 부대를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물론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버린 신병을 혼자 둘 수는 없었는지 부서의 선임 중 한 명이 날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그 선임이 날 바라보는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소속 부서의 다른 선임들과 간부들도 나보다는 건실이의 말을 믿는 것이 분명했다.
건실이가 쌓아온 신뢰와 이미지는 같은 인간보다 실장석의 말을 믿게 만들 만큼 두터웠던 것이다.
그것을 간과한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청소집합 시간을 이용하여 몰래 건실이에게 접근하였다.
물론 내 양손에는 bx에서 구매한 최고급 콘페이토 두 봉지가 들려있었다.
"저기...건실아?"
"..."
"너가 사오라고 했던 콘페이토 두 봉지나 사왔는데..."
"..."
"죄송합니다, 행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쇼!"
"...생각해보는 데스."
나의 그랜절이 통했는지 건실이는 이후 최선을 다해 나를 변호하기 시작했고, 건실이가 용서한 부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다며 최원사 또한 나를 용서해주었다.
"...앞으로 지켜본다."
"네, 반장님."
그렇게 나는 건실이의 노예가 되었다.
나를 노예로 부리기 시작한 건실이의 행동과 요구는 점점 과격해져갔다.
처음에는 콘페이토나 음료수같은 잡다한 심부름이 전부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TV광고에 나오는 사제 실장용품까지 외출을 나가 사와야만 했다.
"허허, 요즘에는 건실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이 보기 참 좋구나! 진작에 그러지 그랬냐."
내가 건실이를 위해 성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 최원사를 비롯한 간부들과 선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점점 유하게 변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무도 과거에 대해 언급하지 않게 되었을 때 쯤 부대에 봄이 찾아왔다.
"데에...갑자기 꼴 받는 데스."
"왜 그러니, 건실아. 무슨 문제라도 있니?"
이번에는 또 뭐 때문에 지랄이냐는 나의 우회적인 물음에 건실이는 오른팔을 들어 컨테이너 뒤쪽의 풀숲을 가리켰다.
"저쪽을 보는 데스."
"으음? 그냥 평범한 들실장들 아니야? 저 놈들 저거 새끼 한 번 거하게 싸질러놨네. 도대체 몇 마리야? 그런데 저게 왜?"
"보면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고귀한 사육실장임에도 자를 못가지는데 저 분충들은 자를 낳고 행복한 듯이 웃고 있는 데스. 빡치니까 처리하고 오는 데스."
"저기...건실아? 내가 학대파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진게 엊그제나 다름없는데 여기서 저녀석들을 해코지했다가는 정말 빼도박도 못하게 될 것 같거든? 어떻게 이번은 조용히 넘어가면 안 될..."
"오마에, 영창 맛 좀 볼래 데스?"
"죄송합니다, 행님! 당장 튀어갔다 오겠슴다!"
나는 풀숲에서 재잘거리며 웃고 있던 일가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데? 데엑! 오마에는 뭐인 데스!"
내가 갑작스럽게 뛰어오자 기겁한 친실장은 머리를 핥아주던 자실장을 떨어뜨리고는 뒤로 주춤하며 물러났다.
"우오오오! 건실이 행님의 마음을 도려내는 분충은 용서하지 않겠다!"
퍽! 퍽! 퍼억!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과장된 몸짓을 하며 친실장 일가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하는 척 티를 내지 않았다가는 건실이 녀석이 트집을 잡아댈 것이 뻔했다.
"잘하는 데스! 더 세게 밟는 데스!"
건실이는 나의 과장된 몸짓에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친실장 일가는 내 발 밑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아픈 테챠! 그만두는 테챠! 마마! 살려주는 테챠! 마아아아아아!!!"
"자,장녀어어! 차녀어어!!!"
친실장은 나의 발길질에 이리저리 밟히고 굴려지면서도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친실장이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온 몸이 피투성이인 반독라 친실장은 7마리의 자가 모두 고깃덩이가 된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데...장녀챠...차녀챠...삼녀, 사녀, 오녀에 엄지챠, 우지챠까지... 어째서 이런 슬픈 일을 당하는 데스?"
친실장은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더 볼 수가 없었기에 땅바닥에 맞닿을 것만 같은 친실장의 머리를 무게를 실어 지그시 밟아주었다.
파킨!
마침내 친실장이 고통속에 파킨하자 건실이는 후련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후우...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인 데스. 속 시원한 데스!"
"저기...건실아. 이번에는 어떻게 남들한테 안들키고 잘 끝났지만 이거 정말 위험한데 이런 명령은 안내리면 안될까?"
"...??? 오마에 무슨 마라까는 소리를 하는 데스? 왜 이 좋은 걸 한 번만 하고 끝내는 데스?"
'이런 좆같은 사이코패스 실장새끼!'
그리하여 나는 건실이의 심기가 불편할 때마다 실장석 일가들을 실각시키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극적인 행위라도 익숙해지면 별 감흥이 없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던가.
가을이 찾아오고 나서는 추자를 낳은 일가를 중심으로 괴롭히기 시작했지만 더이상 건실이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데에엥! 데에엥! 부탁드리는 데스, 닝겐상! 제발 장녀만큼은 살려주시는 데스! 와타시는 독라라도 좋은 데스! 달마라도 좋은 데스! 장녀는 와타시의 마지막 희망인 데스!"
친실장 한 마리가 독라가 된 채로 나에게 도게자를 해왔다.
친실장의 주변에는 이미 고깃덩이가 되어버린 녀석의 자들이 싸늘한 사체가 되어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머리카락이 모두 뽑히고 옷도 거의 다 찢어져 반독라가 된 자실장이 한 마리 들려있다.
자실장은 두려움과 고통에 한 껏 빵콘하여 녀석의 총구에서는 녹색 운치가 줄줄 흘러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는데 건실아? 어떻게 처리할까?"
이제는 하도 죽여대서 무덤덤해진 나의 물음에 건실이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건실아?"
"...오마에 마음대로 처리하는 데스."
"그렇다네? 운수 좋은 놈들. 건실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튀어가!"
"감사한 데스! 감사한 데스! 닝겐상!"
친실장은 자실장을 받아들고는 허겁지겁 수풀 속으로 사라져갔다.
"...건실아,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냐?"
나는 평소와 다른 건실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건실이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건실이는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로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것도 아닌데스. 이만 돌아가는 데스."
나는 건실이를 품 안에 들고 작전대기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실이가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병사대기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건실이가 무심코 중얼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데에...와타시, 자를 가지고 싶은 데스."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어서도 건실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참다못한 최원사는 상황실과 헌병반을 들쑤시며 다녔고 마침내 건실이의 행방을 알 수 있는 cctv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사통반 병사 전인원과 소문을 듣고 찾아온 행정반 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황실 한가운데에서 cctv영상이 재생되었다.
cctv의 영상은 한 밤 중의 컨테이너 창고를 정면에서 비추고 있었다.
최원사는 떨리는 눈으로 cctv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침묵과 함께 시간이 흐르던 그 때, 영상에 이상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아니, 저거 저 새끼!"
"엥?"
영상에서는 왠 독라실장 한 마리가 건실이의 집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실이는 잠에서 깨어난듯 졸린 눈을 비비며 독라를 바라보더니 이내 반가운 표정을 짓고는 스스로 집 문을 열었다.
건실이는 집 밖으로 나와 독라와 서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화면 밖으로 사이좋게 걸어나갔다.
"이건 또 뭔..."
"대체 어떻게 된거지?"
그 이후로 건실이가 cctv에 포착되는 일은 없었다.
건실이는 독라와 함께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상황실 내부에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cctv까지 찾아보는 수고를 했음에도 건실이의 행방에 대한 단서는 커녕 의문만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도대체 저 독라는 누구인가.
건실이는 왜 저 독라를 따라나선것인가.
그 누구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사건은 잠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건실이의 생사가 불명이었기에 최원사는 포기하지 않고 며칠 간 홀로 수색을 이어갔다.
그러나 건실이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였다.
그렇게 건실이에 대한 의문이 점점 수면아래로 가라앉아가던 어느 날.
건실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옷자락이 부대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자는 구석진 곳에서 병사들과 함께 낙엽을 치우던 정하사였다.
"어라? 이거 설마..."
정하사가 발견한 것은 건실이가 입고 다니던 국방무늬 드레스의 일부였다.
오른쪽 어깻죽지부터 찢겨나간 소맷자락이 실장석의 뭉툭한 살덩이로 보이는 것과 함께 창고 뒷 편 경계망 근처에 널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소식을 들은 최원사는 눈에 불을 켠 채로 작전대기실에서 달려나왔다.
"건실아!"
며칠간 건실이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최원사는 마치 목내이처럼 말라 수척해져 있었다.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 최원사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건실이의 흔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는 소맷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건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번에 제가 건실이에게 선물한 드레스 디자인이랑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마 이 살덩이는..."
"아...안돼! 건실아! 건실아아아!!!"
최원사는 실성한 듯이 괴성을 지르고는 경계망 근처를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최원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정하사에게 말했다.
"살덩이 상태를 보아하니 뜯겨나간지 얼마 안된 것 같습니다."
"반장님 상태를 보아하니 찾는 시늉이라도 하는게 좋을 거 같다. 아이고 내 팔자야..."
그리하여 다시 한 번 건실이 수색작업이 실시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해가 붉게 물들어갈 때 쯤 우리는 건실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하사와 나는 경사가 가파른 곳에 설치된 경계망 근처에서 낙엽에 가려진 깊은 구덩이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곳을 가리고 있던 낙엽들을 조심히 치워낸 우리 둘은 아무말 없이 구덩이를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 건실이는 없었다.
구덩이 안에 있는 것은 건실이가 입고 있던 찢어진 국방무늬 드레스의 조각들과 건실이와는 비교도 안되게 자그마한 생명체 하나였다.
"테히...테히이...!!!"
한 마리의 독라 자실장이 큼직한 드레스 조각 하나를 품에 안은 채로 벌벌 떨고 있었다.
자실장은 완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색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테에엥! 테에엥! 이제 아야아야는 싫은 테치이!"
건실이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서의 병사들과 간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얼마 후 중대의 모든 장병들이 도착했을 때, 자실장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나와 정하사의 질문에 하나 둘 씩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그 자실장에게서 건실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너가 건실이의 자라고?"
"히끅, 히끅! 그런 테치. 와타치의 마마의 이름은 건실이인 테치."
최원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자실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럼...건실이는, 건실이는 어찌 되었느냐...?"
"무서운 오바상이...히끅! 마마를 데려간 테치! 마마가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끌고 가서는 커다란 돌 씨로 머리를 내리친 테치!"
털썩!
최원사는 그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같이 태어난 이모토챠타치는 진작에 잡아먹혀버린 테치! 마마도 어제 그 무서운 오바상한테 살해당한 테치! 와타치는 이제 어쩌면 좋은 테치? 테에엥! 테에엥!"
"아,아아...!"
"혼자는 외로운 테치! 무서운 테치! 마마가 보고 싶은 테치! 마마! 마마아!!!"
"흑! 끄흑! 건실아! 건실아아아!!!! 어헝헝!"
최원사는 운치로 더러워진 자실장을 품에 안고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무말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유지되던 침묵을 깬 것은 김상병이었다.
"이병장님."
"응? 왜?"
"지금 이 상황에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상병은 자실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건실이의 자라면 태어난지 길어봤자 보름 정도일텐데 덩치가 생각보다 큽니다. 이거 어쩌면 바꿔치기..."
"민철아."
"그렇습니다?"
"너는 또 부대 뒤지고 싶냐?"
"아...?"
김상병은 그제서야 주위의 병사들과 간부들이 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나의 대답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실에 대해 함구키로 무언의 합의를 본 중대원들은 다시 침묵을 유지한 채 최원사와 자실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런 중대원들을 바라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식은 땀을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후우! 들키는 줄 알았네!'
"흐흑....건실아...걱정 말거라...이 애비가 너의 자만큼은 반드시 행복하게 해주마..."
시간이 지나 마음을 추스린 최원사는 자실장을 정성을 다해 간호하기 시작했다.
자실장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운치말고는 먹은 것이 없는지 영양실조에 걸려있었고 험하게 다뤄졌는지 이곳저곳에는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자실장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였다.
평소에는 얌전히 있는 녀석이 병사들을 보면 갑작스럽게 발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테히이! 테히이이!!!!"
자실장이 발작할 때마다 최원사는 자실장을 품에 안은 채로 연신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자실장을 안심시켜주었다.
그 노력이 통한 것일까.
보름이 지나자 자실장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안녕하신 테치, 김병장상! 좋은 아침인 테치!"
녀석은 건실이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출근하는 중대원들을 맞이해주었다.
중대원들도 그런 녀석을 귀여워해주었고 자실장은 하루하루 사랑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테힛?!"
"응?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닌 테치. 이병장상! 와타치는 괜찮은 테치!"
녀석은 나를 볼 때면 반사적으로 흠칫 거렸다.
그런 모습을 본 최원사는 나를 수상하다는 듯이 바라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자실장이 연신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한 덕에 최원사는 곧 의심의 눈길을 거두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날, 최원사는 자실장에게 말하였다.
"너의 이름을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까지 계속 고민을 해봤다만...역시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는구나. 널 건실이라고 불러도 되겠니?"
"물론인 테치! 감사한 테치, 파파! 오늘부터 와타치는 건실이인 테치!"
자실장, 건실이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자실장은 건실이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이후, 건실이의 실종으로 인해 평화를 되찾은 나의 군생활은 마치 유수처럼 흘러갔다.
"건실아, 콘페이토 사왔다."
"테치! 콘페이토 좋은 테치! 감사한 테치, 이병장상!"
건실이가 귀를 쫑긋거리며 나에게 달려왔다.
건실이는 더이상 나를 보며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날로부터 4달이라는 시간이 지나 건실이는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자실장의 체형에 맞춤 제작된 국방무늬 드레스를 입은 녀석의 머리에는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머리카락이 자라나있었다.
최원사가 비싼 돈을 들여 로젠사의 최고급 발모제를 사다 발라준 덕분이었다.
콘페이토 봉지를 들고 즐거운 듯이 방방 뛰고 있는 건실이와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나.
우리 둘 사이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건실아."
"왜 그러신 테치? 이병장상?"
"나 내일 전역한다."
건실이는 방방 뛰던 것을 멈추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건실이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 둘은 잠시 아무말 없이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테에...이병장상도 이제 전역하시는 테치? 축하드리는 테치."
"그것보다 건실아. 너한테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 말이야..."
"테치?"
"나랑 했던 약속말이야. 설마 잊어먹은건 아니겠지?"
건실이는 나의 말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난 듯 식은 땀을 흘리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아닌 테치! 와타치,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테치! 이병장상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테치!"
"그래... 그거면 됐다."
나는 내 눈치를 살피며 벌벌 떨고 있는 건실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이 부대에 남은 미련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관물대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생활관으로 걸어갔다.
내가 마지막 일과를 위해 동서분주하는 사이에도 국방부의 시계는 열심히 돌아갔고, 나는 마침내 전역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잘가시는 테치, 이병장상!!!"
나는 간부들과 후임들, 그리고 건실이의 배웅을 받으며 헌병들이 지키는 부대 정문의 문턱을 넘어갔다.
배속차량을 타고 기차역으로 출발한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나는 걸어서 산을 내려가기로 하였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눈에 익은 작전도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부대 정문이 슬슬 보이지 않게 되었을 쯤.
나는 부대를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나는 잘 닦여진 작전도로가 아닌 샛길을 따라 부대 뒤편에 위치한 경계망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내가 도착한 곳은 내가 근무하던 작전대기실 창고 뒤편에 위치한 경계망 부근.
바로 정하사가 건실이의 흔적을 발견했던 그 장소의 건너편이었다.
그 부근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나는 곧 나를 바라보는 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리의 독라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오신 데스."
독라의 상태는 매우 처참하였다.
온 몸이 자잘한 상처투성이인 것은 물론이고 몸 구석구석에는 동상의 흔적이 가득했으며, 뱃가죽이 등에 완전히 붙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완전히 메말라있었다.
마치 시체같은 몰골을 한 독라는 힘이 없는 듯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따라오시는 데스."
나는 느릿느릿 걸어가는 독라의 뒤를 따라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독라는 산세가 가파른 절벽 아래쪽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인 데스."
독라는 부들부들 거리는 오른팔로 절벽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 아래에는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와 낙엽들로 입구가 둘러싸인 작은 구덩이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자 하였다.
"닝겐상, 무엇 하나만 여쭤봐도 되는 데스?"
나는 그 물음에 독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독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와타시의 자는...장녀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데스?"
그렇게 말하는 독라의 눈을 바라보니 눈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독라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데에...그런데스."
독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힘이 완전히 다했는지 그대로 쓰러졌다.
"정말...다행인 데스."
파킨.
위석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독라는 눈을 감았다.
독라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독라의 시체를 곱게 눕혀 흙으로 덮어주었다.
'내세에는 사육실장으로 태어나렴.'
나는 잠시 독라의 명복을 빌어주고는 다시 구덩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침내 그곳에 도달한 나는 구덩이를 가리고 있는 낙엽들과 나뭇가지들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작은 구덩이로 보였던 그것은 생각보다 더 거대한 굴이었다.
굴의 직경은 대략 50cm정도 되어보였다.
이런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한 일가를 겨울 내내 먹여살리는 일은 독라에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굴 주변의 방해물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빛이 새어들어가기 시작한 굴 안에서는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세 쌍의 눈동자가 어두운 그림자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전히 드러난 굴 내부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통 운치범벅인 굴 안에서는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굴러가던 세 쌍의 눈동자 중 하나가 나의 시선과 맞닿았다.
"오...오마에....!!!"
굴 안쪽에서 한 마리의 독라 달마가 경악과 불신을 담아 소리질렀다.
"똥닝게에에엔!!!!"
그렇게 장장 5개월 만에 나와 건실이는 재회할 수 있었다.
건실이가 실종되기 며칠 전.
그날도 건실이에게 된통 당하고 한숨을 쉬며 작전대기실로 향하던 나는 의외의 방문객을 맞이하였다.
"데에엥! 데에엥! 닝겐상, 부탁드리는 데스! 제발 장녀를 살려주시는 데스!"
한 마리의 독라가 마찬가지로 독라인 자실장을 품에 안고 나를 찾아왔다.
녀석들은 건실이의 변덕으로 간신히 살아나갔던 바로 그 친자였다.
"테히...테히이...!!!"
자실장의 상태는 매우 심각해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어보였지만 자실장의 몸을 만지자 핫팩을 만진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자실장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었다.
"곧 있으면 겨울이 올 것인 데스! 하지만 장녀가 이런 상태여서는 겨울을 버틸 수 없는 데스! 오로롱! 오로롱!"
"흐음."
"닝겐상! 제발 부탁드리는 데스! 와타시는 어떻게 되건 상관없는 데스! 장녀는 와타시의 마지막 희망인 데스!"
"내가 지은 죄도 있으니 양심이 좀 찔리기는 하는데 별로 내키지가 않네."
"데엣?!"
"솔직히 이제 참피들한테는 오만 정이 다 떨어져나갔거든. 어떤 분충 새끼 때문에 말이야. 차라리 그냥 싹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데...데히익?!"
"테챠아아악!!"
나는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는 독라를 바라보았다.
자실장은 사경을 헤매는 중에도 목숨의 위협을 느꼈는지 친실장의 품안에서 버둥버둥거리며 연신 힘없는 비명을 질러대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찰나.
어떤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데에엥! 데에엥! 죄송한 데스, 닝겐상! 그냥 돌아가는 데스! 그냥 돌아갈테니 살려만 주시는 데스!"
"아니, 마음이 바뀌었어. 너희들을 도와줄게. 덤으로 너의 자는 사육실장으로 만들어주지."
"데엣! 정말인 데스?! 감사한 데스! 감사한 데스! 닝겐상!"
"하지만, 그 전에 너희들이 나를 위해 해줘야할 게 있는데 말이야..."
"말만 하시는 데스! 무엇이든 와타시에게 맡겨만 주시는 데스!"
"건실이라고 저번에 그 재수없게 생긴 분충 새끼 봤지? 그 자식 좀 납치해서 운치굴에 좀 쳐박아줘."
"데에...와타시가 해낼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데스."
독라실장은 나의 요구를 듣고는 자신이 없는 듯 축쳐진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위로하듯 말했다.
"걱정하지마.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테니까."
"데스?"
"넌 그냥 내가 하란대로 하기만 하면 돼.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대로 건실이한테 접근해서 제안해봐. 분명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배길걸?"
나는 독라에게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며칠 후, 나와 독라들의 건실이 납치작전이 실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건실이는 지금 내 앞에서 운치굴에 박혀 허우적대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건실이에게 당황한 척하며 물었다.
"건실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야?!"
"데샤!!! 그 분충년이 와타시를 속인 데샤아아아!!!!"
"뭐라고?"
"그 때 그 독라년인 데샤!!! 자를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며 와타시를 속이고는 그대로 운치굴에 쳐박아버린 데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러자 건실이는 독라에 대해 온갖 욕을 쏟아내며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독라가 너에게 제안을 한게..."
"그런 데스! 그 년이 와타시를 납치한 척하고 강제로 자를 낳은 것처럼 닝겐들을 속이면 사육실장인 채로 자를 가질 수 있다고 속인 데스!"
건실이의 온 몸은 열이 받은 듯 붉게 상기되었다.
"정말로 납치당한 것처럼 보여야한다며 옷도 빼앗아가고 머리카락까지 뽑아버린 데스! 마지막엔 본색을 드러내더니 와타시를 달마 자판기로 만들어 버린 데스!!!"
건실이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달마가 된 몸을 이리저리 허우적대며 소리쳤다.
"당장 그 년을 잡아서 와타시 앞에 대령하라는 데스! 절대로! 절대로 용서 못하는 데샤아아아!!!"
나는 게거품을 물며 성토하는 건실이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독라친실장은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것이었다.
"뭘 쳐웃고 자빠졌냐는 데샤아아아!!!!"
건실이는 나의 미소를 보더니 매우 화가 난 듯 어깨죽지 부근만 남은 오른팔로 땅을 탕탕 내리쳤다.
"여기서 나가면 파파에게 말해서 오마에부터 조져주는 데샤! 똥노예 주제에 주인도 지키지 못하는 데샤! 근무태만으로 군기교육대를 보내주는 데샤아아아!!!"
"..."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건실이의 모습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그러자 건실이는 내 행동을 굴종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뻔뻔하게 말했다.
"알아먹었으면 와타시와 자들부터 여기서 꺼내라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이 운치굴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게 보이지 않냐는 데스?!!"
"테에엥! 테에엥! 이제야 운치굴 생활이 끝난 테치! 행복한 사육실생 시작인 테치! 텟테로게~ 텟테로게~."
"오마에, 똥닝게에엔!!! 오마에의 무능 때문에 고귀하디 고귀한 공주님인 와타치타치가 이런 수모를 겪은 테챠!!! 도대체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테챠!!!"
건실이의 뒤에 숨어있던 독라 자실장 두 마리는 건실이가 나보다 위에 있다고 판단하자마자 건실이 앞으로 나와서는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두마리의 자실장을 보며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만...'
나는 속마음을 숨기고는 서둘러 건실이와 건실이의 자들을 운치굴에서 꺼내주었다.
건실이 일가의 몸에는 운치굴의 역겨운 냄새가 완전히 배어들어 있었다.
나는 참다참다 못해 가방에 챙겨둔 삼다수로 녀석들을 대충이나마 씻겨주었다.
"테에엥! 따끔따끔한 테치!"
상처들이 물에 닿아 아프다며 자실장들에게 욕을 들어먹은 것은 덤이었다.
나는 그런 자실장들을 뒤로 한채 건실이에게 물었다.
"건실아, 너 위석 어디에 있냐?"
"뎃?"
건실이는 나의 갑작스런 질문에 이 자식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짓고는 벌컥 화를 내었다.
"그건 도대체 왜 물어보는 데스?! 혹시 오마에... 망측한 생각을 품고 있는 데스? 어림도 없는 데스! 와타시를 건들면 파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 데스!"
"아니 그게 아니라, 건실아. 우리 부서에서 네 수색 작업을 하면서 나눠받은게 있거든."
나는 가방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들고는 말하였다.
"로젠사에서 만든 최고급 위석활성제야. 너 계속 그렇게 달마로 있을 수는 없잖아? 여기 발모제도 있으니까 너 치료 끝나면 머리카락도 심어줄게."
"그런건 진작에 말하란 데스!"
그러자 건실이는 완전히 의심을 풀어헤친 채로 자신의 위석 위치를 알려주었다.
"거기보다 조금 위인 데스."
"여기?"
"데갸아아악! 좀 살살하라는 데스! 정말 영창가고 싶은 데샤?!!"
나는 마침내 건실이의 위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건실이의 약간 검게 물든 위석을 바라보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마에, 와타시의 위석을 바라보고는 무슨 음흉한 생각을 하는 데스?! 변태 데스!"
나는 건실이가 더 불평을 말하기 전에 서둘러 위석을 위석활성제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검게 물들었던 위석이 조금씩 녹색을 되찾아가며 영롱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성능은 좋군."
위석이 활성제에 들어가자 건실이의 몸은 느리지만 천천히 회복되어갔다.
뜯겨나간 사지에서 새살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자실장들도 설득하여 일가의 모든 위석을 위석활성제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더이상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유쾌했다.
"오마에! 또, 또 웃는 데스! 와타시가 쪼개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쳐 알아듣는 데스!"
"똥닝겐이 말을 안듣는 테치? 이리 오라는 테치! 마마가 나설 것도 없이 와타치가 흠씬 패주는 테치!"
"테휴. 정말 멍청한 똥닝겐인 테치. 한심한 테치."
"하하하! 아니, 미안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 그보다 건실아. 너 그거 알고 있니?"
"개소리 좀 작작하고 발모제나 머리에 바르라는 데스! 아까부터 머리가 휑해서 시려운 데스!"
"너희들 운치굴에 쳐박은거... 그거 내가 그랬다."
"데?"
건실이는 그 말을 듣자 경악한 듯 돌처럼 몸이 굳었다.
"지금, 지금 뭐라고 한 데스?"
"그러니까 그 독라가 널 속여서 이 꼴로 만들었잖아. 그거 내가 시켜서 그런거라고."
"오마에...오마에가 범인이었던 데스?"
나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건실이는 마치 망가진 로봇처럼 끼긱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분노가 임계점을 넘자 마치 활화산이 터진 듯한 목소리가 산을 울렸다.
"똥닝게에엔!!! 똥닝겐 주제에 이런 짓을 하고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거냐 데샤!!!! 용서 못하는 데샤!!! 절대 용서 못하는 데샤!!!! 오마에는 군기대도 영창도 필요없고 바로 총살형인 데샤!!!! 고깃덩이로 만들어주는 데샤!!!!!"
건실이는 나를 죽일듯한 눈빛을 하고는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사지를 꿈뜰거리며 온 몸으로 분노를 표출하였다.
건실이의 얼굴은 핏줄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와 생긴 그림자 때문에 붉다 못해 검게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건실이를 있는 힘껏 비웃어주었다.
"하하하! 야,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당한게 있는데 이 정도는 약과 아니냐? 어때, 나 착하지?"
"개소리 집어치우란 데샤!!! 지금 당장 죽여주는 데샤!!!"
"허허, 건실아. 너 왜 이래. 너 이렇게까지 머리 나쁜 녀석 아니었잖아.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데...데뎃?!"
"그럼 머리가 나빠진 건실이를 위해 퀴즈 하나 나가야겠구만. 자, 건실아.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단어들이 뭘 뜻하는지 한 번 맞춰보렴."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군대 보급품 중 하나인 가죽 장갑을 꺼내 두 손에 끼었다.
나는 가죽 장갑을 낀 채로 두 손을 쥐었다폈다를 반복해보았다.
가죽의 질감은 썩 나쁘지 않았다.
"1년하고도 한 달 반."
"데?"
"그리고 197만원..."
"무슨, 무슨 개소리냐는 데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챈 건실이는 기겁하며 아직 다 자라나지 않은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자실장들은 내가 아직 만만하게 보였는지 화를 내며 운치를 던져댔다.
철퍽!
"똥노예 주제에 말이 많은 테치! 오마에가 노예라는 걸 잊어버린 듯 하니 와타치가 다시 그 몸 구석구석까지 똥노예라는 걸 새겨주는 테치! 영광으로 알는 테치!"
그 모습을 바라본 건실이의 표정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나는 그런 건실이에게 최대한 악의를 담아 미소지어보였다.
"정답은..."
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너한테 낭비한 내 돈과 시간이다, 이 좆같은 분충 새끼야!!!!"
퍼어어어어어억!!!!
"데갸아아아아아악!!!!!!"
온 힘을 담은 나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건실이는 거품을 물며 부들부들 떨어댔다.
본래라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위력이었으나 녀석의 몸뚱이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위석이 위석활성제에 들어가있는 탓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롱거리고 있는 건실이의 온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상과아아안? 명려어어엉?? 뭐, 영창을 보내준다고?! 지랄 염병을 떨고 있네!"
퍽! 퍽! 퍽! 퍽! 퍼억!
"할 수 있으면 해봐, 이 새끼야! 나 오늘부터 민간인이야!"
정확하게는 전역 당일인 오늘까지는 군인신분이었지만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데갸갸갸갸갹!!! 파파! 파파아!! 건실이 죽는 데스! 건실이 살려 데스으!!!"
"전역빵! 전역빵! 전역빵! 이게 내 전역빵이다, 이 새끼야! 197만원짜리 전역빵!!!"
나는 그 동안 쌓인 분노와 증오, 그리고 원한을 담아 건실이에게 한 방, 한 방 정성스럽게 주먹을 날려주었다.
건실이와의 드잡이 질이 계속 될 수록 안그래도 우스워보였던 건실이의 몰골은 더더욱 우스꽝스럽게 변해갔다.
"데햐아아아! 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자빠졌냐는 데샤!!! 오마에타치의 마마가 핀치인 데샤!!! 태어나게 해준 은혜를 갚으라는 데샤!!!"
"테에엥! 테에엥! 거짓말쟁이 똥마마 때문에 망한 테챠! 뭐가 똥노예인 테치! 똥노예가 아니라 학대파였던 테챠아!!!"
"마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은 테치! 와타치는 이만 독립하는 테치!"
건실이가 아무것도 못하고 나에게 두들겨 맞고 있자 녀석의 자들은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건실이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체력이 다 떨어진 자실장들이 도망쳐봤자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녀석들을 냉큼 달려가 잡아채서 가방 안에 가두고는 가방에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똥마마! 저주하는 테챠아아아!!!!"
"그만두는 테챠아아아!!! 정말로 죽는 테챠아아아!!!"
나는 두 마리의 목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소란스러웠던 비명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위석활성제를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두 마리의 위석은 멀쩡했다.
"헉! 헉!"
대략 10여분 간의 드잡이 질이 끝나고, 건실이는 온 몸이 시퍼렇게 부어올라 마치 좀비 실장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데휴우...데휴우..."
부들부들거리는 몸과 조그맣게 내뱉는 신음이 아직 녀석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건실이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들어올렸다.
그러자 녀석은 전에 없이 공손해진 목소리와 태도로 울며 읍소하였다.
"데에엥...! 데에엥...! 이병장사마! 건실이가 잘못한 데스으! 제발 살려만 주시는 데스으!"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녀석에게 대답했다.
"걱정하지마, 건실아. 날 대체 뭘로보는거야? 내가 왜 너를 죽여?"
"저,정말인 데스? 감사한 데스! 감사한 데스! 이병장사마!"
"에이, 감사는 뭘..."
나는 쑥쓰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뒷목을 긁적였다.
"아직 너한테 받아낼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왜 너를 죽여."
"...데스?"
"어휴, 생각을 해봐. 왜 이 좋은 걸 한 번만 하고 끝내야 해?"
내 말을 들은 건실이의 터진 두 눈은 미칠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데,데,데뎃? 설마..."
"분명 1년하고도 한 달 반이었으니까 대략 409일 정도 남았구나! 아이고, 우리 건실이~. 전역할려면 고생 좀 해야겠는걸?"
"데, 데갸아아아악!!!!!!"
나는 산을 울리는 건실이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크게 웃었다.
건실이는 곧 완전히 실성한 듯이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하였다.
나는 완전히 망가진 건실이의 모습에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역.
나는 오늘에서야 건실이라는 악몽에서 전역하고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어느 봄 날.
나는 한 명의 군필자, 민간인으로서 집으로 귀향하였다.
나의 새로운 사육실장과 함께.
"아, 이병장님! 저 민철입니다!"
시간이 흘러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 되었다.
전역한지 대략 4달이 지나 내 맞후임이었던 김민철 상병도 병장이 되어 전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전역한 나를 아직도 이병장이라 부르는 김병장에게서 독라의 장녀, 2대 건실이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원사님이 군부대에 이대로 두는 건 역시 너무 불안하다고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건실이를 막무가내로 집에 들인 최원사는 한동안 부인과의 불화로 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막상 집에 들인 건실이가 다른 실장석들과는 다르게 얌전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자 부인도 건실이를 키우는 것을 더이상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오히려 아내가 건실이를 더 좋아한다며 최원사님이 요즘은 기분이 매우 좋으십니다."
더 이상 내가 근무하던 xxx포대에는 영악한 폭군도, 불쌍한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에 미소를 지으며, 김병장과 시덥잖은 추억팔이로 담소를 이어갔다.
"저 전역하면 형, 동생 하는 겁니다."
"거 참. 난 민간인이니까 지금 말 놓아도 된다니까?"
"하하! 전 아직 군바리라 이게 좀 더 편합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친 나는 건실이가 된 자실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애호파인 남편이 실장석을 키우지 못하게 할 정도로 실장석을 싫어하는 아내가 인정한 자실장.
녀석은 사육실장이 되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고 예의바르게 살아간 것이 분명했다.
나와의 약속을 훌륭하게 지켜낸 것이다.
나는 녀석의 앞 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어주었다.
부디 변심하는 일 없이 행복한 삶을 이어가길...
나는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얼마 전부터 살기 시작한 반지하 원룸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이사온 원룸은 방 한 칸에 작은 화장실만 존재하며 지하실의 묵은 냄새가 나는 조금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내가 키우는 사육실장들이 난동을 피워도 따지러 올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의 사육실장들, 건실이와 그 자들이 들어있는 수조를 바라보았다.
"데햐아아아!!! 죽는 데샤아아아!!! 죽기 싫은 데샤아아아!!!!!"
"테에엥! 테에엥!"
"테츄웅~♡. 긴긴씨들은 슬픈 짓을 멈추는 테츄웅?"
여러 마리의 뱀들이 수조의 바닥을 슬슬 기어다니고 있었다.
수조 벽에 고정된 채로 매달린 건실이와 자들은 뱀들의 위협에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눈 밑이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뱀들이 움직임을 잠시 멈추자 안심한 듯 한숨을 내뱉은 건실이는 그 소리에 반응한 뱀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데갸아아악! 따가운 데스! 독은 싫은 데스! 건실이 살려 데스!"
내가 얼마전 독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이후로 건실이는 저 뱀들이 독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저녀석들은 독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뱀이었다.
뭐, 물론 물기는 하지만.
"건실아, 그거 알고 있냐?"
"데갸아아아! 뭐인 데샤아아아!!!"
"너 오늘부로 300일 남았다! 축하해!"
"데갸아아악!!!!!"
저런, 저런.
건실이는 아직도 300일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절망한듯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건실아, 너무 걱정하진 마렴.
국방부의 시계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거든.
너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올거란다.
전역이라는 이름의 자유가.
해방되는 그 날이!
그러니까 그 때까지 잘 부탁한다, 나의 사육실장 건실아!
-end-
첫댓글 재미있어!!! 더!! 더 가져와!!!
오오 매우 굳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