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문성공安文成公 안향安珦 여표비閭表碑 갑오년(1654, 효종5)에 짓다.
옛 순흥부順興府 부내府內 북쪽 백운동白雲洞에 문성사文成祠가 있으니, 옛 기록의 이른바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이곳이다. 또 읍 터 남쪽에 안씨의 옛 집터가 남아 있는데 사당과 7리 정도 떨어져 있고, 그 옆에 있는 작은 못은 벼루를 씻던 못이라고 한다. 이곳은 고적古蹟이 되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지목하여 경의를 표하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얘기로는 문성공文成公의 아버지 태사太師 휘諱 부孚와 태사의 아버지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 휘 자미子美 이 두 분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안씨 집안은 상호군이 은덕을 베풀면서부터 비로소 번성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이분을 시조로 삼았다. 이제 이곳에 사단을 쌓고 제전祭田을 두어 매년 10월 1일에 제사를 지내는데 태사를 배향한다. 또 동쪽으로 1리쯤 가면 안씨 집안을 기념하는 사현정四賢井이 있는데 가정嘉靖 연간에 태사太史 주세붕周世鵬이 사적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보첩譜牒을 살펴보니, 삼한三韓 때 세족世族이었던 여러 성씨 중에 존귀하고 성대한 집안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대현의 가문으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집안으로는 안씨만이 일컬어지고, 고려 때에 특히 융성하였다고 한다.
문성공은 고려 고종, 원종, 충렬왕, 충선왕 때 사람으로 그의 행적이 전적에 수록되었고, 또 단주 대장명湍州大葬銘에도 쓰여 있다.
금상 5년(1654, 효종5) 겨울에 안씨의 자손이 여표비를 순흥부의 옛 마을에 세우니, 안씨 자손들끼리 알리기 위한 표지일 뿐만이 아니다. 백대가 지난 뒤에도 이 마을을 지나는 자들 또한 모두 대현의 유훈을 잊지 않고 경의를 표할 줄 알 것이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여표의 비석이여 閭表之碣
비석을 세워 상철을 흠향하니 碣欽上哲者
위엄 있고 신령스럽도다 威如神如
사단을 쌓음이여 祀壇之擧
사단을 쌓아 조상을 추앙하니 擧推厥初者
경건하고 정갈하도다 虔如禋如
[주1] 사현정(四賢井) : 고려 시대 순흥 호장(順興戶長)이었던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축(軸), 보(輔), 집(輯)을 가리킨다. 《謹齋集 卷4 附錄 四賢井碑陰記》
安文成公閭表碑 甲午作
古順興府治北【白雲洞】。有文成祠。誌所謂紹修書院者是也。又邑墟南有安氏古宅遺址。去祠堂七里。其傍有小澤。謂之洗硏之池。爲古蹟。至今邦人指而敬之。古事相傳。文成公皇考太師諱孚。太師之皇考神虎衛上護軍諱子美。實二祖舊居云。安氏之大。實自上護軍始樹德而發。後世祀以爲始祖。今築祀壇於此。置祭田。每十月上日報祀。以太師配食。又東一里。有安氏四賢井者。嘉靖中。有周世鵬太史。立石書其事。稽之譜牒。三韓之甲族諸姓。貴大者非一。而大賢之族。多名人達者。獨稱安氏。前古特盛云。文成之世。當高麗高,元,宣,烈之際。其事著於載籍。又湍州大葬銘可見。上之五年冬。安氏子孫立閭表碑於順興古里。不但諸安群子孫所相告標識者而已。雖百代之下。凡過此閭者。亦不忘大賢餘敎。知所加敬云。其銘曰。閭表之碣。碣欽上哲者。威如神如。祀壇之擧。擧推厥初者。虔如禋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