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병후 계간 문장 신인상 수상 시 5편
함박눈, 수상하다
창밖에 내리는 보기 드문
함박눈, 수상하다
쌓이지 않고 하늘만 떠돌 뿐이다
금호강 오르내리며 서럽게 울던 아들
지금 내리는 이 눈은 눈이 아니야
편서풍 타고 코로나 바이러스 날아오던 그해
장례식도 못 치른 울 엄니의 솜털이야.
눈밭 헤매며 마주 보며 울던 풍산개 두 마리
아니야, 쌓이지 않는 이 눈은 눈이 아니야
불새들이 꼬리 물고 동해로 날아가던 그해
개마고원에서 굶어 죽은 울 엄니의 솜털이야.
몽촌토성 하얀 비둘기 구구대며 차리는 제사상
그래, 하늘만 떠도는 이 눈은 눈이 아니야
평화의 광장에서 불꽃놀이 마구 쏘던 그해
유탄에 맞아 죽은 울 엄니의 솜털이야.
눈은 내리는데 그 눈, 쌓이지 않고
서럽게 울다가 떠나간 수많은 솜털들
그래서
눈은 쌓이지 않고 하늘을 감싸고 있다
질투
모양은 있지만 너무 넓어서 담을 수 없는
가까이 있을수록 손에 잡히지 않는
하늘을 그릴 때 나는,
고향 마을 그리면 고향 하늘이 찾아와 얹힌다
지붕 위 하얀 박꽃 그리면 지붕 위 하늘도 핀다
마주 보는 그리움을 그리면 마주 있는 하늘이 걸어온다
너를 연모하는 마음을 그렸더니 너는 내게로 달려왔다
네 뒷모습 바라보던 하늘이 급히 구름 속에 숨어 버렸다
하늘이 널 연모하는 마음을 들킬까 봐 몰래 숨는 중이다
무지개는 하늘에 있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아파트
사람들도 켜켜이 쌓아가는 무엇을
저마다 가득 안고 살지만
새들은 층을 쌓지 않고 날아다닌다.
새는 자신의 날개 크기만큼 하늘을 차지한다.
벌새는 풀꽃 하늘, 동백나무 하늘은 동박새 차지
까치 물까치 산까치는 키 높은 하늘 숲 차지
우주선도 가본 적 없는 은하 하늘은 붕새 차지
새들은 저마다 차지하는 하늘을 나눠 품는다
오늘도 아파트는 층을 높이 쌓아 올리고
떡시루 속 무지개 찾기에만 바쁜 사람들에겐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년과 봄 숲
열다섯 살 소년의 봄 숲에는
아무도 모르는 기지개가 시작된다.
태산목 푸른 그늘에서는 첼리스트 되고
새싹 움트는 숨소리에 왈츠를 춘다.
뻐꾸기 노래 들으면 성악가 되고
딱따구리 나무 쪼는 소리에 드럼 치는 소년병 된다.
참꽃나무 꽃필 때면 온 산 분홍색 칠하고
잎갈나무 앙상한 가지마다 연두색 칠해준다.
새파랗게 물든 입술 보면 진달래꽃 척척 그려내고
찔레순 먹은 입술 보면 하얀 찔레꽃 그릴 줄 안다.
산비둘기 노래에 가사歌詞 쓰는 시인 되고
산목련 꽃잎에 베르테르의 편지 외우는
다 보이고, 다 들리고, 못 할 것 하나 없는
열다섯 살 소년의 봄 숲은
작은 우주다
양동 아지매
병아리 부리 닮은 개나리 피던 봄날
머리띠 동이고 전선으로 떠나간 지아비
행여나 돌아오려나 사립문 열어놓고
졸음도 맘놓고 졸지 못하고 기다리던
작두 타는 아기 무당 모셔다가
길이 어두워 못 오는가 등불 밝히고
지팡이 없어 못 오는가 대나무 흔들며
밤늦도록 꽹과리 장단에 그의 귀향을 기도하던
훨훨 떠나가는 외기러기 쳐다보며
난 참 바보처럼 살았네 하면서도
빛바랜 기다림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꿈에라도 만나고 싶은 인연의 긴 끈 잇던, 그녀
심사평
도병후 시인의 시에는 신선한 울림이 있다. ‘함박눈’과 ‘눈이 쌓이지 않는 현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그러한 아픔을 새로운 기능성으로 알아차리게 한다. ‘서럽게 울다가 떠나간 수많은 솜털들’ 다음에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삶에 대한 밝은 희망을 전달한다. 발상에 웃음이 있어 건강하다. 그러나 시를 이끌어가는 호흡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사위원 : 고경아(글), 모현숙, 손진은
당선소감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첫 국어 시간을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와 시조를 모레 월요일까지 전부 외워 오라고 하셨습니다. 월요일 숙제 검사를 하는데 아무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부 다 외웠지요. 그만큼 시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외우고 싶거나 읊조리고 싶은 시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찌감치 꿈을 접었습니다.
몇 해 전 교회 행사에서 옆에 앉은 낯선 목사님이 저에게 메모지 한 장을 건네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세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를 읽는 순간 시인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김소월, 윤동주, 백석, 김춘수, 박인환, 도광의, 나태주의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시상이 떠올라서 단숨에 몇 편의 시를 썼습니다. 고치고 고치기를 거듭하던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이전호 시인께 보여드렸더니 곧바로 도전해보라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부족한 졸작을 시로 인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장호병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꿈이 있다면 그것은 시인을 위한 시가 아니라 누구든 외우고 싶은, 그런 시를 쓰는 것입니다. 문장 선배님들께 지도와 편달을 부탁합니다.
도병후 프로필
군위 효령 성2리 출신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2021, 2)
계간 문장 시 부문 신인상 수상(2023,3)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문장인문학회 회원
군위문인협회 회원
첫댓글 옥고 감사합니다.
함박눈, 수상하다 ㅡ 신인상에 올려주시고, 나머지 시는 회원작품에 넣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