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약꽃
김란희
모란꽃 향해
푸르른 손 올리더니
오월 어느 날
둥글게 봉오리 맺어
겹겹이 피운 탐스런 꽃송이
모란은 간다
감싸 안은 겉 꽃잎
속삭이는 듯 앉은 속 꽃잎
모양 다른 꽃잎이
하나의 꽃으로 어울린 비경
생김이 다른 우리
하나가 되면 이런 꽃이 될까
저버린 모란 뒤에서
함박웃음 담는다
모란을 꽃의 왕이라고 한다. 너무 탐스럽고 향기가 짙어 부귀공명을 바라는 부귀화라고 하는 꽃 중의 꽃이다. 여기에 비하여 작약꽃은 웃음의 왕이다. 모란이 지기 직전 봉오리를 맺고 모란이 질 때쯤 활짝 피어나 함박웃음을 짓는다. 오월의 햇빛 아래 만개한 작약은 모란보다 그윽하고 한들거리는 폭이 커서 그 앞에 선 걸음을 웃게 하는 꽃이다. 더구나 뿌리는 여성들의 보약으로 애용되어 집집마다 몇 포기는 심어두는 그런 꽃이다. 사람은 꽃을 좋아한다.
색깔의 아름다움과 모양의 형태가 가지각색으로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꽃은 사람의 심중을 변화시키는 효력을 가졌다. 꽃은 피는 것이 완성이 아니라 수정하고 진 뒤에 열매를 맺는 것이 완성이지만 사람의 심리는 가장 화려한 때의 모습을 환호하고 품는다. 그런 꽃들의 종류는 헤아릴 수가 없다. 전체 식물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게 없기 때문이다. 꽃으로 환생한다는 설화와 꽃을 바라는 소원이 많은 것을 보면 꽃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김란희 시인은 작약꽃 앞에서 꽃의 색깔이나 아름다운 모습에 탄성을 지르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꽃이 사람에게 주는 화해의 웃음을 읽었다. 속 꽃잎과 겉 꽃잎이 함께 어우러져 화합의 장을 만들고 그렇게 짓는 웃음이 주위에 퍼져나가 평화를 펼친다는 의미를 찾아내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꽃이 의미를 모르고 단순한 감탄에 그치지 말고 서로 어우러져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간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꿈을 꾼다. 사람도 꽃과 같이 생김이 다르고 쓰임이 다르다. 그러나 언제나 함께 해야 하는 공동 운명체다. 하지만 잠시도 다툼을 그치지 않는다. 시인은 그런 아귀다툼을 풀 수 있는 근본을 작약꽃 앞에서 본 것이다. 함박웃음의 상징인 작약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고 시인의 바람이다.
[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