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 11
논어(論語) 4 갑진년(1784)에 이서구(李書九), 정동관(鄭東觀), 한치응(韓致應), 한상신(韓商新), 이형달(李亨達), 홍의호(洪義浩), 한흥유(韓興裕) 등의 대답을 뽑았다
[자장(子張)]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하게 하며 묻기를 절실하게 하고 생각을 가까운 데에서부터 하면 인(仁)은 그 안에 들어 있다.”고 하였다. 뜻을 독실하게 한다[篤志]는 말은 행하기를 힘쓴다[力行]는 뜻을 띠고 있으므로 정자(程子)는 “뜻이 독실하지 아니하면 행하기에 힘쓸 수가 없다.”고 하였는데, 《집주》에서는 “행하기를 힘써서 인(仁)을 하는 데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두 학설이 같지 아니한 듯한데, 어째서인가? 정자는 또 “이것을 마치면 곧 철상철하(徹上徹下)의 도(道)이다.”라고 하였는데, 후대의 학자는 이 네 가지를 철하에 붙이고 인(仁)을 철상에 붙였다. 이것이 과연 정자의 본래의 뜻에 맞는 것인가? 상달(上達)의 지위(地位)는 네 가지의 공부를 갖다 붙일 수 없는 것인가?
[홍의호가 대답하였다.]
정자의 풀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한 자리에 뜻을 세우게 하여,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행할 수가 없음을 밝힌 것이고, 주자의 주석은, 학문사변(學問思辨)의 일을 모두 묶어서 말한 것으로, 인(仁)을 하는 상층의 공부를 분명하게 알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이것은 대개 하나로 말하거나 합해서 말하거나 하는 차이입니다. 철상철하의 뜻은 운봉(雲峰)이 말한 것은 혹 너무 잘게 나누어 놓은 듯합니다. 만약 “이미 상달의 지위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도리어 학문사변 가운데 하나가 완료되지 아니한 것이 있다면 도문학(道問學)을 무시한 아호(鵝湖)와 여요(餘姚)의 학설에 거의 가깝지 않겠습니까.
위는 자장편(子張篇)이다.
[주-D001] 아호(鵝湖)와 여요(餘姚) : 아호는 송(宋) 나라 육구연(陸九淵)이 지내던 곳이고 여요는 명(明) 나라 왕수인(王守仁)의 고향이다. 육구연은 존덕성(尊德性)을 위주로 하는 이론을 주장하여 주자와 대치하였고, 왕수인은 이 이론을 이어받아 양명학(陽明學)을 창시하였다. 아호와 여요는 이 두 사람이 중심이 되는 육왕학파(陸王學派)를 말한다.
[子張]
博學而篤志。切問而近思。仁在其中矣。篤志二字。帶得力行之意。故程子曰志不篤則不能力行。而集註則以爲未及乎力行而爲仁。二說似不同何也。程子又曰了此便是徹上徹下之道。而後儒以四者屬徹下。以仁屬徹上。此果得程子本旨歟。上達地位。著不得四者之工歟。義浩對。程子之訓。要人立志於確實地頭。以明不如是則不得行也。朱子之註。總言學問思辨之事。而勉在分曉得上面爲仁工夫也。此蓋單言合言之殊。而至於徹上徹下之義。雲峰所云似或大煞分開。若謂已到上達地位。而却於學問思辨中一有所未了。則不幾近於鵝湖餘姚擺却道問學之說耶。子張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