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펄농사' 한창인 안면도 '개펄섬' 황도
경향신문 99년 10월 27일
새벽안개가 지워버린 바다가 다시 열린다. 물이랑을 따라 쓸려가버린 바다는 벌써 간월도를 지나 섬 너머로 물러나 있다. 밤새 파도소리까지 빨아들였던 아득한 개펄. 먹이를 찾아나선 갈매기떼가 벌써 개흙을 파고 바지락을 쪼아댄다.
오전 6시. 안면도 속의 개펄섬 황도는 요즘 마지막 바지락 잡이가 한창이다. 거뭇한 개펄의 윤곽만 보이는 새벽. 강씨들이 가장 많이 사는 「강똘마을」, 연륙교 건너편의 「집너머」, 그늘이 진다는 뜻의 「은거지」, 「살마끔」과 「진살마」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에서 금세 70여명이 모여들었다.
『 오늘 작업량은 1인당 60㎏입니다』. 확성기를 통한 이장의 설명이 끝나자 마을사람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1㎞ 남짓한 돌섬까지 이어지는 트랙터와 소형트럭, 경운기, 오토바이의 행렬. 노인들은 외바퀴 수레를 끌고 뒤를 따른다.
『 그나마 여그까지 길이 놓인 것이 2년밖에 안됐지유. 도지사가 「체험 삶의 현장」이라는 프로에 출연하면서 개펄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해 고생깨나 했어유. 그담에 자갈을 깔아 길을 만들어 줬지유』
설명을 하면서도 호미는 연신 개펄을 헤집는다. 외지인의 눈에는 개펄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바지락을 주민들은 쉽게 주워담는다. 30분이면 거뜬히 10㎏짜리 망태를 채운다.
「굴이여/ 굴이여/ 굴하러 가네/ 동해는 청석굴/ 서해는 백석굴/ 남해는 적색굴/ 북해는 흑색굴/ 다른마을로 가지말고/ 우리마을로 돌아와라/ 굴이여 이밥먹고/ 다른마을로 가지말고/ 우리마을 가으로/ 짜작짜작 붙어라∼」
이마에 송글송글한 땀방울이 맺힌 아낙네들이 느릿느릿 노랫가락을 흥얼댄다. 때맞춰 건너편 산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남정네들도 1시간여의 작업에 힘이 부치는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태운다.
『 바지락 캐기는 원래 여자 일이유. 옛날에는 부업인디 이제는 주업이 돼버려 남자들도 나오지유. 4∼5년 전 안강망을 그만두고 바지락에 매달리게 됐지유』
박장환씨(73)는 『 그나마 끝물이라 달포전부터 바지락잡이가 시원치 않다』고 했다. 황도는 안강망 어선이 드나들던 부유한 포구. 60년대에는 동지나해까지 나가 갈치와 고등어를 잡았다. 당시 100t급 중선배만 30여척. 시골이지만 일본 유학을 떠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잘 살았다. 안면도 사람들이 황금도라고 부르며 부러워했다. 80년대 들어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안강망 고기잡이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때 300여가구 700여명이었던 주민이 이제는 125가구 349명으로 줄었다.
황도 바지락은 전국에서도 최고로 쳐준다. 바로 앞 옥섬 사이의 「앞장펄」, 북쪽의 「쇠시랑펄」, 남쪽의 「서막금펄」에서 주로 잡힌다. 모두 모래와 개흙이 적당히 섞여 바지락을 생산하는 데는 최적지. 황도 바지락은 껍데기가 단단하고 살이 찰지며 큰 편이다. 얼마 전까지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다. 시세가 좋을 때는 1㎏에 2,500원까지 나갔다. 경매가가 1㎏당 1,8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자존심 때문에 아예 바지락을 잡지 않는다.
충남 홍성과 안면도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천수만. 수십만평이나 되는 개펄은 처음부터 「찰진」 바다는 아니었다. 안강망 어선이 쇠락하자 황도 사람들이 모두 나서 개펄을 일궜다. 밭농사와 마찬가지로 개펄을 갈아줘 깊이 묻힌 씨앗조개들을 굵게 키웠다. 이장 강채규씨(46)는 『 80년대 초반부터 모두 개펄농사에 매달렸다』며 『 91년에는 바지락이 썩어 일일이 캐냈는데 그때 캐낸 바지락이 섬을 이뤘다』고 말했다.
황도는 꽃게가 밥상을 받고 있는 형국의 섬. 꽃게의 다리에 해당하는 섬 양쪽에는 지금도 집을 짓지 않는다. 섬 한가운데 있는 당집에는 홰나무 고목 2그루가 허리가 부러진 채 버티고 있다. 해마다 정월 초이튿날 성대한 「붕기 풍어제」를 올리는 곳. 「붕기(鵬旗)」란 만선을 알리는 오폭기 삼폭기보다 더 큰 성어를 이뤘을 때 쓰는 깃털을 단 새 모양의 깃발. 옛날에 고깃배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당집에서 불빛이 나와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부터 진대(뱀신)를 모셨기 때문에 뱀을 잡아먹는 돼지는 먹지도, 기르지도 않는다. 풍어제 때도 교접한 적이 없는 황소를 제물로 쓴다. 풍어제는 오전 9시부터 다음날 밤까지 꼬박 이틀간 열리며 인간문화재 김금화씨가 굿을 한다.
당집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기름진 바다. 검은 보석처럼 햇살에 반짝거린다. 황도 바지락잡이는 11월 중순이면 끝난다. 12월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굴잡이철. 황금개펄에서 들리는 굴따는 노래가 갯바람을 타고 퍼져간다. bj@kyunghyang.com
<안면도의 멋.셋>
바람아래
안면도의 허리를 통과하는 649번 지방도의 끄트머리. 영목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바람아래」란 작은 팻말이 붙어 있다. 왜 하필 이름이 바람아래일까. 바람에 모래가 패여 마치 골을 파놓은 듯한 모래사장을 보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바람아래는 꽤 큰 해수욕장이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아 단골들만 찾아든다. 뒤로는 소나무가 병풍처럼 에둘러 있다. 바다를 향해 길다랗게 뻗어있는 모래사구. 벌써 세어버린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왼쪽편 한가운데 있는 돌섬의 풍광도 멋지다.
꽃지
꽃지는 안면도의 중간에 있다. 서해안 낙조 촬영의 명소. 10월이면 지는 해를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하루 100여명씩 몰려든다.
꽃지의 명물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소나무가 자라는 할미바위 너머로 해가 진다. 꽃지의 최남단은 둔두리. 기암괴석이 자리잡고 있다. 단단한 모래사장을 따라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도 정겹다. 해수욕장 길이는 3.2㎞. 요즘 규사를 채취하느라 할미바위 옆에 바지선을 띄워놓은 게 약간 거슬린다.
삼봉
봉우리 3개가 붙어있어 삼봉. 안면도에서 가장 백사장이 너른 곳이다. 실제로는 백사장해수욕장과 붙어있다. 백사장 길이가 무려 6㎞가 넘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광활하다. 모래는 단단하다. 모래사장에는 「드라이브족」이 승용차를 타고 달리며 연신 환성을 지른다. 호미와 삽을 들고 「맛」을 잡는 사람들도 많다.
구멍을 파고 굵은 소금을 넣으면 맛이 쏘옥 올라와 손으로 잡을 수 있다.
삼봉해수욕장 입구 바위 위의 무덤은 아무리 파도가 쳐도 바닷물이 들지 않는다는 명당자리. 남매바위 주변에는 굴과 조개가 많다.
서쪽은 드넓은 모래해변, 동쪽은 개펄이 펼쳐진 안면도. 백사장을 끼고 있는 동쪽 해안에는 숨은 명소가 많다.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특히 「바람아래」 「꽃지」 「삼봉」 등 이름까지 예쁜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기말의 저녁해가 지는 안면도의 가을바다. 지난 천년을 아쉬워하며 붉은 해가 떨어진다.
/대하/
백사장해수욕장은 안면도의 대하 집산지. 9월부터 12월말까지 대하가 나온다. 가을철 손가락만 하던 대하는 겨울이면 25㎝까지 자란다. 겨울철은 값이 비싸다. 요즘은 15㎝ 굵기의 「중대하」가 나와 가장 먹기 좋다. 백사장해수욕장의 150여척 어선 중 새우잡이배는 40∼50척. 횟집마다 대하 소금구이와 회를 내놓는다. 출하량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요즘 식당에서 먹을 때는 1㎏에 3만5천원 정도. 사갈 때는 2만5천원 선에 거래된다. 오뚜기 횟집(0455-673-5349), 똘순이 횟집(673-6870), 전주회관(672-1601), 제일횟집(673-5033), 황도회센터(672-5412) 등.
/꽃게/
안면도 꽃게는 다른 지역보다 껍질이 두껍고 연푸른 색을 띤다. 된장을 푼 얼큰한 국물로 탕을 끓이거나 쪄서 먹기도 한다. 원래 꽃게철은 5월부터 시작되고 10월말쯤 끝난다. 요즘은 끝물이지만 알이 찬 꽃게를 맛볼 수 있다. 방포항 일대에 많다. 서울횟집(673-4247), 남면 몽산포회관(672-7141) 등.
/장어 통구이/
장어의 내장을 빼고 토막을 내어 숯불에 굵은 소금을 뿌려 굽는 통구이. 노르스름해지며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장어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백사장의 비취타운(672-0506), 통개해수욕장의 통개수족관(672-9654) 등.
/갱개미 무침회/
갱개미는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는 어종으로 태안반도 일대가 주산지다. 봄에 가장 많이 잡히지만 11월초부터 12월 사이에도 갱개미가 올라온다. 산 갱개미를 즉석에서 회를 떠서 초장과 함께 무쳐먹는다. 오돌오돌한 물렁뼈 씹히는 맛이 별미. 미리 연락을 해야 잡아놓는다. 영목항의 영목식당(673-7134), 장산포의 장곡횟집(673-7568) 등.
/전복구이/
2월부터 10월까지 나온다. 숯불에 구워낸 전복은 특유의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양념과 함께 어우러진 맛이 일품.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젓개의 승진횟집(673-3378).
<여행길잡이>
서울 성산대교를 넘어 직진하면 서울∼안산간 고속도로. 계속 가면 서해안 고속도로로 이어진다. 포승 IC를 벗어나 3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아산만방조제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도로. 상습 정체구역이었던 아산만방조제 구간 옆으로 따로 왕복 4차선이 뚫려 편해졌다. 아산만방조제를 넘어 34번 국도로 삽교방조제를 지난다. 삽교에서 서산을 지나 32번 국도를 타면 태안군. 태안읍 못미쳐 좌회전하면 안면도다. 안면도에서 가장 큰 포구인 백사장 해수욕장을 지나서 5분 정도 가면 3거리. 「황도」 안내판이 보인다. 3거리에서 15분 정도 들어가 연륙교를 건너면 황도이다.
<숙박>
황도에는 여관은 없고 구멍가게 2곳뿐이다. 안면도에서 묵어야 한다. 안면도 자연휴양림(0455-674-5019)에서 묵을 수 있다. 산막 8동. 현재 5동을 더 짓고있다. 9평 3만원, 10평 5만원.평일은 1주일전 예약. 주말은 한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백사장 해수욕장에 진주모텔(0445-672-1601)이 있다. 방포에는 대성회관(673-4030)과 승언프라자 호텔(674-1671)이 있다. 해수욕장 마을마다 민박을 한다. 안면도 연륙교를 막 지나면 안면도해수탕(674-6969)이 있다. 돌을 달군 물에 바닷물을 넣는 함평식이 아니라 바닷물을 직접 끓여 데운다. 시설이 비교적 깔끔하다. 1층은 여관.
<먹거리>
황도와 안면도를 잇는 연륙교에서는 요즘 숭어낚시가 한창이다. 주말이면 낚시꾼들이 몰려 자리가 없을 정도. 입질이 시원하고 씨알이 굵은 편이다. 방포해수욕장에서는 우럭낚시를 즐길 수 있다. 1인당 3만원에 고깃배를 빌릴 수 있다.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인터넷(www.taean.or.kr)을통해 안면도를 알리는 모임 「태안사랑 2002」. 회원은 대학생부터 60대까지 모두 20여명. 권오태씨(40)가 지난 3월 안면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안면도의 역사·전설, 해수욕장, 문화재 등 상세한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