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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형
(* 출처: 김중술(1994). (신) 사람의 의미. 서울대학교 출판부. 제7장~제8장.)
사랑은 단 한 가지 의미만 갖고 있는 유일 개념이 아니다. 사랑은 여러 의미와 여러 표현방식과 여러 모양을 갖고 있는 요술상자와 같은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의 의미이며, 각자가 표현하는 사랑의 행동이다.
사랑의 양식을 분류하려고 시도했던 최초의 사람은 캐나다의 사회학자인 존 리(John Lee)이다. 그는 ‘사랑의 색깔(Colors of Love)’이라는 저서에서 마치 세 가지 원색에서 여러 가지 색채의 조합이 이루어지듯, 사랑도 세 가지 원형이 있어 거기에서 여러 가지 조합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리의 연구를 보완하여 보다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랑의 척도를 제작한 사람이 사회학자인 래스웰(Thomas E. Lasswell)과 햇코프(Terry Hatkoff)이다. 그들은 50 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사랑척도 검사를 제작하여 수천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요인분석한 결과, 여섯 가지 기본적인 사랑 양식을 발견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척도 문항을 만들기 위하여 사랑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면담을 시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에 나타난 사랑의 표현 방식 혹은 행동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분류하였다.
1. 낭만적 사랑
(1)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7) 애인과 신체 접촉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성적 흥분을 느꼈다.
(13)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가 좋아서 키스를 했다.
(19) 대개 제일 먼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이다.
(25)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나는 사랑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31) 나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의 애인이 될 사람의 모습을 분명히 정해 놓고 있었다.
(37) 나는 애인 것과 똑 같은 옷, 모자, 자전거 등을 갖고 싶다.
서로 만나자마자 마치 강한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금방 사랑의 불꽃이 불붙기 시작하였다는 표현이 바로 낭만적 사랑의 특징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애인에 대한 사랑이기보다 사랑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첫눈에 금방 황홀한 사랑에 빠질 뿐만 아니라, 일단 그렇게 되면 한 순간의 이별도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그렇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그렇듯이, 그것은 큐피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바로 그런 순간이다. 이런 사랑에 빠지면 우선 온몸과 마음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며, 특히 이 같은 사랑에서는 상대의 외모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 훤칠한 키, 오똑한 콧날,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촉촉한 입술 등 모든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날씨, 입었던 옷, 첫마디 말까지도 금방 눈에 보이는 것 같고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 생각, 지난날에 겪었던 경험 등 모든 것을 서로 알리고 알고 싶어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 희망 사항, 그리고 때로는 비밀까지도 서로 털어놓는다. 이 같은 모든 정보가 그들에게는 서로를 더욱 단단히 묶어놓은 사랑의 사슬이 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낭만적 애인들은 이 같은 정보에 기초하여 서로를 즐겁게 하는 말이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둘이 똑같은 스웨터를 입는다거나, 선물에 자기 이름의 첫 글자를 새겨 넣는다거나 함으로써 서로를 동일시하려 한다. 상대방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도 절대로 잊지 않고 축하해준다.
낭만적 사랑은 마치 건초더미에 당긴 불꽃과 같아서 그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껴안고 신체적 애무에 탐닉하게 되는데, 물론 이와 같은 처음의 매력과 열정의 강도가 그대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식으려 할 때면 낭만적 애인들은 현실 대신에 공상으로 대처하거나, 혹은 인간이란 결국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의 불꽃이 영영 꺼져 버리는 것은 결코 아니며, 언제나 마음 속에 고요한 불씨로 남아 있다가 가끔 상대방에게 옛날의 모습을 볼 때마다 다시 뜨겁게 피어오른다.
낭만적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현실을 왜곡해서 보는가? 현실(존재)이란 무엇인가? 어떤 철학자들은 지각(혹은 인식)과 별개의 존재를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리학에서는 지각되는 현실(그것을 ‘심리적 현실’이라고 한다)이 보다 더 중요하다. 실제로 정상인은 현실을 조금 자기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지각하는 경향이 있고, 이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지금은 늙어버린 아내(혹은 남편)의 얼굴도 낭만적 애인에게는 젊은 날의 아름답던 얼굴과 똑같이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당한 자기 확신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 보이고 전적으로 자기를 바치며 그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감수할 각오와 사랑에 실패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
(2) 나는 한참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8) 먼저 ‘좋아하는 마음’이 얼마 동안 있는 다음에 비로소 ‘사랑’이 생기게 되는 것이 원칙이다.
(14) 전에 연애 상대였던 사람들 거의 모두와 나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 최상의 사랑은 오랜 기간의 우정으로부터 싹튼다.
(26) 사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둘이 같이 살면서 함께 가정을 꾸미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다.
(32) 키스나 포옹이나 성관계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서로 충분히 친밀해지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38) 우리가 언제부터 사랑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43) 가장 좋은 연애 관계란 가장 오래 지속되는 관계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오랫동안 친구로 사귀다가 결혼하게 된 쌍들을 가끔 본다. 그 중의 한 예가 내가 아는 최 양과 김 군과의 관계이다. 최 양은 김 군과 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공부하며 활동해 온 오랜 친구였다. 영어회화도 함께 배우고, 등산도 함께 다니며, 남다르게 취미가 비슷한 둘은 늘 그림자처럼 서로 붙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양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을 보러 나갔다. 상대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는 좋은 신랑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남자와 김 군을 자꾸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치 자신이 김 군을 배신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적당히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최 양은 자기가 김 군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실제로 최 양과 김 군 사이의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이것이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의 한 전형적인 예이다. 함께 가까이 지내다 보니 서로 편하고, 좋고, 취미도 비슷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통하고, 서로 감출 것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은 친구이자 서로 사랑하는 애인인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화끈하게 뜨겁고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온돌처럼 은근히, 하지만 확실하게 사려 깊고 정답게, 서로를 진심으로 위한다. 이들 사이에도 다툴 때가 없지 않지만,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는 서로 양보하고 합리적인 해결을 위하여 평화롭게 타협하며, 그것 때문에 사랑에 손상이 생기거나 끝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이 같은 부부들의 이혼율은 매우 낮으며, 설사 이혼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우정은 계속 남아 있어서 가끔 서로 찾아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한때 애인 사이던 사람들이 그 관계가 깨졌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 원수처럼 지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태도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다른 종류의 사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 간에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모나 형제들로부터 항상 사랑과 지지와 협조를 받을 수 있었고, 서로간에 깊은 신뢰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랑관계는 각자가 자기의 가정에서 체험한 형제간의 관계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런 대로 받아들이며, 때로 일시적으로 떨어져 살 때가 있어도 그것은 정상적인 삶의 현상이라 생각하며, 그러한 일들로 인하여 그들의 친밀감이 손상 받는 경우는 없다. 가정에서부터 서로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튼튼하게 자란 사람들은 쉽게 질투 같은 것은 잘 하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배우자에 대한 질투나 떨어져 있을 때 불안감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부부들은 배우자가 출장을 가거나 심지어 군 복무와 같이 장기간 떨어져 있게 되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의심이나 불안감 같은 것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에 열중하며 항상 그 동안의 소식을 전화나 편지로 서로 주고받는다.
역시 깊은 우정과 깊은 사랑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으며, 유아기 및 아동기에 걸쳐 기본적 신뢰감과 친밀감 형성의 기반이 튼튼할수록 성장한 후에도 깊은 신뢰감을 수반한 남녀간의 애정관계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3. 소유적 사랑
(3) 우리들 사이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나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9) 나는 연애에 실패한 후 너무나 우울해져 자살까지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15) 나는 사랑에 빠지면 하도 흥분되어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21) 애인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나도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
(27) 나는 사랑에 빠지면 다른 일에는 도무지 집중하기가 힘들다.
(33) 나의 애인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
(39) 나는 질투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의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44) 우리들의 사랑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될 때에도, 그(녀)를 다시 보면 옛날 감정이 되살아나는 때가 적어도 한번쯤은 있었다.
(48) 애인이 잠시라도 나에게 무관심해지면, 나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때로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한 곳을 향하여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리고 동시에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소유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거기에는 흥분과 깊은 절망, 헌신과 불같은 질투의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하게 되며, 이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한시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사랑의 초기에 그들은 너무나 흥분된 나머지 잠을 잘 이루지도 못하고, 잘 먹지도 못하며, 생각마저도 잘 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완전히 사랑의 노예가 되어 상대방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로 모든 시간과 정력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혹은 버림받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항상 마음 조이며 산다. 자기가 준 사랑에 대한 확실한 보답의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될 때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조그만 배신의 기미라도 있을 때는 그렇게도 뜨겁던 사랑이 하루아침에 불타는 증오로 돌변해 버린다. 상대방이 데이트에 조금만 늦거나, 혹시 한번이라도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이유를 꼬치꼬치 따지며, 그것은 나를 그만큼 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집안에 일이 있거나 직장일이 바빠서 혹은 몸이 좀 불편해서 얼마 동안 못 만나게 되는 때가 있으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사랑의 배신자라고 몰아붙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게 되고, 때로는 무거운 심리적 부담을 주게 되는 것에 대하여 그들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모두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 하나의 중독현상이다. 이런 사람은 참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며, 상대방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대개 소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아동기를 보낸 경우가 많고, 현재의 생활에서 고독감을 많이 느끼며, 직장생활이 불만족스럽고, 친한 친구가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상대방이 진정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사랑을 하고 있어야겠다는 강한 욕구에 강박적으로 끌려가는 사람일 수 있다. 혹은 자기가 주는 사랑에 대하여 그만큼 보답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진정한 사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어떤 종류의 상대를 자기가 진정으로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으며, 때로는 여러 가지 상반되는 성질을 어느 한 사람에게서 찾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랑놀이를 하고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하며,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그 사람과 만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원수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지난날의 애인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나 미련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랑에 실패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괴로워 그 원인이 무엇이었나 혼자서 곰곰이 분석해 보기도 한다. 소유적 사랑을 하는 사람은 애인과의 성관계에서도 만족을 느낄 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애인관계를 자기가 먼저 끊을 용기는 없어서 대개는 상대편에서 먼저 끊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그 후 결별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데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들은 자신의 지나친 소유욕과 질투심이 실패의 원인이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자기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랑의 대표적인 예로 사랑 연구의 대가인 존 리(John Lee)는 서머세트 모옴(Somerset Maugham)의 소설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주인공 필립을 든다. 필립은 예쁘지도 않고 이기적이며 늘 불평만 하는, 마음에 드는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마일드레드와 이 같은 종류의 사랑에 빠져, 그 때문에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상대방에게 심하게 중독되어 있는 하나의 희생자에 불과한 것이다. 심리학자 피일(Stanton Peele)은 이와 같은 현상을 ‘사랑중독증’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랑중독증’이란 다른 사람과의 애착관계로 인하여 자기 자신 혹은 주위 환경에 있는 다른 모든 일들을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게 되거나 원만히 처리할 수 없게 되며, 그 관계만이 유일한 만족의 근원이 되는 의존현상에 빠지게 되는 상태이다. 사랑중독증에 걸린 사람은 강박적으로 사랑 자체에 집착하며 상대방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을 상실하게 되고 마치 유아기의 공생관계처럼 과잉밀착상태에 빠진다. 불안감이나 낮은 자긍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으로 약물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을 약물중독증이라고 규정하는데, 소유적 사랑은 약물 대신에 다른 사람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역시 하나의 중독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소유적 사랑의 요소가 행복하고 원만한 애정생활을 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전혀 없는가?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적절한 애정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경향이 어느 정도는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사랑의 열병에 빠지면 잠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고 자기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눈길도 마주치는 것을 싫어할 때가 있다. 때로는 순간 강렬한 질투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심하지는 않다. 소유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질투란 열렬한 사랑에 수반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질투를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질투는 정서적 미성숙의 한 현상이며, 아주 심할 때에는 망상과 궤를 같이 한다. 질투는 결코 사랑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소유욕에 눈이 멀어 이성(理性)을 잃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결코 아니다.
4. 논리적(이성적) 사랑
(4) 나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누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 먼저 나의 장래 목표부터 생각해 본다.
(10) 애인을 결정하기 전에 내 인생 설계부터 잘해 두어야 한다.
(16)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22) 애인을 결정하는 데 한가지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그(녀)가 우리 가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28) 배우자를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그(녀)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34) 나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하고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40)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데이트도 하고 싶지 않다.
(45) 상대를 택할 때 고려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점은 그(녀)가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49) 나는 누구와 깊게 사귀기 전에, 우리가 아기를 가지게 될 경우 상대방 쪽의 유전적 배경이 내 쪽과 잘 맞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본다.
베이컨(Francis Bacon)은 “사랑하면서 현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는가 하면, “사랑에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논리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현명하게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남편 및 아버지(혹은 아내 및 어머니)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과는 결코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어떤 형의 상대를 자신이 좋아하며 혹은 필요로 하는지도 대개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조건을 가장 많이(반드시 전부는 아니라도) 만족시키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참고 기다린다. 그들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가능한 대안적 방법까지도 충분히 생각해 놓고 있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관계는, 그것이 아주 일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회피해 버린다. 그런 것은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의 외모, 교육수준, 가정배경 및 성격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장점과 약점까지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나는 부자도 아니고 미남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근면하고 믿을 만하며 생활이 안정되어 있다. 이런 조건을 평가할 줄 알고 자기도 여기에 부응할 만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나를 좋아할 것이다.’ 라는 것이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논리적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 해서 낭만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은 사랑이란 우선 두 사람의 실제적 양립성에 기초해야 하며, 또한 그것을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액수의 돈을 저축할 때까지 또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아니면 어떤 자리에 승진할 때까지 사랑을 아예 하지 않는다든가, 혹은 유예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논리적 애인들은 사랑을 각자의 시장가에 기초한 최상의 거래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 간의 관계가 공정한 거래라고 인정되는 한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될 때나, 혹은 상대방이 의미 있게 변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단계의 반응을 보인다.
첫째 단계에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원래 갖고 있는 소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음은 어느 부인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한국에서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곧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은 나의 학업을 계속하게 하기 위하여 학위과정이 비교적 짧은 학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직업을 얻어 돈을 벌 테니 남편은 원래 목적했던 대로 전공분야의 학위과정을 계속하도록 하고, 남편의 공부가 끝난 다음에 나의 학위과정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아기도 갖지 않고 성생활도 자제하며, 어느 정도 제한된 부부생활을 했다. 결국 우리는 두 사람 모두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하고 싶은 전공분야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만일 이와 같은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면, 논리적 애인들은 그 관계를 끝내 버린다. 이것이 그들이 취하는 두 번째 단계의 반응이다.
논리적 애인의 인내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들은 만족스러운 상대를 발견하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때에도, 심지어 사랑이 끝났다고 판단될 경우 그 관계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종결하기 위한 시기를 택하는 과정에서도 가공할 인내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몇 년 뒤에 이혼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아이들이 다 성장할 때까지 기다린다든가, 혹은 경제적 사정이 이혼을 가능케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혼하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이혼의 충격을 이겨낼 만한 정서적 안정성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가서 관계를 청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논리적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가 이렇게 철저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예로 든 경우들은 사실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 속하며, 이렇게 백 퍼센트 순수하게 논리적 사랑만을 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매우 드물다. 물론 이런 사람들에게도 열정이나 깊은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들의 강박적 성격이 이성(理性)으로 하여금 열정의 고삐를 꽉 쥐고 있게 하는 것이다. 강박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예측불가능한 일은 통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통제력의 상실은 그들에게 굉장한 불안감을 일으킨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수나 실패는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어떤 교훈을 배우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한번쯤 더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너무나 논리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잠재적인 불안감이 많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성격적 성숙의 정도가 다소 낮은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로서, 아주 극단적인 경우만 아니라면, 이와 같은 사람들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으며 열심히 노력하는 좋은 배우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5. 이타적(희생적) 사랑
(5) 애인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설사 그(녀)가 바보처럼 행동한다 하더라도 힘껏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11) 애인을 고통받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고통받겠다.
(17) 나의 애인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23) 나는 누구와 헤어지고 난 뒤 그(녀)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29) 애인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내가 원하는 것을 희생할 수 있다.
(35) 만일 나의 애인이 다른 사람의 아기를 갖고 있다면, 나는 그 아기를 내 자식처럼 키우고 사랑하며 보살펴 줄 것이다.
(41) 내가 애인에게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나는 포기하겠다.
(46)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의 애인이 마음대로 써도 좋다.
(50) 애인과 만나거나 전화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다면, 그(녀)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이해해야한다.
이타적 사랑이란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고 돌보아 주며, 용서하고 베풀어주는 자기 희생적 사랑이다. 이것을 다른 이름으로는 아가페적 사랑이라고도 부르며,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무조건적 사랑이나, 불교에서 설파하는 관음보살의 대자대비적 사랑이 이에 속한다. 즉, 사랑이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주어야 할 의무와 같은 행위이며, 그것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감정보다는 의지로 행하여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며, 자기 자신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과 번영을 더 생각하며, 상대방의 희망과 목표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망이나 목표는 유예하든가 포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만일 그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한다면 나는 기꺼이 물러날 수도 있다고 한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의 이야기’에서 시드니 갈튼은 찰스 다아네이를 대신하여 기꺼이 길로틴의 이슬로 사라진다. 두 사람 모두가 루시 마네트를 사랑했으나, 갈튼은 그녀가 자기보다 다아네이를 더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루시의 행복을 휘하여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순정파 연애소설의 으뜸으로 손꼽혔던 박계주의 ‘순애보’도 이와 같은 맥락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타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에게 큰 심리적 고통을 안겨 줄 때에도 너그러운 자비심을 베풀어, 그것은 그 사람이 잘 몰라서 그랬거나 순전히 실수로 혹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압력에 의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어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기를 낳았을 때 기꺼이 그를 자기 호적에 입적시키고, ‘그래도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한다’면서 그녀와 결혼하는가 하면, 어떤 여자는 남자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였는데도, ‘문제가 있다고 해서 사랑을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 그를 떠나지 않은 실례도 있다. 진정한 이타적 애인이라면 아무 불평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뒷바라지를 하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라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아무리 아픈 상처를 주고 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끝까지 참아 준다. 이타적 애인의 사랑의 조건은 상대방이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상대방이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경우에만 그들의 사랑은 끝난다.
이렇게 철저한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역시 사랑은 받는 것보다는 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사랑을 주어본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며,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느껴 본 사람들은 그 경험을 신의 축복이라고 감사한다. 진정한 사랑에는 역시 아가페적 요소가 어느 정도 내포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6. 유희적 사랑
(6) 애인에게는 나의 태도를 다소 불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12) 연애하는 재미란 두 사람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을 거기서 얻어내는 재주를 시험해 보는 데 있다.
(18) 사랑하는 애인이라면 나에 관하여 다소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렇게 속상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24) 나의 두 애인이 서로 알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재주부린 적이 적어도 한번은 있었다.
(30) 나는 사랑했던 관계를 쉽고 빠르게 잊어버릴 수 있다.
(36) 내게 애인이 있더라도 다른 매력적인 사람을 만난다면 애인 몰래 사귀어 볼 생각이 있다.
(42)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애인이 알게 된다면 속상해 할 것이다.
(47) 깊이 사귀고 싶지는 않아도 어떤 상대가 나의 데이트 신청에 응하는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시도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흔히 우리는 자기가 생각하는 (혹은 알고 있는) 사랑만이 유일한 참된 사랑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형태와 다른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든가 혹은 심지어 음란행위라고까지 악평하기도 한다.
유희적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정서적 관계란 즐기기 위한 도전이며, 이기기 위한 시합이다. 그 시합에 경험이 많아질수록 재주도 더욱 숙련되고 시합을 재미있게 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게 된다. 그 시합의 모토는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합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며, 사랑을 하되 시합처럼 재미있게 그리고 정당하게 해야 하며, 너무 친밀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희적 애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약속 같은 것은 서로간에 금기 사항이며 그들은 동시에 두 사람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애인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예사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외모를 골고루 좋아하므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쉽게 옮겨가며, 어느 사람과도 심각한 사랑에 빠지거나 특별히 흥분하지 않는다. 때로는 현재 하고 있는 사랑을 더 재미(스릴)있게 하기 위하여, 실제로는 없는 다른 애인을 거짓으로 꾸며댐으로써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의 희망을 좌절시키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상대방과 장기적인 인생계획 같은 것은 세우려 하지 않으며, 데이트도 순간의 결정으로 정한다. 데이트를 하더라도 같은 상대와 여러 번 혹은 너무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상대방이 현재의 관계에 대하여 오래 지속되리라는 기대를 갖거나,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유희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속에 깊숙이 들어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같은 것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며, 상대방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질투하는 애인을 아주 싫어하며, 질투는 사랑의 재미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성행위는 재미로 하는 것이지 책임을 져야 하는 행동이 결코 아니며, 사랑이란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종류의 남편은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하면 질투를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의 시합에서 자기의 취미나 재주에 대한 찬사라 생각하며, 그런 경우에 자기 아내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는 바람기가 없는 여자에게는 사랑을 못 느낀다고 한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지켜야 할 규칙은 있다. 가령 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부당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거나(속여서 함께 자는 일 같은 것), 그 시합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너무 심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사랑은 대부분 결혼 전에 배우자와의 관계가 깊지 않을 때 하는 것이 상례이나, 어떤 사람들은 약혼이나 결혼 후에까지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두 사람 모두가 이와 같은 유희적 사랑을 하는 애인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에게 주는 타격이 너무 커 크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유희적 사랑을 하는 어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컨대 사랑이 아니라 경쟁적인 일 같은 분야에서 도전과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시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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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주로 라스웰(Lasswell)과 로브센즈(Lobsenz) 및 존 리(John Lee)의 저서에서 분류한 사랑의 종류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 한 가지 특정 애정형에만 국한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어느 특정형의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성격이나 성장 배경에 있어서는 각기 각양 각색으로 다양하다. 앞에서 기술한 사랑의 종류에 대한 설명은 가장 전형적인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어느 한 애정형에 꼭 들어맞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대개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 여러 종류의 성질들이 혼합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볼 때 이 여섯 가지 사랑의 종류에서 어떤 것들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높아서 충분히 서로 다른 종류라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므로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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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종류와 남녀 차이
사랑의 종류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랑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랑의 유형에 있어 남녀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자들에게는 ‘논리적 사랑’, ‘소유적 사랑’, 그리고 ‘가장 좋은 친구와 같은 사랑’이 훨씬 더 많으며, 남자들에게는 ‘유희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이 훨씬 더 많다. ‘이타적 사랑’에 있어서는 남녀간에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듯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이성적(理性的)이라는 사실이,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자기가 선택하는 사랑의 대상이 ‘성실하고 유능한 남편감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오늘날과 같이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된 시대에는 안정에 대한 현실적 관심이 이전처럼 크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남자들만큼 낭만적으로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사회학자 케파트(William Kephart)는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를 시행한 바 있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대학생 천 명에게 ‘만일 상대방이 당신이 원하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으나 당신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그 사람과 결혼하겠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남자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으나, 여자 네 사람 중 세 사람 이상은 ‘예’라고 대답했다.
흔히 사람들은 감상주의와 낭만주의를 혼동한 나머지, 여자들은 낭만적이고 남자들은 실제적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20여 년 간의 사회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거의 모두가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보다 사랑에 더 쉽게 빠질 뿐만 아니라, 그 관계가 깨졌을 때도 더 오랫동안 그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한다. 대개의 경우 사랑을 끝내자고 먼저 나서는 것은 여자 쪽이며, 그것이 끝났을 때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은 남자들이다. 연애의 실패로 인하여 자살하는 경우는 남자가 여자보다 세 배나 더 많다. 여자 특유의 논리적 사고 방식에 따라서 여자들은 한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고 자기의 생활을 재조직화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렇게 쉽게 체념하지 못하고 사랑의 실패를 두고두고 되새기며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슨 말을 잘못 했는가 하고 몇 번이고 반문해본다.
‘소유적 사랑’은 남자보다 여자들에서 더 많고, ‘유희적 사랑’은 여자보다 남자들에게 더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전통적인 성역할 개념으로 설명하려 한다. 즉, 여자들은 질투가 많고 남자들은 ‘돈 환’적이라는 것인데, 그러나 이 같은 개념도 요즈음에는 달라지고 있다. 근래에 와서는 남녀간의 성역할이 과거와 같이 어떤 전형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게 되면서 여성들의 사랑 형태도 소유적인 것으로부터 보다 더 유희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에서도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더욱 놀랍게도 이혼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 아내인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의 애정유형도 변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참고 문헌>
Lasswell, M. & Lobsenz, N. M.(1980). Styles of Loving. New York: Doubleday.
(* Lasswell과 Hatkoff가 만든 애정형 척도검사가 이 책에 들어있음.)
Lee, J. A.(1975). Colors of Love. Toronto: New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