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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26구간[개금고개-다대고개]후기
낙동의 마지막 몰운대를 향하여 SK戰士들
[개금고개-엄광산-구덕령-구덕산-대티고개-괴정고개-장림고개-봉화산-다대고개]
2008년 6월 29일(일요일 당일)
★교통및 참가인원 : 25인 버스 이채욱,이창호,김경관,문호준,곽삼렬,김재완,황전효 7명
★준비물 :복장 외의-등산복(바지, 짚티), 등산화
내의-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
보호구-모자,장갑1컬레,우의
여벌옷-등산바지,짚티, 쿨맥스팬티1벌, 등산양말1컬레, 오버트라우즈
기타-수건(1장), 스카프(3장), 수면대
운행구 : 배낭(42L-배낭커버포함), 스틱, 시계, 지도, 호루라기, 스패츠, 식수(1.5L/1ea)
렌턴(헤드,핸드-여유 밧데리 4EA포함), 등산용칼, 자리(의자), 라이터,
식사및 비상식 : 중식, 쵸코렛4개, 녹차캔디, 연양갱
주류 : 펫트맥주, 휘발유
상비약 : 압박붕대2개, 파스1개, 진통제, 소화제, 해열제, 피로회복제, 근육이완제, 우황청심환1병
기록 : 볼펜, 수첩, 카메라
기타 : 시그날,신분증,휴지,잡주머니,비닐봉지,쓰레기봉투
★날씨 : 맑음
★산행코스
개금고개-엄광산-구덕령-구덕산-대티고개-괴정고개-장림고개-봉화산-다대고개
===(도상거리 도상거리 마루금 약 14.7km, 실 약 15.0km 총 8시간 15분 소요(중, 휴식시간 포함)
★GUIDE
[구간별 소요시간]
* 6월 29일 (일)
08:20 개금고개
08:35 백병원 삼거리(좌로)
08:45 고원아파트 지난 놀이터입구 이후 대원들과 합류 백병원에서 시작
09:00 백병원
09:15 임도
09:35 엄광산동봉
09:55 엄광산/정상석-30분 휴식
11:00 구덕령
11:35 승학산삼거리/산불초소
11:40 구덕산
11:55 시약정-30분 휴식
12:55 안부/밀성박씨가족묘-알바
13:05 대티고개
13:15 까치고개-알바
13:35 우정탑
14:00~45 괴정고개-중식 45분
15:30 대동중고교정문
15:35 장림고개
16:00 봉화산 쉼터
16:20 구평가구단지
16:50 다대고개-산행완료
[구간별 거리및 소요시간]
도상거리 마루금 약 14.7km, 실 약 15.0km 총 8시간 15분 소요(중, 휴식시간 포함)
개금고개 - 구덕령 : 4.0km / 2시간 25분 휴식 30분 포함
구덕령 - 대티고개 : 3.1km / 2시간 05분 휴식 30분 포함
대티고개 - 괴정고개 : 3.2km / 0시간 55분
괴정고개 - 장림고개 : 2.0km / 1시간 35분 중식 45분 포함
장림고개 - 다대고개 : 2.4km / 1시간 15분 휴식
●낙동정맥(洛東正脈) 26구간-몰운대를 향하여
개금고개-다대고개, 이번 구간은 낙동정맥이 맥를 다하기 위하여 고도를 낮추고 부상시내의 주택지를 통과하며 맥으로서의 의미를 많이 상실하지만 진행구간 내내 좌우로 부산앞바다와 낙동강이 함께 하여 부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구간이라 하겠다.
보편적으로 개금고개에서 몰운대까지 한구간으로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나 다대고개까지만 진행하고 나머지 구간은 그 동안 보급대를 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행사를 위하여 남겨둔다.
아침에 일어나 마눌차로 부산으로 향한다.
나머지 대원들은 버스로 이동하기로 하고..
14번국도-광안대교-황령산터널-개금고개에 닿으니 시간이 이르다.
마눌차로 마루금을 답사하기로 하고 한바퀴 돌고 내려와 개금고개에서 마눌을 돌려보낸다.
남편이라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지원해주는 마눌이 있기에 지금까지 오지 않았나는 생각에 나는 참으로 복받은 놈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감싸고 돌아가는 마눌의 차를 보며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마눌 감사하오!!!
잠시 뒤 대원들과 합류하여 개금고개에서 백병원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백병원은 몇 년전 어머님의 뇌수술을 한 곳으로 인연이 깊다.
뇌 수술을 받고도 건강하게 지금까지 계시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뇌수술 당시에는 잘해야겠다고 다짐해놓고 건강하게 계시니 또 소홀해지는 것은 평생에 두고 씻을 수 없는 업보인가!!
아님 나의 이기심인가!!
되돌아 무너지는 나 자신에 대한 질책과 각성의 마음으로 앞날을 다짐해본다.
옛날, 마을의 모양이 거문고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개금(開琴)이라는데..
개금고개에서 등로의 들머리까지는(마루금) 개금고개-신호등사거리-백병원전삼거리(좌로-백병원 후문)-고원아파트-놀이트 계단으로 들머리를 잡는다.(소형차는 진입이 가능하다)
대형차량일 경우 백병원정문에서 좌로 난 도로를 들어가면 놀이터 계단 입구에 닿는다.
또한 계속하여 도로와 가게를 접하게 되어 중식은 매식을 하기로 하고 가볍게 출발한다.
*참고-오늘은 수리한 카메라가 중간에 똑같은 고장을 반복하여 함께 한 대원의 사진과 On-line상의 사진을 발췌하여 산행기를 적는다.
08:40 개금고개
[개금고개]
[개금고개]
[백병원 전 삼거리(좌로)]
●2008年 6月 29日
09:00 백병원입구 산행시작
백병원 입구에서 좌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놀이터 입구에 닿는다.
우측으로는 대동아파트 담장이고 들어서면 주차장으로 향하는 철계단에서 좌측으로 가면 좁은 통로같은 계단을 돌아 오르면 텃밭이 나오고 산자락를 대하게 된다.
반질한 길을 따라 오르니 좌우로 산딸기가 제철이라 잠시 산딸기를 따먹고 오르니 어!어! 이상하다
마루금을 벗어나 사면으로 진행되고 있어 좌측으로 치고 오르기로 하고 나가는데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붙어 오르니 계속하여 산딸기가 주저리주저리라 계속 따먹으려 오른다.
올라서니 좌측에서 올라오는 마루금과 합류하고 우측으로 나가니 이정표(부산진구 종합복지관 1.3km, 벽산아파트 0.8km, 동의대 1.7km)가 있는 임도를 만난다.
이제부터 개거품 물고 올라야 한다 표고차 약 400여m를 극복하여야 하는데 경사 또한 급하여 가는 걸음을 힘들게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니 계속하여 산딸기 밭이고 이러다 산딸기로 배 채우겠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코를 땅에 쳐박고 오르니 경사가 누그러지며 능선마루에 서고 잠시 완만히 올라서면 엄광산 동봉이다.
잠시 후미대원을 기다리다 합류하고 순한길을 나아가니 이정표(엄광산 0.1km, 내원정사 1km, 봉수대체육공원 1.8km, 개금 2.1km)를 만나 오르니 엄광산에 닿는다.
[백병원입구 출발전]
[고원아파트 지나 놀이터입구]
[임도]
[임도이정표]
[엄광산 동봉]
[엄광산정상 직전 이정표]
09:55 엄광산(嚴光山 503.9m) /정상석
정상석과 지적삼각점이 있고 일망무제의 조망이라는데 개스가 조망을 흐린다.
엄광산은 산경(山經)과 대동여지도, 동래부지에 엄광산의 산봉이라는 기록이 있다.
즉 엄광이란 "엄버치", 으뜸으로 빛이 비추는 곳을 뜻하며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풍수로 인하여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과 신하가 되어 일본에게 엎드려 절을 한다는 뜻의 고원견산(高遠見山)이라 불리우다가 "부산광역시을 가꾸는 모임"이 지난 95년 4월에 엄광산(嚴光山)이라는 이름을 찾아주고 정상표지석을 세웠다.
가끔씩 개스가 겉치며 구덕산이 보이는 가운데 휴식과 주유가 이어진다.
창호세야의 고래고기 육회로 주유가 거나해지고 설왕설래하며 긴 휴식을 갖는다.
가끔씩 산객들을 만나고. 휴식을 뒤로 출발하면 넓은 산책로 길로 내려서면 이정표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안부 닿고 직진능선을 버리고 우측의 철망이 있는 사면길로 내려서야 한다.
순한길을 내려서면 아스팔트 포장도로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구덕령에 닿는다.
[엄광산]
[엄광산에서]
[엄광산에서 보는 시약산, 구덕산]
[고래고기 육회]
[안부 이정표]
[안부 산불감시초소]
11:00 구덕령
길가에는 채소를 판매하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쭉 나가면 왕복4차선 도로를 만나 실제 구덕령이 되고 대산그린빌 연립주택 사이로 구덕산을 오르는 도로가 시작된다.
구덕산 정상에 부산항공무선표지소가 있어 정상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도로로 들어서서 부산조경개발옆 계단으로 올라서고 구덕문화공원 안내소를 지나면 안나원을 만나고 아스팔트포장도로가 시멘트도로로 바뀐다.
많은 이들이 산책하듯 오르내리고 시멘트길을 20여분 오르니 우측으로 승학산 방향 능선이 갈라지는 3거리를 대한다.
간단한 등산로 안내도와 산불초소, 화장실이 있다.
계속하여 시멘트 포장길을 5~6분 더 진행하면 우측으로 시약정 방향으로 마루금이 이어지지만 구덕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직진의 시멘트도로를 따르면 부산항공무선표지소 입구에서 출입금지지역이 되고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구덕산 정상석이 있다.
[구덕령]
[구덕령]
[구덕령]
[부산조경개발옆 계단]
[구덕문화공원 안내소]
[승학산 갈림길]
[승학산 갈림길]
[레이더 관측소]
11:40 구덕산(九德山 565m)
정상에는 부산항공 무선표지소가 있고 단체로 혼 함 빼본다.
구덕산의 유래는 순수한 우리말인 구덩이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가파른 경사와 비탈 뿐 아니라 산 아래에 움푹하게 깊이 팬 구덩이가 많았다는 것.
현재 구덕터널이 지나는 그 위의 구덕嶺을 "구덩이재"라고 일컬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덩이골 구덩이산으로 부르다가 한자로 舊德山이나 九德山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로(古老)들에 의하면, 구덕산을 사병산(四屛山)이라고도 한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이라는데서 유래한 이름인 듯 하다.
문헌기록인『동래부지(1740)』에는 구덕산의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두송산을 구덕산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일본기록인『초량화집(草梁話集)』에 "구덕산(舊德山) 아래 구덕사(舊德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일본인의 침입이 심하고, 방탕한 행동을 하게되어 20년 전에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에 일본인이 쓴『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는 구덕산(九德山)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구덕산은 보수천의 발원지로 동쪽산록에는 부산 최초의 상수도 급수원인 구덕수원지가 자리잡고 있다.
옛날 '고저기(古底岐)' 또는 '구지기(久至岐)'라고도 불리어 오던 구덕산은 풍치가 빼어나 시민들의 등산로 및 산책로로 크게 각광 받고 있다.-발췌
구덕산에는 뚜렷한 등로가 있어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올라온 시멘트도로와 만나고 내려가니 좌측으로 기상레이더 관측소 도로를 따라가면 좌측으로 시약정(蒔藥亭)이 보이고 시약정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으나 시약정의 조망이 좋다 길래 들어간다.
시약정(蒔藥亭)안에는 남녀등산객들이 자리하고 있고 앞으로 멋진바위가 우리를 반기듯이 서있다.
김총장은 바위위에까지 올라가 멋진 폼을 연출하고 과연 조망이 일품이라 그냥 갈 수 없어 주유소를 차린다.
바로 아래로 묘 1기가 있는데 명당은 명당이로세...
발아래로 구덕운동장과 부산항, 영도, 감천만, 어우러진 배들이 한 폭의 그림이다.
곽총장님의 특허인 구운계란과 주유가 거나하게 이어지고...
휴식을 뒤로 되돌아 나오면 시약산의 좌측사면을 타고 내리고 이정표를 지나 산불감시초소와 잘 꾸며진 밀성박씨 가족묘를 만나는데 앞서간 대원들을 만나려 달리는 바람에 직진해버렸다.(알바)
막달리며 이상해서 호루라기로 신호를 보내니 대답이 없고 지도와 산행기를 검토해보니 밀성박씨가족묘를 지나자 마자 좌로 꺽어가야 하는데 직진해버렸다.(길주의)
되돌아 올라와서 마루금과 합류하여 내리니 마을이 나오며 마을길로 쭉 내려서면 왕복 1차선 포장도로인 대티고개이다.
[구덕산 부산항공 무선표지소]
[구덕산]
[구덕산에서]
[보이는 시약정]
[시약정 조망바위에서]
[시약정 조망바위에서]
[시약정아래 묘지 주유소]
[시약정 조망]
[시약정 조망]
[시약산]
[시약산에서]
[밀성박씨 가족묘]
13:05 대티고개
대티고개는 유래를 알아보니 정확하게 알 수가 없고 단이 차이점이 있다면 고개나 재는 보편적으로 아래 마을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티고개는 반대로 대치(大峙)=큰 고개에서 그 아래 마을 이름이 대티마을로 되었다는데...
대티마을을 찾아보니
[왜관을 부산진에서 용두산으로 옮길 때 기존에 있던 조선인 마을 사람들을 대티에 있는 산골마을로 강제 이주시켜 생성된 마을로 대티촌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몹시 증오, 보기만 하면 시비를 걸고, 심지어 기왓장과 돌로 봉변을 입힘]는 문헌이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 동양할인마트앞 우체통 옆으로 들어가 골목길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가면 하얀집 좌측으로 오르고 밭 옆으로 이어지는 좁은 콘크리트길을 넘어서면 넓은 마을길을 만나고 진행하면 까치고개에 올라선다.
*까치고개
아미동과 사하구 괴정동을 이어주는 천마산과 아미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1910년에 일제의 강점을 전후하여 지금의 천주교 아파트 부근에 화장장이 설치되면서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자주 열렸고, 그때마다 제물의 음식 찌꺼기가 까치 먹이로 제공됨에 따라 까치가 많이 모여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개 중턱에는 임진왜란 때 전사한 공신 김근우(金根佑)의 묘소가 있다.
까치고개에서 건너편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가서(알바) 되돌아 올라와서 공영주차장으로 들어가니 관리하시는 분이 길을 가르쳐 주신다.
공영주차장 우측 끝으로 집들 사이로 난 길을 가면 텃밭이 나오고 산길이 시작된다.
다소 가파른 오름길을 올라서면 넓은 공동묘지가 펼쳐진다.
과거의 공동묘지의 전형처럼 주인 없는 묘가 대부분인 듯 공원묘지가 아닌 공동묘지이다.
알바 사이에 지나갔는지 대원들이 공동묘지에 쉬고 있고 공동묘지가 끝나고 완만히 오르내림을 하니 큰 돌탑을 만나는데 우정탑이다.
우정탑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90도 틀어 내려야한다.(길주의)
무심코 직진하면 천마산으로 향해 마루금에서 벗어난다.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리면 우측 아래로 극락암이 내려다 보이는 도로이고 이어 얕은봉을 넘어서니 조망이 트이며 감천항과 아래로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 보인다.
내려서면 부영벽산아파트에 도착하여
CCTV작동중이라는 철문으로 들어가면 마루금의 좌측으로 돌고
CCTV입구에서 우측으로 30여미터 내려가면 좌측 아파트옆으로 초등학교 가는 길로 진행하면 괴정고개에 닿는다.(우측이 지름길이다)
[대티고개]
[대티고개]
[까치고개]
[공동묘지]
[우정탑]
[감천항]
[부영벽산아파트]
14:00~45 괴정고개-중식
왕복 4차선 아스팔트 포장도로에는 육교가 있고 SK주유소가 있다.
괴정고개는 괴정동에서 유래하는데 괴정동(槐亭洞)은 다대첨사의 폭정과 동래부사의 가렴주구가 심하여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힘들어 팔정자(八亭子)나무 밑에 모여 이를 성토하고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이 팔정자나무는 회화나무[槐木]로 지금은 부산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괴정동의 동명은 이 회화나무에서 유래한다.
SK주유소 앞에서 기다리다 대원들과 합류하고 푸주옥에서 중식을 한다.
수육과 설렁탕으로 늦은 중식을 하고 주유도 신나게 돌아간다. 설왕설래하며...
중식을 뒤로 SK주유소와 육교 사이로 난길을 가면 해동고등학교이고 학교를 우측으로 끼고 가면 산책로를 만나고 날등이 아닌 사면을 가다 제법 급한 오름을 올라서면 임도를 만나고 예비군훈련장이 나온다.
넓은 길을 계속가면 구평체육공원을 지나 군부대 정문에 닿고 군부대정문에서 좌측의 철조망팬스를 따라가면 철조망이 끝나고 수로를 건너 좌측으로 자유아파트를 끼고 내려가니 아파트 놀이터이고 아파트로 들어오는 2차선 도로 따라 내려가는데 우측에 대동중고교가 있고 계속해서 포장도로따라 쭉 내려가니 SK주유소가 도로건너편에 보이는 도로를 만나는데 장림고개다.
[괴정고개]
[괴정고개-푸주옥 중식]
[예비군 훈련장]
[구평체육공원]
[군부대 정문]
[군부대팬스]
[대동중고교 앞]
15:35 장림고개
SK 다대주유소와 부일냉동건물이 있고 왕복 8차선의 큰 도로이다.
장림고개는 장림동에서 유래하는데
장림(長林)동은 숲이 우거지고 지형적으로 길게 늘어선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호등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주유소 좌측에 보이는 도로 따라 오르면 도로 좌측으로 태광기전이 보이고 우측으로 텃밭이 보이면서 산길이 보여 숲길로 올라서서 고도를 높혀 오르면 좌측으로 산을 완전 반 토막으로 절단한 채 엄청난 공사장이 보여 안스럽다.
조금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 오는 반질한 길을 만나면서 운동 삼아 올라온 주민들을 하나 둘씩 만나고 올라서니 등나무가 지붕을 덮은 쉼터가 있고 149.6m 봉화산이란 팻말이 걸려 있다.
도상에는 다음 봉우리가 봉화산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 팻말이 붙어있고 '장림동 봉화산 동네체육 시설안내' 라는 안내판이 있어 주변에서는 이곳을 봉화산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좌측으로 꺽어진 넓은 길로 내려서면 우회로을 만나고 조금 올라서면 도면상 149.6봉인 봉화산으로 길옆에 묘가 3기 있고 내려서면 2차선도로에 닿고 도로를 가로질러 오르면 묘1기가 있는 147봉으로 지적 삼각점이 박혀 있고 약간 더 직진으로 진행한 뒤 우측으로 틀어 내리면 텃밭을 잠깐 따르다가 가구단지가 시작되는 도로에 내려서서 도로를 따라 가구단지에 도착한다.
좌우로 가구점들이 이어지고 구평 산마트 간판이 세워진 곳에서 마루금은 산마트 쪽이지만 좌측으로 우회하여 도로로 내려간다.
제세산업전기-우측, 성경프로펠라-좌측, 김은희 우리옷 연구실, 삼환2차 아파트 입구에서 우측으로 삼환아파트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면 학교 앞을 지나 육교가 보이고 다대고개이다.
[장림고개]
[마루금이 개발로 훼손되고]
[봉화산 쉼터]
[149.6봉]
[2차선 도로]
[147봉]
[구평가구단지]
[삼환아파트 내림길]
16:50 다대고개-산행완료
육교를 지나 성보냉장이 있고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다대포(多大浦)-이름만 보자면 큰 포구가 많다는 뜻인데 그 유래가 길어 별도자료를 발췌하여 붙인다
[다대포]
다대포는 우리나라의 역사기록인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일본서기>의 신공황후 섭정 5 년기의 다다라노쪼와 계체기에 나오는 다대라원 그리고 추고기에 나오는 다다라 등이 상고시대부터 다대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의 다대포와 일치되는 지명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일설에는 낙동강 주류가 불아미.가락.명호로 흐르는 줄기였다고 보는데서 다대포에서 대저에 이르는 일대를 다대진으로 표현했을지 모른다고 하고 또 일설에는 다대진은 지금의 다대포가 장림포라고 하기도 하는데 모두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나 확실한 근거를 찾을수가 없다.
또 <일본서기>계체 23년조에는 이사부가 군사 천명을 이끌고 다다라원에 머물면서 웅촌등 4촌에 내주한 왜병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다다라는 다대포의 원래명칭이다라고 한다.
이밖에도 다다라는 <일본서기>민달 4년기와 추고 8년 기에도 나오는 바 모두 다대포를 말한것이다.
이렇듯 다대포는 역사시대 초기에서부터 일본 측의 사서에 자주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일 통교상의 중요 요지 였음을 알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 권3, 자비왕 17년조에 나오는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중 '답달'이 다대포라는 설이 있다. 답달성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현재 다대포 북쪽에 솟아 있는 아미산에 보이는 토석으로 쌓은 성터를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답달은 경북 상주시 화령으로 보는 설이 있어 정확한 비정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곳 다대포는 경상좌도 7진(부산.다대.서평.포이.개운.두모.서행)의 하나로 국방상의 요새지로 중요시 하여 다른 진의 2배의 병선을배치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대포첨사와 국경의 만포진첨사 만은 무장으로 정3품 당상관 만으로 임명하였으며, 이는 수사(수군절도사)와 동격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선인들의 무공을 알려주는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1740년 간행된 <동래부지>에 의하면, '다대리는 관문으로부터 30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1904)>에 의하면, 다대동은 108호의 호수가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후기 이후 군사적 기지등의 관계로 보아 상당히 큰 촌락을 형성하였음을 알수 있다. 1914년 동래군 사하면이었다가 1942년 부산부 구역확장에 따라 다시 부산부에 편입되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발췌
[다대고개]
완주의 그날까지 SK산악회 홧팅!
울산으로 돌아오며
간단히 차내에서 캔맥주로 목을 축이고 울산으로 돌아와서 옥동 중국집에서 저녁겸 하산주하고 이제 다왔다고 김총창님이 이과두주 나발을....
끝내고 2차가서 거의 죽음이었다...
이번구간에 약간의 오해로 무작정 달려버린 기억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고 그래도 이해와 배려를 해준 대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낙동도 이제 그 동안 보급대를 해주신 분들과 그 간 성원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남겨둔 약 6Km정도만 남았다.
다음구간에 많은 분들과 낙동의 마무리를 몰운대에서 함께하기를 바라며... 26구간 잘 마무리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대원들과 26구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과 함께 낙동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낙동 26구간을 마치고 고장난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