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화는 이렇게 태어난다
(계간 어린이 문학지에 게재된 글)
-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
박경선
1. 독서광이었던 학창시절
내가 글을 써서 칭찬들은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전학을 가서 내 마음을 써낸 글을 선생님이 칭찬해주셨다. 그때부터 글을 즐겨 쓰게 되었고 백일장이 열릴 때마다 학교대표선수로 뽑혀나갔다. 박정희 대통령 재임 때는 대회에서 뽑혀 청와대까지 방문하고 왔다. 4학년 때부터는 도서실 당번을 자청했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때 도서실 선생님은 책을 한 권씩 빌려주셨다. 그즈음우리 집은 호롱불을 썼는데 아버지는 기름이 닳는다고 일찍 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골방에서 이불 속에 (유리관이 덮힌) 호롱불을 넣고 책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책읽기에 유별나게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도서실에서 일했다. 목표는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서실의 책을 다 읽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동화책을 즐겨 읽었고 중학교 때는 성경을 위시해 "나는 누구인가?" "죽음에 이르는 병" 같은 철학서를 즐겨 읽었다. 고등학교 때는 수필집을 비롯하여 '독심술' '체면술' '성명철학' '관상학' 같은 책들을 읽느라 밤을 세웠다.
2. 글을 쓰는 까닭과 글감의 소재
고등학교 때는 헬만 헷세와 루이제 린저의 글을 좋아하며 소설을 즐겨 썼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단편소설이 해마다 학교 교지에 실린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도 내가 작가가 되고싶은 꿈은 없었다. 내 꿈은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육대학을 갔고 교단에 서면서부터 학급문집을 만들고 아이들과 한 마음으로 사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늘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걷지 못하거나 동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부모가 없는 아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픔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그런 아픈 마음이 쌓여 앓다가 곪으면 동화를 썼다. 동화라는 형식을 빌려 아이들에게 울면서 읽어주면 아이들도 울면서 들었다. 들으면서 모두 소중한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모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글감은 대부분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얻은 것이다. 더러는 내 둘레의 불우한 이웃들한테서 얻는다. 그러기에, 내 동화 속 사람들은 절망의 벼랑에 섰다가 작은 빛살 한 줄기 보듬으며 돌아서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모자라도 감싸 안고 보듬으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 내 동화 속 사람들은 말소리를 죽이고, 내 가진 조금의 넉넉함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다. 가진 건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으로 따스한 마음 한 가득 안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자신일 때는 위로가 되고, 남의 이야기일 때는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면서 쓴다. 어린 날 불우이웃돕기 성미를 얻어먹고 자란 아픔이 나를 이들 편에 서게 하는 것 같다. 동화가 아닌 칭찬의 글도 즐겨 쓴다. 버스 안내양이 할머니를 친절하게 부축해주면 그 안내양을 칭찬하는 글을 버스 회사와 방송국에 써보내기도 했고, 동네 안경집 착한 아저씨가 장가 들 때는 축시를 패에 새겨 선물하는 따위의 일을 즐겨한다.
소위, 작가로 불리면서는 깨어있는 정신과 몸으로 글을 써야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이때껏 해 온 일은 통일을 빌며 '대문'이라는 동화나 쓰고, 효순이와 미선이의 기막힌 죽음에 항거하는 촛불 시위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촛불 하나'라는 동화나 쓰며 앉아있는 일이 고작이다. 그런 나에 비해, 세계 평화를 위해 바그다드로 가서 몸으로 항거하는 동화작가 박기범이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가 없다. 굳이 작가가 아니더라도, 밀입국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돌봐주는 분들이라든지, 불우한 이웃을 위해 몸으로 봉사하는 분들은 떠벌리지 않는 작가, 밀알작가로서 더 더욱 존경스럽다. 나도 교직을 떠나면 몸으로 돕는 일을 하고 싶다.
3. 책을 낸 까닭과 문단 데뷔를 한 까닭
유익한 책도 많지만 어떤 책을 읽고는 책값과 시간이 아까운 경우도 있다. 나는 늘,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따스하게 산 우리들의 이야기를 구성한 동화책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문단 데뷔부터 해야한다고 했다. 동화작가 박풍자 선생님이 아동문학 평론사에 글을 보내보라고 길을 가르쳐주었다. 거기서 『동전 두 개』라는 단편동화로 추천을 받았다. 그때, 조대현 선생님은 '심리 묘사와 대화 구사에 장기를 보인다.'는 평을 해주셨다. 그 다음에 내가 이때껏 써놓은 글들을 이오덕 교장선생님께 보내보았는데 바른 말만 하는 깐깐한 비평가로 소문난 분이 선뜻, 지식산업사 김경희사장님께 추천해주시고 책 머리에 추천사까지 써주셨다. 그래서 처음 낸 동화책 『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며 매천학교를 떠나왔다. 그 다음 『신라 할아버지』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가르친 매천 아이들의 졸업선물과 대명 아이들의 졸업선물로 쓰고 싶어서였다. 기다리던 책이 나왔지만 매천학교 졸업식장에는 가지 못하고 책만 한 박스 맡겨두고 왔다. 공교롭게도 매천학교와 담임하고 있는 대명학교 아이들 졸업식날이 같았기 때문이다.
4. 내 책에 대한 평들과 나의 문학수업
『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에 대한 평을 처음 읽은 기억은 아동문학 평론에서 권오삼 선생님이 쓴 글이었다.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 이상으로 현장감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여성 작가답게 꼼꼼한 심리 파악에다 그것을 담아 내는 솜씨가 능란하여 치밀한 묘사에 구성도 빈틈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이런 것은 겉모양에 불과할 뿐 정작 높이 사고 싶은 것은 세상 보는 눈과 생각이 따뜻한 마음이다.'는 평이었는데 신랄한 비평가로 알려진 분에게서 후한 평을 받고 보니 더 겁나는 채찍이 되었다. 방송국과 신문사 등에서의 반응도 좋았다. 방송국 인터뷰도 하고 벼룩시장(신문)에서도 취재를 나왔다. 그것을 계기로 벼룩시장 신문에 2년간 동화를 게재하였다. 후에 그 동화를 책으로 엮어 어린이날 맞이 사은품으로 나누어주고 싶다고 해서 선뜻 원고를 넘겨주었다. 『개구쟁이 신부님과 해를 맞는 부처님』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는데 일만 권 낸 책 중에 천 권을 받아 제자들과 시설, 성당 따위에 나누어주었다. 이때부터 평론집과 논문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했고 이재복 선생님이 보내주는 공짜 '이야기밥'도 많이 얻어먹었다. 대학원 공부를 할 때는 양선규교수님이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들(최윤정 저)' 평론집을 읽어보라는 숙제를 내어 책을 사보다가 『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서평이 있어서 놀랐다. '편 가르지 않는 아이들 세상' 이라는 제목으로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는 작가 정신을 짚어주었고, 후에 다른 책에서 '좀 다른 이분법'이라는 제목으로 가난한 사람을 부자와 대비시켜서 이야기하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 중의 하나라는 평을 읽었다. 그래도 판타지와 기교를 중시하는 평론가들에게는 내 동화가 거지문학이요, 생활동화라고 얕보일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쉬운 말로 기교없이 순수하게 쓰고 싶은 것이 내가 지향하는 바다.
그 다음으로 쓴 책이 『신라 할아버지』였다. 경북아동문학회에서 신라문화연구가 윤경렬 선생님 댁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차 속에서 김녹촌 선생님이 윤경렬 선생님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주셨다. 일제시대에 우리 문화를 가꾸어가기 위해 애쓰신 이야기였는데 진한 감동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며 꿈을 가꾸는데 큰 등불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경주에 계신 윤경렬 선생님을 두 번 찾아가 뵈었다. 돌아와 윤경렬 선생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원고를 쓰면서 반 아이들에게 틈틈이 읽어주며 반응을 살폈다. 고치고 다듬고 하다보니 반년이 넘게 걸렸다. 이 작품을 남기고는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애착을 갖고 썼다. 이 책에 감동한 제자, 혜현이는 장래 꿈이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미대 공예과를 다니고 있다. 이오덕 교장선생님께 보여드렸을 때 '이런 고귀한 생각을 가지고 사신 분이 계셨군요.' 감탄하시며 윤경렬 선생님을 직접 만나 보셨다. 책을 낸 출판사 김경희 사장님도 책 속의 모델을 만나 뵙고 싶어하셔서 함께 찾아가 뵌 적이 있다. 그 후, 이 『신라할아버지』에 대해 모 방송국에서 8. 15 광복절 기념일에 이수만 토크 쇼에 나와 이야기 나누자는 제의가 있었는데 거절했다. 서울까지 가기도 힘들었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할 것도 두렵고 제일 자신 없었던 것은 호박같은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다. 이 책에 대한 평은 최윤정 선생님이 쓴 '슬픈 거인'책에서 읽었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박물관 선생님이 되는, 다분히 도식적인 구조의 이야기가 작품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진지한 태도로 사태의 표면적 묘사에 머물지 않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사물의 본질을 건드리면서도 흑백 논리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타주의의 편협함에 갇히지 않은 이 작가에게서 우리 어린이 문학의 밝은 미래 한 자락이 보인다.'
는 것이었다. 대가 정채봉 선생님의 동화도 신랄하게 비판한 분이 같은 책에서 이렇게 호의적으로 평해주어 더 큰 채찍으로 여겨졌다. 고마움에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 분과 통화라도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독일 유학 중이라고 했다. 『하늘을 덮는 천막(문원출판)』에 대한 평도 한우리 독서본부에서 내는 어떤 책에 실린 것이 있다는데 말만 들었고 『엉뚱이 뚱이(우리교육사)』에 대한 서평은 아동문학 평론에서 박상재 선생님이 쓴 글을 읽었다.
'사랑의 가치와 교육적 효용성을 증거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스토리에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박경선 자신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험한 소재들을 작품에 용해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는 긍정적 내용이었다. 반면에, 한국글쓰기 연수회 때는 '박경선 동화가 너무 따뜻하다. 그리고 아침마다 선생님이 일찍 가서 아이들과 껴안으며 '사랑해요.' 인사하는 것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 같다.'는 부정적 평을 들었다. 진실이 왜곡 당하는 것 같아 슬펐지만 그들은 부족한 작품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우체통에 칭찬 넣기(문학과 지성사)』서평은 인터넷 상에서 읽은 것 뿐이지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뽑은 2002년도 우수문학 예술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올해 7월에 나온 책『아버지와 한 약속』중의 표제가 된 동화는 어린 날의 자전적 동화이다. 가난 앞에 동반 자살을 기도하는 아버지를 말리는 아이의 이야기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강준영 선생님의 '전쟁과 촛불'을 읽다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픔을 독자에게 털어놓는 일인칭 문체와 내용에서 감동을 받아서다. 거기서 용기를 얻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의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놓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출판사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참 감동 깊게 읽었소. 나도 그 아버지처럼 두 아이를 데리고 죽으려고 한 적이 있었소." 어려운 삶을 살아본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교감이었다. 그런데 이 동화책 제목을 출판사에서는 '난쟁이 왕의 무덤'으로 하자고 하고 나는 아무 기교도, 꾸밈도 없는 『아버지와 한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송현초등 3, 4, 5, 6학년 교실을 돌며 "책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른다면 두 제목 중 어떤 제목의 책을 읽고 싶니?"하며 의견을 들어보았다. '난쟁이 왕의 무덤'보다 『아버지와 한 약속』에 손을 든 아이들이 3/4이나 되었다. 반면에 어른인 선생님들 의견은 그 반대 반응을 보였다. 스승의 날 찾아온 사대부초 제자들에게 물어보아도 같은 반응이었다. 출판사에서도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와 한 약속』제목을 채택해 주었다. 아동 독자들의 반응을 존중한 것이다. 이 책이 나오면 글쓰기 지도서와 합쳐 열 한 번째 책이 된다. 열 두 번째 낼 『상엽이』라는 그림동화가 출판사에 가 있고,『날개 달린 대로』라는 장편을 다듬고 있다. 일년간 상담교사 자격연수를 받으면서 작년에 우리 반에 있던 문제아이를 상담하여 성공한 사례를 적은 글인데 문제아 취급받는 아이들에게는 위안을 주고 싶고, 문제아로 보는 어른들의 생각을 깨우쳐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다.
5. 삶의 자세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다. '이름만의 엄마' '미친 여자'로 통한다. 학교 일에 미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동화작가라는 말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더 소중히 여긴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곧 동화요,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게 내 꿈이다. 교직을 떠나면 이때껏 못했던, 몸으로 남을 돕는 일을 하다 죽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인세로 돕는 일 뿐이다. 『너는 왜~』 인세는 이십 팔세를 넘게 받은 것 같다. 서울 교보 문고에서 베스트 셀러 6위 안에 두 번 들었다고 한다. 이런 인세는 내 생활에 보태지 않고 제자와 둘레의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책을 사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숨어서 도와주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제자들이 군대 가면 무조건 '좋은 생각' 월간 잡지 구독 신청을 해주고 힘들게 사는 어른들에게는 '가이드 포스터'지 구독 신청을 해주는 일을 즐기고 있다. 청구문학상금으로 받은 돈은 제자가 자치방을 구하는데 주었고, 영남 아동문학상금은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일을 하는 초원봉사회에 보내었다. 신부『김대건』전기를 써서 받은 원고료는 성당건립 기금으로 내었고, 앞으로 나올 『아버지와 한 약속』인세도 하느님 사업에 쓰려고 벌써부터 하느님과 약속해 두었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받는 인세를 빛 좋은 개살구라 한다. 인세를 빌미로 인세보다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며 더러 삽화를 그려주는 남편이 고맙고, 베풀며 살 수 있게 축복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
댓글 0 0 | 신고 | 인쇄 | 스크랩(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