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로 다시 떠났다.
내가 낯선 앙코르를 처음 대한 것은 늦은 나이에 하던 일을 던지고 요리를 배운다고
뉴욕에서 허드렛일에 온종일 묻혀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앙코르를 관람하려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로 5시간 떨어진 이곳 씨엠립으로 와야한다.
앙코르 유적은 지금의 태국의 동부, 라오스 남부, 베트남 남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널려있지만 중요한 유적은 씨엠립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한 후배에게서 친필 서명이 담긴 ‘앙코르 기행’이란 책이 뉴욕으로 날아 들어왔다.
이 책을 지은이는 후배였고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는 ‘88올림픽의 호돌이’ 캐릭터 제작에 팀장을 맡았을 만큼 노련한 디자이너답게
앙코르를 미(美)적으로, 그리고 삶을 어느 정도 산 ‘쟁이’ 답게 앙코르에 그의 삶과 애정을 담아서
여러 번 이곳을 여행한 끝에 사진과 함께 책으로 펴낸 것이었다.
<씨엠립 공항은 아름답고 아담하다. 이곳에는 큰 점보 비행기는 취항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작은 비행장을 지었놓았다고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아 항공도 141명의 정원을 가지고
있는 작은 비행기를 운항시키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 남짓 걸린다.>
그러나 한 때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는 것이 매우 궁핍한 캄보디아라는 나라에 나는 매우 낯설어했고,
그 낯설음을 갖고서 앙코르 유적들의 사진과 글을 대하니
단순한 낯설음을 넘어서 이상한 나라의 신기한 풍경쯤으로 여겨져
도무지 글과 사진이 들어오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한국 항공사의 배행기는 저녁 8시경에 출발해서
씨엠립에 밤 11시10분경-현지시간은 우리와 2시간의 시차를 갖고있다-에 도착한다.
그리고 또 밤에 인천공항을 향하여 출발한다. 그래서 앙코르를 찾은 많은 한국 사람들은
씨엠립공항의 낮 풍경을 볼 수 없다.>
그 때 내 삶은 밀림 속에 묻혀 있다가 새롭게 발견(?)된 오래된 유적에 관심을 둘 정도의
풍요로운 삶을 살 때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오랜 내전에서 벗어나있었고,
이제 겨우 동족상잔의 뼈아픔을 달래는 처지여서 허리가 잘린 우리들의 처지와 어느 정도 닮아있었다.
나는 물었다.
“그곳이 어떤 곳이지?”
후배는 웃으며 대답했다.
“힌두사원이기도 하고 불교 사원이기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해요.”
<공항으로 말하자면 작은 대합실같은 한가로운 풍경이다. 유럽에서 들어오는 많은 관광객들은
주로 낮시간을 이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3박5일, 또는 4박 6일의 일정으로 앙코르 관광단을 모집한다.
그것도 베트남이나 태국 관광에다 앙코르를 섞은 '앙코르 찍고'관광으로 이곳을 스켜지나간다.>
그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국에서 산 3여년의 짧은 고생을 통해 얻은 요리 기술로
식당 하나를 만들었고 내내 그 것에 매달려 살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짬을 내서 그토록 가고 싶은 인도 땅을 한번 밟았고
말로만 들었던 실크로드의 사막 모래먼지도 마셔봤고 앙코르도 다녀왔다.
<미리 예약을 한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현지인들과 만난다. 나는 예약이 없었으므로 새로운 예약을 해야했다.
하지만 공항문을 나서자마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해 만났던 택시기사'띠에'를 문간에서 딱 마주친 것이다.
피할 틈도 없이. 그와 나는 열흘동안 일정에 해한 택시 요금과 툭툭이 요금을 공항 입국문에서 다 정해버렸다.>
인도는 8박 9일로, 실크로드는 9박 10일로, 앙코르는 3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고대 도시를 둘러볼 기회를 어렵사리 만들었었다.
나는 앙코르에는 첫 여행길이었지만 자유여행 코스로, 짧게 그리고 나름대로의 알찬 일정으로 여행을 했다.
물론 가이드를 겸할 앙코르에 관한 책도 여러 권을 사서 나름대로 읽고 떠났다.
나는 프놈펜이나 태국 또는 베트남을 거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앙코르 유적이 몰려있는 씨엠립으로 직행했다.
<사람들이 입국을 위해 몰리는 입국 심사대. 이곳에는 앞으로 숱하게 들어야하는 인드라 신이
그의 흰 코끼리 아이라비타를 타고 세계의 관광객을 맞이한다. 대부분 앙코르 유적지에서는
머리가 셋 달린 흰코끼리를 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머리가 하나다. 인드라신은
한국 불교에서는 제석천이라고 부른다. 제석이란 하늘의 신이란 뜻이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여기 저기 들렸다가 운치를 느낄 시간도 없이 서둘러 떠나야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를 정하면 가급적 그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를 좋아한다. 국내여행도 물론이다.
나는 우선 앙코르 와트도 보고, 앙코르 톰이란 도시 속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유적들도 둘러보았고
특히 앙코르 톰 한 가운데 있는 그 유명한 바이욘 사원 꼭대기도 둘러보았다.
동쪽지역도 보고 북쪽지역도 보고, 넓디 넓은 똔레샵 호수도 배를 타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본 것도 이해하는 것도 없이 돌아와야 했다.
<입국 심사대에서는 급행 비자도 있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가운데 정복을 입은 입국관리자가
급행비자를 유도한다. 20불을 더 주면 알아서 비자를 내주고 입국 시켜준다.
밤늦은 시간에 개인 일정으로 입국하는 사람들은 종종 이것을 이용한다. 늦은 시간에 공항에 나가면
교통편이 없어서 매우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서기 802년경부터 서기 1400여년까지 존속했던 거대한 유적지의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무려 600여년간을 제국으로 살다간 그들의 정치, 외교, 종교적, 그리고 일상사건들이
그저 벽화에 조각되어있는 돋을새김(부조)과 문설주에 새겨진 명문 이외에는
거의 자료가 남아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짐작과 추측으로
불가사의해 보이는 그 시대의 삶을 계산해 낼 뿐이었다.
<앙코르의 호텔은 매우 비싼 것과 매우 싼 것이 모두 있다. 씨엠립 중심에 있는 호텔은
우리나라의 별 다섯개처럼 비싼 호텔도 있는 반면 몇천원에 잘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이 호텔은 5만원정도면 1박 할 수 있다. 캄보디아산 목재의 단단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세상사람들도 역시 그것을 궁금해 했던 것 같다.
앙코르의 유적들은 프랑스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복원되고 있었다.
시작은 그들의 궁금증 때문이었다. 또한 궁금증은 고고학의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왔다. 불행하게도 서양은 지난 2000년이 넘는 동안에도
동양의 종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는 잘 알고 있었어도
동양의 종교, 그 가운데서도 인도의 힌두는 특히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기독교 교리의 우월성으로 인해 오히려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힌두와 인도에 보내고 있었으므로
힌두의 실체를 이해하기에는 이해심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해서 서기 11세기에 이르는 동안
인도 전역에서 추앙받던 불교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서양은 인도의 종교인 힌두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불교 또한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점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씨에립공항에서 불과 2-3분,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퍼시픽 호텔인데
새로 만들어진 호텔이어서 툭툭기사들이 이곳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특히 현지 발음에 적응이 안되어 기사들과 의사소통이 힘들어 툭툭을 탈 때마다 애를 먹었다.
현지 발음은 빠시픽이었다. >
오시환
댓글목록
최세진 아이피 작성일 앙코르 - 가고 싶은 곳!! 여행기로 대신해야 되겠네~
최현성 아이피 작성일 멋진 삶이야 ~ 부러우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