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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仙臺 說話
尹亨福
‘一難國’이라고 호칭하는 마이산과 임실의 운수산 쪽으로 이어지는 빛기둥 몇 개가 계속 비추어지고 있었다. 이런 괴이한 현상에 오천리(烏川里: 혹은 仙川里라고도 함)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오천리 고을에 살고있는, 꽤나 유식한 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노인은 말하기를
“필시 이 고을에 어떤 좋은 기미가 닥칠 서기임에 분명하구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전라도 진안에서 서남방 쪽으로 약 10리가 못 되게 가노라면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우뚝 솟아있다. 이 마이산을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고려조에 와서는 용출산(龍出山)으로 고쳐 불렀고, 조선 정종 때에 와서야 비로소 마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굽이굽이 아흔아홉 구비를 지나 곰티재를 넘어 모래재를 벗어나면 눈앞에 마치 돌무덤 같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저만큼 보인다. 거대하게 솟아 오른 바위 둘이 마치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6백73 미터가 되는 높이의 숫마이산은 동쪽에 서 있고 암마이산은 6백67 미터이며 서쪽에 서 있다. 흙 한 줌 볼 수 없는 수성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보인다.
3천 3백 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진안 고을에 살고있는 어느 농가의 맏며느리가 새벽같이 아침밥을 짓기 위하여 우물가에 나와 쌀을 씻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서남방 쪽에 눈길이 닿았을 때였다. 서남방 저만큼에 전에는 본 일이 없었던 산봉우리 두 개가 마구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걸 본 그녀는 깜짝 놀라며
“어머! 이상도 해라. 어찌하여 전에는 본 일이 없던 산봉우리가 갑자기 솟아나 저렇게 자라고 있을까, 신기하기도 해라.”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쌀을 씻은 그릇을 들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들어선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여보, 여보”
하며 자기 남편을 불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은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는가 싶어 두 눈이 휘둥그레 가지고 급히 방에서 나오며
“웬일이요?”
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여보, 여보, 저기 좀 보시기라우. 전에 없던 산봉우리 두 개가 갑자기 솟아나 마구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단 말이랑 게요. 이상하지라우.”
“뭐라구? 거, 정말 그러는디. 참 신기한 일인디. 어쩐 일일까?”
그런데 그녀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라고 있던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을, 중단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숫마이산은 역시 숫마이산답게 곧게 솟아있는데, 비하여 암마이산은 여성답게 수줍은 듯이 모로 고개를 숙인 것처럼 솟아있는 것이었다.
그 후 어느 날 그녀의 시아버지는 마을의 누군가가 마이산에 대해 묻자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의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길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더 자랄 수 있었는디 방정맞은 우리 며느리가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마구 주둥아리를 까벌린 바람에 더 솟아오르지 못한 것이여.”
하고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설화를 지니고 있는 마이산의 상이암(上耳庵)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1백 3일 동안이나 기도를 한 일이 있는가 하면, 역시 조선을 건국한 李太祖가 또한 1백 3일을 기도하여 등극(登極)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마이산 계곡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갈재 등 뒤로 가리마처럼 누비고 흐르는데 이 강이 바로 섬진강이었다.
이 섬진강 상류를 오원강이라 하고 중류는 운암강이라고 하며 순창으로 빠지는 강을 적성강이라고 한다. 이런 진안 고원에서 흘러 내려오는 냇물과 전주 남원 간을 잇는 전라좌도의 교차점에 관촌이 있다.
이 관촌 오원강변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곳에 기괴한 암강(庵崗)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천 3백 년 전, 즉 단군 조선 시대의 어느 해 봄이었다. 산에 알몸이 되었던 나무에 물이 오르더니 이내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하는가 했더니 마침내 이파리가 무성해지며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산에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하자 어디에 칩거하고 있다가 모여들었는지 온갖 잡새들이 모여들어 귀가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했다. 그리고 봄날답지 않게 햇빛이 따갑게 내려 쬐고 있었다.
그런데 오원 강변의 하늘에 갑자기 서기가 감돌더니 진안의 마이산과 임실의 운수산 쪽에서 구름을 탄 두 신선이 저마다 선녀 한 명씩을 거느리고 천천히 오원 강변의 오천리(烏川里)에 있는 놀음 바위 위에 내리는 것이었다.
오원 강변의 맑은 물에 내린 두 신선은 두 선녀와 어울려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었던지 그때 마침 하늘을 날아가던 많은 까마귀 떼들도 날아가다가 말고 그 냇가에 내려 두 신선과 그리고 두 선녀와 어울려 노니는 것이었다.
이런 광경을 본 오천리 고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런 일을 기이하게 여긴 나머지 그곳을 사선대(四仙臺)라 불렀고, 그리고 강 이름은 오원강(烏院江)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바위는 놀음 바위, 마을 이름은 오천리(烏川里) 또는 선천리(仙川里)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또한 기이한 것은, 이 오원강의 놀음 바위 부근에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 넣어도 끝이 닿지 않는, 소(沼)가 있었는데 그 소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으나 그 어떤 낚시꾼도 여기에 와서는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아갈 수 없어 아예 낚시꾼들을 구경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한편 오천리 고을에는 가난한 농부인 마당쇠라는 농부가 늙은 홀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고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마당쇠는 남달리 부지런하였으나 농토라고는 엉덩짝만 한 밭뙤기도 없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농부였다. 그래서 나날을 남의 집에 가서 농사 일을 해주며 그 품삯으로 겨우겨우 목구멍에 풀 칠을 하는 정도였다.
사실, 마당쇠에게도 몇 해 전 만 해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여 그 새경으로 사들인 논 10여 마지기와 밭이 5천여 평쯤이나 있었다. 그러나 워낙 박복한 마당쇠였는지라 늙은, 노모님의 우환으로 인하여 논과 밭을 모두 팔아 없앤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늙은, 노모 님의 우환 때문에 진 빚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렇게 잔뜩 빚을 짊어지고서야 거짓말처럼 우환이 사라지는 일 또한 묘하기만 했다.
그러나 워낙 착하고 부지런한 마당쇠인지라 진 빚을 허리끈 졸라가며 조금씩 조금씩 갚아 갔다.
그러나 빚의 이자가 고리이다 보니 아무리 갚고 갚아도 원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이자만 갚아 가는 정도였다. 이쯤 되고 보니 마당쇠는 일을 해도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이렇게 지내고 있던 마당쇠는 그해 여름, 며칠을 두고 장마가 계속되는 어느 날 밤 깊은 잠에 빠졌는데 전혀 본 일이 없는 티 없이 곱게 자란 것 같은 귀공자가 갑자기 나타나
“마당쇠님, 어서 오셔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저는 지금 길을 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수렁에 빠진 채 생명이 위독합니다. 급합니다. 한시바삐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저를 구해주시기만 하면 마당쇠님에게 많은 보답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참, 이상한 꿈도 다 있구나. 그 젊은이가 도대체 누구일까. 그런데 그 젊은이는 분명히 자기를 구해달라고 했는데 그 장소를 알려주지는 않았잖은가. 도대체 그 장소가 어딜까?”
마당쇠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때 밖에서는 장 닭이 홰를 치더니
‘꼬끼오’
하고 새벽을 알리는 듯 간드러지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마당쇠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그때가 새벽녘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안타까운 대로 마당쇠는 그 젊은이가 빠져있을 것 같은 수렁을 찾아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하늘에서는 장맛비가 개지 않은 채 질금질금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당쇠는 한 걸음 한 걸음 냇가를 향해 갔다.
냇가에 이르러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원강의 물이 불어나 붉덩물이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원 강물뿐이 아니었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논 가에 물고랑을 낸 물길도 논둑을 넘칠 만큼 불어난 채 물이 세차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당쇠는 도대체 그 젊은이가 어디에 있는 수렁에 빠져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여기저기 수렁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마구 헤매어 다녔다.
그때였다. 저만큼 논물을 저장하기 위해 나무 기둥을 세워 칸막이를 한 곳에 뭣인가 꽤 큼직한 물체가 간헐적으로
‘철퍼덕, 철퍼덕!’
하며 물을 쳐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마당쇠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아서 그 물체가 뭣인가는 확실히 알아낼 수 없었으나 어쨌든 그 물체는 거의 마당쇠의 몸만큼 크고 시커먼 것이었다. 그걸 발견한 마당쇠는 한편으로는 겁이 났고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일었다. 마당쇠는 마침내 그 정체를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물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마당쇠의 몸만큼이나 큼직한 잉어였다. 그 잉어는 냇가의 둑에 말뚝처럼 박아 놓은 두 기둥 사이에 그 큼직한 몸뚱이가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철퍼덕! 철퍽! 하고 들렸던 소리는 잉어가 간헐적으로 빠져나가려고 마구 몸부림쳤던 소리였다.
그걸 본 마당쇠는 순간적으로 꿈에서 본 그 젊은이가 바로 이 잉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쇠는 그런 생각과 함께 후닥닥 그 잉어에게 달려들어 잉어의 몸을 두 말뚝 사이에서 빼내려고 온 힘을 다 썼다. 그러나 그렇게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마당쇠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잉어의 꼬리를 잡아 들어 힘껏 물 위로 올렸다. 한 번에 안 되자 또 올리고 그래도 안 되어 또 힘껏 제껴 올려 서야 겨우 그 잉어의 몸을 두 말뚝 사이에서 빼내 주었다.
그제야, 잉어의 몸은 말뚝 사이에서 빠져나와 물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잉어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마당쇠가 있는 곳을 곧 떠나지 않은 채 한동안 유영을 거듭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자기의 생명을 구해줬다는 고마움의 표시이리라.
마당쇠는 그런 잉어가 자기의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에는 잉어의 비늘이며, 비릿한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다. 마당쇠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그를 보며
“아니 이 장마통에 새벽같이 어디를 댕겨오시는 거여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오는 마당쇠의 젖은 오에 잉어의 비늘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비린내가 확 풍겨나자
“아니 여보, 어디서 뭣을 하고 왔어라우. 냇가에서 고기라도 잡으셨능기라우. 몸에서 웬 비린내인가요?”
하고 아내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마당쇠는
“응, 고기를 잡응 게 아니고 말여 내 몸뚱이만 한 잉어 한 마리가 냇가에 박아 놓은 말뚝 사이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 잉어의 몸을 빼내어 구해주고 왔잖은 게비.”
“아니, 왜 그렇게 큰 고기를 잡아, 갖고 오시지 않고 살려 줬어라우. 당신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당게.”
“그게 아니여, 그렇게 큰 잉어를 잡아 먹으면 벌을 받는단 말여. 더구나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꾼거여.”
“무슨 꿈인디요?”
마당쇠는 아내의 물음에 어젯밤에 꾸었던 꿈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쨌거나 비록 물고기한테지만 좋은 일을 했는디 뭐가 어쩔랍디요.”
마당쇠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나 지났을까?
오천리 마을에 맹주(盟主:혹은 부족장)가 새로 부임해 왔는데 그 맹주는 오천리 산 밑에 놀음 바위산 부근에 있는 그 소(沼)의 신비스러운 소문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에서 부임 초부터 그 고을 각 마을에 방을 써 붙이기를 <그 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평생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재물이 궁하기로 생명과는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 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것은, 그 소에 빠져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여태껏 어느, 누구도 그 소에 말려들었다 하면 틀림없이 죽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아무리 평생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준다 해도 선뜻 죽으러 나설 턱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솔깃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마당쇠였다.
마당쇠는 자기 능력으로는 일생동안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도무지 자기가 짊어진 빚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몸 하나를 희생해서라도 집안을 구해 놓고 싶은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이다시피 빚 독촉을 당하고 있는 그로서는 이내 그 상금을 따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느 날 밤이었다. 마당쇠는 아이들이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잠들어 있는 아내를 깨우며 말했다.
“여보, 당신 그동안 나에게 시집와서 고생이 많았지.”
“아니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이신기라우?”
“당신이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하는 걸 보니 너무 불쌍하게 생각되어서 하는 말이여.”
“괜한 말씀을 다 하시는구려.”
그때 마당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여보, 나 말여, 내일 이 고을 맹주님이 평생 먹고 살게 해준다는 그 소에 들어갈 생각이여.”
마당쇠의 말은 낮으나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아니, 뭐시라고요? 소에 들어가시겠다구라우?”
“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농사일만 하다가는 내 죽을 때까지 갚아도 내가 짊어진 빚을 갚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려. 빚을 지고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그 죗값을 받는다는데 그럴 바에야 죽기 아니면 살기로 소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올 결심을 한 거여.”
“안 돼요. 그동안 이 마을에서만 해도 그 소에 말려 들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요. 안 됩니다. 그냥 빚을 갚아 가는 데까지 갚아 가며 살아가 봅시다. 그러다 보면 다 갚을 수 있겠지라우. 만약에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우리가 넉넉하게 먹고 살면서 남의 빚을 갚지 않았다면 저승에 가서도 죗값을 받겠지만 양심껏 갚다가, 갚다가 죽었는데도 저승에서 그 죗값을 받을라고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우.”
마당쇠 아내는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리고 빚도 빚이지만 당신이나 나나 한평생을 남의 빚만 갚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서럽기만 한 거여. 인생이란 어차피 한번 태어났다가 죽는 거여. 어차피 한 번은 죽을 바에야 그 소에 들어가 죽을 생각을 한 거여. 그렇게 되면 나는 죽어도 당신이나 아이들이나 노모님이라도 여생을 재산이 넉넉한 속에서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여.”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껴? 그놈의 고을 맹주가 생사람 잡을라고 그런 생각을 해내가지고는..... 진짜 저승에 가서 죗값을 받을 사람은 그 고을 맹주라고요. 세상에 멀쩡한 사람을 죽이려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하늘은 뭣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려.”
“이봐, 그런 소리 하능거 아녀. 당신이야말로 그런 소리 하면 죄받는단 말여, 두고 보라고, 나처럼 가난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하도록 신령님이 그렇게 맹주님에게 씌어댄 거여.”
마당쇠는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더욱 흥분하며 대꾸했다.
“아, 이 양반이 정말로 죽을 때가 되어서 환장했는개비여, 허 참.”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아무튼 만약의 경우 내가 소에 들어가 영 죽고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나를 너무 원망하지는 말어. 나는 어차피 무능한 남편이닝께 말여.”
마당쇠는 체념한 듯이 말했다.
“아, 글씨 거 말도 아닌 소리 하지도 마시랑 게유. 말같은 소리를 하셔야 해보시라고 하지. 아, 글쎄 그 귀중한 생명을 재산과 바꾼단 말씀입니껴. 그게 말이라도 됩니껴.”
“그래도 그게 아니란 말여. 당신은 이제 부잣집 마나님이 되는 거여. 다행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온다면 그것은 더 좋은 일이구 말여.”
“싫어요. 난 부잣집 마나님보다는 빚지고 가난한대로 당신과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단 말여라우.”
“알겠어. 알겠으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텨.”
마당쇠는 이렇게 말하고는 마주 보고 있던 몸을 돌아누워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걸 본 그의 아내도 더 입을 열지 않고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밤이 새려면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지 깊은 밤은 괴괴하기만 했다.
이튿날이 되어서였다. 마당쇠는 자기가 결심한 대로 고을 맹주님을 찾아갔다.
맹주님은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마당쇠를 반갑게 맞이했다.
마당쇠는 맹주님을 대하자 대뜸 말했다.
“맹주님, 이 마당쇠가 그 소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자 맹주님은 굳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자네가 들어가 보겠다고?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고 말고라우.”
“좋아,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지.”
“그런데 맹주님, 만약에 들어가서 제가 살아 나오지 못한다면, 제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요?”
“거야, 자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자네 가족들에게라도 상금을 내려 편안히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참으로 고마우신 맹주님이십니다. 그럼 맹주님만 믿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음, 부디 성공하길 비네.”
맹주님은 마당쇠를 덥썩 안아주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이윽고 마당쇠는
“그럼 저는 이만 소에 들어가기로 하겠습니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자 맹주님도 함께 일어서며
“그럼, 나도 소에까지 나가 봐야지.”
하면서 마당쇠의 뒤를 따라 나가는 것이었다. 이쯤 되자 마치 무슨 커다란 행사라도 치르는 것처럼 맹주님이 지나는 길가에 고을 사람들이 나와 쑤근, 쑤근댔다.
어쩌면 이 고을에서 이보다 더 큰 행사가 있을 수 없었다. 누구도 들어가기를 꺼리는 그 소의 신비가 마당쇠로하여금 풀리게 된다면 말이다.
이윽고 맹주 일행이 소에 이르니 이미 오천리 온 고을 사람들이 다 모여 마당쇠의 장도에 경의를 표하는 듯 숙연하기만 했다. 그리고 마당쇠네 가족들인 노모님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아들과 딸까지 나와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서럽게 서럽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그런 광경은 그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하고도 남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한번 정한 마음을 바꿀 마당쇠가 아니었다.
마당쇠는 그의 가족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거나 혹은 어루만지면서
“어머니, 잘 다녀오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리고 여보, 너무 서러워 말고 잘 있어, 나 들어갔다가 꼭 살아서 나올팅 게 말이여. 그리고 너희들도 그동안 어머니 말 잘 듣고 있어. 나 죽지 않고 꼭 살아 나올 자신이 있으닝께.”
이렇게 위로하며 말했다. 그러자 노모님은 더욱 서럽게 울면서
“얘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소에 들어가지 말그라. 거기가 어딘데 들어간단 말이냐. 모든 게 이 에미가 죽일 년이구나. 끝내는 자식을 앞세워 보내다니 내가 전상에 무신 죄가 많아서 이렇게 기막힌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이냐.”
그러자 마당쇠는
“어머니두 참, 그러지 마시고 진정하시기라우. 제가 소에 들어갔다 와서 어머니 잘 모시면 되잖어요. 서럽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어라우.”
이젠 마당쇠의 아내가 나서며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여보, 들어가지 마셔요. 당신이 그 소에 들어가시면 나도 당신 따라 죽을 랍니다.”
“여보, 나 소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닝께 그려.”
마당쇠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제는 그의 아들과 딸도 마구 울어대며 말했다.
“아부지, 들어가지 마시기라우. 제가 커서 빚 다 갚아드릴께라우, 응, 아부지.”
“아부지, 저도 돈 벌어서 아부지가 진 빚 갚아드릴께라우.”
“아니여, 너희들은 아부지 걱정일랑 말고 어서 자라기나 해라.”
마당쇠는 아이들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였던 고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참말로 마음이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인디 하느님도 무심허지.”
하며 한탄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마당쇠는 맹주님 이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맹주님이 주는 명주실을 한쪽 발에 묶은 후 그 소에 뛰어들었다.
‘풍더덩!’
그와 동시에 마당쇠 가족들의 통곡 소리는 더욱 컸다. 특히 마당쇠의 아내는 마당쇠가 소에 들어가자 그녀도 물에 빠져 죽으려는 것을 고을 사람들이 나서서 말렸던것이다. 그리고 마당쇠의 가족들이 이렇게 서럽게 서럽게 울어대자 고을 사람들도 덩달아서 훌쩍훌쩍 울어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편 마당쇠의 가족들이 서럽게 서럽게 울어대고 거기다 고을 사람들까지 훌쩍거리는 것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명주실은 계속해서 소속으로, 소속으로 풀려 들어가고 있었다. 명주실 한 타래가 다 풀려 들어갔다. 날짜로는 자그마치 만 3일이나 걸려 풀려 들어갔다.
마침내 한 타래의 명주실이 한 뼘의 손바닥 길이만큼 남아서야 명주실은 더 풀려 들어가지 않고 멈추는 것이었다.
한편, 마당쇠는 사흘에 걸려 물속에 들어가서야 그 소 바닥에 이르렀다. 그런데 소 바닥 저 만큼에 맹주님이 계시는 곳보다 더 크고 웅장한 소슬 대문이 보이는 것이었다. 물속에 어떻게 저렇게 큰 집이 있을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마당쇠는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그 소슬 대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대문 가까이 이르자 그 대문 양쪽에는 자라들이 창을 든채 문을 지키고 있다가 마당쇠가 다가가자 막아서며
“어찌 왔소?”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당쇠는 자기가 오게 된 이유를 숨김없이 다 말해 주었다. 그러자 그, 자라 문지기는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마당쇠님이 오기를 우리 왕자님께서 기다리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왕자님께서 뉘신데 어떻게 저를 알며 또한 제가 여기까지 오리라는 것을 알고 계시다니 모를 일인디요?”
마당쇠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허허허, 우리 왕자님께서는 바닷속에 계시지만 육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소상히 알고 계시지요.”
“그렇습니까? 거, 놀라운 왕자님이시구만이라우. 그렇다면 왕자님을 만나 뵙도록 해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자, 어서 들어갑시다.”
자라 문지기는 이내 그 소슬 대문을 열어주며 마당쇠가 왕자님에게 갈 수 있도록 안내자까지 붙여주는 것이었다. 안내자는 거북이었다. 거북이 안내자는 마당쇠와 함께 걸어가면서 넌지시 말했다.
“마당쇠님, 여기가 어딘지나 알고 계십니까?”
“모르는디요. 여기가 어딘기라우?”
“여기가 바로 용왕님이 계시는 용궁입니다.”
“아니, 여기가 용궁이란 말입니까?”
“그렇지요. 여기가 바로 용궁입니다.”
“그래요?”
마당쇠는 말로만 듣던 용궁에 자기가 실제로 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마당쇠는 용궁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용궁 안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용궁 안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금속으로 장식되어 휘황찬란하기만 했다.
이윽고 마당쇠는 많은 시녀들과,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용왕 어전에 이르게 되었다. 용왕은 잉어였다. 잉어 용왕은 휘황찬란한 온갖 귀금속으로 장식된 자리에 앉은 채 인자스런 미소를 번지며 마당쇠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그렇잖아도 언젠가는 마당쇠님이 우리 용궁에 올 줄 알고 있었지요.”
하는 것이었다. 용왕님의 그 말에 마당쇠는 너무 황송한 생각이 들어
“아니, 용왕님께서 어떻게 저처럼 천덕스러운 놈을 알고 계시는지요?”
이렇게 물었다.
“마당쇠님은 내 아들이자, 왕자의 은인이라오. 여봐라 왕자야, 네가 항상 말하던 네 은인이 오셨다.”
하고 말하자 옆에 서 있던 잉어 왕자는 마당쇠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며 마당쇠의 몸을 힘껏 안아주고는
“지난날 제가 육지의 냇가에 놀러 갔다가 냇가에 박아 놓은 말뚝 사이에 걸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고 마당쇠님은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하고 말했다. 그제야 생각이 난 마당쇠는
“아니, 그럼 그 잉어 님이 바로 왕자님이셨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 그렇소. 그게 바로 나였소. 저는 마당쇠님이 아니었다면 영낙없이 지구상의 인간들에게 잡혀 먹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당신처럼 착한 분을 만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오.”
잉어 왕자는 지난날을 회상하듯 한숨까지 몰아쉬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마당쇠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지난날 밤의 꿈에 나타났던 그 젊은이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 젊은이가 바로 용왕의 아들인 왕자님이었구나 하는 꿈풀이가 내려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용왕이 입을 열었다.
“내 마당쇠님의 착한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자네의 손에 옥새를 찍어 줄 테니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서 착하게 살아가 주시오. 착하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은 없소. 그리고 우리 용궁에까지 올, 때에는 무사히 왔으나 돌아갈, 때에는 온갖 괴물이 나타나 어려움이 많을 것이오. 여기 빨간 물감과 파란 물감, 그리고 노란 물감을 줄 터이니 가지고 가다가 맨 처음에 만나는 괴물에게는 빨간 물감을 던지고 다음에 만나는 괴물에게는 파란 물감을 던지고 맨 나중에 만나는 괴물에게는 노란 물감을 던지도록 하시오. 그러면 인간 세상으로 무사히 돌아갈 것이오.”
하며 마당쇠의 오른손에 옥새를 찍어주는 것이었다.
“용왕님, 정말 고맙습니다. 용왕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인간 세상에 나가 보다 더 착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마당쇠는 이렇게 말하고 용왕 앞을 물러 나왔다. 그리고 거북이의 안내에 따라 용궁을 나와 물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용왕이 말 한대로 두 눈에 파란 불을 켠 어떤 집채 덩이만 한 괴물이 마당쇠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키려는 듯이 아가리를 벌린 채 마구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 괴물이 어느 만큼 달려들자 마당쇠는 용왕님이 하라는 대로 빨간 물감을 그 괴물의 아가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자 그 빨간 물감은 묘한 악취를 풍기며 삽시간에 주위를 빨갛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런 틈을 놓치지 않고 마당쇠는 자꾸 물위로 오르기만 했다. 그러자 이젠 마치 공룡처럼 생겨 먹은 괴물이 아가리를 벌린 채 마당쇠를 금방이라도 잡아먹으려는 듯이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때에도 마당쇠는 잊지 않고 용왕이 하라는 대로 파란 물감으로 그 괴물을 향해 힘껏 던졌다. 그러자 그 파란 물감도 이상야릇한 악취를 풍기며 삽시간에 그 주위를 파랗게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공룡 같은 괴물도 돌아서며 어디론가 허겁지겁 도망치는 것이었다.
마당쇠는 그걸 보면서 계속해서 물 위로 치솟기만 했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이제는 한 백 년쯤 묵었을 것 같은 큼직한 지네가 금방이라도 마당쇠를 잡아먹으려는 듯이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때도 마당쇠는 용왕이 준 마지막으로 남은 노란 물감을 그 지네에게 힘껏 던졌다. 그러자 지네 역시 덤벼들려다 말고 돌아서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걸 보면서 마당쇠는 물 위로 계속해서 치솟으려 할 때였다. 그런데 도망치던 지네가 어느 틈엔지 다시 돌아와 마당쇠의 한쪽 다리의 뒤쪽을 꽉 물어뜯었다. 또다시 덤벼 물으려 할 때는 이미 물 위에 오른 마당쇠였다. 실로 아슬아슬한 찰나에 육지에 오른 마당쇠였다.
그러니까 마당쇠가 물속에 들어간 지 꼬박 6일 만에 다시 육지로 돌아온 셈이었다.
마당쇠가 육지에 오르자 그때까지도 마당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마당쇠의 노모님과 그리고 그의 아내가 마당쇠를 보더니 말할 수 없이 반가워하며
“아이구, 당신이 살아왔구려!”
“아이구, 내 아들놈이 살아왔구나. 우리 마당쇠야!”
두 고부는 마당쇠를 보더니 황급히 달려와 얼싸안고 기뻐들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온 동네 사람들도 모여들어 반겨 주었다,
또한 고을 맹주는 그가 약속한 대로 마당쇠에게 평생토록 일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재물과 그리고 많은 논과 밭을 주어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마당쇠는 많은 돈을 들여 진수성찬을 장만하여 온 고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가 하면, 마당쇠는 자기가 받은 재물을 자기처럼 가난한 농가에 나누어 주어 오천리 고을에서는 가는 곳마다, 마당쇠를 칭찬하는 화제를 피우곤 하였다.
한편, 이조 말기에 이른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며 병자호란 등 갖가지 커다란 난을 치르게 되었고 이어서, 한 일 합방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일본에 빼앗긴 국치를 치르는 등 숱한 수난을 치러야만 했다. 이에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초야에서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이 무렵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70여 년 전 이 오천리 고을의 갑부 金熙昇은 이 고을 오원 강변 밑에 그 소가 있는 뒷동산 강상(崗上)에 풍령을 단 운첩루를 지어 뜻있는 이들이 이 누각에 와서 망국의 한을 달래도록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인들은 이 소의 신비스러운 전설을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 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어느 날인가 일본인이 경영하는 어느 건설 회사로하여금, 이 소를 메워 버리도록 하기위해 자재 도구를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인부를 동원하여 작업을 하려고 이곳에 와 보니 자재 도구 전부가 어디로 간 곳이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자재 도구를 가져다 놓은 후 그때는 그 건설 회사의 직원 한 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그 자재 도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새벽 3시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도 그 직원은 눈이 빠지라고 자재 도구를 누가 가져가나 하고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 속에서 웬 젊은이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런가 했더니 자재 도구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한 손으로 그 자재 도구를 싸악 쓸어 소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젊은이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려고 자재 도구를 가져다 놓기만 하면 소 속에서 젊은이가 나타나 자재 도구들을 소 속에 싸악 쓸어 넣곤 하여 마침내 일본인들도 결국 그 소를 메워 버리려는 무모한 계획을 중단하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어느 시대에 매장시켰는지 확실한 고증은 없으나 그 소 바닥에는 숱한 금은보화가 매장되어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소는 그 속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신비에, 쌓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윤형복(본명; 윤태섭): 1944. 1. 18 전북 전주 출생. 1965년도『동아일보』신춘문예『화려 파국』으로 가작 입선. 1965년『동아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불교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소설가협회, 국제펜한국본부회원, 국제문단문인협회 자문및심사위원, 편집위원,
저서:『몸 전체로』『즐겁게 사는 사람들』『零下時代』 장편소설『다시 만날 때의 기쁨』『천사의 둥지』『하늘은 그리도 높고 푸르렀는데』『김두한 일대기』전3권,『觀音寺』 장편동화 『골목대장 짱구』(上下). whb3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