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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회 봄나들이 -충남 예산을 찾아서- 2016.4.21 아침에 눈을 뜨자 창문을 내다본다.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오늘이 오상회 춘계 야유회날인데- 제발 비가 조금 오다 그치기를 빌어본다. 오전중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는 있었지만 제법 굵은 비가 내리니 걱정이다. 오늘 분당지역 동문들이 모이는 곳은 새로 생긴 신분당선 동천역 1번출구에 가까운 "동천역EX허브환승센터"이다. 집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5정거장이니 금새 도착했다. 벌써 몇명이 와 있었다. 새로 신설된 환승센터는 前 죽전간이정류장에 비해 붐비지 않아 좋았다. 12명이 모두 모여 버스를 기다린다. 조금 늦게 도착한 버스에 오르니 동문 일행들이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준다. 사무총장이 배급해주는 아침양식(김밥)과 물 그리고 과자봉지,바나나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모두 39명이란다. 지난 가을 40명에 이은 기록적인 숫자이다. 회장단의 적극적인 홍보와 열성 덕분일 게다. 이남수 사무총장의 오늘 행사 일정에 관한 안내가 있고 조상희 회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오상회 행사는 너무나 완벽한 준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가는 도중 지루하지 않게 짜여진 스케쥴을 보자. 먼저 미리 사전답사하면서 만든 여행지에 관한 안내동영상(석풍장동문 제작)에 이어 이광현 동문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관광법을 사례를 들어가며 하는 설명에 큰 도움을 받는다. 늘 여행 차 안에서 즐거운 음악CD를 준비하여 귀를 즐겁게 하는 서영교동문이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 오늘은 앙드레류의 해외공연과 국내 나훈아와 조용필의 공연 음악을 준비했단다. 여행의 필수요원 세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여행을 끝내고 나면 종군기자로 그리고 여행작가로 여행기를 쓰는 필자도 동문일행을 위해 일조를 한다 생각하니 그나마 스스로 위안이 된다. 가는 도중 행담도휴게소에서 30분간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오늘 일행 중 유일한 여성 장윤자동문이 준비한 커피를 한잔씩 받아 나른한 심신을 깨운다. 항상 커피를 준비해 오는 장동문의 우의와 열성에 고마움을 전한다. 일로 버스는 목표지로 향해 달려 마침내 예산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수덕사 일주문까지 늘어선 상점가를 지난다. 비가 와서인지,시간이 일러서인지 관광객이 적고 상점도 아직 문을 열지않은 곳도 있다.온갖 종류의 나물류 약용식물,토산품들이 진열되어 눈을 즐겁게 한다. 동천역 환승센터에서 행담도 휴게소 주차장에 내려 상점가를 지나- 종군기자의 눈과 머리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덕숭산 천년고찰 선지종찰 수덕사 매표소 옆 웅장한 네개의 붉은 기둥으로 받쳐 서 있는 선문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선문에는 한글로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선문 안으로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와 꽃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창 영산홍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고 철쭉들도 뒤질세라 얼굴을 내민다. 일주문까지 가는 길 옆으로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조각 구경에 넋을 잃는다. 바위돌에 명문의 글이 있어 사진에 담고 읽어본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백년의 탐물은 하루아침의 이슬과 같다네" 우리 모두에게 깨우침을 주는 글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그 유명한 나옹스님의 글도 보인다. 대리석으로 만든 원담스님의 부도탑 圓潭大禪士塔이 시선을 끈다. 참 아름답게 정성스레 만든 탑이다.원담스님은 조선후기 선불교를 일으킨 경허스님의 제자 만공스님을 시봉한 행자로 수덕사 주지를 거쳐 1983년 총림의 위의를 갖춰 덕숭총림을 만들었고 86년 덕숭총림 3대 방장을 지내셨다. 서예의 대가로 법주사 주련을 비롯 큰 사찰의 현판,주련 글씨가 많다.특히 수덕사 곳곳에도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덕숭산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 정된다.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혜근)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제26대 고종(高宗) 2년(1865)에 만공(滿空)이 중창한 후로 선종(禪宗)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문화재로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이 밖에 대웅전 양 옆에 승려들의 수도장인 백련당(白蓮堂)과 청련당(靑蓮堂)이 있고, 앞에는 조인정사(祖印精舍)와 3층석탑이 있다. 그리고 1,020계단을 따라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만공탑·금선대(金仙臺)·진영각(眞影閣) 등이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定慧寺)가 있다. 부속 암자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見性庵)과 비구니 일엽스님(金一葉)이 기거했던 환희대(歡喜臺)가 있다. 수덕사 하면 생각나는 몇가지가 있다. 우선 몇년전 침샘암으로 별세한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의 장편소설 "길없는길"이란 불교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다. 천주교 신자인 최인호선생은 한때 불교에 심취하여 조선조 말기 선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되었다. 감명깊게 읽었던 까닭인지 기억이 생생하다. 선불교를 다시 일으킨 경허스님을 비롯 그의 제자 만공,수월 스님들이 등장하는 주 무대가 바로 수덕사이다.만공스님이 수덕사를 중창하였다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또 한가지는 화가 이응로 선생이다. 1960년대 동백림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화가 이응로 선생의 부인이 이곳에서 수덕여관을 운영하면서 유학비용을 댔었고 지금도 수덕여관이 그대로 남아서 관광코스가 되었다. 드디어 일주문(一柱門)에 도착했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에는 "德崇山 修德寺"라는 행서체의 편액이 걸려 있고 안쪽으로 또하나의 전서로 쓴 편액이 있었다. "東方第一禪院"이라는 전서체의 아름다운 글씨이다. 모두 素筌 孫在馨선생의 글씨이다. 추사 이래로 서예의 일가견을 이룬 소전체의 주인공. 일주문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일행을 먼저 수덕여관으로 데려갔다. 수덕여관은 다 아시다시피 화가 이응로 선생의 부인이 경영하던 여관이다. 이응로선생이 머물면서 바위에 그린 추상화 두점도 감상했다. 해설사는 이응로 화백,화가 나혜석여사,또 일엽스님과 관련된 사랑이야기에 열중이었다. 신여성 나혜석화가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신여성이었던 모양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승수씨의 붓글씨 "世界一花"도 걸려 있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은 성당(盛唐)시인 왕유(王維)가 쓴 ‘육조혜능선사비명’의 ‘세계일화 조종육엽(世界一花 祖宗六葉)’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세계는 하나의 꽃이며 조사의 종풍은 여섯 잎이라는 의미로 초조달마에서 육조혜능까지 내려온 중국 선종(禪宗)의 전등(傳燈)을 절묘하게 표현한 말이다. 근세에 이 세계일화라는 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장본인은 만공선사였다 금강문,사천왕문을 지나며 상세한 해설이 이어진다. 대사찰 몇곳은 사천왕문 앞에 금강문(金剛門)을 둔다. 수덕사 금강문에는 두 금강장사가 사악한 잡귀를 막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한 장사는 "아! "하고 고함을 지르고 또 한 장사는 "흥" 하고 입을 다물고 서 있다.반대편 벽에는 동자가 사자와 코끼리를 탄 모습이 너무 평화스럽다. 금강문을 초서()로 쓴 글씨가 너무 멋지다. 이어서 사대천왕이 지키는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게 된다. 사천왕상을 안치한 천왕문은 사찰을 지키고 악귀를 내쫓아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찰이 신성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세워진다. 사천왕문에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문천왕 등의 사천왕상이 있는데 각각 불국정토의 동ㆍ서ㆍ남ㆍ북을 지키는 신들이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손에는 보검을 쥐고 있다.계절은 봄, 얼굴색은 청색을 띄고있다.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은 붉은 관을 쓰고 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가을을 주관하며, 얼굴색은 백색이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잡고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여름을 관장하고 얼굴은 적색이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은 왼손으로 비파를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튕기는 모습이다.겨울을 관장한다. 얼굴은 흑색이다. 엄청난 규모의 황하정루(黃河精樓)란 누각에는 禪之宗刹修德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3대 방장을 지내신 원담스님의 필체이다. 좌우에는 백운각과 청운각이 있고 황하정루를 지나 계단에 오르면 범종각과 법고루가 좌우에 위치하며 가운데 3층석탑이 위치한다. 그 위에 국보 제 49호인 대웅전이 높다랗게 서 있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대웅전 옆모습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수덕사는 단청이 없는 절로 이름이 나 있지만 측면벽은 노란 단청을 입혔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특히 소꼬리모양의 우미량(牛尾樑)은 그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과연 예술과 건축공법의 조화로움 그리고 아름다움을 새삼 느낀다. 초파일을 앞두고 경내는 알록달록 연등이 수없이 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범종각 옆에는 수령 400년이나 된 느티나무와 소나무 한그루가 역사의 흔적을 안고 외로이 서 있다. 오랜 풍상을 견뎌온 품위와 당당함이 엿보여 왠지 어른스러운 믿음이 보인다. 웃음을 가득 담은 포대화상,관음전,명부전,3층석탑,금강보탑을 골고루 둘러보고- 수덕사 선미술관에 들렀다. 원담스님의 유품과 서예,서화작품세계를 감상했다. 또 이응노화백의 작품도 구경하는 기회가 되었다. 점심식사시간이 되었는지 모두들 주차장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바삐 가고 있다. "그때 그식당"이라는 멋진 이름의 식당에는 이미 일행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푸짐한 나물류와 조기,반찬류가 많다. 와인이 즐비하게 놓여있고- 와인은 박호전동문이 스폰서 한 것이다. 한결같이 와인을 제공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오늘 점심은 늘 그래 왔듯이 조중헌 전회장이 전액 스폰서 한다고 한다.고마움의 박수를 보냈다. 배가 고파서인지 맛이 아주 좋다. 조회장님 고맙습니다. 네기둥의 선문 조각상 명문의 글 원담대선사탑 나옹스님의 글 수덕사 일주문 일주문 현판글 동방제일선원-소전 손재형씨의 글씨 해설사와 만나다.
조각작품들 우중에도 열심이다. 수덕여관 이응로 화백의 돌조각화 추상 수덕여관과 이응로,나혜석,일엽스님 얘기에-
고암선생 기념사업회와 쓰시던 방 한승수 전총리의 글씨 금강문/금강장사 사자,코키리를 탄 문수,보현보살 사천왕문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4천왕
아기자기한 모형물들 칠층석탑 禪之宗刹修德寺 포대화상 덕숭총림을 이끈 스님들 黃河精樓 계단을 오르면- 초파일을 앞둔 연등
법고루와 범종각 경허선사의 법어 금강보탑 국보 제48호 수덕사 대웅전 원담스님의 글씨 현판 대웅전
삼층석탑/관음보살상 대웅전 뒷마당에도 완연한 봄이- 대웅전의 옆면은 예술성과 건축공학의 종합 걸작품
석등/관음전
명부전/경허스님의 참선곡 경치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소나무 수덕사 선 미술관 원담스님의 불식과 세계일화 이응로화백의 군상 원담스님의 百草是佛母 예술은 인간의 영혼 점심식사-조중헌전회장 스폰서 고마움의 박수 와인은 박호전 전회장 스폰서 식사를 마치고 서산 마애3존불 식사를 마치고 일행을 태운 버스는 서산 용현리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을 향해 달렸다. 언제 비가 왔나싶게 날씨는 화창하게 개여 있었다. 미세먼지도 비에 씻겨 공기가 너무 맑다.여행 날씨로는 최상의 컨디션이다. 특히나 마애3존상을 보는데는 햇볕이 비춰야 제대로 미소를 볼 수 있다. 국보 제 84호인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얼굴 가득히 마소를 띄고 았어 당시 백제인의 온화하면서도 낭만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각기 다르게 보인다. 예전 몇번 이곳에 다녀본 기억 중에는 훼손을 방지하느라 집을 지어 비바람과 햇볕을 가렸는데 그러다 보니 후레쉬로 비추면서 미소를 보는 촌극도 있었다. 지금은 가림막을 모두 걷고 원 모습 그대로 볼 수 있다. 삼존불은 가운데가 현세불인 석가여래입상이고 좌측은 과거불로 제화갈라보살입상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미래불을 의미하는 미륵반가사유상이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삼존불상은 법화경의 석가와 미륵,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촬영을 했다. 오르는데 꽤나 힘들어서 모이는 시간이 많이 걸려 몇차레나 다시 찍고-- 서산 마애삼존상 해설사의 설명 첫번째-- 마지막엔 몇명이 늘었나? 象王山 開心寺 다음 찾는 곳은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1에 위치한 상왕산 개심사이다. 개심사(開心寺)는 서기 654년(의자왕 14)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開元寺)라 하였다가 1350년(충숙왕 2)처능(處能)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서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143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4호인 명부전(冥府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8호인 심검당(尋劍堂), 무량수각(無量壽閣)·안양루(安養樓)·팔상전(八相殿)·객실·요사채 등이 있다. 상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개심사는 '마음을 여는 절'이라는 사찰 이름을 가지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상왕산은 코끼리의 모양으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해탈문, 안양루, 심검당, 대웅보전이 차례로 다가온다. 상왕산 개심사(象王山 開心寺)라는 예서체의 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안양루에 오르면 절과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현판의 글씨는 유명한 근세의 서화가 혜강 김규진(金圭鎭)의 필체인데. 안양루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마음을 글씨로 그대로 담아낸 듯 하다. 개심사는 왕벚꽃으로 유명하다. 개심사 경내는 무슨 화원에 들어온 듯 꽃 일색이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정신 없다. 이런 경우 꽃보다 할배라는 표현이 맞을런지? 개심사를 나오니 바로 앞에 우리가 잠시 쉬어갈곳 야외식당이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끼리끼리 모여앉아 산더덕주,면천샘물 막걸리,맥주를 묵,전 등 안주와 함께 출출한 배를 불리며 웃음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개심사 일주문 법당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사찰 개심사 쌍둥이 대웅보전 심검당 왕벚꽃 꽃보다 할배 언제 다 먹어보나? 앙증맞은~ 야외에서 막걸리 한잔~ 천주교 성지 해미읍성 마지막 방문지인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해미읍성이 요즘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천주교 박해의 산 증인이 되고 있다. 해미(海美)는 정해현과 여미현의 두 현을 조선 태종 7년(1406)에 병합하면서 두 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충청 병마절도사영이 있었으니 인근에서 중심이 되는 고을로서 성곽을 쌓았다. 전북의 고창읍성과 함께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해미읍성은 사적 116호이다. 1578년에는 이순신이 이곳에서 병사영의 군관으로 열 달 동안 근무했다. 남북으로 좀더 긴 타원형 모양을 한 해미읍성은 둘레길이가 1.8km, 넓이는 대략 2만여평쯤 된다. 5m 높이의 성벽이 2m 남짓 한 두께로 둘려 있어 쭉 따라 걸으면 한 시간쯤 걸린다.진남문을 거쳐 옥사,민간가옥,동헌 그리고 객사를 둘러 보았다. 큼직한 회화나무(호야나무)가 시선을 끈다. 충남 지정기념물 제172호로 수령이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계단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오르니 청허정(淸虛停)이라는 정자가 서 있었다. 1491년(성종22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지은 것으로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병사들의 휴식과 무예연습장이며 문객들의 詩作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죄인을 고문하던 형틀에 엎드려 실연하는 모습에서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애환을 느끼게 한다. 해미읍성 안내 호서좌영 해미읍성 출입문 읍성 성곽길 검차,포,무기류 전시 역사의 증인 회화(호야)나무 옥사 고문 실연 동헌 어느 장군일까요? 청허정 해미읍성을 나오며 진남문 석식 설렁탕--오늘은 한끼도 집에서 먹지 않으니 영식님으로 대접받겠네? 오늘의 일과를 모두 마쳤다. 해미읍성 정문을 나와 멀지않은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설렁탕에 밥과 국수를 말아 김동엽동문이 가져온 양주를 나누어 마시며 아쉬운 작별의 정을 나누었다. 거나해진 얼굴로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가 좋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서울을 향해 달린다. TV 야구중계를 보느라 조용하다. 죽전휴게소에서 일부 동문들이 내리고 압구정까지 속력을 낸다. 죽전휴게소에서 동천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지만 안내가 잘 되어 있었다. 아침에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관광이 시작 되었으나 날씨가 화창해지고 미세먼지도 없어져 좋은 환경에 하루 세끼를 외식하며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오상회 야유회 역사의 한페이지를 만드느라 수고하신 조상희회장,이남수사무총장 두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고 식사 스폰서를 자임하신 조중헌, 와인 스폰서 박호전, 양주 김동엽 동문께도 감사를. 회장단을 도와 진행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석풍장,이광현,서영교 동문께도 감사를 드리며-- 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추기)이번 여행의 특징 중의 하나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인물사진을 즉각 카톡 등으로 보내는 현상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오상회의 사진기술과 통신기술에 감탄했다. |
첫댓글 즐거운 나들이에 함께 못해 아쉽습니다. 함께 간 듯 봅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은 들었지만 늘 참여하시는 분이 빠져서 아쉬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이야기 하지만 "米田" 이 아니면 누가 이런 훌륭한 기록을 남길수 있을까? ,정말 감사하고,,,수고 많았습니다.
바쁜 일정이 있어 성의있게 기록하지 못한 것 같아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 있습니다.고맙게 격려해주시니 감사합니다.
09:15 new
서영교. 석풍장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지요.
맞아요. 석풍장,서영교 두분 우리 오상회의 보배이지요. 거듭 감사드려요.
종군기자,米田이 있기에 우리 오상회야유회는 늘 추억거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우리 모두를 추억속으로 다시 빠져들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사무총장님 너무나 열성과 애정을 쏟아부어 감동,감탄--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심한 기록이 돋보입니다. 오상회의 좋은 역사 기록물이 틀림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재형 고마워요.해외에 가느라 급히 올려 미쓰가 없는지 두렵네요. 늘 헌신적인 봉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