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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다시읽기(1. 19.) 자료입니다.
K. 마르크스: [자본론: 정치경제학비판 1],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2015.
제15장 기계와 대공업
제1절 기계의 발달
존 스튜어트 밀은 자기의 [정치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계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어느 누가 그날그날의 수고를 덜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누구의 수고를 덜어 준다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계는 노동생산성을 발전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값을 싸게 하며, 노동일 중 자본가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다른 부분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다.(자본1,503-504)
생산방식의 변혁은 매뉴팩처에서는 노동력에서 시작하고, 대공업에서는 노동수단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먼저 노동수단은 어떻게 도구에서 기계로 전환되는가, 또는 기계와 수공업 도구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큰 일반적 특징뿐인데, 왜냐하면 사회의 역사 시대는 지질연대와 같이 절대적으로 엄밀한 경계선에 의해 서로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자본1,504)
수학자와 기계학자는−일부 영국 경제학자들도 그런 말을 모방하고 있지만−도구는 단순한 기계이고 기계는 복잡한 도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들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인 차이도 없다고 보고 있으며, 심지어 지렛대⋅경사면⋅나사⋅쐐기 따위의 간단한 역학적 수단들도 기계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기계가 그런 간단한 역학적 수단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과, 그것들의 결합형태 때문에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이런 설명은 아무 소용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설명에는 역사적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자본1,504)
다른 한편으로 도구에서는 인간이 동력이며 기계에서는 동물⋅물⋅바람 따위의 인간력과는 다른 자연력이 동력이라는 점에서 도구와 기계의 차이를 찾으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매우 상이한 여러 시대에 사용된 [소가 끄는] 쟁기는 기계일 것이고, 반면에 노동자 한 사람의 손으로 1분간에 96,000개의 코를 짜내는 크라우센식 회전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될 것^이다. 또한 동일한 직기라도 손으로 운전되면 도구일 것이고 증기로 운전되면 기계일 것이다. 더욱이 동물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랜 발명의 하나이므로, 기계적 생산이 수공업적 생산보다 앞선 것으로 될 것이다.(자본1,505)
주4) (…) 기술학은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생산과정을 밝혀 주는 동시에, 인간생활의 사회적 관계들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관념들의 형성과정을 밝혀준다. 이런 물질적 기초를 빼버리는 모든 종교사는 무비판적이다. 안개처럼 몽롱한 종교적 환상의 현세적 핵심을 분석에 의해 찾아내는 것은, 현실의 생활관계들로부터 그것들의 천국형태를 전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다. 후자의 방법이 유일하게 유물론적인, 따라서 유일하게 과학적인 방법이다. 자연과학의 추상적 유물론 [역사와 역사적 과정을 배제하는 유물론]의 결함은, 그 대변자들이 일단 자기 전문영역 밖으로 나왔을 때 발표하는 추상적이며 관념론적인 견해에서 곧 드러난다.(자본1,505)
완전히 발달한 기계는 어느 것이나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 부분, 즉 동력기, 전동장치, 도구 또는 작업기로 이루어진다. 동력기는 전체 기계 장치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중에는 증기기관⋅열기관⋅전자기^ 기관과 같이 자기 자신이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있으며, 어떤 외부의 기존 자연력[예컨대 물레방아가 떨어지는 물, 풍차가 바람]으로부터 충격을 받는 것도 있다. 전동장치는 속도조절바퀴⋅축⋅톱니바퀴⋅도르래⋅피대⋅로프⋅벨트⋅작은 톱니바퀴 및 각양각색의 전동장치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은 운동을 조절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운동의 형태를 변경시키고[예컨대 수직운동을 원운동으로 전환시키고], 운동을 작업기에 분배하고 전달한다. 기계장치 중 이 두 부분은 오직 작업기를 운동시킴으로써 작업기로 하여금 노동대상을 꼭 붙잡아 그것을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기계장치의 이 마지막 부분, 즉 작업기는 18세기 산업혁명의 출발점이다. 현재에도 수공업적 생산 또는 매뉴팩처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으로 옮겨갈 때는 언제나 이 작업기가 출발점이 된다.(자본1,505-506)
우리가 진정한 작업기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그것은 형태는 매우 달라졌지만 대체로 수공업자와 매뉴팩처 노동자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장치와 도구가 흔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인간의 도구가 아니고 기계장치의 도구, 즉 기계적 도구다. 역직기와 같이 기계 전체는 이전의 수공업적 도구의 약간 변경된 기계적 재판에 불과하거나, [방적기의 북, 양말 직조기의 바늘, 제재기의 톱, 절삭기의 칼 따위와 같이] 작업기의 몸통에 붙어 있는 구성부분들은 이미 이전부터 잘 알려진 것들이다. 이 도구들과 기계 몸통은 이미 그것들의 출생 당초부터 구별된다. 즉 도구들은 그 대부분이 계속 수공업적 방식 또는 매뉴팩처적 방식으로 생산되며, 그 뒤 [기계의 생산물인] 작업기의 몸통에 알맞게 붙은 것이다. 그^러므로 작업기는,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자체의 도구들을 가지고 [종전에는 노동자가 그와 비슷한 도구들을 가지고 행한 것과] 동일한 작업을 행하는 기계장치다.(자본1,506-507)
동력이 인간에게서 나오는가 기계에서 나오는가는 사태의 본질을 조금도 바꾸지 않는다. 진정한 도구가 인간의 손을 떠나 기계장치로 옮아간 뒤에는 기계가 단순한 도구를 대신한다. 기계와 도구의 차이는 인간 자신이 아직도 여전히 원동력인 경우에도 곧 눈에 띈다. 인간이 한꺼번에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는 자기 자신의 자연적 생산도구[즉 팔다리 등 인간 자신의 육체적 기관]의 수에 의해 제한된다. (…) 하나의 작업기가 동시에 움직이는 도구의 수는 처음부터 [수공업자의 도구 수가 벗어날 수 없는] 생리기관에 의한 제한성에서 해방된다.(자본1,507)
많은 손도구에서는 단순한 동력으로서 인간과, 진정한 노동자로서 인간은 매우 분명하게 구별된다. 예컨대 물레에서 발은 동력으로서만 작용하는데, 북에 붙어 작업하는 손은 실을 잡아뽑든가 꼬든가 하는 실제의 방적작업을 한다. 산업혁명은 먼저 수공업적 도구의 바로 이 후자 부분[이 경우 북]에 주목하고, 동력이라는 순전히 기계적인 기능은 [눈으로 기계를 감시하고 손으로 기계의 착오를 시정하는 새로운 노동과 아울러]^ 아직 인간에게 맡긴다. 이와는 반대로, 예컨대 연자방아를 돌리든가 펌프질⋅풀무질⋅절구질을 하는 경우와 같이 인간이 항상 단순한 동력으로서만 작용하는 경우에는, 동물과 물과 바람을 동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런 도구들은 부분적으로는 매뉴팩처시기에 그리고 이곳저곳에서는 벌써 그보다 훨씬 이전에 기계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생산방식을 변혁시키지는 못했다. 대공업 시기에 와서는 그런 것들은 손도구의 형태에서도 벌써 기계라는 것이 명백하게 된다.(자본1,507-508)
17세기 말엽 매뉴팩처 시기에 발명되어 1780년까지 존속한 것과 같은 증기기관은 아무런 산업혁명도^ 일으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바로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기관의 혁명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도구를 가지고 노동대상에 작용하지 않고 작업기의 단순한 동력으로 되는 그 순간부터, 동력의 담당자가 인간의 근육이라는 사실은 벌써 우연적인 것으로 되며 바람⋅물⋅증기 따위가 인간을 대신하였다. 물론 이것 때문에 원래 인간의 힘만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해 만든 기계장치에 커다란 기술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재봉기, 빵 제조기 등과 같이 지금부터 자기의 진로를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모든 기계는, 그들이 성질상 소규모로 사용되는 것을 물리치지 않는다면, 인간의 동력과 순수한 기계적 동력 모두에 맞도록 현재 제작되고 있다.(자본1,508-509)
산업혁명의 출발점인 기계는 단 하나의 도구만을 취급하는 노동자를 기계장치로 대체하는데, 기계장치는 다수의 같은 도구 또는 같은 종류의 도구를 한꺼번에 사용하여 작업하며, 단 한 개의 동력[그 형태가 어떻든]에 의해 가동된다. 이것은 기계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요소로서 기계다.(자본1,509)
작업기의 규모 확대와 작업도구의 수 증대는 이것들을 가동시킬 더 큰 기계장치를 요구하며, 이 기계장치는 그 자체의 저항력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동력보다 [균일하고 연속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도구라는 점을 도외시하더라도] 더 강력한 동력을 요구한다. 인간이 이미 단순한 동력으로서만 작용하며 그리고 작업기가 도구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고 가정하면, 이제는 자연력이 동력으로서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매뉴팩처 시기로부터 전해 내려온 모든^ 동력 중에서 마력이 가장 나쁜 것인데, 그 이유는 말이 자기 자신의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말은 비용이 많이 들며 오직 일정한 한계 안에서만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은 대공업의 유년기에 매우 광범히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농학자들의 불평에 의해서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기계적 힘을 마력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자본1,509-510)
바람은 너무나 변화가 심하고 통제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대공업의 발생지인 영국에서는 수력의 사용이 매뉴팩처 시기에도 우세했다. 이미 17세기에 두 개의 맷돌을 한 개의 물레방아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전동장치의 규모가 수력에 비해 너무 커짐으로써 이제는 수력이 만족스럽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이 마찰의 법칙을 더욱 정밀하게 연구하^도록 만든 하나의 이유였다. 또 마찬가지로 지렛대를 밀었다 당겼다 해서 가동하던 제분기에서 동력인 수력의 작용이 불규칙적이어서, 그 뒤 대공업에서 거대한 구실을 하게 된 관성바퀴의 이론과 응용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대공업의 최초의 과학적⋅기술적 요소들은 매뉴팩처 시기에 발전했다.(자본1,510-511)
와트의 제2의 이른바 복동식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해 비로소 다음과 같은 원동기가 나타난 것이다. 즉 이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해 스스로 동력을 생산하며,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이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동의 수단이며, 물레방아와 같이 농촌적이 아니고 도시적이며, 생산을 [물레방아의 경우처럼] 농촌에 분산시키지 않고 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그 기술의 적용이 보편적이고, 그 설치장소의 선정에서 지역적 사정들의 제약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와트의 위대한 천재성은 그가 1784년 4월에 얻은 특^허권 명세서에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증기기관이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대공업의 보편적 동력기로 서술되어 있다.(자본1,511-512)
도구가 인간 유기체의 도구로부터 기계장치의 도구, 즉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 뒤에야 동력장치도 비로소 인간력의 제한성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가 이상에서 본 개개의 작업기는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하나의 요소로 격하된다. 이제는 한 개의 동력기가 많은 작업기를 동시에 가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동시적으로 운동하는 작업기의 수가 증대함에 따라 동력장치도 커지고 이와 아울러 전동장치도 하나의 방대한 장치가 된다.(자본1,512)
이제는 같은 종류의 수많은 기계의 협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의 경우 제품은 전적으로 동일한 작업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이 작업기가 각종의 작업을 모두 수행하는데, 이 각종의 작업들은 이전에는 한 사람의 수공업자가 자기의 도구를 자기고 [예컨대 한 사람의 직조공이 자기의 직조기를 가지고] 수행했거나, 또는 여러 수공업자가 [독립적으로 하건 또는 동일한 매뉴팩처의 구성원으로서 하건]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다.(주15)(자본1,512)
주15) 매뉴팩처적 분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직조는 단순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잡한 수공업적 노동이었으며, 따라서 역직기는 매우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다. 근대적 기계가 최초에 정복한 것은 매뉴팩처적 분업에 의해 단순해진 작업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방적과 직조는 매뉴팩처 시기^에 새로운 종류들로 분할되었으며 그것들의 도구는 개량되었고 또 변경되었으나, 노동과정 그 자체는 조금도 분할되지 않고 여전히 수공업적이었다. 기계의 출발점으로 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수단이다.(자본1,512-513)
매뉴팩처 내부에서는 일련의 작업들로 분할되어 순차적으로 수행되었던 전체 과정이 이제는 결합된 각종 도구를 작동시키는 한 개의 작업기에 의해 완수된다. 이와 같은 작업기가 복잡한 수공업적 도구의 기계적 재생에 지나지 않든 또는 매뉴팩처에 의해 전문화된 간단한 각종 도구의 결합이든 그것과는 관계없이, 두 경우 모두 공장[기계제 생산에 기반을 두는 작업장]에서는 단순협업이 다시 나타난다. 당분간 노동자를 도외시한다면, 이 협업은 먼저 동시적으로 함께 운동하는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한 곳에 집합한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방직공장은 같은 건물에 나란히 놓여 있는 많은 역직기로 구성되며, 재봉공장은 나란히 놓여 있는 많은 재봉기로 구성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기술상의 통일성이 있는데, 그것은 많은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공동의 원동기의 심장 고동으로부터 전동장치를 통해 동시에 또 균등하게 박동을 받기 때문이다.(자본1,513)
그런데 전동장치도 어느 정도까지는 작업기들에 공동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전동장치의 특수한 곁가지가 각 작업기로 갈라져 나가기 때문이다. 많은 도구가 한 개의 작업기의 기관들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작업기는 동일한 동력기구^의 기관들을 형성하고 있다.(자본1,513-514)
[노동대상이 일련의 상호보완적인 각종 작업기에 의해 수행되는 서로 관련된 한 계열의 부분과정들을 통과할 때 비로소] 진정한 기계체계가 개개의 독립적인 기계 대신 등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뉴팩처를 특징짓는 분업에 의한 협업을 다시 보게 되는데, 이제는 이 협업이 특수한 기능을 가진 작업기들의 결합으로 나타난다. 각종 부분노동자들[예컨대 양모 매뉴팩처의 털을 빗질하는 사람, 털을 깎는 사람, 털로 직조하는 사람 등]의 특수한 도구들은 이제 전문화된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되는데, 각 작업기는 결합된 기계장치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한 개의 특수한 기관을 형성한다.(자본1,514)
기계체계가 처음으로 도입되는 부문들에서는 대체로 매뉴팩처 그 자체가 생산과정의 분할[따라서 또 조직]의 자연적 기초를 기계체계에 제공한다. 그러나 곧 매뉴팩처적 생산과 기계제 생산 사이에는 하나의 본질적인 차이가 나타난다. 전자에서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그들의 손도구를 가지고 각각의 특수한 부분^과정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가 각 부분과정에 적응한다고 하지만, 과정 그 자체가 미리부터 노동자에게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이런 주체적인 분업원칙은 기계제 생산에서는 없어진다. 여기서 총과정은 객체적으로 그 자체로 고찰되며, [그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어떻게 수행되느냐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단계들로 분할된다. 각각의 부분과정을 어떻게 수행하고, 상이한 부분과정을 어떻게 통합하는가의 문제는 기계학⋅화학 등의 응용에 의해 해결된다.(자본1,514-515)
이 경우에도 물론 이론적 구상은 실제로 축적된 대규모 경험에 의해 보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의 부분기계는 바로 그 다음 기계에게 원료를 공급하는데, 그것들은 모두 동시에 작용하므로 생산물은 항상 그 형성과정의 상이한 단계에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한 생산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자본1,515)
매뉴팩처에서는 부분노동자들의 직접적 협업이 부분노동자 집단들 사이에 일정한 수적 비율을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편성된 기계체계에서도 한 부분기계는 다른 부분기계와 끊임없이 서로 관련되어 움직이고 있으므로 그것들 사이에도 수⋅규모⋅속도의 일정한 비율이 확립된다. 집단적으로 작용하는 작업기[즉 각종 개별 작업기들, 그리고 개별 작업기 그룹들로 조직된 체계]는, 총과정이 연속적이면 연속적일수록, 즉 원료가 첫 단계로부터 마지막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중단되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따라서 원료가 인간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계장치 그 자체에 의해 생산의 한 단계로부터 다른 단계로 추진되면 될수록, 더욱 완전한 것으로 된다. 매뉴팩처에서는 각 부분과정들의 분리가 분업의 성질이 요구하는 조건이라면, 이와는 반대로 발달된 공장에서는 각 부분과정들의 연속이 지배한다.(자본1,515)
기계체계는, 직조업에서와 같이 같은 종류의 작업기들의 협업에 기반을 두거나 방적업에서와 같이 다른 종류의 작업기들의 결합에 기반을 두든, 한 개의 자동 원동기에 의해 운전되자마자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자동장치로 된다. 그러나 체계 전체는 예컨대 증기기관에 의해 운전된다 하더라도, 개별 작업기는 그것의 어떤 운동에는 아직도 노동자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자동식 뮬 방적기가 도입되기 전 뮬 캐리지를 삽입할 때도 노동자의 협력이 필요했고, 아직도 세사방적에서는 필요하다.(자본1,516)
또한 선반활대가 자동식으로 전환되기 전의 기계제작에서와 같이, 기계의 일정한 부분은 노동자가 손도구를 사용하듯 조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작업기가 원료의 가공에 필요한 모든 운동을 인간의 협력 없이 수행하고 오직 노동자의 통제만을 필요로 하게 되면, 기계의 자동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며 그 세부는 끊임없이 개량될 수 있다.(자본1,516)
생산의 연속성과 아울러 자동식 원리가 도입된 실례로 근대적 제지공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지업은 상이한 생산수단에 바탕을 둔 상이한 생산방식들의 차이와, 이 생산방식들과 사회적 생산관계 사이의 관련을 매우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 고대 독일의 제지업은 수공업적 생산의 표본을, 17세기 네덜란드와 18세기 프랑스는 진정한 매뉴팩처의 표본을, 근대의 영국은 자동적 생산의 표본을 보여주며, 이 밖에도 중국과 인도에는 아직도 제지업의 두 개의 상이한 고대 아시아적 형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자본1,516)
한 개의 중앙 자동장치로부터 전동장치를 통해서만 자기의 운동을 받는 작업기들의 편성체계는 기계제 생산의 가장 발달한 형태다. 여기에서는 개별적인 기계 대신 한 개의 기계적 괴물이 등장하는데, 그 몸통은^ 공장건물 전체를 차지하며, 그 마술 같은 힘은 처음에는 그 거대한 팔다리들의 느릿느릿하고 절도 있는 운동에 의해 은폐되지만 드디어 그 무수한 본래의 작업기관들의 열광적 난무로 폭발한다.(자본1,516-517)
뮬 방적기, 증기기관 따위는 그것들의 생산을 전업으로 하는 노동자가 있기 전에 이미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인간들이 재봉사가 있기 전에도 옷을 입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캉송, 아크라이트, 와트, 등에 의한 발명들은 [이 발명가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당한 수의 숙련된 기계노동자를 매뉴팩처 시기에 이미 발견했기 때문에 비로소 실용화될 수 있었다. 이런 노동자의 일부는 각종 직업의 독립적 수공업자였고, 다른 일부는 [분업이 특히 엄격하게 지배하고 있던] 매뉴팩처에서 집단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자본1,517)
발명의 수가 증가하고 또 새로 발명된 기계에 대한 수요가 증대함에 따라, 기계 제작업이 다양한 독립부문으로 분화되었고, 기계제작 매뉴팩처 안의 분업이 더욱더 발전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매뉴팩처에서 대공업의 직접적인 기술적 토대를 본다. 이 매뉴팩처는 기계를 생산했는데, 그 기계의 도움에 의해 대공업은 [그것이 처음으로 손에 넣은 생산부문들에서] 수공업 생산과 매뉴팩처 생산을 없앤 것이다. 이와 같이 기계를 생산하는 체계는 자기에 적합하지 않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다. 그 체계가 일정한 발전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동안 종래의 형태로 더욱 발전한] 이 빌려온 토대를 타도하고 자신의 생산방식에 알맞은 새로운 토대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각각의 기계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만 운전되는 동안은 여전히 작았고, 또 기계체계는 증기기관이 종전의 동력[동물⋅바람⋅심지어는 물]을 대체하기 전에는 자유롭게 발전할 수 없었다.(자본1,517)
이와 꼭 마찬가지로 대공업도 그것에 특징적인 생산수단인 기계 그 자체가 개인의 힘과 개인의 숙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다시 말해 매뉴팩처 부분노동자 또는 그 밖의 수공업자가 자기의 작은 도구를 사용하는 데 필요했던 발달^한 근육과 예민한 시력과 능란한 솜씨에 의존하고 있던 동안은], 그 발전이 불완전했다. 이렇게 만든 기계가 비싸다는 사정[이 사정이 자본가의 기계사용을 막은 지배적 요인이었다]을 도외시하더라도,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하는 공업이 확대하고 새로운 생산부문에 기계가 침투하는 것은, 이런 부류의 노동자들[그 직업의 반(半)장인적 성격 때문에 그들의 숫자는 비약적으로가 아니라 점차적으로만 증가할 수 있었다]의 성장에 의존하고 있었다.(자본1,518)
그러나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러서는 대공업은 수공업과 매뉴팩처가 제공한 기술적 토대와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다수의 기술적 문제가 발전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동력기와 전동장치와 작업기의 규모가 확대되며, 작업기의 구성부분들이 더욱 복잡 다양하게 되고 더욱 엄격한 규칙성에 의해 운전되어야 함에 따라, 작업기는 [그것의 제작을 처음 지배하고 있었던] 수공업적 모형과 점점 더 괴리되고 [그것의 기계적 과업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동체계가 완성되고, 처리하기 어려운 자재[예컨대 목재 대신 철]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불가피하게 되었다.(주18) 이 과업의 해결에는 어느 경우에나 인간능력의 제한성[이 제한성은 매뉴팩처의 집단적 노동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는 타파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타파되지 못했던 것이다]이 장애물로 되었다. 근대적 수압기와 근대적 동력^직기와 근대적 소모기와 같은 기계들은 매뉴팩처에 의해서는 결코 공급될 수 없었던 것이다.(자본1,518-519)
주18) (…) 기계학이 한층 더 발전하고 실제의 경험이 쌓인 뒤에야 비로소 기계의 형태는 완전히 기계학적 원리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도구[기계의 선구자]의 종래 모습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자본1,518)
공업의 한 분야에서 일어난 생산방식의 변혁은 다른 분야에서도 생산방식의 변혁을 일으킨다. 이것은 먼저 다음과 같은 공업−이 공업의 각각의 분야들은 사회적 분업으로 말미암아 분리되어 독립적인 상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한 과정의 각각 단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공업−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기계방적업은 기계직조업을 필요로 했으며, 또 이 둘은 표백업⋅날염업⋅염색업에서 역하적⋅화학적 혁명을 필요로 했다. 면방적업의 혁명은 면섬유를 목화씨와 분리하는 조면기의 발명을 불러왔으며, 현재와 같은 대규모 목화생산은 이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공업과 농업의 생산방식 혁명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일반적 조건들[즉 통신수단과 수송수단]의 혁명을 필요로 했다.(자본1,519)
부업적 가내공업을 가진 소규모 농업과 도시 수공업을 축(이것은 푸리에의 표현이다)으로 한 사회의 통신수단과 운송수단은 [확대된 사회적 분업, 노동수단⋅노동자의 집중과 식민지 시장을 가진] 매뉴팩처 시기의 생산 상 필요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변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매뉴팩처 시기로부터 물려받은 운송수단과 통신수단은 [열광적인 생산속도, 생산의 방대한 규모, 한 생산분야로부터 다른 생산분야로 대량의 자본이동과 끊임없는 노동자 이동, 새로 창조된 세계시장적 관련을 가진] 대공업에게는 참을 수 없는 장애로 되었다. 그러므로 돛배 건조의 거대한 변혁과는 별도로, 통신⋅운송수단은 하천기선⋅철도⋅해양기선⋅전신 등의 창설에 의해 점차 대공업의 생^산방식에 적응하게 되었다. 그리고 [단조⋅용접⋅절단되고 구멍이 뚫리며 성형되어야 할] 엄청나게 많은 양의 철은 [매뉴팩처 시기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거대한 기계들을 요구했다.(자본1,519-520)
그리하여 대공업은 그 특징적 생산수단인 기계 그 자체를 떠맡아서, 기계로 기계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대공업은 자기에게 적합한 기술적 토대를 창조했으며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되었다. 19세기 첫 수십 년 동안 기계의 생산이 증대함과 동시에, 기계제 생산이 점차로 작업기의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규모의 철도부설과 해양기선의 건조로 말미암아, 원동기 제작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것과 같은 거대한 기계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오직 1866년 이전 10년 동안의 일이다.(자본1,520)
기계에 의한 기계의 생산에 가장 필수적인 생산조건은 [어떤 출력도 낼 수 있으며 또 이와 동시에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원동기였다. 이 조건은 증기기관에 의해 이미 충족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기계의 개별적인 부분들에 필요한 엄밀한 기하학적인 직선⋅평면⋅원⋅원통⋅원⋅공을 기계로 생산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 문제는 1810년대에 헨리 모즐레가 선반활대를 발명함으로써 해결되었는데, 이것은 자동화되었으며, 그리고 그 뒤 변경된 형태로 선반용 이외에 다른 공작기계들에도 적용되었다. 이 기계장치는 어떤 특수한 도구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대체했으며, 이 절삭도구로 철이나 다른 노동재료로부터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이리하여 기계의 개별적 부분들의 기하학적 형태를 “가장 능숙한 노동자가 아무리 경험을 쌓았다 하더라도 손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쉽고 정확하며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자본1,520)
이제 만약 우리가 기계류 중에서 기계제작에 사용되는 실질적인 작업기 부분을 보면, 그것은 다만 규모가 대단히 커진 수공업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착공기의 작업기 부분은 증기기관이 움직이는 거대한 송곳인데, 이것이 없다면 대형 증기기관과 수압기의 원통은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 기계선반은 발로 움직이는 보통 선반의 거대한 재현이고, 평삭기는 [목수가 목재를 가공하는 데 쓰는 것과 동일한 도구를 가지고] 철을 가공하는 철제목수며, 런던의 조선소에서 합판을 베는 도구는 거대한 면도칼이고, 재봉가위가 천을 베듯이 철을 베는 기계가위는 거대한 가위며, 그리고 증기망치는 보통의 망치[그러나 토르도 휘두를 수 없을 무게를 가진 망치]를 가지고 작업한다.(자본1,521)
기계의 형태를 취한 노동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도록 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하게 한다. 매뉴팩처에서는 사회적 노동과정의 조직은 순전히 주체적이며 또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인데, 기계체계에서는 대공업은 전적으로 객체적인 생산조직이^고 여기에서 노동자는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 생산조건의 단순한 부속물에 불과하다. 단순협업, 그리고 분업에 의해 전문화된 협업에서조차, 결합된 노동자가 고립된 노동자를 몰아내는 것은 아직도 어느 정도 우연적 현상이다. 그런데 기계는 [나중에 말하게 될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오직 결합노동 또는 공동노동에 의해서만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과정의 협업적 성격은 노동수단 자체가 강요하는 기술적 필연성이다.(자본1,521-522)
제2절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우리는 협업과 분업으로부터 생기는 생산력은 자본가에게 아무런 비용도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사회적 노동이 만들어내는 자연력이다. 생산과정에 적용되는 증기⋅물 등과 같은 자연력도 역시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호흡하기 위해서는 폐가 필요하듯이, 자연력을 생산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손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다. 물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물레방아가 필요하며, 증기의 탄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증기기관이 필요하다. 전류의 작용범위 안에서는 자석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든가, 주위에 전류가 돌고 있으면 철에서 자기가 발생한다는 법칙 등은 일단 발견한 뒤에는 한 푼의 비용도 들지 않는다.(주23) 그러나 이 법칙들을 전신 등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비용이 들며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다.(자본1,522)
주23) 일반적으로 자본가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과학을 이용한다. 자본은 ‘타인의’ 노동을 사유(私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과학을 사유한다. 그러나 과학이든 물질적 부든 ‘자본주의적’ 사유와 ‘개인적’ 사유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예를 들어, 유어는 기계를 이용하는 자기의 친애하는^ 공장주들이 기계학을 놀랄 정도로 모른다는 것을 탄식했으며, 또 리비히는 영국의 화학공장주들이 화학분야에서 놀랄 만큼 무식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자본1,522-523)
도구는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기계에 의해 쫓겨나지 않는다. 도구는 인간유기체의 작은 도구로부터 인간이 창조한 기계장치의 도구로 전환되면서 그 규모도 커지고 그 수도 증가한다. 자본은 이제 노동자로 하여금 손도구를 가지고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조종하는 기계를 가지고 일하게 한다.(자본1,523)
대공업이 거대한 자연력과 자연과학의 결과를 생산과정에 도입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크게 상승시키는 것은 언뜻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산력의 상승은 노동지출의 증대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결코 그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불변자본의 다른 모든 구성부분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으나 그것으로 생산되는 생산물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옮긴다. 기계가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하는 한, 기계는 생산물 가치의 한 구성부분을 이룬다. 기계는 생산물의 가치를 싸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가치에 비례해 생산물의 가치를 비싸게 한다. 그리고 대공업의 특징적 노동수단인 기계와 기계체계는 수공업적 생산과 매뉴팩처적 생산의 노동수단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명백하다.(자본1,523)
먼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기계는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증식과정에는 언제나 일부씩만 참가한다는 사실이다. 기계는 마멸에 의해 평균적으로 상실하는 가치 이상으로는 결코 생산물에 가치를 첨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계의 가치와, 일정한 기간에 기계에서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부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생산물 형성요소로서 기계와 가치형성요소로서 기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동일한 기계가 동일한 노동과정에서 반복해 쓰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이 차이는 더욱 크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어떤 노동수단이라도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고 가치증식과정에는 항상 그것의 매일의 평균적 마멸에 비례해 일부만 참가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용과 마멸 사이의 이런 차이는 도구의 경우보다 기계의 경우에 훨씬 더 큰다. 왜냐하면 기계는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재료로 제작되므로 수명이 더 길고, 또 기계의 이용은 엄격한 과학적 법칙에 의해 규제되므로 부품의 교체와 보조원료의 소비를 통해 기계를 더욱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끝으로 기계의 생산적 활동범위는 도구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기 때문이다.(자본1,523-524)
기계와 도구는 매일의 평균적 비용[즉 그것들의 매일의 평균적 마멸과 예컨대 기름⋅석탄 등과 같은 보조원료의 소비에 의해 생산물에 첨가되는 가치구성부분] 이외에는 인간노동의 협력 없이 존재하는 자연력과 마찬가지로 공짜로 일한다. 기계의 생산적 효율성이 도구의 그것에 비해 크면 클수록, 기계의 무상봉사의 크기도 그만큼 더 크다. 대공업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기의 과거노동의 생산물(이미 대상화된 노동)을 자연력과 같이 대규모로 공짜로 이용하게 되었다.(주24)(자본1,524)
주24) 리카도는 기계의 이런 작용에 너무나 큰 주의를 돌린 결과, 기계가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부분을 때로는 망각하고 기계를 자연력과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물론 그는 다른 곳에서는 이런 작용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는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사이의 일반적 차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어디서도 이들 자연력과 기계가 우리를 위해 수행하는 봉사를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상품에 추가하는 가치의 성질을 아주 정당하게 구별하고 있다…그것들은 그 일을 무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그것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지원은 교환가치에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는다.”(리카도, [정치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366~367) 리카도의 이 지적은, 기계가 ‘이윤’의 일부를 이루는 가치를 창조하는 ‘봉사’를 한다고 지껄이는 세에 대해서는 물론 정당하다.(자본1,524)
협업과 매뉴팩처를 고찰할 때 본 바와 같이, 어떤 일반적 생산조건들^[예: 건물]은 고립된 수공업자들의 분산된 생산조건들에 비하면 공동의 소비 때문에 절약되며, 따라서 생산물의 가치를 더 싸게 한다. 기계체계에서는 작업기의 몸통은 거기에 딸린 많은 도구에 의해 공동으로 소비될 뿐 아니라, 동일한 동력기는 전동장치의 일부와 함께 많은 작업기에 의해 공동으로 소비된다.(자본1,524-525)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매일 자기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 사이의 차이가 일정하다면, 이 후자의 가치가 생산물을 비싸게 하는 정도는 먼저 총생산물의 규모, 말하자면 생산물의 겉넓이에 의존한다.^(…) 증기망치의 하루 마멸, 석탄 소비 등은 증기망치가 매일 두드리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철에 분배되므로, 100파운드의 철에는 매우 적은 가치부분만이 배당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거인 같은 도구를 가지고 작은 못을 박는다면 이전되는 가치부분은 대단히 커질 것이다.(자본1,526)
작업기의 작업능력[그것에 달린 도구의 수, 또는 힘이 문제라면 도구의 크기]이 주어져 있을 때, 생산물의 양은 작업기의 작업속도[예컨대 방추가 회전하는 속도 또는 1분간에 망치가 내려치는 횟수]에 의존할 것이다.(자본1,526)
기계의 가치가 생산물로 이전되는 비율이 일정하다면, 이전되는 가치부분의 크기는 기계 자체의 가치 크기에 달려있다.(주26) 기계 자체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이 적으면 적을수록 기계가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는 적다. 기계가 생산물에 이전하는 가치가 적으면 적을수록 기계는 더욱 생산적이며, 기계의 봉사는 더욱 자연력의 봉사에 가까운 것으로 된다. 그런데 기계에 의한 기계의 생산은 기계의 규모와 작용에 비해 기계의 가치를 감소시킨다.(자본1,526-527)
주26) 자본주의적 관념에 사로잡힌 독자는 기계가 자기의 자본가치에 비례해 생산물에 첨가하는 ‘이자’에 관해서는 여기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기계는 불변자본의 다른 모든 구성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기 때문에, ‘이자’라는 명칭으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첨가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더 나아가, 잉여가치의 생산이 문제로 되고 있는 여기에서는, 이자라는 이름의 잉여가치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전제할 수 없는 것도 명백하다.(자본1,526-527)
수공업적으로 또는 매뉴팩처적으로 생산된 상품 가격과, 기계에 의해 생산된 같은 상품의 가격을 비교분석해 본다면, 일반적으로 기계생산물의 경우 노동수단에서 이전되는 가치부분이 절대적으로는 감소하지만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이 가치부분의 절대액은 감소하지만, 이 절대액이 예컨대 1파운드의 실이라는 생산물의 총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가한다.(주27)
주27) 기계가 첨가하는 이 가치구성부분은, 기계가 말과 기타의 동물[즉 물질의 변형을 위한 기계로서가 아니라 동력으로서만 이용하는 역축]을 몰아내는 경우에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동물을 단순한 기계라고 정의한 데카르트의 견해는 매뉴팩처 시기의 견해인데, 중세에는 동물을 인간의 조수로 여겼으며 인간의 조수인 동물은 나중에 할러의 [국가학의 부흥]에서도 나타난다. 데카르트는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생산방식의 변화와 인간이 자연을 실용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생각방법이 변한 결과로 보았다. 이것은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 있는 다음 문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가 철학에 도입한 방법을 이용해) “생활상 대단히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변철학 대신 실용적 철학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철학의 도움으로 우리는 불⋅물⋅공기⋅별과 기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체의 힘과 작용을(우리가 수공업자들의 각종 직업을 아는 것과 같이) 정확히 잘 앎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적합한 용도에 이용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주인과 지배자로 될 수 있을 것이고…인간생활의 완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자본1,527-528)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기계의 생산에 드는 노동과 그 기계의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이 같은 크기라면 노동의 대체밖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 결과 상품의 생산에 드는 노동의 총량은 감소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노동생산성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기계의 생산에 드는 노동과 기계의 사용으로 절약되는 노동 사이의 차이[즉 기계의 생산력의 정도]는 기계 자체의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도구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계의 생산에 드는 노동[기계의 가치] 중 생산물로 이전되는 부분이 노동자가 도구를 사용해 생산물에 첨가하는 가치보다 적은 한, 기계는 노동을 절약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계의 생산력은 기계가 대체하는 인간 노동력의 크기에 의해 측정된다.(자본1,528)
만약 어떤 기계가, 그것이 대체하는 노동자 150명의 연간 임금, 예컨대 3,000원과 같은 금액의 비용이 든다고 가정한다면, 이 3,000원은 결코 이 150명의 노동자에 의해 수행되어 노동대상에 첨가된 전체 노동의 화폐적 표현이 아니라, 그들의 연간 노동 중 그들 자신을 위해 행하고 임금으로 대표되는 부분의 화폐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3,000원이라는 기계의 화폐가치는 기계의 생산에 소비된 전체노동[이 노동이 어떤 비율로 노동자의 임금과 자본가의 잉여가치로 분할되든]을 표현한다. 따라서 기계가 비록 그것이 대신하는 노동력과 같은 금액의 비용이 들더라도, 기계에 대상화된 노동은 언제나 기계가 대신하는 살아있는 노동보다 훨씬 적다.(자본1,529-530)
만약 기계를 생산물을 싸게 하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기계를 사용하는 한계는 기계 자체의 생산에 드는 노동이 기계의 사용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보다 적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자본가가 기계를 사용하는 데에는 그 이상의 한계가 있다. 자본가는 노동에 대해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는 노동력의 가치만을 지급하므로, 자본가에 의한 기계사용의 한계는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해 설정된다.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노동일이 분할되는 비율은 나라에 따라 다르며, 또 같은 나라에서도 시기에 따라 다르든가 같은 시기^에도 생산부문에 따라 다르며, 또한 노동자의 실제임금은 때로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하므로, 기계의 가격과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격 사이의 차이는−기계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과 기계가 대신하는 노동 총량 사이의 차이에는 변동이 없다 하더라도−크게 변동할 수 있다.(주33) 그러나 자본가 자신에게 상품의 생산비⟦비용가격⟧를 규정하며 경쟁이 자신에게 강제하는 것은 오직 기계의 가격과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격 사이의 차이뿐이다.(자본1,531)
주33)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계가 부르주아 사회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용범위를 가질 것이다.(자본1,531)
따라서 오늘날 영국에서 발명되는 기계는 ⟦임금수준이 높은⟧ 미국에서만 사용되고, 16세기와 17세기에 독일에서 발명된 기계는 네덜란드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또 18세기의 프랑스의 많은 발명은 영국에서만 이용된 것이다. 오래 전부터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일부 생산부문들에서 사용된] 기계 그 자체가 다른 부문들에 노동의 과잉[리카도가 말하는 ‘과잉인원’]을 야기하고, 그 결과 후자의 부문들에서는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하락하게 되어 기계의 사용이 방해되며, 또 자본가의 처지에서 보면 자기의 이윤은 고용되는 노동력의 감소가 아니라 지불노동의 감소로부터 생기기 때문에, 기계의 사용은 불필요하고 흔히는 불가능하게 된다.(자본1,531)
영국 양모공업의 일부 부문들에서는 아동노동이 최근 수년 동안 급격히 감소했으며, 곳에 따라서는 거의 사라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공장법으로 말미암아 아동들의 2교대제가 도입되어, 한 팀은 6시간 작업하고 다른 팀은 4시간 작업하거나 두 팀이 각각 5시간만 작업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부모들은 반일공을 이전의 전일공보다 더 싸게는 팔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일공들은 기계로 대체된 것이다. 광산에서 여성과 아동[10세 미만]의 노동이 금지되기 전까지는,^ 자본은 탄광과 기타 광산들에서 벌거벗은 부인들과 소녀들을 때때로 남자들과 함께 일시키는 것을 전혀 도덕률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특히 이윤 획득에는 도움이 된다고까지 생각했다. 따라서 자본은 이것이 금지된 이후에야 비로소 기계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자본1,531-532)
양키들은 돌 부수는 기계를 발명했지만, 영국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작업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은 그들 노동의 매우 적은 부분에 대해서만 보수를 받으므로, 그 기계는 자본가들의 생산비를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운하에서 배를 끄는 일에 때때로 말 대신 아직도 여성들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말과 기계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정확히 알려진 크기지만, 과잉인구 중 여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기계의 나라인 영국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파렴치하게 인력을 천한 일에 낭비하고 있다.(자본1,532)
첫댓글 531쪽,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이라는 말이 혹시 노동 아니냐 하는 물음으로 혼동이 생겼는데, '대체하는'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동일 상품을 생산하는'이라는 의미가 담긴다고 보면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