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방에서 새벽에 눈을 떴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낯선 여행지만큼이나 서먹하다. 앞으로 이곳에서 7주간 머물 예정이다. 집을 떠나 이번처럼 한 군데 오래 머무는 여행은 처음이다.
3월 중순의 꽃샘추위는 토론토 날씨 못지않게 매섭다. 방바닥을 데우는 보일러 덕분에 마치 온돌방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듯하다. 엄마가 잠자던 싱글 침대에는 남편이 곤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토론토에서 서울까지 14시간 비행으로 아직 피곤하지만, 다시 잠들기는 그른 것 같다.
여러 가지 상념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엄마 때문인가 보다. 2년 전 이 방에서 초점 잃은 눈망울을 하고 몇 개 남지 않은 치아로 간신히 음식물을 씹고 있던 엄마는 지금 요양원에 계신다. 만나면 나를 알아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주인 없는 방에서 한 사람이 사용하던 가구와 물건을 바라보는 느낌은 참 묘하다. 특히 그 주인이 이곳에 돌아오기 힘들 거라는 상상을 하면 더 그렇다. 무심코 낡은 플라스틱 서랍장을 여닫으니 부스러진 조각이 우수수 떨어진다.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무엇이든지 과감히 잘 버리는 나에 비해,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엄마는 수명이 다한 놈을 여태껏 가지고 있다. 반짇고리와 그 안에 들어있는 실패들도 쓸만한 게 거의 없다. 누렇게 변색된 흰 실을 버리려다 멈췄다.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화장품 샘플은 왜 이리도 많이 챙겨 둔 건지.
대부분 50년은 족히 넘은 가구와 물건들이 엄마의 방을 채우고 있다. 버려야 할 것과 남아야 할 것이 뒤섞여 있다.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검은색 앉은뱅이 자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이것을 들여오던 날, 기쁨에 들떠 아이 같았던 엄마의 표정이 어슴푸레 기억 날 듯 말 듯 한다. 이제는 서랍 손잡이와 자개 장식도 여러 군데 떨어져 나가서 볼품없지만, 엄마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보물 1호였음에 틀림없다. 화장대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그 속에 정성 들여 화장하는 엄마의 옛 모습도 아른거리는 듯하다.
할머니가 물려 준 100년도 더 된 머릿장이 빛을 잃은 채 귀퉁이에 놓여 있다. 주인의 손길에서 벗어난 티가 역력하다. 엄마는 몸통뿐 아니라 경첩과 손잡이 부분까지 늘 윤이 나게 반들반들 닦았다. 나와 함께 머릿장을 닦을 때마다 독하게 시집살이를 시켰다는 할머니의 뒷담화를 하곤 했다. 그토록 미워하던 시어머니의 유품인데 뭐 하려고 광을 내며 정성을 쏟은 것인지. 엄마 역시 집안의 가보로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유행이 한참 지난, 바퀴 없는 트렁크 가방 2개가 눈길을 끈다. 아버지의 유품이다. 아버지는 저 가방을 들고 자주 외국을 드나들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한편으론 많이 부러워했던 듯싶다. 두 분이서 저 큰 가방을 들고 함께 여행하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화장대 위에 군복 차림의 아버지 영정사진이 엄마의 방을 응시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한결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지켜봤으리라. 맞은편 침대 위에 엄마의 칠순맞이 가족 사진이 금박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걸려 있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 이민 오기 3일 전에 찍은 기념 사진이다. 20년전 얼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엄마는 어쩌면 사진 속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이별의 아픔을 삭이곤 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추억이 담겨있던 물건을 불필요하다고 여겨 과감하게 정리한 내 행동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방을 차지하고 있는 낡은 가구와 필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잠자고 있던 나의 기억 세포를 깨우는 것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먼 훗날 나처럼 회상에 잠길지도 모를 자식을 위해 몇 점이라도 남겨 둘 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삶에는 이따금 후회와 모순이 따르는 법인가 보다. 엄마같이 망각의 시간을 만날 때까지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엄마가 치매 걸린 모습으로라도 살아계신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기도 하니 말이다.
엄마의 글이 보고 싶다. 글을 보면 엄마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곳저곳 샅샅이 뒤져 보지만 엄마가 쓴 일기는커녕 메모지 한 장 발견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엄마에게 편지를 받아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가 제정신일 때 왜 한 번이라도 글쓰기를 권고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엄마의 꿈과 현실 사이엔 어떤 괴리감이 있었는지 궁금한 것이 많은데...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한 엄마의 속내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마냥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이 많은 물건 중에 무엇을 유품으로 간직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엄마가 즐겨 끼던 반지? 목걸이? 그런 것은 가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엄마는 정신이 온전할 때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인 내게 무얼 남기고 싶어 했을까? 이 방에 머무는 동안, 엄마가 가장 잘 느껴지는, 엄마를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물건 하나라도 찾아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화장대 서랍에서 내가 오래 전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를 찾았다. '사랑하는 엄마에게'라고 쓰여진 글자가 유난히 정답게 다가온다. 이 카드를 받고 흐뭇했을 엄마의 미소가 어느덧 내 입가에도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