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금요일 PUNKAHARJU 로 출발하는 길에
Hotel Patria Lappeenranta Scandic 1박 79유로 아침 포함 (현지 지불)
(호텔들은 거의 다 희우아저씨가 미리 예약해 놓고 요금도 이미 지불해 바우처 라는 걸 들고 다니며 안전하게 다녔다. 이 호텔은
한두 개 현지에서 돈을 지불해야 하는 호텔 중 하나다)
자동차 트렁크는 우리 네 사람의 가방 네 개와 형부의 “일용할 양식” 세 보따리 그리고 우르젤 아줌마의 과일을 비롯한 커피 등 또 다른 “일용할 양식” 두 보따리로 꽉 차고. 좌석은 입고 벗는 잠바들이 한 사람에 두 세 벌씩 있으니 말 그대로 만원. 한번 씩 내렸다 타는 일도 쉽지가 않지만 한번 호텔에 들고 나는 일은 정말 귀찮기 이를 데 없는 고행이다. 이런 여행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다. 차로 다니니 편한 점이 있기도 하지만 짐이 문제다. 그래서 캠핑차가 만들어 진거겠지.
지난번 베트남 여행 때 달랏에서 만난 마리아라는 컴퓨터 선생부부가 우리가 여름에 이 근처로 여행할 거라는 말이 나와 바로 자기네가 살고 있는 Porvoo 가 우리가 지나가는 길목이라고 꼭 들러 가라고 했었다. 그 후 이메일로 주소를 주고받아 들러 가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있어 이 사실은 희우아저씨에게도 이미 이야기가 된 상태였었다.
형부는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자세한 안내와 주선을 받아 통화가 되고 15분 만에 달려 나온 마리아와 반갑게 만나게 되었는데, 고속도로는 극구 피해 작은 시골길로 가면서 작은 도시들에 둘러 차를 마시고 쉬어 가는 것을 좋아하는 희우아저씨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참지 못하신다. 형부는 아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갑게 만난 마리아는 사람 좋은 그 녀의 첫인상대로 너무 즐거워하며 달려 나온 길로 곧장 다시 자기 집으로 안내한다. 그들의 집은 숲길을 따라 들어간 조용한 곳에 2002년도에 새로 지었다는 나무로 된 집인데 이 곳의 다른 집들처럼 빨간색 진흙 색깔을 하지 않고 흰색을 칠한 새로운 집이었다. 원래 15년 동안 살던 집은 다른 집들처럼 붉은 흙색이었다고 한다. 친절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아직 정돈은 되지 않았지만 사과나무와 여러 가지 Berry들이 익어 있고 노란색 애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린 마당에서 이것저것 따 주며 집에서 만든 쨈도 두 가지나 싸서준다. 다음날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암스텔담으로 친구들하고 부부가 3일 예정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이 사람들은 여유 있게 인생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반드시 금전적인 여유만은 아니 것 같다.
부인보다 덩치나 키가 거의 반 정도의 남편을 보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던 이 부부가 너무 풍요롭게 살고 있는 모습에 감동한다. 얌전하고 조용하던 그 남편은 헬싱키에 직장이 있어 집에 없었는데 여기서는 30분 거리라 타도시라도 가깝다고 한다. 새로 지은 집도 아이가 없는 자신들의 용도에 맞게 지어 아주 편해 보이는 정말 자신들만의 집인 것이 부럽다.
북해를 건너오는 배에서 헬싱키에 내리면 나현이가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보라던 필랜드 주재 한국대사를 만날 경우를 생각해 와인을 한 병 산 것이 있었는데 별로 찾아갈 명분이 없어 그냥 들고 다니는 와인을 희우아저씨가 하피막에 가서 마시자고 한 말에 잡혀 마리아의 생일이라는 말을 듣고도 주지 않고 그냥 들고 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우르젤은 당장 마리아와 말도 통하고 마음도 통하는 듯 친숙해 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독일어로 나누면서 즐거워한다. 희우아저씨도 주소를 주면서 괴팅겐에 나오면 들리라고 당부한다. 사람의 마음은 열어 보이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는가보다. 아주 흐뭇한 만남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형부의 마음씨가 남달리 착한 것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여러 번 있었다.
풍카하루[라뻬엔란따]호텔의 일박은 아침 포함 79유로. 희우아저씨가 1962 [1961]년인가에 들린 적이 있는 도시인데 그 때의 추억이 뭔가 있는 듯. 라피란타에서는 꽤 큰 호수가 아름답고 그 주변에 선박이나 작은 식당과 아이스크림집들이 러시아에서 주로 오는 관광객들과 동리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한가하게 앉아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데 어디서 온 흑인들인지 우리 일행을 다 함께 찍어 주겠다고 해서 고마웠는데 키가 너무 커 아무래도 우리는 난쟁이로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개 이 쪽 구라파 사람들이 디지틀 카메라에 익숙지 않은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희우아저씨는 30년 전에도 우르젤과 여기 온 적이 있어 옛날을 상기하며 바뀐 모습에 놀란다. 우리에게는 전혀 바뀌었을 것 같지 않은 고색창연한 모습인데. 옛날 성이 있었을법한 자리에는 별로 새로운 모습의 건물은 아니나 성문자리만 있고 손대지 않은 채 남은 그 자리에 극장과 상점들이 일찍이 문을 닫아 조용한 동내로 보인다. 호숫가 둔덕에는 중 고등학교 청소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맥주를 팩으로 들고 와 마시고들 있는데 아무래도 부모 몰래 하는 짓이겠지.... 거기서 내려오다 보니 성 문이 있던 자리 아래쯤 인적이 드문 곳에 열 살 안팎정도로 보이는 사내아이들과 계집애들이 밀크 팩을 들고 청소년들처럼 모여 앉아 마시고들 있다. 시간이 오후 6시를 넘었으니 부모들이 불러들일 만도 한데....
여기서 형부가 헬싱키의 래디슨 플라자 호텔에 카메라 충전기를 두고 온 것을 발견하고 전화를 했지만 찾았다는 연락이 오지 않아 카메라�乍� 들러 챠져를 찾아보기로 했으므로 희우아저씨는 일부러 저녁을 끝내고 카메라 가게를 찾아놓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묵은 곳의 카메라 가게는 그날이 하필 토요일이라 오전 10시에나 문을 연다니 일부러 상점이 문을 여는 9시에 길을 나선 우리는 한 시간을 길에서 기다릴 수가 없어 다음 도시로 갔는데 바로 닥터 지바고 영화를 찍은 이마르트라는 도시였다. 러시아와는 국경이 가까워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기도 하고 기차에는 러시아 어가 적힌 화물차도 보인다.
형부가 카메라 가게를 찾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장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희우아저씨 부부가 어딘가 간 사이 내가 혼자 서 있자니 관광객 차림이 아닌 근엄한 태도의 남자 두 사람이 오더니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언어로 정중하게 뭐라고 한다. 나는 공연히 러시아 국경이라고 하는 이 도시에 나같이 단 한사람의 동양인이 너무 이상하게 보였나.... 뭐라는 소릴까...머리를 굴리며 속으로 떨고 있는데 그중 나이가 더 든 사람이 영어 할 줄 아십니까? 라고 부드럽게 나온다. 하이구 ... 살아났다 싶어, 예스! 했더니 들고 있던 큼지막한 가방을 뒤져보고는 영어로 된 책이 없다고... 러시아어 책이 있어 주려고 했다나? 나는 무슨 책이냐고 물을 겨를도 없이, 내가 러시아 사람으로 보이냐? 라며 그제서야 웃어 보였다. 무슨 선교사들이구나 하는 짐작이 가니 안도가 되어 얼굴근육이 풀린거다.
우리가 지나오며 잠간씩 쉬면서 차를 마신 곳은 모두 러시아 국경지역으로 Loviisa(루이사), Kotka(코트카), Hamina (하미나)들인데 하나같이 그림 속 마을 같거나 숲 속에 깊이 있어 집들이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어디서 살까 궁금증을 이르킨다.
필랜드는 정말 숲의 나라다. 어쩌면 그 많은 나무들이 다 그렇게 쭉쭉 뻗어 목재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 물론 조림을 한다고는 하지만 한없이 펼쳐진 평야의 이 땅은 천혜의 수림지역 같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림....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도 이런 들판에 놀랐는데 이곳 필랜드는 훨씬 더 하다.
푸른 들판에 한가히 풀을 뜯는 소들은 오스트리아서부터 내 눈에 이상한 상념을 불러 오는 모습이기도 했다. 몇 해 전 인도에서 그 덥고 척박한 땅에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유유히 떼를 지어 차도를 걸어 다니는 비쩍 마른 소들이 신성시 되어 아무도 일도 시키지 않고 건드리지도 않는 건 좋으나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돌보지도 않아 “신성하게 ” 죽어가고 있다고 보여 딱했는데, 이 구라파의 비옥한 드넓은 들판에서 맘껏 풀을 뜯어 먹으며 특별한 포장으로 밀집을 발효시킨 영양식을 공급받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팔자 좋은 소들은 왜 사는가. 결국 사람들의 식탁으로 가기위해 이런 호강을 하고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
첫댓글 네 편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소. 속편이 올라 오는지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