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3. 금요일
가족과 함께 녹두전을 부치고 금강초롱을 구경하며 추석 명절을 보냈다.
이틀 동안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는 일을 도왔다.
그저께 전통시장에 들러 껍질을 깐 국산 녹두 두 되(1.6kg)를 24,000원에 샀고, 이어서 근처의 청과야채시장에 들러 사과 6개와 배 6개를 40,000원에 샀다.
사 온 녹두를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어제 오후에 껍질을 분리해 냈다. 일부 알갱이에 껍질이 그대로 붙어있는 데다가 껍질과 알갱이의 비중이 엇비슷해서 껍질을 분리해 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물과 시간을 많이 사용한 후에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분리된 녹두를 믹서기로 갈았다. 묵은김치, 썰어놓은 파, 빨간 실고추를 함께 준비해서 녹두김치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직계 조상님 차례상에 한 접시, 이모할머님 묘소에 올릴 한 접시, 이렇게 두 접시씩 담을 전을 부쳐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을 때 이모할머님이 등록금을 대주셨고, 중고등학교 때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험한 세월을 살아오시며 독신으로 외롭게 지내셨던 그분은 돈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하셨는데, 나를 위해 큰 결정을 내리신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묘소에 1년에 한 번은 찾아와서 술 한 잔 따라놓고 절을 해달라고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여러 번 부탁하셨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에 서울의 기업체에서 현장 실습을 하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아버님의 묘 옆에 함께 모실 때 석재를 사용하여 묘지를 보수 공사를 했고, 이때 이모할머님의 묘소도 동일한 방식으로 보수했다. 매년 동생과 같이 부모님 묘소를 벌초할 때 이모할머님 묘소도 벌초하고, 추석에는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가서 인사를 드리고 온다.
녹두김치전을 부친 후에, 딸과 아들이 돈저냐(동그랑땡)와 동태전을 부치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몇 년 전부터 아들과 딸에게 전 부치는 일을 설명해주고 명절 때마다 돕도록 하고 있는데, 제법 잘하고 있다.
추석날 아침 일찍 포천에 사는 남동생 가족이 왔다.
거실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상님께 인사를 올렸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 음복을 하며 덕담을 나눴다.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은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고향 김화의 묘소로 갔다. 이모할머님 묘소는 부모님 묘소와 함께 내 고향 화강(한탄강 지류)과 43번 국도 옆의 야트막한 야산에 자리 잡고 있다. 6대조부터 조부모님까지의 조상님들 묘소는 부모님의 고향인 철원 DMZ 비무장지대에 있어 성묘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모할머님의 묘소로 올라가 준비해 간 음식을 상석 위에 차려놓고 술잔을 올렸다. 가족들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바로 아래에 있는 부모님께도 술잔을 올린 후 인사를 드렸다.
동생 가족과 헤어진 후 화천・가평 화악산으로 향했다. 금강초롱을 한 번 더 구경하러 가자는 아내의 제의가 있었고, 아들과 딸도 좋다고 해서 함께 출발했다.
화악터널을 지나 군사도로를 따라 헬기장 근처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며 금강초롱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자 마침내 수풀 속에서 자주색의 예쁜 금강초롱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꽃은 서식 조건이 좀 까다로운 편이다. 비옥한 토질에다 그늘이어야 하고 주변에 물기가 있어야 하나 물 빠짐도 비교적 좋은 그런 곳에서 서식하고 있다. 화악산에서는 자주색 계열의 금강초롱만 발견했는데(특히 화악산 정상 남쪽 사면), 모양이 좀 갸름하고 꽃 끝부분의 허리가 좀 잘록하며 색이 짙고 윤기가 강하게 도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눈에 띄질 않아서 찾는 일에 지칠 만하면 어느새 숲속에서 또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곤 하며 우리 발걸음을 산 위로 자꾸 이끌었다. 몇 시간 동안 사진을 찍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른 야생화들도 예쁘게 피어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포천 송우리 ‘두드림손짜장’에 들러 짜장면 등을 먹었다. 손님이 많았고 맛이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