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 예찬_세상의 빛, 소금
영원한 소금기와 감칠맛의 비밀… 인류를 중독시키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 1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 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 14)
예수께서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니라". 소금 간을 한 주먹밥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세상의 무엇인가?” 어려서부터 음식을 짜게 먹은 나는 나이가 먹어서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짜게 먹는 게 타고난 식성인지, 아니면 섭생을 하며 몸에 밴 후천적 버릇인지를 나는 여태껏 모른다. 초중고를 다니면서 먹기도 전에 콩나물국에 간장을 치고, 무나물도 입에 댔다가 슴슴하다 싶으면 이내 간장을 찍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어머니께서는 “짜게 먹으면 오줌 싼다”고 말씀하셨고, 부모님께 반박 못하는 아들은 양념(소금이나 간장 따위) 종지를 설핏 밀치면서도 그리움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나는 왜 짜게 먹는 것일까? 아니, 왜 짜게 먹으면 안 되는 것일까? 어머니께서 내가 먹는 음식의 간에 신경 쓰신 까닭이 설마 아들이 오줌싸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때문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원래 어머니들은 과장이나 거짓이 심하다. 밥 먹고 바로 늘어져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는 자식들에게 하시는 ‘뻥’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린 시절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 그럼 우린 군말 없이 나른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그래봤자 금세 등을 벽에 붙이고 끄덕끄덕 졸게 마련이지만. 나는 실로 순진했다. 그리고 궁금한 걸 못 참았다. “엄마, 그럼 창수네 집 소는 누가 된 거야?” 예상 밖의 질문에 어머니께서 뭐라 답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쩌다 하신 말씀이 “싱거운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짜게 먹어야 할 이유가 명백하다.
맛의 기본은 짠 맛이다. 다른 건 없어도 되지만 소금 없이는 먹기 어렵다. 짠 맛을 줄일 수는 있어도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 염분 없는 살코기를 먹는 게 고역이다. 세상에 빛이 없으면 암흑이고 살 수 없듯이, 사람 사는데 소금기 없으면 살기가 어렵다.
그런데 사람은 참 독하다. 중국 사천성 서남지방의 야만인이 얼마 전까지 소금을 모르고 소금 없이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이 『뇌파쇄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중국음식문화사』, 324쪽). 또 대만 중앙산맥에 거주하는 다이얄족은 과거에 소금 대신 짠맛이 나는 식물 열매(북나무)나 잎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금이 꼭 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날과 같은 음식문화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미식을 논할 수 없는 단지 생존을 위한 원시적 섭생만이 있었다. 비록 안정적 식량 확보가 담보되지 않는 생활조건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경우가 흔했지만, 크게는 정주 집단과 유목 집단 간 섭생 방식의 차이를 보인다. 전자가 조리에 물과 불을 사용한 반면 후자는 생식 중심이었다. 여분의 식량을 보존하기 위해 전자는 염장법을 택하고 후자는 자연 건조법에 의존했다. 앞의 글 어디에선가 언급했듯이 로마 제국 말기의 역사를 378년까지 기록한 로마의 군인이자 역사가인 암미아누스 마리켈리누스는 자신의 책 속에서 유목민 훈족의 식생활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야만인의 삶이다. 음식은 익히지 않고 맛을 내지도 않는다. 나무뿌리와 고기 조각을 말안장에 넣어두고 먹으며 일 년 내내 떠돌아다닌다. 어려서부터 추위, 배고픔, 갈증을 견디며 자란다.
유목민들은 그저 고기를 잡아 즉석에서 날것으로 먹고 날피도 그 자리에서 마셨다. 불을 피워 익혀먹을 만큼 여유도 없었다. 이들에게 조리라는 개념은 아예 없어 보인다. 간을 할 소금도 없었고, 양념을 사용한 요리로서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오늘날도 양 유목민들은 양을 잡아 즉석에서 날 음식을 먹고, 순록유목민들도 순록을 잡아 그렇게 날고기를 먹고 김이 모락모락나는 날피를 마신다.
'뚱보의 도시' 볼로냐의 음식
맛있다고 자꾸 먹다 보면 어느 결엔가 뚱보가 되어 있다. 음식천국임을 자랑하는 ‘뚱보의 도시’ 볼로냐의 음식은 대체로 짠 편이다. 거대한 중국 대륙 서남부의 사천요리도 짜고 맵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게는 그게 입에 맞고 편한 맛이다. 우리나라 남도 음식도 짠 게 특징이다. 양념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양념간장, 양념장, 양념 다데기와 같은 용어 외에 “음식 맛은 양념 맛이 결정한다”는 속설도 있다. 양념이 도대체 무엇인가? 양념 맛이 어떤 맛이냐고 요리 관련 전문가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답은 간단했다. “감칠맛”
먼저 양념 이란 말이 궁금하다. 양념은 음식의 맛을 돋우기 위해 또는 특별한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식용기름, 깨보생이(깨소금의 강릉말), 파, 마늘, 고추 등의 총칭이다. 영어로는 condiment라고 한다. 엄격히 말해 향신료(spices)와는 다르다. 그런데 이 말은 본디 절이거나(pickled) 저장된(preserved) 식품을 뜻했다. 그러니까 지금 같은 식품 저장 기술이 널리 보급되기 전에는 근처에만 가도 눈물이 핑 도는 자극적인 향신료와 시큼털털하거나 비릿하고 냄새 독한 양념이 식품을 훨씬 구미가 동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콩나물 국밥에 넣어 먹는 새우젓, 오믈렛 위에 뿌려 먹는 케첩이 다 양념인 셈이다. 베트남 쌀국수의 간을 맞추는 소스 역시 양념이다. 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물 음식 똠얌(tom yam or yum)에 넣는 생선 소스도 마찬가지다. ‘똠’은 ‘삶는다, 끓인다(boil)’라는 말이고, ‘얌’은 ‘맵고 시큼한 샐러드’를 가리킨다. 똠얌 중에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똠얌꿍은 왕새우 꿍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맵고 새콤한 똠얌의 독특한 맛은 육수에 사용된 고수의 향에 있다. 그리고 간 맞춤은 짭쪼름한 어장(魚醬), 즉 생선 소스 ‘남쁠라’에 있다. 태국어로 ‘남’은 ‘물’, ‘쁠라’는 ‘물고기’를 뜻한다. ‘짠맛의 비밀 그건 도대체 뭘까? 간장이나 소금 따로가 아니라 짠맛에 비린 생선 맛을 더하는 것은 왜일까? 양념을 넣어야 음식은 감칠맛이 난다.
태국의 대표적인 국물 요리, 똠얌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티움에서는 발효된 생선 소스를 가룸(garum)이라고 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호수나 강,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간간한 생선 소스를 만들어 음식에 풍미를 더했다. 감칠맛은 발효된 생선 육수와 소금간의 절묘한 배합에 있는 것은 아닐까?
스페인 바엘로 클라우디아에 있는 가룸 공장 유적
고대부터 식량은 귀했다. 그래서 삶의 지혜가 발달했다. 식재료가 풍부한 근래와 비교해 예전에는 없는 가운데 배를 불려야 했으니 식도락이란 말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아니 남의 집 제삿밥 혹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 중에도 편차는 있다. 장강 이남과 이북이 달랐다. 삶의 조건이 홍콩, 광동, 상해 등 중국 남부에서는 죽을 粥이라고 한다. 쌀이나 좁쌀을 푹 삶아 무르게 한 뒤 체에 받쳐 먹는, 부담 없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식품이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굶기를 당연히 했다. 식전 맛은 밍밍하다. 장강 북쪽의 북경과 서남부의 사천성 지역에서는 죽을 ‘시판(稀飯)’이라고 한다. 밥알이 희소하다는 뜻이다. 마치 뜨물 속에 밥알이 몇 알 들어있는 것이 우리네 멀건 米飮과 흡사하다. 그래서 북쪽의 시판은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마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중국 남방은 미작 문화 지대이므로 쌀이 풍부해 죽에 물이 적고 쌀알이 많다. 그러나 북방은 쌀이 귀해 밀가루 문화가 발달해 있다. 따라서 쌀은 적고 물이 많은 시판을 먹는다.
먹음직스러운 그리고 실제로도 맛있는 花生米
마시다시피 하는 시판은 반찬이 거의 필요가 없지만 죽은 반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죽 문화가 발달된 남방은 죽과 같이 먹을 반찬문화도 발달했다. 골목집이든 새벽시장 부근 식당이든 죽을 파는 곳에서는 花生米가 갖춰져 있다. 땅콩을 껍질 채 소금과 함께 볶아 만든 것인데 죽 속에 이 짭짤한 화생미를 수북이 넣어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재미가 바로 죽 먹는 재미다. 고소한 맛을 즐기는 땅콩에 소금이 웬말이냐 싶지만, 사실 소금의 짠맛 때문에 죽을 먹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을 먹을 때 무장아찌를 선호하듯이 중국인들도 죽을 먹을 때는 물론 일반 요리의 밑반찬으로 자차이(榨菜)라는 절임채소를 애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갓이라고 하는 겨자의 한 종류인 芥菜 뿌리를 陰乾해 즉 그늘진 곳에서 말린 후 소금에 절였다가 손으로 꾹 짜서 물기를 빼고 먹는데 본래 사천 지방에서 유래된 절임식품이다. 죽과 같이 먹는 반찬은 대개 간장(醬)과 식초를 섞어 만든 보존용 식품의 일종이다. 우리가 단무지라고 하는 치자물 들인 노란 무를 일본사람들은 ‘다꾸앙’이라고 한다.
다꾸앙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일본에서 들어와 토착화됐다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이 있다. 박부영은 『불교풍속고금기』에서 “일본 임제동의 대선사 다꾸앙 스님(Takuan Soho, 1573~1645년)이 선식으로 즐겨 먹던 것을 일본에서 스님의 법명을 따 ‘다꾸앙’으로 불렀다”면서 “쌀겨와 소금으로 무를 절이고 버무린 뒤 항아리에 담아 익혀 먹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충분히 간이 되어 있는 라면을 먹을 때, 각종 김밥을 쌀 때도 단무지는 결코 빠질 수 없는 절임식품이다. 아무리 식초를 쳐도 그 안에 내재된 소금기는 영원하다. 그리고 바로 이 은근한 짠맛이 음식에 손이 가고 입맛을 다시게 하는 핵심 요소다.
또 다른 한편 사람들은 속이 나빠서, 혹은 그냥 가볍게 먹고 싶어서 라며 죽을 찾는다. 그러나 맨죽만 먹지 않고 짭짤한 땅콩을 곁들이거나 죽이 심심하다고 각종 간장 소스를 섞거나, 아니면 장아찌 등의 절임 식품을 함께 한다. 이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짠맛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월급을 영어로 salary라고 한다. 이 말의 기원은 salt다. 유럽인들은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먹는다며 오렌지 주스 한 잔과 에그 후라이 두 개, 햄을 끼운 토스트, 샐러드 한 접시, 그리고 살라미 한 조각, 후식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정말 간단하다. 그런데 살라미(salami)와 샐러드(salad)가 모두 소금(salt)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니 놀랄 일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품이 이렇듯 소금에 절어있다면 우리의 입맛은 얼만큼이나 짠맛에 길들여져 있을까? 부지부식 간에 소금기를 섭취한 미각은 단맛을 찾게 마련이다. 서양 음식에서 디저트가 화려하게 발달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기 중에 육고기를 말려 발효시키는 햄의 일종인 살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