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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불교적 제요소의 불교적 습합
1)관정과 호마의식의 기원
밀교에는 진언과 다라니 외에 불‧보살에 대한 공양법이나, 기원법, 또는 관정‧호마법 등의 실천적인 의궤가 다수 등장한다. 이들의 기원은 멀리 인도의 고대종교에서 행해졌던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목적도 세간적인 기원이나, 저주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도인들에게 친숙했던 종교의식도 불교경전에 이입되어 본래의 세간적 목적을 버리고 불교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화, 수용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주나 다라니와 달리 외교의례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원한 것이며, 외교적 의례나 제신들에 대해 불교적인 사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밀교의 대표적 의례에는 관정과 호마법이 그 중심이 되고 있으며 이외 기원의 목적에 따라 점성법이나, 기우법(祈雨法) 등 여러 가지 의례가 전해 오고 있다. 먼저 관정(灌頂, Abhiṣeka)의 경우 그 기원은 인도에 있어 제왕의 즉위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대의 바닷물을 태자의 정수리에 부어 천하를 통일한다는 의미와 염원을 담았던 것이다. 관정의 의식은 현교의 밀교경전에서도 보살의 십지 가운데 제9지에서 제10지인 법운지(法雲地)에 들 때 제불이 지혜수[智水]을 그 정수리에 부어 법왕의 직을 받은 것을 증명한다는 의미에서 관정지(灌頂地)라고 부른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때 수여된 관정의 명칭을 수직관정(受職灌頂)이라 이름하고 있다.
외교적 의례의 구체적인 습합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호마법(護摩法, Homa)으로 그 기원은 삼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리그베다에는 불에 해당하는 화신(火神)은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써 제단에 있어 공물을 하늘에 운반하던 사자라고 신앙되고 있으며, 의식 가운데 불에 공물을 던지는 것은 하늘에 공양을 올리는 자의 염원이 신에게 충실히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일경소』의 저자인 선무외삼장도 호마의례의 수용과 관련한 역사적 사정을 저서에 밝히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호마법은 화로에 불을 지펴 공양물을 태움으로써 하늘에 공양을 올리던 화천공양(火天供養)의 제사법이라고 하였다.
인도에서 호마법이 종교적 행위로 중요한 이유는 호마를 통해 인간이 현실에 필요한 세간실지(世間悉地)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일경』 6의 「출세간호마법품」에는 호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간적 이익을 식재‧증익‧조복으로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식재(śantika)는 세간의 재액을 그치게 하고, 증익(pauṣṭika)은 재산과 농사를 풍요롭게 하고, 조복(abhicākara)은 원적과 귀신을 항복받으며, 경애(vaśikaraṇa)는 타인과의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며, 구소(aṇkuśi)는 원하는 획득하는 것이다. 이상의 3종실지법 이외에 경전에 따라 4종실지법이나 5종실지법이 설해지기도 한다.
『대일경소』에는 "외도인 정통베다에 호마의 제법이 있다. 대승불교의 진언문에도 역시 불공양이 있다. 불교에 호마법이 있는 이유는 외도의 부류를 복종하여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호마에 일상적으로 익숙해져 있던 인도인들을 불교로 교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같은 소 제20권에는 "붓다께서 호마법을 설하는 이유는 모든 외도를 복속하고, 호마의 본래 뜻을 알려 진실한 호마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정행외도(淨行外道)를 종(宗)으로 삼는 베다에는 호마를 비밀한 것이라고 말하여 자만을 생기게 하는데, 붓다는 베다의 본지를 설하여 바른 이치를 담은 참된 호마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정행외도는 바라문교(婆羅門敎)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호마가 외교의 제사법을 재해석하여 수용한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외도의 호마와 불교의 호마를 구분하기 위해 『대일경소』 권8에는 "만약 진언행자로서 단지 세제의 호마를 행하고, 이 가운데 밀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 베다의 제사와 다를 수 있겠는가?"라고 한 것에서 호마의 형식적 소재에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비밀함이 있음을 설득하려 노력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
『대일경』의 「자륜품」에 "호마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소위 내호마와 외호마이다. 중생이 해탈을 얻고, 또한 해탈의 싹을 돋게 하고, 능히 번뇌를 태우기 때문에 내호마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내호마가 마음의 수행인 점은 같은 경전 「세출세호마법품」에서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내호마는 업으로 인한 삶을 멸제하는 것이니 말나식을 잘 알아 색과 소리 등과 안이비설신과 신심의 업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잘 알게 하는 것이다. 심왕으로부터 안(眼) 등의 분별과 색 등의 경계가 생기는 것을 깨닫는 지혜로 장애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불이 꺼지는 것과 같이 분별을 없애 보리심을 깨끗이 하기 때문에 내호마라 하는 것이니, 오직 제 보살들을 위해 설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호마를 유식학의 관점에서 승화시킨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호마에 대해 『대일경소』 권15에는 다음과 같이 설해져 있다.
다음에 호마의 의미에 대해 답하겠다. 호마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는 내호마이고 다른 하나는 외호마이다. 이른바 내외를 말한 것은 분류하여 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 호마는 태운다는 뜻이다. 호마가 능히 모든 업을 태울 수 있기 때문으로 일체중생이 업으로 인해 태어나 윤회에 전전하나, 윤회가 멈춘다면 업이 사라진 고로 역시 삶도 다시는 존재하지 않기에 해탈을 곧 얻게 된다. 만약 업을 태울 수 있다면 이름하여 내호마라 하는 것이다. 어떤 곳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가? 이른바 번뇌의 업고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이미 세간을 원리(遠離)한다면 곧 종자를 낳은 것이니 이른바 희고 깨끗한 보리심인 것이다. 세간의 불은 물건을 태우고 나서 단지 재만 남기게 되지만, 내호마는 그렇지 않다. 이미 일체번뇌를 태웠기 때문에 영겁과 같이 불을 태워 다시는 남겨지는 것이 없다. 때문에 이로부터 싹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보리의 싹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일경소』에는 외교에서 보이는 밀교적 소재들을 불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수용하고, 동시에 외교적 소재들에 대해 수행과 이타라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담아 그 본질을 승화시킨 모습을 볼 수 있다.
2)만다라의 외교적 신들의 수용
밀교의 만다라에 나타난 여러 신격의 형성에 대해 시대적 전개과정을 고찰하면, 3, 4세기경 인도의 정치적 변화는 인도대륙을 굽타왕조가 통일하던 시점으로 굽타왕조는 불교를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힌두교를 물질적으로 지원하여 힌두교의 사원과 세력이 크게 늘어났다. 힌두교의 신들은 가장 우월한 절대적 존재로서 신이 가진 추상적인 관념으로부터 탈피하여 비슈누(Viṣṇu)와 쉬바(Śiva)와 같이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신으로 변화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향들은 난해한 철학적 문제중심으로부터 인도의 대중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태로 바뀌는 것이었다.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외교적 신격이 불교경전에 수용되거나, 구호자로서 대보살이 새로이 등장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흐름은 대중들에게 불교의 근본목적에 있어 해탈을 위한 난해한 불교교리의 해설과 더불어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적 삶의 구원이 필요하게 된 때문이다.
관정과 호마법의 예와 같이 『대일경소』에도 인도의 신들이 불교경전에 호법신(護法神)으로 승화되어 수용된 사연들이 등장한다. 그 사례를 들면 불교의 수호신인 나라연의 경우 『대일경소』에는 "인도 고대의 바라문교의 논사는 나라연이 범천의 어머니로서 모든 인간들은 이 범천에 태어나는 것으로 설하고 외도들은 나라연천이 대범천왕으로 모든 사람들은 이 범왕으로 인해 탄생하기 때문에 '인생천(人生天)'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라고 하여 나라연이 바라문교에 기원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호제동자다라니경』에는 야차와 나찰녀(Yakṣasī)가 등장하고, 어린이와 태아와 관련된 질병을 야차와 나찰의 장난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범천이 붓다의 명을 받들어 주를 설한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경전에는 대범천왕이 붓다에게 말하길
세존이시여! 만약 여인이 남아나 여아를 낳지 못하거나. 태중에 유산하기도 하며, 태어나도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이러한 여인들이 자식을 낳고 명을 보전하여 장수케 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선법(善法)을 닦고 행할 것을 생각하고 매월 8일과 15일에 8계를 수지하고, 깨끗이 목욕하고 정결한 새 옷을 입은 다음 한밤중에 시방의 붓다께 예를 올리고 약간의 겨자를 정수리에 놓고 제가 말하는 다라니를 외웁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곧 원하는 바를 얻게 되면 태어나는 아기도 안온하고 질병이 없을 것이며, 생이 다하도록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귀신이 나의 주문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저는 마땅히 그 머리를 쪼개어 아리수의 나뭇가지와 같이 일곱 조각을 낼 것입니다.
라고 한 후 호제동자다라니주(護諸童子陀羅尼咒)를 설한 장면이 나온다. 대범천왕은 원래 베다교에서 신앙하였기 때문에 이 경우도 외교의 민간주법이 불교에 이입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인도 후기밀교에서 여성성취자로 숭앙받는 다키니(ḍākiṇi)의 경우도 원래 민간에 유행하던 귀신으로서 병을 유발하던 악신이 불교에 이입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수용된 예이다. 『대일경소』 권10에는 "세간에의 다끼니의 법술을 부리는 자와 자재천의 주술을 쓰는 자들은 사람의 수명이 다할 때를 6월 전에 능히 알 수 있고, 알고 난 다음 법술을 부려 그 심장을 먹는다. 이처럼 하는 이유는 사람의 몸에 우황이 있는데 사람의 우황은 소에게 우황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이 우황을 먹음으로써 대성취를 얻을 수 있다."라고 하여 다끼니가 당시 인도의 민간에 유행하던 잡신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외교의 신들을 불교의 수호존으로 수용한 예는 힌두교의 팽창으로 인한 불교교단의 위축과도 관련이 있으며, 『대일경소』에는 저속화된 종교로부터 인도인들을 불교적으로 승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외교의 잡신들을 불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힌두교의 창조신(創造神, Brahman)이나, 주재신(主宰神, Iśvara)의 속성에 대한 인도사상의 변화가 불교의 불‧보살관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힌두교의 브라만이나, 시바신 등의 존격에 대해서는 힌두교의 우주관이나, 생명, 창조와 영혼의 개념을 비롯한 형이상학적인 해석들이 따르고 있으며, 그 연원은 바라문교로부터 이어져 발전해온 것들이다. 이러한 창조자나 우주의 생산적 속성들에 대해 절대적 속성과 현상적 속성으로 나누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절대신인 브라만도 비슈뉴라는 신으로 인간세상에 재생한다는 이론이 존재하며 이로부터 힌두교의 비슈누파가 형성되었는데, 절대적 속성이 현상적 속성으로 구현된다는 논리는 불교의 경우 법신불이 중생세간에 출현하여 다양한 형태의 화신을 보이는 것과 동일한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인도종교의 전통에서 보이는 브라흐만의 해석은 브라흐만의 화현인 Acāla(不動)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으며, 이는 밀교경전에서 불교의 수호존인 부동명왕(不動明王)으로 수용되었다. 부동명왕은 원래 '부동여래사자(不動如來使者)'라고도 한다. 원명은 'Acāla'라고 하는데. 힌두교 쉬바신의 이명을 불교가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명왕에게 사자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후에는 대일여래의 사자로써 번뇌의 악마를 응징하고 밀교 수행자들을 보호하는 왕으로 간주되었다.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에는 밧줄[索]을 쥐었으며, 부릅뜬 눈과 뾰족한 어금니에 윗입술을 깨문 무서운 분노신을 하고 있다. 화염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악마를 박멸하는 위력을 나타낸 것이고, 동자형(童子形)의 몸의 모양은 여래의 동복(童僕)이 되어 밀교 수행자들의 봉사자가 되려는 서원에 따른 것이다. 『대일경』에는 명왕부(明王部)의 대표격으로서, 5대 명왕의 주존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처럼 밀교의 성립은 인도의 다양한 종교적 요소를 수용해 불교가 지닌 고유의 깨달음을 인도대중들에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밀교를 불교의 주류에서 적극적인 해석한 연구도 여러 전거를 통해 그 타당성을 엿볼 수 있다.
한 예로 초기불교의 합리적 태도와 밀교에서 보이는 종교와의 혼란에 대해 宮坂宥勝은, "불행하게도 밀교는 지금까지 오해를 받았다. 19세기 유럽의 불교연구는 석존의 불교로 간주된 원시불교가 중심이었고, 근대 합리주의의 일반적인 풍조 속에서 자연과학적인 사조인 비크리스트교적인 불교가 지성주의 합리주의적인 것으로 오인되어 신과 혼의 종교를 설하지 않는 종교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에 반하는 대승불교 특히 밀교는 불교의 이류이고 예외적인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것은 밀교가 지닌 심비성‧상징성‧비합리성‧의례성 등이 원시불교의 척도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밀교는 불교의 타락된 형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연구성과는 원시불교의 신화를 깨뜨리고 오히려 밀교적인 것이야말로 본래 인도 종교의 기반을 이루는 것이며, 밀교는 인도민중 속에서 배양되어 온 불교이다."라고 하였다.
이상 『대일경소』를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밀교의 성립과정에 있어 외형적인 소재들의 수용은 밀교의례의 경우 관정이나, 사례가 존재하며, 인도의 전통종교에서 보이는 여러 신들에 대해 인도대중을 불교로 인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불교의 수호존으로 수용한 역사적 사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밀교의 성립 배경 연구/ 배관성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