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위에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시 한강인도교 옆에 군경들이 부교를 설치, 폭발물 설치 시점부터 민간인들의 한강인도교 진입을 차단, 민간인들이 한강을 건널 수 있게 해주었으며, 그래서 한강인도교 폭파 당시에 죽은 사람들은 77명의 경찰이었을 뿐, 민간인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 사진은 정확히 언제 찍혔을까? 진실은 정반대였다. 위 사진은 1950년 6월 북한군이 쳐들어왔을 때가 아니라, 6개월 후인 1950년 겨울 12월에 찍혔다!
https://m.cafe.daum.net/yoksa/LhOI/8?listURI=%2Fyoksa%2FLhOI https://m.cafe.daum.net/yoksa/J6mt/30?listURI=%2Fyoksa%2F_fav
위 두 사이트 링크를 들어가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설명이 '한강 인도교 옆에 임시로 놓인 부교를 건너 피난을 떠나는 서울 시민들 1951년 4월 29일'이다.
구글로 들어가서 ' 한강 인도교 옆에 임시로 놓인 부교를 건너 피난을 떠나는 서울 시민들 1951년 4월 29일'로 검색을 하니, 여러 카페 심지어 유용원의 군사 세계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승만 정부가 한강 부교를 놓아서 민간인들이 무사히 대피했다는 이승만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완전히 허위주장이다!
유엔에서 공개한 사진과 날짜들을 확인하는 아래 링크에서 명명백백하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cafe.daum.net/twowednesday-/pqDK/59
위 사진은 바로 위 사진과 사진의 흑백 밝기만 다를 뿐 같은 사진 임을 알 수 있는데, 자세한 날짜는 1951년 5월 29일이다. 그러니 1950년 6월 25일의 북한군 침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https://www.wilsonquarterly.com/quarterly/korea-70-years-on/scorch-marks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니, 맨 위 사진의 진짜 촬영 날짜가 1950년 12월이다. 자세히 보니 강에 얼음이 얼어붙은 것이 보인다. https://assets.proof.pub/2056/wilsonquarterly/FY0JpVJQFCi4lSLCt0yg_103323.jpg
12월이라 그런지 강이 얼어붙어 있다.
이 점이 저화질 구도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원본의 고화질 구도로 보니 잘 보인다.
원문 설명을 보니 '1950년 12월 손상된 다리 경간 옆에 건설된 한강 임시다리를 건너는 난민들. 유엔 사진(Refugees cross the provisional bridge over the Han River built beside the damaged span of the bridge, December 1950. UN Photo)이라고 적혀 있다.
당연히 이는 1950년 6월 28일 한강 다리 폭파 때 찍힌 것이 아니고, 그때 피난가던 사람들도 아니다. 중공군의 남침을 피해 달아나던 서울 시민들이다.
https://www.news1.kr/photos/details/?1977184
2016년 6월 13일 뉴스원 사이트에 한강 부교가 설치된 사진이 올라왔는데, 이는 '한강 인도교 옆에 임시로 놓인 부교를 건너 피난을 떠나는 서울 시민들 1951년 4월 29일'의 사진과 완전히 동일하다. 당연히 뉴스원에서도 "중공군의 공격을 피해 한강부교를 건너는 피난행렬"이라고 표현했다.
https://archives.seoul.go.kr/item/7778#none 참고로 위 사이트에서 1957년 10월 14일 한강 부교가 개통되었다고 나온다. 아래가 그 부교다. 그리고 1958년 4월 7일부터 인도교 복구공사에 들어가서 같은 해 5월 16일에 완전히 복구 공사가 끝난다.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는 인도교가 끊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서울 시민들은 부교를 타고 한강을 건너며 살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