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화접 1권 제1장 해결사(解決士)와 노인
①
"어이쿠!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구려!"
"알았다, 알았어. 난 죽이진 않아. 그건 잘 알잖아?"
빠바바박!
"우왁!"
선혈이 낭자한 전충(全忠)의 안면에서 다시 선혈이 튀었다. 이곳
항주(杭州)에서는 제법 힘깨나 쓴다고 소문이 자자한 전충이었다.
그는 무참한 몰골로 방바닥에 사지를 뻗었다.
퍽!
"켁!"
묵중한 힘이 실린 발이 쓰러져 있는 전충의 복부를 짓밟았다.
"자... 잘못했소이다. 내 다시는 팽씨 부인을 희롱하지 않을 테니
제발... 이제 용서해주시오."
전충은 사력을 다하여 만신창이가 된 삭신을 일으켜 무릎꿇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만 했다.
그러나 타작은 멈추지 않았다.
사십대 초반의 거한 전충의 육신에 무차별로 권(拳)이, 장(掌)이,
각(脚)이 퍼부어졌고, 급기야 그는 비명을 지를 기력마저 잃은 채
사지를 개구리처럼 늘어뜨리고 말았다.
"엄살부리지 마. 아직 일곱 대 남았어."
퍽! 퍽! 퍽!
이어지는 일곱 번의 격타음.
그때마다 바닥에 널브러진 전충의 육신이 들썩이며 옆으로 구르거
나 또 뒤로 뒤집어졌다.
어느 순간 소리가 멈추자 그의 몸부림도 잠잠해졌다.
"됐어. 이제 끝났어. 네놈이 팽씨 부인에게 못된 수작을 부린 게
꼭 서른두 번이라더군."
거한의 사내를 피곤죽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의 음성은 의외로
낭랑하고 곱기만 했다.
"한동안 바깥출입은 못할 거야. 하지만 몇 달 지나 몸 추스리면
다시 한 번 수작 부려보도록 해. 혼자 사는 아낙네 희롱하기란 누
워서 떡 먹기 아냐? 알았지? 오늘 일로 기죽지 말고 꼭 다시 해보
라구. 요즘 돈벌이가 영 시원치 않아서 말이야."
혼절 일보직전까지 몰려있는 상황에서도 전충은 그 말에 기겁을
했다.
바로 이 마지막 달콤한 말에 넙죽 장단을 맞추었다가 일 년간 목
발을 짚고 다녔던 노삼(盧三)과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인지라 그는
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이고... 그럴 리가 있겠소이까? 내 죽는 날까지 다시는 팽씨
부인 곁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이다. 믿어주시오, 철여협(鐵女俠)."
"쯧쯧! 아쉽지만 할 수 없지. 나 혼자 먹고살자고 인간망종이 개
과천선을 하겠다는 걸 막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
못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돌아서는 무지막지한 폭력의 주인공!
놀랍게도 여인이었다.
늘씬하게 빠진 팔등신의 체형에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흑발
의 여인인 것이다. 키는 여인치고는 훌쩍 커 칠척 장부 못지 않았
다.
여인이 방문을 열자 전충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러나 전충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막 밖으로 나가려던
여인이 윤기 나는 흑발을 휘날리며 돌아선 것이다.
"아참! 깜빡 잊을 뻔했네."
여인이 다시 돌아서자 막 화색이 돌기 시작하던 전충의 얼굴은 퍼
렇게 질려버렸다.
"이틀 전에는 네놈이 도망가는 팽씨 부인의 손목을 낚아채 강제로
입을 맞추고 둔부를 더듬었다며?"
전충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 그게... 어찌된 일인가 하면......."
"그랬어, 안 그랬어?"
"글쎄, 그것이... 그날 소인이 약주가 과해... 그만......."
"그만 입술을 맞추고 둔부를 더듬었다 이거지? 그건 셈을 따로 해
야 돼."
"아이고, 철여협! 목숨만 살려주시오!"
"호호! 난 해결사지 자객이 아냐.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
구. 죽이진 않을 테니까. 하기사 네놈의 골육이 약해 맞다가 뒈지
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서도."
송장과 다름없던 전충이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상체를 벌
떡 일으키더니 여인의 발목을 잡고 죽어라 매달리며 닭똥 같은 눈
물을 뚝뚝 흘려냈다.
"내 정말 새 사람이 될 테니 제발 용서해 주시오. 철여협의 한 주
먹만 더 맞아도 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제발 관용을 베풀어 주
시구려."
오늘 아침 눈을 뜰 때까지만 해도 항주의 뒷골목을 주름잡고 다니
며 거드름을 피우던 전충이었다.
그러나 침실 문을 박차고 이 여인이 뛰어든 순간부터 그의 불한당
인생은 끝나고 말았다. 어떻게든 병신만은 면해야 되겠다는 일념
으로 벌벌 기는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철여협이라는데 그의 불행이 있었다.
"그건 셈을 어떻게 한다? 강제로 입을 맞춘 것이 한 대요, 둔부를
더듬은 것은 한 대론 너무 약하고... 배를 쨀까? 아님 옆구리를
터뜨려? 그것도 아니면 척추를 분지를까?"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여인이었다. 전충은
그만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아니야, 입맞춘 주둥아리는 통째로 들어내고 둔부를 더듬은 손은
손목째 절단내는 게 가장 합리적이겠어."
쿵!
여인이 채 손을 쓰기도 전에 전충은 공포를 감당치 못하고 제풀에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여인은 인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아마도 오른손이겠지...? 제 마누라 엉덩이와 팽씨 부인의 둔부
를 분간 못하던 그 손이......."
우두둑!
"크아악!"
아직 의식이 남아있었는지, 아니면 손이 바스러지는 극렬한 고통
때문이었는지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전충이 펄쩍 뛰며 참담한 비명
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으지지직!
"커― 억!"
턱뼈와 치아가 한꺼번에 박살이 나는 소리와 참혹한 단말마! 그것
을 끝으로 방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호호! 이제 계산이 대충 맞았을 거야."
여인은 툭툭 손을 털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방을 벗어나 밝은 햇
살 속으로 걸어나갔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