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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가음식>
광동음식의 한 계열을 이루는 객가음식을 먹어보자. 이번 여행에서는 두 번에 걸쳐 객가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 광동요리의 특색은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그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우선 식재료의 다양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수용한 문화권의 다양성이다. 바다로 열린 외국과의 교류 입지가 음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프랑스의 에그타르트를 이름도 그대로 들여오고, 외국인의 특성에 맞게 자신의 음식을 변형시켜 탕수육(탕수구루로)을 만들어낸다.
중국에서 외국에 가장 크게 열려 있었던 곳이 광동이다. 바다를 낀 지리적 강점에서 유래한 바 크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북방에서 내려온 중국인을 수용한 남방 문화의 포용성이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든 더 큰 문화적 배경이다. 북방인도 외국인도 포용하는 곳이 광동이다.
북방인 포용은 객가인 문화 수용으로 나타난다. 전쟁과 약탈과 가뭄을 피해 내려온 객가인, 그들만의 언어와 문화와 거주방식을 고집한 객가인 문화가 그대로 보존되도록 만드는 곳, 음식에서도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여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백천해납의 음식문화가 바로 광동음식이다.
광동채는 중국 4대 전통요리 계열이다. 협의로는 廣府菜(광저우채)를 가리키고 광의로는 潮州菜(潮汕채), 동강채(객가채)를 포함한다. 객가음식은 광동요리의 3가지 유파 중 하나이다.
客家菜는 광동요리 중 가장 토속적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가금류, 가축류와 산간식재료를 많이 사용하고 해산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객가채는 동강이나 산간 지방 등 교통이 불편한 곳에서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오랫동안 숙성시킨 요리이므로 자신만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몇 가지 객가요리를 알아보자.
1) 동강염국계 : 광동성 동강 일대의 객가 요리다. 혜주 계열의 요리로 황하강 유역에서 이주한 객가인들의 음식이다. 300여년 전에 동강지구는 영전이었는데,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없어 닭을 삶아 소금으로 절여뒀다 먹은 데서 유래한다. 소금에 절이니 오히려 고소한 맛이 생겨 이후 소금을 이용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여 東江鹽국鷄가 만들어졌다.
혹은 객가인들이 이동해야 되는 이주민의 특성상 닭에 소금을 절여 가지고 다닌 데서 유래한다고 하기도 한다. 껍질은 바삭하고 살코기는 부드럽다. 객가 요리는 육류를 많이 사용하고 약간 짠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2) 동강양두부 : 東江 객가인 요리다. 객가釀豆腐라고도 한다. 돼지고기 생선 새우 버섯 등으로 소를 만들어 두부속에 넣아 구운 다음 바특하게 졸인 요리다. 釀(양)은 객가인 말로 소를 넣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다.
원래 중원의 만두 만드는 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남에 와서 밀가루를 쓰지 않고 요리하여 양두부를 만들어냈다. 밀가루는 남방에서 많이 재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객가인은 두부를 이용한 각종 요리법을 개발하여 두부만으로 한끼 식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 요리를 맛본다.
객가양두부는 2015년 혜주시 비물질문화유산명록에 들어갔다.
3)백참하전계 : 복건성 장정현 하전에서 토종닭에 객가인 막걸리를 넣어 삶은 백숙이다. 껍질이 노랗고 쫄깃거리며 살은 연하다. 하전의 닭은 싸움닭으로도 유명한데 당나라 이후 진상품으로 여러 요리법 중 白斬河田鷄가 최고의 요리로 알려져 있다.
4) 우육환 :쇠고기 완자. 객가인들이 이주해서 밤참으로 팔던 것을 潮州와 汕頭에서 받아들여 완성한 음식이다. 조주와 산두는 객가인과 함께 화교의 큰 줄기로 특히 조주는 화교의 고향이라 일컫는 곳이다. 소고기 완자는 화교들의 음식인 셈이다. 오늘날은 조주와 산두의 대표음식으로 되어 있다. 쇠고기를 통째로 몽둥이로 다져서 섬유질의 쫄깃거리는 맛을 살려 현장에서 요리해준다. (요리는 바이두를 주로 참조함)
이제 객가음식을 몇 가지 맛보고 객가어, 객가인, 객가문화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본다.
1. 小客家
객가인 음식을 먹어보자. 두 차례나 이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광동 음식의 다양성과 객가음식의 한 줄기를 만난다. 객가 음식의 대표랄 수 있는 양두부, 한 입 먹어보는 순간 황홀한 맛에 매료당했다.
상호 : 소객가
위치 : 월수공원 입구 근처
먹은날 : 2019.12.23.저녁
먹은음식 : 객가양두부 33원, 매운 초어 88원, 채심볶음 29원
*객가양두부. 객가 음식중 대표적인 요리다. 고기소를 실제 두부 사이에 넣기는 어렵다. 두부 윗부분에 약간 홈을 파고 고기소를 채워넣고 만든다. 남방에는 밀가루 구하기가 쉽지 않아 두부로 피를 대신하였다고, 북방의 만두 빚는 법을 요리법의 근원이라 했는데, 지나친 해석같다.
두부가 주재료고 고기 소는 고명보다 조금 많은 양을 넣었을 뿐이니 말이다. 음식 맛도 전체적으로 소를 살리는 맛이 아니라 두부의 맛을 살려내는 요리다. 바닥에는 콩을 깔았다. 그것도 두부를 만드는 메주콩을 말이다. 두부의 원조를 넣어 두부의 맛을 한층 더 보강했다.
고기소는 씹는 맛을 보완한다. 두부만 넣었을 때 맛은 어지간하지만 식감은 단조롭다. 입안에서의 감각과 영양을 다채롭게 하기 위한 발상이다. 우리 순두부처럼 부드럽게 만든 요리를 노릇노릇하게 부쳐 콩을 바닥에 깔고 소스를 넣고 졸였다. 여러 식재료 맛이 어우러졌다. 고기의 맛도 부드럽게 두부에도 혀에도 감긴다. 최고의 음식이다.
두부의 다양화가 중국 음식의 큰 특징 중의 하나로 보는데, 이렇게까지 맛과 조리법이 확장된다. 더구나 토속적인 객가채와 만나 우아하고 풍부한 맛을 담으며 고향 서민과 귀족을 다 잡았다.
매운완어, 완어는 우리말로 초어다. 중국에서 가장 흔하게 먹는 민물고기다. 완어를 객가식을 요리하였다. 개운한 음식이 생각나 주문한 요리다. 두부요리에다 이 초어요리를 먹고 압도당하였다.
신라완위, 신라의 맛은 매운 맛 중에서도 개운한 맛이다. 초어와 신라의 매운 맛이 만나 그야말로 개운한 생선요리가 되었다. 고추에 화자오를 넣었으니 비린내는 완전 가시고 상큼 찬란한 매운 요리가 되었다. 속이 아프지 않을 만큼만 맵고 화려한 맛이 되었다.
*菜心은 남방 따뜻한 곳의 대표적인 채소다. 1년에 4번 파종하여 키운다니 일년 내내 길러내는 채소다. 잎을 주로 먹는데, 줄기도 먹는다. 북경에서 줄기채 먹은 기억이 있다.
남방 채소를 객가 요리 방식으로 먹었다. 아주 간단하게 기름에 약간의 간을 하여 볶을 요리다. 채심 본연의 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잎은 익었지만 잎대는 사근거리며 생맛이 살아 있다.
한 끼 실하게 객가요리를 즐길 때 없어서는 안 될 남방 채소 중 하나, 생선, 두부와 함께 온전한 밥상을 만들었다.
윤기 흐르는 쌀알이 사진에도 남았다. 밥알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여실히 감지했다. 길다른 인디카 계 쌀도 이렇게 진화하여 입맛을 돋운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2. <客鼎> 중산5로점
*식당얼개
주소 : 광주시 월수구 중산5로 68호 오월화광장3루 301호
전화 : 020-3866-6239
*먹은날 : 2019.12.24.저녁
먹은음식
* 객정은 대표적인 객가채 음식점이다. 광저우에 10개가 넘는 체인점이 있고, 불산, 심천에도 체인점이 있다.
*객가인 이동
객가인들은 5차에 걸친 대규모 이동을 통하여 남방에 혹은 해외에 자리잡았다. 이동은 북방에서 남방으로 남방 내부에서 서남으로, 화중에서 수평이동이 이루어졌고 해외 화교 이동이 있었다.
1차 이동은 晉의 영가지란 시기의 이동이다 북방 5국의 빈번한 전쟁이 원인이었다. 2차 이동은 당나라 안사의 난 시기이다. 이때 매주와 정주 일대의 정착이 이루어졋다.
3차 이동은 송대 정강 연간이다. 가장 대단위 이동이 이루어졌다. 북송 100년 동안 이주민이 17배 증가했고, 이주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0%를 차지하게 되었다. 송은 나라 전체가 남하했고 상층 인사들은 대부분 강남으로 이주했다. 객가 방언도 확립되었다.
4차 이동은 청대에 일어난다. 광동성 복건성의 객가 인구 증가에 산간의 토지가 척박하여 살기 어려워 동서 이동이 일어난다. 강희 연간 객가인을 대규모로 사천으로 이주시켰다. 순치 시대 해금정책을 펴서 동남 연해 지역 백성 거주금지를 시켰다. 1684년 해금이 해제되자 내지의 빈민들이 해안가로 이주하였는데 주강 삼각주와 홍콩의 객가인들은 이 시기 이주자다.
5차 이동 은1867년이다. 광동성 이주민과 원주민의 12년동안의 싸움으로 객가인을 서부의 고주, 뇌주, 해남도, 광서 등지로 이주시켰다. 4차와 5차 이동 기간에 대규모 해외 이주가 이루어졌다. 대만에 현재 400만이 거주하는데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객가어
당대~오대 시대의 북방인들은 남방으로 이주한 북방인들의 언어는 현지의 방언과 융합되면서 독립적인 방언으로 발전하여 객가어를 이루었다. 객가 방언은 다른 방언에 쉽게 동화되지 않아서 객가 이주민들이 분포하는 곳에는 반드시 존재하였다. 그래서 '방언의 섬' 형태로 존재하는 곳이 많다.
중국의 방언은 북방, 남방 두개의 방언권으로 우선 나뉘고, 남방은 오어, 상어, 감어, 월어, 민어, 객가어 등 6종으로 나뉜다. 객가방언은 광동 강사 복건 사천 광저 성 및 대만과 호남성 일부에 분포한다. (류제헌, 중국의 역사 지리, 1999, 195~206면 참조)
광동성은 언어구성이 매우 복잡하다. 중국의 7대 방언 중 월, 객가 방언은 주로 광동성에 분포하고 민 방언의 두번째 분포지도 광동이다. 광동성은 월, 민, 객가 3대 방언이 절립한 상태인제 이 3개의 방언은 차이가 명확해서 서로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이 세 방언 모두 고대 중국어 독음을 유지하여 중국어의 살아있는 화석으로 이해된다. 3대 방언은 중원문화의 영향이 크고, 중원 선조들이 전입해온 경로가 다르며 현 원주민 언어와 혼합된 비율이 다를 뿐이다.
광동성은 남쪽 끝이어서 대규모 인구이동의 종착지였다. 아열대 계절풍 기후 지역으로 가뭄이 적고, 삼각주, 평원 분지 등 다양한 지형으로 살기 좋은 기반이다. 산이 많아 이동이 불편한 데다 전쟁이 적어서 안정적 언어 집단이 형성되었다.
광주는 월 방언을 사용하며 특히 서관화가 대표 월방언이 된다. 월어는 점차 세력을 넓히고 있는데, 홍콩 마카오 및 많은 화교들이 사용하며, 월 민 객가 방언의 접경지대에서 확장 현상이 나타나 '방언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보통화에도 영향이 나타나는데, 챠오요위(해고하다), 타띠(택시타다) 등등이 그것이다.
민방언은 민남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말로 광동 해안지역에 만이 분포하여 海話라고도 한다. 조주화와 뇌주화로 나뉜다. 潮州話는 광동성 민어의 골간이다. 조주는 사읍과 함께 광동성의 僑鄕(교향, 귀국 교포나 본국 거주 가족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조주화 지역은 인구가 천만, 해외 교포가 천만으로 이곳 출신 거부가 많다. 중심도시 산두가 발전하여 산두화는 조주화의 대표적 언어다.
객가방언은 선조가 광동성에 가장 늦게 도착하여 이미 비옥한 삼각주 등이 개척된 뒤여서 산간에 살아야 했다. '산에는 객가인이 있고, 객가인 아니면 산에 안 산다'는 말이 있고, 객가화를 산화라 하기도 한다. 홍콩에서의 객가어 인구는 줄어들고 월방언으로 대체되었다.
대만에서도 객가어를 많이 사용한다. 대만의 지하철 안내방송어는 중국어, 민남어, 객가어, 영어로 이루어진다. 2003년에는 객가어 방송도 개국하였다.
* 객가 문화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교육을 든다. 이들이 거주하는 토루에는 대부분 학교가 있다. 청나라 때 매주에서는 18명의 한림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이주 전전에도 중원의 사인 집단으로 높은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엇다. 이들은 화교로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면 반드시 고향에 투자하여 교육기관을 짓는다.
두번째로는 종족과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종족 결속력이 강해 토루, 위옥, 객가대옥 등으로 불리는 거주지를 만든다. 중심과 주변이 분명한 건축양식으로 연락이 용이하다. 종족 결속력은 객가어의 전승 요인이 된다. 1971년 홍콩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세계 객가인대회를 여는 것도 종족 애착과 무관하지 않다.
세번째는 근면하다. 구릉산지는 척박하여 성실하게 일하고 단결하여야 했다. 여자들도 밭을 갈고 베를 짜야 했으므로 전족을 하지 않았다. 전족은 이동해야 하고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관습이어서 이들은 天足을 하고 살았다.
(객가문화와 이주는 주로 후자오량 저/김태성 역, 중국의 문화 지리를 읽는다, 2005. 참조)
*화교와 객가인과 광동성
화교는 동남아 9개국 분포 거주자 중 50%는 광동성 출신이다. 아시아 지역 화교는 전세계 화교(4,136만명) 중 75% 정도이므로 전세계 화교의 절반 이상의 고향이 광동성인 셈이다. 광동성은 육로와 해로가 모두 동남아 진출이 용이한 위치다. 청조 건륭제 때는 광동 세관만 남겨두고 복건 등 다른 곳은 폐쇄하였다. 광동화교박물관은 이미 본카페에서 살펴보았다.
싱가폴에는 복건성 출신 화교들이 많다. 돈을 벌면 고향 발전에 투자한다. 천지아겅은 싱가폴 화교로 하문대학을 설립했다.
객가인은 전세계에 8,000만명 정도가 산다. 타이완 인구 12%정도가 객가인이고 동남아 거주 화교 일부도 객가인이다. 이들은 80여개 국가에 살며 객가어를 사용한다. 홍수전, 손문, 등소평, 싱가폴 전 총리 리콴유 등이 알려진 객가인이다.
(김동하, 2000년 화교의 역사, 그 원류를 찾아서, 2017.1. 국제신문 연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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