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고 베드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행전이라고 불리는 단락 (9:32-12:24)으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세 가지 이야기(이적, 회심, 출옥)가 전개됩니다.
32-35절 베드로는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애니아를 만납니다. 그런데 애니아를 치유하는 모습만 아니라 결과까지 흡사합니다(눅 5:17-26).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처럼, 베드로도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치유는 치료를 넘어 신앙과 일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 한 사람의 치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계기가 되어, 나음(치유)이 낳음(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36-42절 이번에는 이적의 대상이 제자이고, 여성이며, 아픈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지체들의 간청에 따라 욥바로 내려갑니다. 선행과 구제에 본이 되던 제자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웠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회당장 아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처럼(눅 8:52-55) 베드로도 다비다를 살립니다. 유대 땅만 아니라 이방 땅에도 사망이 물러가고 생명이 왔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고치고 살리며 놀랍게 진전합니다.
42절 베드로가 행한 이적들은 예수님의 약속대로(막 16:17,18) 행한 것이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이며, 예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입니다. 공생애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그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목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고, 모든 사역의 목표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35절) 주를 믿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나의 제자 만들기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 삼기에 전념하는 공동체입니까?
43절 베드로는 무두장이의 집에 기거합니다. 짐승의 시체를 접촉하는 일은 유대법상 부정한 일이기에 베드로의 행적은 세리 삭개오의 집을 찾으신 예수님처럼 유대 정결법의 틀을 깨는 파격 행보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치고 살리며 정결의 장벽도 넘어섭니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10장)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내 안의 장벽을 허문다면 우리도 거침없는 복음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매일성경, 2024.05/06, p.74-75, 고치고 살리고 넘어서다, 사도행전 9:32-43에서 인용).
① 사울의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고 베드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베드로의 행전이라고 불리는 단락 (9:32-12:24)으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세 가지 이야기(이적, 회심, 출옥)가 전개됩니다. 베드로는 룻다에서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침상에 누워있던 애니아를 만납니다. 그런데 애니아를 치유하는 모습만 아니라 결과까지 흡사합니다(눅 5:17-26).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말씀처럼, 베드로도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치유는 치료를 넘어 신앙과 일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또 한 사람의 치유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계기가 되어, 나음(치유)이 낳음(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② 이번에는 이적의 대상이 제자이고, 여성이며, 아픈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지체들의 간청에 따라 욥바로 내려갑니다. 선행과 구제에 본이 되던 제자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웠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회당장 아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처럼(눅 8:52-55) 베드로도 다비다를 살립니다. 유대 땅만 아니라 이방 땅에도 사망이 물러가고 생명이 왔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고치고 살리며 놀랍게 진전합니다.
③ 베드로가 행한 이적들은 예수님의 약속대로(막 16:17,18) 행한 것이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이며, 예수님의 권능에 의한 것입니다. 공생애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그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목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고, 모든 사역의 목표는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35절) 주를 믿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나의 제자 만들기가 아니라, 주님의 제자 삼기에 전념하는 공동체입니까?
④ 베드로는 무두장이의 집에 기거합니다. 짐승의 시체를 접촉하는 일은 유대법상 부정한 일이기에 베드로의 행적은 세리 삭개오의 집을 찾으신 예수님처럼 유대 정결법의 틀을 깨는 파격 행보였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치고 살리며 정결의 장벽도 넘어섭니다.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10장)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내 안의 장벽을 허문다면 우리도 거침없는 복음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