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雎(관저, 물수리)
關關雎鳩 (관관저구) 끼룩끼룩 노래하는 징경이
在河之洲 (재하지주) 강가 모래톱에 놀고 있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그윽하고 아리따운 아가씨
君子好逑 (군자호구) 사나이의 좋은 짝
參差荇菜 (참차행차) 들쭉날쭉 돋은 마름풀
左右流之 (좌우류지) 이리저리 헤치며 찾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그윽하고 아리따운 아가씨
寤寐求之 (오매구지) 자나 깨나 그리네.
求之不得 (구지부득) 찾아도 찾을 수 없어
寤寐思服 (오매사복) 자나 깨나 애태우네.
悠哉悠哉 (유재유재) 아득한 그리움에
輾轉反側 (전전반측) 잠못들어 뒤척이네.
參差荇菜 (참차행채) 들쭉날쭉 돋은 마름풀
左右采之 (좌우채지) 이리저리 헤쳐 뜯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그윽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와
琴瑟友之 (금슬우지) 거문고와 비파 같은 벗이 되네.
參差荇菜 (행차행채) 들쭉날쭉 돋은 마름풀
左右芼之 (좌우모지) 이리저리 다듬네.
窈窕淑女 (요조숙녀) 아리따운 아가씨와
鍾鼓樂之 (종고락지) 종과 북 치며 즐기네.
한자로 쓰여져 감이 잘 안올 것이니 요즘 노래 가사 형식으로 써보면
물새
까악까악 우는 저 물새
강가 모래 톱에서 홀로 노닐고 있구나
아름다운 저 여인
내 맘에 쏙드는 여인같네
저 물새는 둘쭉날쭉한 풀 헤치며
무언가를 찿고 있네
아름다운 여인
자나깨나 찿아 헤메고 있다네
찿아 헤메도 찿을 수 없어
자나깨나 애만 태우네
아득히 먼 그리움에
잠못들고 뒤척이네
저 물새 둘쭉날쭉한 풀 헤치며
이리저리 헤쳐 알아가니
아름다운 저 여인
금슬과 같은 내 님이 되었네
들쭉날쭉 풀 이리 저리 터치하듯
아름다운 내님과
흐르는 음악처럼 행복하네
寤寐思服 (오매사복) 자나 깨나 애태우네 에서
사 思는 늘잊지 못하고 늘 생각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즉 사랑은 늘 생각하거나 생각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 사랑은 애 愛라고 사용하여 애인이라고 쓰이지만 예전에 愛자는 아끼다 또는 가엽게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
옛말 뜻대로 하면 요즘 이성친구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사랑해서 애인으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니
애인이라는 말은 서양의 love 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온 착오라고 여겨진다.
보통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어지는 것이 애인이니 애인 愛人(불쌍히 여기는 사람)보다는
사인 思人(생각나는 사람) 이라는 말이 요즘 사랑이라는 말의 본 뜻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사랑하는 것은 말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뜻으로
이성친구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이 혼돈스럽고 아무데나 막 쓰는 말이
되었다.
심지어 전화기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런 멘트까지 하는 것을 보면 어색하기도 하고 황당하기조차 하다.
언제 봤다고 설마 고객님까지 사랑하겠는가?
그리고 그 사랑이 그렇게 헤퍼도 되는 것일까?
그 속뜻이야 이 상품 좀 제발 사라는 뜻이겠지만
이렇게 사랑이라는 말이 헤프고 더러워졌다.
하느님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여자친구도 사랑하고, 자매님도 사랑하고
심지어 고객님까지 사랑하고
이 뿐만 아니라 동물도 사랑하고, 강아지도 사랑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몰모트, 쥐도 사랑하고
세상에 사랑 안하는 것이 없을 지경이다.
이처럼 사랑이 흔하고 헤퍼지고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우리 무의식속에 사랑이 없어져 가는 것을
가리기 위한 화장 또는 분장과 같은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요즘 쓰는 사랑이라는 한글도 사량 思量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량 思量은
1.고려하다
2.생각하다
3.그리워하다
라는 뜻이다.
부부금슬이 좋다고 할때 금슬 琴瑟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 됐는데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어울리는 모양처럼 잘 어울리는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과 사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鍾鼓樂之 (종고락지) 종과 북 치며 즐기네는 요즘말로 밀땅이나 리액션같은 뜻일 것이다.
관저라는 시는 남자가 여자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는 과정과 사귀는 과정을 물수리라는 새가
물풀을 헤쳐나가는 것에 비유한 노래가사이다.
시경이 쓰여진 시대는 BC 47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지금부터 약 2500년전에 편집된 것이고
서주(西周) 초기(BC 11세기)부터 춘추시대 중기(BC 6세기)까지 전승된 많은 시가 실려 있다.
즉 2500여년 전에 그 이전인 3100년전부터 전해 내려온 노래가사를 기록하였으니 거의
3000천여년 전의 노래인 그 당시 유행가 가사인 것이다.
지금 눈으로 봐도 은근히 야하기도 한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의 감성이 요즘 못지 않게
개방적이고 심지어 외설적인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요즘 유행가 가사로 써도 방송심의위원회에 걸릴만한 수위의 노래 가사이다.
공자님은 관저라는 시를 보고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저〉라는 민요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쳐 음탕하지 않고, 애잔하지만 몸을 상할 정도는 아니다.
라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관저라는 시를 보면 요즘의 유행가사 못지 않게 감성적이고 비유가 들어가 있지만 약간 외설스런
느낌도 주는 그런 시입니다.
즐기되 지나쳐 음탕하지 않고 애잔하게 슬프되 몸을 상할정도는 안된다.
아 말씀은 청춘 뿐만 아니라 갱년기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기분이 좋아 어떤 일을 즐기되 너무 즐거움에 빠져 음탕하게는 되지 말고
센티멘탈하고 애잔한 느낌을 가지되 우울증이나 신경성 위장병을 앓을 정도가 돼서는 안됩니다.
어쩌면 공자님은 이미 청춘이나 사랑이나 쓸쓸함과 외로움 등의 감정의 해로움을 느끼고
애매하기는 하지만 이미 그 기준을 정해놓으신 것 같습니다.
기쁨이 자신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느낌이라면
즐거움이란 외부의 어떤 대상을 보고 느껴지는 좋은 감정입니다.
감정적으로 사랑에 빠져 즐기든, 취미생활에 빠져 즐기든, 예술에 빠져 즐기든,
그 어떤 것에 빠져 즐기든 그것이 지나쳐 음탕해져 몸이나 마음을 해치는 정도까지 가서는 안되고
가을이 되어 외롭고 쓸쓸하든, 애인과 헤어져 슬프든, 대학에 떨어져 슬프든
직장을 못구해 슬프든, 갱년기가 되어 괜히 슬프든, 그 어떤 것으로 인해 슬프든간에
상 傷(상처상) 몸과 마음에 상처가 될 정도까지 슬퍼하면 좋지 않다는 것이
공자님의 기준이고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진단인것 같습니다.
청춘이든 갱년기이든 아파도 괜찮은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아프면 안괜찮습니다.
아파본 사람은 누구나 아프면 안괜찮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쁨이든 즐거움이든 우울함이든 슬픔이든
살면서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사람의 당연한 감정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되
그것이 병이 될정도 큰 상처가 될정도 까지에 이르면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이제는
아프면 안괜찮아!
청춘이든 갱년기든
아프면 안괜찮아!
그리고 감정을 느끼되 병이나 큰 상처가 되지 않을 정도만 아파하는 것이 괜찮은 것입니다.
아파서 병이 되거나 큰 상처가 될 정도면 그 흔적은 몸이나 마음에 평생 그대로 기록되어
나중에 병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너무 지나쳐 병이나 상처가 되어 더 큰 질환의 원인이 될 정도에 이르면
전혀 괜찮지 않고 치료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공자님 말씀에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공자님이 다정하게 타이르는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樂而不淫, 哀而不傷
청춘이여! 갱년기여!
즐기되 거기에 너무 빠져 음탕하게는 되지 말아라
쓸쓸하고 슬퍼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되 몸이나 마음에 상처나 병이 되게는 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