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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사랑 리필☆]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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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리필]
이지영 시집 / 시문학시인선 528 / 시문학사(2015.10.10) / 값 1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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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리필
이지영
한 생 살아가는 동안
그중 중요한 테마는 사랑
커피를 마시듯 사랑 리필을 한다
달과 별 들짐승 산 노을도
지고 돋고 꽃단장하지만
사랑은 지지 않는 계절도 없이 피는 꽃으로
사랑 리필을 계속 한다
갈 수 있는 거리 저만큼에 있는 그대
만월 찬 바닷가에 등대처럼 불기둥을 세우고
밀림의 미로에서 소나기를 만나듯
다시 마시고 다시 느끼고
내 몸에 심지 세워 불을 붙여주며
그대 마음 따스하게 녹일
살아있는 사랑놀이 한다
그대가 철책에 가려 바위에 막혀
갈 수 없는 거리에 서 있다 해도
신새벽 어둠을 뚫고 부르튼 맨발로 찾아가리
커피를 찾듯 끝없는 목마름을 적셔줄
내 생애 가장 갈증을 일으키는
일으켜 갈증을 달래주는 사랑이여
기도
이지영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리
가득 차 넘치는 탐심을 보리고
빈 가슴으로도
허허롭지 않은 가득함이 되게 하리
채우고 비움이 따로가 아닌
둘이면서 하나인
그런 무소유로 살아가게 하리
무소유가 소유임을 알고
비움이 채움임을 알게 하리
가난이 곧 부자임을 알고 살게 하리
꽃비를 맞으며
이지영
꽃비가 내린다
바람 일으키는 파도로 춤추며 내린다
꽃잎이 되는 화혼의 환생인가
지는 꽃잎으로 환생으로 꽃잎하는 낙화인가
아등바등 살아온 생生
무한과 유한의 벽을 넘어
꽃비로 날아간 미련 없는 삶도
저리 꽃비로 환생할 수 있을까
세월은 강물로 출렁이며 가 닿는 노을녘
비로소 하나 둘 느끼고 깨닫는
꽃비의 의미
눈꽃 사랑
이지영
너는
눈 속을 살로 달려와
내 가슴 과녁삼아 꽂히는
눈꽃송이
나는 갈기 세운 백마로 너에게로 달려가는
불꽃 가슴
가슴과 가슴 사이
불과 얼음 함께 있어
뜨거움과 차가움의 입김으로
키우는
눈꽃 사랑
가을에 서서
이지영
책갈피에 젖는 낙엽을 끼운다
끼워 넣으면
붉고 노랗게 물이 들까
물이 들어
사랑이 될까, 추억이 될까
우린 모두 조락凋落하는 잎새들
잎새들로 생을 찍고 가는
발자국, 떠나 걸으면
생의 어디쯤에 가 닿을까
가을에 서서
물리 물을 보내듯
가 닿을 대안對岸을 마주해 본다
빈 의자
이지영
세월이 갈수록 지빈 의자를 찾는
횟수가 잦아진다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 때나
눈보라가 칠 때는 더더욱
빈 마음으로 빈 의자 주변을 서성인다
언제나 바람과 눈보라는
혼자서도 잘 찾아가는 걸
난
갈 길을 잃어버린 듯 배회하기 일쑤다
그대 떠나가고 난 뒤
의자에 기대어
허전한 마음 쉬어갈
누군가의 그대가 되어줄
빈 의자가 되고 싶다
발을 딛고 사는 이 세상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아
그 길 찾아 떠나기로 했다
꿈을 꾸자
이지영
생과 무덤 사이에 펼쳐진
시간의 바다를 여행하는
삶의 여정旅程 파도 삼아
만선의 꿈을 실은 배를 띄우자
실현되지 못할 꿈이라도
노를 젓다가 수장될 꿈이라도
몰아친 파도의 노도怒濤를 헤치며
파도타기를 하자
꿈의 대안對岸에 부딪혀 정박을 시도해 보자
깨어진 흰 포말로 부서져
넘어지고 쓰러져 다시 수평으로 돌아갈지라도
도전에 도전의 꿈을 파도 위에 띄우자
만선의 꿈을 실은 배를 띄우자
늙어지면
이지영
천둥 번개 소나기 퍼부은 후
깊은 산골 산나리꽃처럼
서녘의 오색 무지개 거친 뒤
떠오르는 노오란 달빛처럼
청초하고 은은한 자태로
조용히 늙고 싶다
해를 쫓고 달빛을 쫓아
얼굴 돌리는 꽃처럼
좋아했던 사람아
치장의 무거운 가식假飾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아프면 아픈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내 안에 있는 꽃 가꾸며 뜨겁게 살다
젊은이여, 역사 앞에서
이지영
첩첩산중으로 시집간 새색씨
살던 도시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
시골 장날 나무짚단 등에 지고 별을 헤며 장에 갔다
소금 설탕 사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노을이 동행이었지
배고픔 이기지 못해 소나무껍질 벗겨
질긴 생을 씹듯 씹어 삼키고
풀뿌리 보리죽에 연명하던 가난으로 가난을 달랬지
그 시절 살기 위해 이민 간 광부와 간호사들 모아 놓고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이국 멀리 와서 궂은일 고생한다고
눈물로 호소하던 약소국의 지도자
옆에서 지켜보던 메르켈 독일 대통령 손수건을 건네주며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위로의 눈물 함께 흘렸지
그들의 고생 헛되지 않아 고속도로 줄을 긋고
팔도가 굴뚝으로 선 공업선진국이 되었지
그 작은 체구의 독단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장구한 역사 가당치나 했었겠나
낡은 혁대, 낡은 구두의 사심을 모른
오직 잘 살아보겠다는 국민 생각의 어버이
사상과 이념의 흉탄에 쓰러졌지
젊은이여, 배고파 보았는가
호의호식 고생을 모른 젊음들아
그대들, 시대의 아픔 모르고는 말하지 말라
그대들의 조상, 그대들의 어버이 고난의 세월
한번쯤 귀기우려 보자
대재앙 앞에서 1
이지영
지진에 쓰나미에
원폭에
자연의 대재앙 앞에 하고
선진문명이 속수무책이다
거대한 무위無爲
하잘 것 없는 인위人爲
이 양극을 지진, 쓰나미, 원전의 페이지로 펼쳐
인간을 가르치는
자연의 법도
인간의 한계와
문명의 한계 사이에서
지구촌은
자연의 질서를 재점검하는 중이다
쌍계사 십리 벚길
이지영
가지마다 천형天刑의종기 타뜨려
피워낸 문둥이들의 미소
십리 벚길 터널은 온통 한샘병 발병지대다
얼얼하게 펄럭이며 부는 바람도
감염이 두려운지
가지 흔들다 피해 가는데
가슴의 바람기 잠재우지 못한
상춘 인파만 발병지대 마다 않고
몰려든다
제철이라도 만난 듯
신명에 겨워 눈썹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한풀인지 꽃몸살기 푸는지
한바탕 춤판이다
쌍계사 ?꽃 피는
천형의 계절
나도 지금 문둥이고 싶다
바보스럽게 사는 오늘
이지영
오늘 또 하루
개벽이듯 어둠을 깨뜨리고
아침으로 열렸다
산골짝 정수리에서 한 방울 물로 솟아나
옹달샘으로 모였다가 바다가 되듯
태어나 반 세기 파도를 헤치고
바다로 흘러나가는 냇물인 나
한 방울 물은 바다와 이어지고
오늘은 어제와 내일로 이어져
시작의 끝은 영원과 맞물리는 불이不二
인간의 죽음도 영혼의 영원함이네
하루의 시작은 영원한 날로 이어지는
이음표 빙점 하나
순간에서 순간으로 찍고 가는
한생의 족지足指인 것을
낮은 곳 골라 멈추지 않는 행보로
강물에 가 닿는 물처럼
그게 사는
바보스런 하루가 곧
행복한 삶인 것을
시인 가수
이지영
일곱 가수의 열창
화면엔
아라비아 숫자의 점수가 뜨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노래는
율律보다 담긴 육성의 소리값이
더 필요했거든
시인은 시로 말한다 했던가
시가 곧 노래요
노래가 시였던 시력 30년
내 시로 어느 가슴을 울릴 수
있었던가
울려 노래가 되어 주었던가
스스로의 노래로도 풀지 못하는
무쇠로 가슴한
시인 가수
맹은지, 피아노 반주
이지영
모델리아니의 목이 긴
상아빛 여인
건반 위에 얹힌 긴 손가락이 피둥피둥 살찐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고
푸른 공중에 무지개를 수놓는다
지진으로 솟구치고 폭발하다가
용광로 도가니 속으로 잔잔해지는 호수
합창 속에서 내 몫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부서지는 것
해와 달리 번갈아 솟아오르듯이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가며 건반 위를 지나간다
살아 있음의 절규여
불행 끝 행복 시작 1
이지영
행복의 춤으로 개업한
시업詩業
이젠 폐업으로 불행 끝
종지부 찍고 싶다
찍힌 종지부로
불행 면할 수 있을까
시로써 일구고 싶었던 터전엔
지금 몇 그루의 나무와
꽃이 피어 있을까
시에 찍었던
그 많은 피리어드들
생의 어느 지점에 찍어두고
잠시 물러서 보는 지혜를
베우고 싶다
적막한 집
이지영
얽매이기 싫어 그만 둔
명예퇴직 교사
석 삼일이 못가 나들이할 곳을 찾아 나선다
사교적이거나 호외향성도 아니면서
그러나 가만 있지 못한 성격 탓에
무언가 하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구십 넘은 시어머니
칠십 넘은 남편 시중에
하루하루가 지옥 아닌 지옥이다
서로가 뜻이 맞지 않아
매일 같은 큰 소리가 울을 넘는 집안
아마도 가까운 날
엄마와 아들의 살풀이굿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온갖 정성들여 만든 아침 식사
먹는 둥 마는 둥
노인정, 복지관 찾아 각자가 뿔뿔이 떠난 후
따끈한 커피향으로 고단함 풀며 내 삶을 조명해 본다
평생 지나고 살아온 일상이나
내 삶이 버거워
한숨 섞인 적막한 집
송년의 밤
이지영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일기장 접듯 접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에
손 모으며
잘 보내진 한해에 감사한다
다시 펼칠 새해는
하얀 백지장
무슨 물감으로 채색해
나날을 매울까
매워
행복으로 칠한 일기장이 되게 할까
경건한 기도 위로
축복이듯 쏟아져 내리는
종소리
간이약
이지영
어미야
오늘은 너 따라 집에 갈란다
영양 줄, 소변 줄을 명줄처럼 낀
95세 골절된 시어머니
하루 간병인 값이
저렴한 요양병원 한 달 병원값이다
오늘은 용양병원으로 옮겨가는 날
집으론 다시 못 올 불귀의 길을 떠나는데
장기요양병원에서는
할머니가 적응할 때까지는 보러 오지 말라 한다
손주며느리는 스킨, 로션, 빨간 빗,
비타민까지 챙겨왔는데
어미야,
오늘은 너 따라 집에 갈란다
이제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
여행
이지영
세계를 돌고 돌아
지구의 반대편 아일랜드 호수 섬에 섰다
솜털구름이 둥실 둥실
코발트빛 하늘을 수놓고
숲길엔 토끼며 노루며 껑충껑충 뛰고
기러기, 청둥오리, 재두루미가
군무를 추는 호수
지상인지천국인지 알 수 없으나
내 걸어 온 길
분명 새벽이슬 맺힌 풀잎의 들꽃들이 흔드는
아름답기보다 청초한 아침의 종소리다
고향 떠난 나그네의 숨결
발걸음 멈춘 이곳에 묻히고 싶다
역사의 현장
― 포드박물관
이지영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던
암흑의 대륙에 백색 기가 펄럭이며
새로운 역사가 열리기 시작한 곳
그곳엔 포드 박물관이 있고
미국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
지상의 발명품 중 으뜸이라는 자동차
디트로이트는 포드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카터와 레이건의 리무진
라이트형제의 동력비행기
에디슨의 발명품 전기 불이
마을의 생명을 밝혀 살아 있게 하고
시골마을의 풍력과 마차,
농사짓는 문명 이전의 모습과 최첨단 과학이 어울려
세기를 놀라게 한 꿈의 역사적 현장
프라하의 봄
이지영
자작나무 숲길에 유채꽃이 만발한 프라하
시공을 넘어 살아 숨쉬는
고풍스런 늙은 도시
혁명으로 폐어가 된 자리엔
동네마다 맥주 술통이 가득하고
영화 프라하의 봄, 그루미 선데이가
스넵으로 스쳐지나간다
암울했던 시절
쨍하던 햇볕은 사라지고
그늘에 숨어 살던 유태인의 창백한 사랑
비틀러브 광장엔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다 총살당한
민주화운동의 순교자 무덤 위로
민주주의 꽃이 활짝 피어
중세의 모자를 눌러쓴 프라하 성 위로
체코 국민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프라하의 밤 야경을 즐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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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열 번째의 시집을 내고 나서
나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의미로
『눈꽃사랑』이란 이름의 시선집을 정리했다.
세월의 추가 움직일수록
민첩함이 사라지고 무디어진 감성이 동행하여
외출하기에 바빠진 게 사실이다.
눈빛만으로 그 어둔 삶,
긴장도 목적도 없는 허약함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애벌레 인생
음악과 차 한 잔의 만남만을 붙잡고 달래며 벗했다.
불현듯 떠오른 ;‘내 속의 나의 존재와 가치’를 생각하며
과거를 회상해 본다.
바람만 불어도 서로가 부대끼며 울어대는 나뭇가지처럼,
눈비에 젖은 아련한 추억의 사연들처럼,
마냥 감성에 흔들리는 삶이었다.
뒤늦게 철이 든 탓일까!
이제부터라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루를 여닫으며
떨림과 울렁거림이 살아 숨쉬는 시를 쓰고 싶다.
그간 책을 낼 때마다 써둔
<시작노트>를 묵혀두기가 아까워 이시집의 끝에 넣어본다.
시인의 독백으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다.
2015년 만추에 평촌 꿈마을 동산에서
이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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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산문
? 시작노트 1
내게 시란 무엇일가?
한편의 시가 내 가슴에 거처를 마련한 순간
내 영혼과의 동거가 이루어진다.
그 시가 완성될 때까지 만지고 또 만지고
사랑이 시작될 때처럼 홍당무가 되어 들뜨고 행복하다.
“시는 기술이 아니라 영감이다”라고 한 플라톤은
스스로 찾아온 시와 사랑을 불사르고 나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되어 세상을 뜬다고 했다.
현대 시법은 기술이라지만……
그동안 한 편 한 편 내 가슴과 영혼이 동거해 온 밀월로 탄생 시킨
열한권의 시가 독자의 눈에 뜨이는 성숙이 별로 없다고 해도
숱한 사랑의 대상과 광기에 사로잡혀 행복해 했던 시간들
남은 내 생애 그 처절한 시의 명줄을 얼마나 붙잡고 시인은 시로 말한다는 시인의 놀를 부를지……?
? 시작노트 4
삶이란 나와 내 주위와의 모든 것에 관계를 만들어 가는 힘이다. ‘참된 실재는 생명이다’라고 말했듯이 나의 존재는 이 세상과 더불어 참으로 중요하고 아름답다. 나의 피눈물 나는 삶,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고뇌하고, 아프고, 항상 물음표를 던지는 나이지만 글을 쓰고 잇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받는 삶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진지하고 긍정적인 삶을 위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 감동 잇는 글을 쓰는 보람 있는 행복한 삶을 나는 사랑한다.
명줄처럼 시시를 잡고 쓴다
날이 갈수록 번식하는 시의 세포, 중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중병앓이 삶을 사랑한다
‘책을 낸다는 건 절망의 고개를 하나씩 넘는 일이다’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만큼 제대로 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책을 낼 때마다 인생이나 문학에 남의 눈에 뜨이는 성숙을 보여주고 싶다.
늘 부끄러움이 앞선다. 스스로 자신의 성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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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詩集 [※사랑 피필※]
[ 해설 ] -
정서여행 그리고 의식의 지도 그리기
채수영(시인, 문학박사)
1. 시적 여행의 길
시는 인생 여정의 길이다. 다시 말해서 삶의 도졌程을 바라보고, 노래하고, 머나먼 길을 가는 여행의 길이 펼쳐진다. 슬픔의 언덕을 넘노라면 고달픈 신음이 들릴 것이고 파도에 휩쓸리는 아슬아슬한 고비가 이어지면서도 기어가야 하는 길에는 희로애락의 가락이 스며드는 시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게 표출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희열喜悅의 노래가 있을 것이고 더러는 가슴을 쥐어짜는 아픔의 가락이 연결될 때, 비극의 물살에 눈물 길도 보일 것이다. 어느 것이든 결국은 삶이라는 명제 아래 자화상을 그리는 일이 삶이고 개성의 표정이 저마다 다르게 다가든다. 이것이 시의 이름이고 삶이 진행하는 노래일 것이다.
시는 개성의 산물이라 말한다. 어떤 삶을 살았던 결과에서는 자기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의 노래요 궁극에서는 개성으로의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에 한정하게 된다. 시를 말할 때 나는 「자기만큼 쓰고, 자기만큼 표현한다」는 말로 정리한다. 이는 자기 삶의 용량이 큰 사람은 큰 그릇으로의 시가 담겨지고 작은 삶을 사는 사람은 그만큼의 그릇으로의 표현이 담겨지게 된다. 그러나 두 경우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서 크거나 작거나의 용량은 시적 감동과는 무관하다. 예를 들면 큰 꽃인 장미의 아름다움이나 작은 별꽃의 아름다움이거나의 차이는 바라보는 차이일 뿐이지 감동의 향기와 꽃으로의 품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적詩的 개성이 담겨 있는가 아닌가의 결과에 따라 평가의 길은 달라질 수 있을 뿐이다.
1993년에 등단한 이지영, 시력詩歷 20여 년에 10여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한 시인의 작품에는 그 나름의 정서가 살아 있어 개성으로의 발언이 때론 속삭임인가 하면 더러는 삶의 곤고困苦함을 탄식하는 소리가 밀물로도 다가든다. 아울러 귀한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90길의 노모에 따라오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때, 시의 표정에는 다양한 소리와 표정이 감지된다. 아울러 사랑의 원론적인 깊이와 허무를 바닥에 깔고 인생을 관조하는 허무의식들이 파랑波浪을 재촉한다. 이제 길잡이를 앞세워 예증의 문을 나선다.
2. 시에의 깊이 찾아가기
1) 시에 대한 생각 엿보기
시인은 시로써 말한다. 이 간단한 명제는 결국 시가 시인이고 시인이 곧 시라는 등식等式을 의미한다. 이 둘의 관계는 밀착되어 같음의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틈새 없는 정서로 특징을 삼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의 삶은 곧 시로써 나타나고, 시는 곧 시인의 삶을 응축凝縮하는 결과물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낯설게하기라는 문학적 표현방법은 시의 경우 은유나 직유 혹은 풍유 등의 시적 장치에 힘입어 변장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위장의 껍질을 벗기면 시인의 진솔한 삶이 들어 있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감하는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문학은 고백이라는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명줄처럼 시를 잡고 쓴다
날이 갈수록 번식하는 시의 세포, 중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중병앓이 삶을 사랑한다
-「시작 노트? 4」에서
「시작 노트?4」에 적힌 시인의 말이다. 병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고 시를 좋아하는 일로 시에 대한 고황膏?의 아픔조차도 숙업宿業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시와 시인의 상관이 깊어지는 현상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시에 대한 절대의 애정이고 사랑의 깊이에 심각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사랑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무한적인 신뢰관계로 나타난다. 마치 아이 낳기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태어난 아이를 보면 그동안의 아픔을 잊고 오로지 사랑으로의 대면에 황홀해지는 예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이로 보면 시를 쓰는 일은 애낳기의 비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 탄생의 과정은 고통일지라도 생명을 바라보는 순간에 그에 대한 고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랑의 샘물이 고여 있기 때문에 시를 쓴다는 이유가 된다. ‘명줄처럼’은 시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행복의 품으로 개업한
시업詩業
이젠 폐업으로 불행 끝
종지부 찍고 싶다
찍힌 종지부로
불행 면할 수 있을까
시로써 일구고 싶었던 터전엔
지금 몇 그루의 나무와
꽃이 피어 있을까
시에 찍었던
그 많은 피리어드들
생의 어느 지점에 찍어두고
잠시 물러서 보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불행 끝 행복 시작?1」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일은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를 거리距離의 미학美學이라 칭하면 미적 완성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과 시인의 감수성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실체의 명확한 초점을 형성하고 이때 비로소 감동의 진원震源을 소유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즉 사물과 시인이 적당한 거리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혜智慧’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위의 시 3연의 주장은 적어도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시인의 노력이 극명하게 보인다. 바로 ‘몇 그루의 나무와 꽃’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목적에의 접근 방법이다. 이지영 시인이 ‘시업’을 숙명으로 선택한 목표에 행복을 발견하는 의도가 보인다. 이는 시에 의하고, 시로 지향하는 오로지 시업詩業의 완성을 위한 자세가 지난至難하고 고난의 일이 될지라도 최후의 아름다운 목적지에 이르는 일이 곧 삶의 최종最終 행복으로 마무리 하고 싶은 뜻과 일치되는 점에 빛이 발하는 비유와 같다. 시와 행복의 등식이 생활의 목적이 되는 것 같은 이지영의 태도는 시의 위의威儀를 높이는 태도로 정리된다.
2) 사랑
사랑은 모든 만물에 에너지 원源이고 생의 기반을 구축하는 근원이기 때문에 동물과 인간을 막론하고 사랑은 곧 생명의 원천이라는 개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모든 시인들은 사랑의 구축이나 실현을 위해 머리를 짜면서 예술의 혼을 투척하는 일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사랑의 실현을 위한 계획으로 삶의 길을 개척하고 생의 의미를 둘 때, 빛나는 의미를 공유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물론 어긋난 사랑도 있을 것이고 눈물로 작별을 고하는 사랑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느 것이든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름이 되는 출발-사랑은 그렇게 출발할 것이다.
사랑, 너를 만나고 온 날은
노을빛처럼 타는 가슴
마음 한구석 반짝이는 물비늘 일어
범람하는 강둑들 맴돌고 있네
사랑,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
심연의 강 흘러 흘러
멈추지 않는 행복이라 해도
그대는 추락하는 꽃이다가
불어오는 바람이 되어 나를 세우네
-「사랑」에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사랑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면 추상적인 근처를 배회하는 일이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가 아닌 둘로부터 시작하는 점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대상을 염두에 둘 때, 사랑은 시작을 알리고 둘이 하나로 결합하려는 마음이 일치할 때, 사랑의 길은 나타나게 된다. ‘범람하는 강둑을 맴돌’다는 것처럼 마음의 격정이 대상을 포섭하기 위해 열망의 기회를 노리는 이미지를 앞세운 시적 표현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사랑의 마음에는 순풍이 있는가 하면 미풍 혹은 강풍 등이 교차하면서 진행한다. 이런 이유로 ‘추락하는 꽃’이 될 때도 있고 상승하는 향기의 배를 타고 천상을 방문하는 것 같은 기쁨을 맛보기도 하기 때문에 사랑 속에는 온갖 색깔로써 아름다움을 장식하는 표현이 등장한다.
사랑은 리필이 가능할까? 물이나 커피를 마시 듯 필요에 따라 마시기도 하고 또 저장하기도 하는 일이 가능할까에 이르면 부정적인 대답이 앞정 서면서 나올 것이다. 시인의 말을 옮김으로써 대답을 대신할 수 있다.
한 생 살아가는 동안
그 중 중요한 테마는 사랑
커피를 마시듯 사랑 리필을 한다
달과 별 들짐승 산노을도
지고 돋고 꽃단장하지만
사랑은지지 않는 계절도 없이 피는 꽃으로
사랑 리필은 계속한다
-「사랑 리필」에서
사랑은 물을 마시 듯 필요의 대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귀하고 소중함으로 다루어야 할 이름이기에 귀중하게 다루면 고귀한 사랑이 다가오고 흔하게 생각하면 사랑은 저급스러운 이미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이지영이 생각하는 사랑은 낙원의 이미지를 동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편안하고 담담하고 아늑하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거리distance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너무 가까이 가면 상대가 보이지 않고 너무 멀리 떨어지면 역시 상대의 존재는 잊음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둘이 하나로 결합하는 데는 조건이 맞을 때, 비로소 결합으로의 빛이 솟아나게 된다. 예를 들면 사진을 찍을 때 거리距離와 빛을 투과하는 조리개가 맞을 때, 비로소 초점이 명확한 선명성의 사진이 되는 이치와 같이 사랑도 두 사람의 관계가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비로소 성숙한 사랑의 성취가 완성된다는 예이다.
이지영의 「사랑 리필」에서 ‘갈 수 있는 거리 저만큼에 있는 그대’에서 쓸쓸한 사랑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저만큼’은 이만큼의 거리보다 먼-가까운 거리 즉 밀고 당기는 거리와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생기를 주는to animate가 아닌가에 거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방황彷徨에의 특성이 있다. 서로 간에 원만한 조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방황의 길이 있고 이 방황의 정점은 언제나 헤맴의 결과로 이어질 때, 번뇌와 시련 혹은 아픔조차도 따라온다. 때문에 사랑에는 항상 눈물이 예비된 정서가 뒤에 따라온다는 것을 쉽게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사랑에는 지혜를 가진 자가 승리자가 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고뇌의 떠돌이인가
봄날 안개 속을 헤매듯
세상 끝나는 날까지 찾아 맴도는 순례인가
사랑은 계량할 수 없는 무게
밀고 당기는 밀물 썰물에 실려오는
만선이었다가
빈 배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사랑은 여름과 겨울의 양극
추위도 더위도 한몸으로 견뎌야 하는
형벌이거나 오아시스
-「사랑의 물게」에서
5연중 1-3연을 옮겼다. 이지영의 시는 호흡이 비교적 길다. 이는 자칫 꼬리를 잡히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울러 시는 응축凝縮이라는 특성을 대입하면 시가 꼭 길어야 한다는 호흡의 문제 앞에 서성이게 된다. 아무튼 이지영의 사랑은 즐거움에 대한 상상보다는 두려움과 아픔을 항상 대비하는 준비의식이 강하다. “사랑의 집을 짓는 동안/헐었다 세웠다를 되풀이하는/죽을 때까지 사랑의 층계 쌓기를 하는/절망 연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끝없는 주저와 희망이 교차하면서 마지막에 얻은 사랑의 맛은 달콤하기 때문에 망설임은 나약懦弱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개념을 도출導出하게 된다. 이런 취향은 매사에 여러 가지에 대입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성품에서 혹은 일상의 관습적인 것들이 지배적인 행동 양식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절망은 희망을 낳는다고 한다. 희망이 절망을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관계는 보완적인 원圓으로의 작용을 하는 이치-우주의 원리와 같다. 밤과 낮 그리고 음과 양의 순환은 기氣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주의 기운을 돌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강조이다.
3) 채움과 비움
있음과 없음은 한 가족이라 말한다. 노자老子는 이런 이치를 말했고, 공자孔子나 장자莊子 등도 한결같이 없음은 있음이고 있음을 없음이라 강조한다. 교실 안은 텅 비었기 때문에 학생으로 채울 수 있고, 수레바퀴는 비어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는 이치를 대입하면 앞에서 언급한 사랑의 이치와도 같게 된다. 이런 이치를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칭한다. 한 가지 이치로 모든 이치를 ‘꿰뚫음’이라는 뜻이 세상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채우기 위해 평생을 고달프게 살고 비움은 한 순간에 절망의 나락이라 여기는 일이 인간의 사고思考에 담겨진 추출물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일생을 소망의 목표로 살지만 막상 비움을 실천하는 일에는 주저와 망설임이 많은 것은 인간에겐 욕망의 그릇이 크다는 뜻이 대입된다. 지나치게 큰 것을 갖는 일은 불행을 불러들임일지 모를 일이다. 너무 크면 채워야 하는 숙제가 불행의 원인으로 적합해지기 때문이다.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리
가득 차 넘치는 탐심 버리고
빈 가슴으로도
허허롭지 않는 가득함이 되게 하리
채우고 비움이 따로가 아닌
둘이면서 하나인
그런 무소유로 살아가게 하리
무소유가 소유임을 알고
비움이 채움임을 알게 하리
가난이 곧 부자임을 알고 살게 하라
-「기도」전문
위의 기도는 모든 인간에게 보내는 교훈적인 베시지이다. 종교적인 의미를 개입할 필요가 없이 중재자에게 보내는 현자賢者의 전달문이라는 뜻이다. 비움이 채움이고 채움이 곧 비움이라는 이치에는 인간이 살아야 하는 진리가 모두 들어 있는 시어의 종합이다. 그러나 채움은 항상 힘겹고 비움을 실천하기는 실상 더욱 어려운 실천항목이다. ‘가난이 곧 부자임을’안다는 것은 범상한 사람들에게는 실천할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이 잡아먹는 이성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무소유가 소유라는 뜻은 역설이다. 그러나 역설의 기법은 강조의 의미이기 때문에 지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이지영의 솔직한 설교에는 힘이 따라온다. 경험으로 지나온 세월에서 얻은 바, 공소空疎함이 아닌 이유에서의 판단이다.
시인은 버림으로써 시를 얻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다시 말해서 군더더기의 언어를 버리고 남는 고갱이의 집합이 곧 시의 감동이라면 시인은 때로 수도사의 임무를 실천하는 현명한 사람이라는 유추가 여기서 나온다.
시를 써온 지 20여년이 지났다 (…중략…) 시는 인간을 이해하는 수단이며, 나는 나를 이해하려고 시를 쓴다. 아직도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죽을 때까지 나를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시작 노트? 3」에서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신전에 하얀 글씨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빌어 그의 철학-‘무지無知에의 지知’를 실천 항목으로 삼았다. 즉 어떤 대상에 아는 것을 제외하고 모르는(무지) 것을 알아 집중으로 공부하고 깨달으면 진리眞理로 나아간다는 실천 지혜의 이치를 뜻한다. 이는 말로써는 간단하지만 실천의 길은 멀다는 점에서 진리가 된다. 20년 동안 시를 썼지만 막상 시 앞에 왜소해지고 초라해지는 감성을 모든 시인들은 갖는다. 갈수록 미궁迷宮해지고 헤매는 일이 다반사일 때, 시의 굳은 성城은 더욱 존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변하기 때문에 모든 시인들은 실패의 맛을 보면서도 다시 시 앞에 매달리는 일이 계속된다. 이지영은 이 경우 시는 곧 신앙이라는 적절한 말로 설명한다.
살아서 하고 싶은 일
즐기면서 일할 수 있음을
행복으로 안고 산다
한때의 열병이었던
문학
그 열병이 신앙이고 기도 되어버린
내 종교일 줄이야
마음 속에 예배당 하나 짓고
신앙으로 사는 삶은 행복하다
-「행복이란」중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종교를 대신하는 것은 시다’라는 말을 했다. 시와 종교의 공통점은 순수와 아름다움과 선善함을 추구하는 점에서 다름이 없다. ‘열병’으로 진전된 시에 대한 추구는 세상 어떤 가치보다도 더욱 공고한 신념의 태도를 보일 수 있다. 거의 맹목盲目의 지경에 이른 모습은 순수의 자세 앞에 시는 더욱 고귀하다. 물론 시를 종교로 생각하는 데는 잡됨이 끼어들 여지가 차단된 자세에서 느끼는 감정이 따스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적 완성에 가치를 둔 자세야 말로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더욱 순수로 포장된다. 이런 모습은 이지영의 시가 갖는 장점이면서 가치로 승화하는 이유로 삼을 만하다. 다시 말하면 절대가치에 시의 위의威儀는 더욱 아름다운 이유가 첨가되는 뜻이기도 하다.
4) 자식에 대한 열정
어머니는 자식에 대해서는 거의 눈먼 장님이 된다.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나를 막론하고 자식은 거의 신앙처럼 고귀함을 갖는 감정이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점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자식만을 위하는 열정은 인간이라 해서 특이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는 본능이 어머니의 힘에 모아지는 일은 동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백한 시인이라 해서 평범한 사람과 다른 것이 아닐 때, 오히려 어머니의 힘은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지영 시인은 아들과 딸에 대한 생각이 두드러진 모습으로 다가든다. 직업상 해외 발령의 아들에게 갖는 애틋함의「공항의 이별」이나「아들의 존재」「그리움도 감당 못하는 가슴」등은 아들에 대한 생각이고「모정」은 딸에 대한 마음이 순수하게 드러난다.
해외에 나가 있는 아들이
온다는 날 밤
잠이 오질 않아
부엌으로 나간다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 떠올리며
갈비찜에, 나물, 두부된장찌게, 감자튀김
밥상 준비에 새벽까지 잠 설치다가
우유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하나
오지 않는 잠
-「그리움도 감당 못하는 가슴」에서
어머니의 맹목적임 모습이 순수하다. 아들을 위해 오로지 헌신하는 모습에 삿됨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끈끈한 모정의 모습에 감동이 간다. 감동은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더욱 승화하는 길인 것 같아 경외敬畏스러운 헌신과 상통해 진다.
아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아마도 우리사회의 전통이 뿌리 깊은 유교 문화적인 특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아들은 대를 잇는 기둥이라는 인식과 한 가정의 완성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더욱 애정의 농도가 깊은 것-이지영의 나이쯤에서 갖는 맹목의 이유일 것 같다. 이는 분신으로의 사고가 성城을 이룬 결과일 것이다.
분신으로 태어난 아들이
해외 발령을 받고
식솔을 거느리고 모두 떠난다
잠시의 이별을 앞에 하고
마치 영이별이라도 하듯
남편은 손자의 손을 꼭 붙잡고
아들과 포옹을 풀지 못한다
-「공항의 이별」에서
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조차 시인과 다름이 없는 아들에 대한 깊은 정이 나타난다. 이는 뿌리 깊은 아들 선호의 정이 깊다는 이미지와 핏줄로의 끈끈함을 의미하는 데는 비단 인간만의 특성은 아닐 것이다. 모든 동물은 자손 번식에 유다른 애착을 갖는 것은 보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손은 결국 생명 연장의 방법이고 이를 통해서 종족보존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순은 딸보다는 아들에 대한 정이 더 깊다는 데 이르면 망연해진다. 이지영의 시적 표현의 숫자에서 딸에 대한 시화詩化는 적기 때문이다.
불면 날 세라 만지면 터질 세라
공주같이 키운 딸
세월 지나 시집가니
잘 살아라, 행복해라
오매불망 자식 위한 기도뿐
잉태의 소식 유산이란 비보로
가슴 떨린 바램 허무로 돌리더니
십년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 손자 녀석
총명함이 천재란다
-「모정」에서
애지중지 키운 딸이 시집을 가는 데는 애달픔이 눈물길로 이어진다. 사랑스런 딸은 아들과 다른 애교에서는 비교할 바가 아닌 특이함이 있다. 아들은 아들대로 사랑의 이유가 있고, 딸은 딸로서의 사랑의 구석이 있다. 막상 딸이 시집가서 자식을 낳고, 뜻하지 않는 불행을 감내하는 지경에서 위로의 몫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대견함을 생각하고 외려 안쓰러워하는 이지영의 모정에는 감당키 어려운 사랑만이 흘러 넘친다. 결국 ‘주어도 주어도 모자란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애정에는 순수와 깨끗함이 감동을 불러온다.
가정은 사회구조의 최소 단위일 때, 가정이 행복해야만 사회의 건강이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목표로 내 건 동양문화의 전통은 서양의 개인 문화현상과는 다르다. 서양은 개인 ‘나’의 문화라면 동양은 ‘우리’라는 혈연문화의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추구의 가치가 다르게 전개되었다. 여기서 가장의 권위는 곧 가정을 지키는 본질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서양은 나의 학교 나의 집이라 말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우리 학교 우리 집이라 호칭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손녀딸이
할아버지 생신날
엄마와의 갈등을 하소연 대신
눈물로 풀어낸다
응석을 받아주던 할아버니
강아지 한 마리 사준다는 약속으로
손녀를 달랜다
(…중략…)
작은 사건 하나 해결하곤
할아버지는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헛기침 소리가 높다
-「사건」에서
할아버지는 가정의 최정점에 존재한다. 이는 가정을 지키는 오랜 관행의 일이지만 권위의 정점이고 이 정점이 질서로 유지될 때, 결국 가정을 지키는 인자因子로 작동되면서 사회의 건강과 발전이 기대된다. 이런 전통은 서구 문화의 유입에 따라 점차 중성화 내지는 전통의 약화를 가져왔고 급기야 우리사회의 문제가 여러 현상의 돌출로 나타났다면 역시 아버지의 권위는 과거와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권위의 재편이나 질서의 새로운 판짜기가 과도적으로 진행하는 혼란의 와중渦中이 지금이다. 「사건」은 손녀와 딸과의 갈등이 와해되는 작은 사건이 할아버지의 개입으로 풀어지는 상징적인 암시는 큰 의미로 발전된다.
5) 삶의 언덕 넘기
살아 있는 자는 수없이 많은 언덕을 넘어야 한다. 작은 언덕을 넘으면 다시 나타나는 허기의 동산이 기다리고 있어 끝없는 시련의 파도는 넘실거리면서 다가든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길이기 때문에 삶은 곧 극복의 명제가 앞장 설 수밖에 없다. 물론 노력과 지혜는 인간이 갖는 최대의 무기일 것이다. 노력하는 자는 항상 희망의 깃발을 휘날릴 준비에 찬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력으로 땀흘리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
슬픈 인생도 삶에 충격이고 전율이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했나?
나는 주부며 선생이었다
나는 시인이다
그 어느 것도 지금엔 열정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살라먹는
가벼운 인생이었다
-「나는 가수다」에서
‘나는 가수다’라는 매체의 프로 중에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우수한 가수를 발굴, 선택하는 내용의 오락프로이다. 이 예는 곧 삶의 치열성과 등가等價를 이루기 때문에 자기로 돌아오는 반성의 목록이 대두된다. 앞에서 말했 듯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이 옳은 비유라는 증명이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치열한 경쟁의 모습을 보고, 노년인 스스로를 반성하는 기회가 참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을 위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삶의 자세가 반듯함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자기 반성의 그릇을 닦아야 한다는 뜻을 대입하면 생의 문제는 곧 자기반성의 길을 확보하는 지혜로 돌려야 할 것이기 말이다. 자기반성에는 대처법이 마련되는 것이다.
낮은 곳 골라 멈추지 않는 행보로
강물에 가 닿는 물처럼
그게 사는
바보스런 하루가 곧
행복한 삶인 것을
-「바보스럽게 사는 오늘」에서
모든 인간은 높이 지향에 열정을 투척한다. 그러나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물에는 경쟁의 치열성이 아니고 정화淨化의 목적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교훈적이다.『노자老子』에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이런 일을 예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음은 남을 위한 배려하는 뜻이 부가된다. 나를 앞세우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배려는 곧 자기존재를 빛나게 하는 우회적인 역할이 되기 때문이다. 이지영은 이런 자세로 일관된 생의 의미를 확장하는 모습이 의연하다. 이른바 바보는 현명한 사람의 이름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3. 마무리에서
시가 분신이고자 노력하는 역할이 시인에게 주어진 영원한 명제일 것이다. 이는 삶의 복잡다기한 모양을 압축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조감鳥瞰으로의 압축성에 삶의 모든 숨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지난至難함을 더불어 극복해야만 도달하는 이름이다. 자기의 생각을 넘어 세계관에 닿는 일은 보편성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사고의 형태에 따라 성패의 여부가 나타난다면 이지영의 시에는 노력의 땀방울이 역력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이 고아高雅하고 광범위하며 이를 해석하는 생각의 질량이 일정한 평가의 지점에 이르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분류로는 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뼈대를 이루면서 삶과 시를 일체화로 생각하는 유연미가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사랑에 대한 가치를 인간의 생에 가장 중요한 근간根幹으로 삼으면서 주변의 사물에 통합의 이미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지대하다. 이는 이지영이 시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삶의 확장성의 길과도 연결되는 제반 문제를 담고 있다. 세 번째는 비움과 채움에 대한 사유思惟가 철학적인 깊이를 찾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이채성이 있다. 이는 허무의 깊이가 곧 인간이 맞닥뜨리는 본질이라는 뜻을 대입하면 다소 거칠다 해도 감상의 묘미를 감추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늙어지면 순명順命의 태도로 받아들이는 마음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틋함과 시어머니의 불편한 몸에 대한 번민들이 길을 헤매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 생의 길과 노년의 신음이 객관적인 아픔으로 다가든다.
가정은 사회질서의 축도이고 자식들을 잘 키우는 것은 얼마나 부모의 역할을 능란하게 수행하는가를 생각하는 점에서 이지영의 시는 다감성을 포장한 은근한 맛을 느끼는 깊이가 있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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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이지영 시인의 시는 자신이 체험한 사물에 대한 정서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정서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갖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그래서 또한 보편적인 것이다. 독자는 그 진정성과 보편성에 쉽게 빠져 들어가서 깊게 공감하게 된다. 거기에는 기법이 라든가, 어려운 철학이 없다, 아예 기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지영 시인의 시는 라이어lyre를 타면 새들이 날아오고 꽃들이 하늘거렸다는, 고대 그리스의 악기에서 나는 보드라움과 흐뭇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라이어’를 어원으로 한 리리시즘lyricism의 한국적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 김규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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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영 시인∥
?『문예사조』신인상 당선, 한국펜 이사, 한국문협저작권 옹호위원, 현대시협 이사, 밀레니엄문학회, 운현시문학회 회원.
? 한국민족문학회, 문예사조문학회 부회장, 세계시문학연구회 이사, 교직생활 25년.
? 시집『그리움으로 달려가 달빛처럼 젖고 싶다』『젖은 날의 일기』『꿈꾸는 밀어』『가까운 사람아 먼 사람아』『산 하나 품고』『사랑으로 가는 바람』『절망의 층계 쌓기』『소멸의 뒤안길』『육부 능선에서서』『서울 속의 바다』 시선집『눈꽃 사랑』
? 문예사조문학상, 문학21문학상, 한국민족문학상, 황진이문학상, 세계시가야금관왕관상, 방촌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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