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김경옥
“웬 일이래?!” 눈이 뚱그레졌다. 새로 이사 간 친구네 시골집 한 쪽 마당이, 밭 한마지기 넓이로 온통 봉숭아꽃 천지다. “뭔 일이여? 이 알록달록함의 의미가! 뭐래?” 함께 간 친구들도 봉숭아 사이사이로 첨벙첨벙 뛰어든다. “내 생전에 이렇듯 봉선화 꽃밭이 넓은 집은 처음 보네! 아~! 이 충만함.” 턱을 높여 하늘을 보며 입을 '쩌~억' 벌린다. 양 팔을 휘 젓는다.
소녀 적 시절에는 ‘첫사랑에 성공해라’는 낭만적인 설렘을 껴안고, 흰 눈 내리는 겨울이 와도 손톱 끝에 봉선화 꽃물이 남아있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그러나 할머니가 손녀 아이들에게 봉숭아 꽃물을 정성껏 들여 주는 뜻은 '예쁘게 보임’ 보다는 병마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오죽하면, ‘손을 씻어요.’ 동요가 있었을까.
생각난다. '나의 주소가 대리엔(Darien, IL.)이었을 때, 유치원생 딸, 헬렌(Helen)이 노래를 곧잘 했었지. <손을 손을 씻어요.> 악보를 펼치고 피아노를 치면, 그녀는 뽀르르 화장실로 달려가 손에 물을 묻힌 후, 수건으로 닦곤 달려 나와 피아노 옆에 서서, “깨끗하게 씻어요. 고사리같이 예쁜 손, 맑은 물에 뽀독뽀독, 우리 모두 씻-어-요.” 입을 크게 벌리고 고개를 까닥까닥.... 뒤뜰 꽃밭엔 봉숭아도 피었었지. 꼬막 같은 그녀 손, 손톱위에 봉숭아꽃잎을 따 으깨어 얹어주었었지.'
헬렌의 혼사문제를 상의하러 목련꽃 피는 4월에 뉴욕으로 갔었다. 공항에서 사돈 되실 내외분을 처음 만났다. 안사돈의 손끝이 번쩍번쩍 요란스러웠다. 내 딸의 손과 손톱이 훨씬 더 화사하게 예뻐 자랑스러웠다. 시골티 나는 평범한 나의 손을 내밀며 수줍음과 감사함 그래도 당당하게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난 부끄러워 혼났어. 손톱관리는 예의인데. 어쩜 한국에서 미국까지 오면서 왜 그냥 와. 그렇게 바빴어? 내일 아침에 네일 샾(nail shop)가자, 예약할게.”
‘봉숭아야, 넌 여름 꽃이지!’ 생각할수록 행복감이 몰려온다.
요즈음도 시골 식당 화단 가에 어쩌다 피어있는 봉숭아가 한 둘 보이면, 내 시선은 저절로 손톱 위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