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 양선례
지난주에 아들의 혼사가 있었다. 스물아홉의 아들이 무려 7년이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며느리를 처음 본 것은 논산 훈련소에서였다.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들이 제대하고 복학하여 졸업할 때도 곁에 있었다. 아들이 취업 하자마자 남편은 정식으로 인사를 오라고 청했다. 기다렸다는 듯 2주가 지나자 바로 왔다. 남편은 이왕하는 결혼이면 하루라도 빨리, 해가 바뀌기 전에 날을 잡으라고 했다. 그런데 예식장을 둘러보고 온 아들이 무려 8개월 뒤로 날을 받아 왔다. 예식장은 많으나 맘에 드는 곳은 그곳뿐이란다. 우리 학교 체육관이라도 빌려줄 테니 얼른 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그 사이 상견례도 있었다. 오래 사귀어 서로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던지라 훈훈한 분위기였다.
학교는 3월이 바쁘다. 새 학기의 시작이라 일 년 계획도 짜야 하고, 새로 맞이한 학생과 교사가 호흡을 맞추는 달이기에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다. 이번에는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빴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별다른 준비도 없이 이대로 있어도 되나 싶었다. 집 구하랴, 예단, 가전제품, 가구, 예물 준비하랴 정신없으리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아들과 며느리의 직장이 제주도다 보니 우리가 준비해 줄 수도 없을뿐더러, 예단은 생략, 가전과 가구 등의 살림살이는 자취방 살림으로도 충분하단다. 한 푼이라도 아껴 집 살 때 보태는 게 현명하리라 생각하면서도 인륜지대사를 이렇게 간단히 해치워도 되나 싶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며칠 전의 꽃샘추위가 사라지고 봄이 성큼 다가온 날이었다. 안경 대신 미리 준비한 렌즈를 끼고 미용실에 갔다. 신랑, 신부도 아닌데 결혼식 네 시간 전에 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안경을 끼던 사람은 끼지 않은 모습이 어색하다. 화장하는 분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눈화장에 공을 많이 들인다. 속눈썹을 붙이고, 라인을 그리고, 색조 화장을 한다. 위, 아래를 봐라, 눈을 감아라, 떠라 등 주문도 많다.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거울을 보니 눈이 크고, 눈매가 또렷한 낯선 여자가 앉아 있다. 주황색 립스틱을 바르는 것으로 화장이 끝났다. 이제는 자리를 옮기란다.
열을 가한 기구에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풀었더니 물결 모양으로 곱슬거린다. 그중 몇 가닥을 잡고, 간격이 촘촘한 빗으로 위아래로 흔들어서 머리카락에 공기를 넣었다. 그 사이사이 엄청나게 많은 스프레이를 뿌려 고정하니, 한 올 한 올이 마치 철사줄처럼 뻣뻣해졌다. 시내 한복 가게에서 빌려서 내 몸에 맞게 조절한 한복으로 갈아입으니 비로소 혼주 느낌이 물씬 난다.
결혼식을 한 시간 남겨 두고 정해진 자리에 섰다. 왜 이 결혼식장이 인기인지 알겠다. 한 시간에 한 팀밖에 없다. 즉 예식홀이 하나다. 그러다 보니 차분하게 손님맞이를 할 수 있다. 다른 팀과도 섞이지 않고 뷔페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아선지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미운 오리와 대학 친구들은 부부동반으로 와서 더 반가웠다. 미운오리 팀에서는 네 번째 혼사지만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서울과 인천에서 하는지라 아무도 가 보지 못했다. 처음으로 가까운 곳에서 하니 여섯 쌍이 다 모여 보기 좋았다. 시댁과 친정 식구도 대가족인데 가정을 이룬 조카들까지 모이니 우리 식구만 해도 많았다. 게다가 비교적 이른 결혼이다 보니 아들의 친구도 엄청났다. 반면에 며느리 쪽은 손님이 드문드문 있었다. 멀어서이기도 하지만 조부가 이북에서 내려온 분이라 일가친척이 적다고 했다.
온통 꽃으로 장식된 결혼식장은 자연 채광까지 더해져 밝았다. 신랑, 신부처럼 양가 부모도 꽃길을 걸어 입장했다. 자녀를 공들여 키운 부모까지 대접해 주는 느낌이었다. 어디에 서서 인사해라, 손을 흔들어라. 사전 연습을 한 탓인지 모든 게 순조로웠다. 신랑의 사진이 정면 화면 가득 뜨더니, 반으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잘 차려입은 아들이 걸어 나왔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런데 바깥사돈의 얼굴이 벌겋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매일 운전하여 통학시켰다더니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아들 훈련소에 보내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울컥한다. 주례 대신 양가 아버지가 축사를 대신했다. 그런데 사돈이 또 울먹인다. 겨우 축사를 마친 사돈이 자리에 앉았다. 다음은 남편이다.
오늘 이 자리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현우와, 제 아들과 평생을 함께할 예쁜 며느리 동희양이 부부의 연을 맺는 날입니다. 학창 시절에 만난 두 사람의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이 놀랍고 또 신기합니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진다는 말)로 만나고, 또 금방 헤어지는 게 요즘 아이들의 사랑법이라는데 이 두 아이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으나, 두 누나를 제치고 추월해서 하는 결혼입니다.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던 시절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주변의 축하를 많이 받았지만, 고모와 이모, 큰엄마의 손을 빌려 맞벌이하면서 힘들게 키웠습니다. 그런 아들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라, 오늘 결혼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금사빠’와 ‘추월’을 읽을 때 하객들의 웃음이 터진다. 당부하는 말과 곱게 키운 딸을 며느리로 보내 주셔서 고맙다는 사돈에게 보내는 인사를 끝으로 축사가 끝났다. 이젠 축가 순서이다. 아들이 이적의 ‘다행이다.’를 감정을 살려 부른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노래를 잘했던가? 두 누나보다 앞선 결혼이지만 요즘처럼 혼인도 출산도 꺼리는 젊은이가 많은 시절에 누구라도 먼저 가면 어떠랴. 결혼한다고 마음을 내어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축제처럼 즐거웠던 아들의 결혼식은 이렇게 끝났다. 마스크 시대가 끝나서 얼굴 드러내고 사진 찍을 수 있는 것도 얼마나 다행인가. 아들 덕분에 나도 연예인급의 화장을 해 봤다. 우리 식구만 살던 집에 며느리가 들어온다. 웃음 많고 소탈한 성품이라 금방 스며들 것이다. 작은딸을 따라서 큰딸에게 ‘언니’라고 부르고, 등에 인형을 업고는 보따리를 묶어 아기 띠를 만들어 달라고 조르던, 초등학교 앞에서 손가락이 떨어져라 오락기를 두드리던 아들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이렇게 또 한 세대가 바뀌고 있구나. 부디 아들의 내일도 오늘처럼 화사하기를 빌어 본다.
그나저나 두 딸은 언제나 결혼하려나. 딸아, 엄마 연예인 놀이 또 해보고 싶다.
첫댓글 축하합니다. 아니 벌써 시어머니가 되셨네요. 아드님이 비교적 빠른 나이에 결혼했네요.
좋으시겠어요. 우리 애도 누나를 제치고 먼저 결혼했답니다.
서른 되기 전에 했으니 이르지요.
아무나 먼저 가면 좋지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혼주 사진이 보고 싶어요. 모두가 꿈꿀법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럴 줄 알고 프사에 올려 두었답니다.
구경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이팝나무 오랜 시간 공들인 보람이 있습니다. 평소 모습과 다른 포스가 느껴집니다. 보는 사람도 미소짓게 하는 단란한 가족이네요. 이미 붕어빵 가족이라고 소문나 있지요?
결혼식장에 있는 듯 생생하네요. 제 결혼식 생각도 나고요. 아드님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도 제 결혼식 이야기를 좀 넣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앞뒤 다 잘랐답니다.
여전히 글쓰기는 어려워요.
축하, 고맙습니다.
정말 축제였지요. 내 아들도 아닌데 나도 울컥하더이다.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그러게요.
신나게 한바탕 논 기분입니다.
재밌게 봤다는 후일담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하 연예인급 화장하신 모습 보고싶네요.
미리 귀뜸해 주셨더라면 달려가 뵀을 텐데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아이고, 나무 양푼이 화장했다고 쇠양푼이 되겠습니까?
(하긴 요새는 나무 양푼이 더 비싸지만요. )
행여 달려오실까 싶어서 일부러 연락 안 드린 걸요.
축하, 고맙습니다.
선남선녀 얼마나 보기에 좋았을까 짐작이 되어 입가에 미소가 머무네요.
혼주 사진 구경하러 프사에 들어가 볼게요.
단란한 가족, 꿀물이 뚝뚝 떨어지네요. 며느님도 아름답고 성품이 밝아 보입니다.
아드님 결혼 축하합니다. 선생님 정말 잘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해 보니까 아주 재밌고 신났습니다.
먼 데, 가까운 데서 찾아 주셔서 얼굴 보고 인사하는 것도 좋았구요.
그저 둘이 잘 살기를 바라봅니다.
광고하는 것 같아 다른 이야기를 쓸까 하다가 이 또한 제가 살아온 기록이라 생각해서 썼답니다.
나중에는 역사가 되니까요.
그 사이에 경사가 있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혼주로서 손님 맞이하고 정신 없으셨을 텐데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여 글로 쓰시다니 역시 작가는 다르십니다.
정말 즐거운 축제였어요.
반가운 얼굴들 만나고 그래서, 아들보다 제가 더 신났답니다.
작가라고 자꾸 놀리시는군요?
히히.
선생님 글은 항상 신명이 납니다. 생생한 묘사에 궁금증까지 더해져서 맛깔스럽습니다. 아드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보내주신 수필집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이쿠!
황선생님의 칭찬에 오늘 하루 운수대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 같은 시어머니를 만난 며느님은 복 받은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