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고독 사나이의 절규! 배호 특집 1부. 총 6부작 (youtube.com)
눈물 고독 사나이의 절규! 배호 특집 2부. 총 6부작 (youtube.com)
가수 배호의 일대기...그의 짧은 삶과 무대와 죽음 (3부) (youtube.com)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 가객 배호의 귀환 | 심성락, 말로, 프랑스인 에티앙이 다시 부르는 배호! 재즈 리듬 위에 흐르는 한국적 멜로디 (121118 KBS 방송) (youtube.com)
눈물 고독 사나이의 절규! (배호 특집 6부) (youtube.com)
가수 배호의 일대기...그의 가난했던 삶과 음악 (1부)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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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가수 배호 --tv 방송분영상과 . 아나운서 ..녹음 리허설 연습.
불멸의 가수 배호명곡 [전설의 노래]
조회수 75,802회 2019. 2. 28.
본명은 배신웅(裵信雄), 호적상 이름은 배만금. 예명이 배호(裵湖)이다. 아버지는 광복군 출신의 배국민이고, 어머니는 김금순(金錦順)이다. 여동생은 배명신(裵明信)이다. 외가 쪽이 음악가 집안으로, 둘째 외삼촌 김광옥은 일본 무사시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윤이상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였으며, 북경심포니교향악단 지휘자를 역임하였다. 셋째 외삼촌 김광수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작곡자로,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를 졸업하고, 바이올린 연주자로 초기 KBS 악단장을 지냈다. 넷째 외삼촌 김광빈은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자로, 초기 MBC 악단장을 지냈다. [활동 사항] 배호[1942~1971]는 중국 산둥성 지난[濟南]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에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1946년 4월경부터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81번지[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서 생활하였다.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서울 창신국민학교를 다녔다. 6·25 전쟁 때는 부산으로 피란을 가기도 하였다. 1955년 서울 영창학교[성동중학교 전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1956년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까지 마쳤다. 이후 음악을 하기 위해 혼자 서울로 올라와 외삼촌 김광빈에게 드럼을 배웠다. 1958년부터 김광빈 악단, 김인배 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였고, 1960년 부평 미군부대 캠프 마켓(Camp Market)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였다. 1963년 21세 때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 두 곡을 녹음하고, 예명을 배호로 지었다. 1964년 낙원동 프린스(Prince) 카바레의 밴드 마스터로 뽑혀 배호와 그 악단이라는 밴드를 꾸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을 타이틀로 한 1집 음반 『황금의 눈』을 내고 공식 가수로 데뷔하였다. 1966년 신장염에 걸려 가을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신진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 배호의 대표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녹음하여 1967년 4월 음반을 발표하였다. 특색 있고 호소력 깊은 음색 덕분에 「돌아가는 삼각지」가 전국 인기 순위를 휩쓸면서 배호는 정상의 인기 가수로 자리잡았다. 이어서 병석에서 발표한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연속 히트함으로써 인기 가수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1968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 등 인기 정상과 더불어 몸이 회복되면서 왕성한 가수 활동 시작하여 히트곡 「안녕」 및 주옥같은 번안곡 등 생애 최고로 활발한 활동과 노래를 발표하면서 본인이 ‘내 생애 최고의 한 해’로 말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차지하였고, 1969년에는 TBC, KBS, MBC 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다. 이후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이 재발하여 다시 병원에 입원하였다. 1971년 7월 마지막 곡들인 「마지막 잎새」와 「0시의 이별」을 녹음하였다.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공연 중에 각혈로 퇴장하고, 동년 10월 20일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 이종환] 출연 후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였다. 동년 10월 30일 세브란스병원 입원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자 퇴원, 미아리 집으로 가던 중 의식 불명으로 자택에서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1966년부터 1971년 세상을 뜰 때까지 왕성하게 음악 활동을 하여 약 5년 동안 300여 곡을 발표하였다. 음반은 독집 20여 장을 포함해 약 70여 종 정도이다. 대표곡으로는 「돌아가는 삼각지」·「안개 낀 장충단 공원」·「누가 울어」·「안개 속으로 가 버린 사람」·「안녕」·「한목숨 다 바쳐」·「당신」·「비 내리는 명동」·「마지막 잎새」·「0시의 이별」 등이 있다. [묘소] 1971년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지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33-1번지 신세계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무덤은 묘원 관리사무실 입구에서 북향 좌측으로 20°도 가량 되는 지점이자 산 정상으로부터 두 번째 석축 아래 줄 노간주나무 근처이다. 배호의 묘 오른쪽에는 어머니 김금순의 묘가 있고, 왼쪽에는 여동생 배명신의 묘가 있다. 사각형 묘비에 「돌아가는 삼각지」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1969년에 TBC 남자 가수 대상,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 대상을 수상하였다. 1970년에는 MBC 10대 가수상, 서라벌 가요 대상 등 29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배호는 MBC TV 특집 여론 조사 가수 기여도 부분에서 1위로 선정되었고, 최초 가요 60년사 여론 조사에서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으며, 『조선일보』 조사 건국 이후 음악 전문가 여론 조사[음악성] 가수 50명 중 6위를 차지하였다. 2000년 11월 배호의 팬들과 용산구민의 민원으로 용산구청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1가 121번지~221번지 삼각지로터리 이면 도로를 배호길로 선정하였다. 대중 가수의 이름이 도로명이 된 것은 배호길이 처음이다. 2001년 11월 13일에는 삼각지로터리의 녹지에 「돌아가는 삼각지」의 가사를 새긴 배호 노래비를 세웠다. 2002년 4월 21일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에서 배호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묘에 두메산골 노래비를 건립하였다. 이 모임은 또 2003년 6월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3리에 마지막 잎새 노래비를, 7월에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아들바위공원에 파도 노래비를, 2011년 11월에는 인천 연안부두에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가사를 새긴 노래비와 흉상을 세웠다. 2003년 10월 20일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03년부터 배호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2005년 5월 20일 소담출판사에서 『배호평전』이 출간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음악노래 8곡
[원본/고음질] 배호(Bae Ho)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 | 12곡 |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안녕, 두메산골, 능금빛 순정 등 (youtube.com)
[원본/고음질] 배호(Bae Ho) (오리지날 힛송 총결산) | 12곡 | 누가 울어,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낀 장충단공원, 안녕, 두메산골, 능금빛 순정 등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