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7 주일설교
왕의 자녀가 주일을 지키는 방법
마태복음 12:1~8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는 안식하셨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성경대로 믿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1) 6일간 계시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것을 계시하실 때 6일 동안 계시해 주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하나님은 하루에 창조했는데 오랫동안 창조했는지 알 수 없다.
2) 하루는 긴 기간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을 여기에 적용해서 창조는 6일은 24시간의 날이 아니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처럼 엄청나게 긴 기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진화론에 굴복하려는 시도일 뿐이며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리 믿음은 사람들의 연구가 아니라 오직 성경에 근거한다. 성경을 허무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 신자는 하나님이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것을 믿어라.
그리고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에 매우 귀한 의미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라.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주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왕으로 통치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이 6일간 왕궁을 완성하신 후 7일째는 그 왕궁에 입주하여 영원한 왕으로 다스리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왕이시고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자식의 기본은 부모를 닮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만들라고 하셨다. 즉 사람에게 창조 사역을 위임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 많아지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자녀를 낳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거룩한 행위이다. 비록 아담/하와의 타락 후에 잉태와 출산, 육아 등이 매우 고된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 출산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생산하는 거룩한 행위로서 사람에게만 주신 특권이다.
지난 금요일에 아들과 자부 합작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손녀를 출산했다. 자연 분만하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노력하다가 안 되어 수술로 출산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해서 이루는 출산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귀한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쉽고 재미있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힘든 일도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그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기쁨을 허락하신다. 자녀 출산은 목숨을 거는 힘든 일이지만 저출산 시대에 신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녀를 낳아야 한다.
힘든 일도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험한 세상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 주일을 지키는 것은 손해와 어려움이 많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많은 복을 주시는 일인 줄 믿어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하는데 그중에 첫 번째로,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처럼 안식하는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여호와가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의 표현이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하면 벌을 받거나 운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은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이는 영원히 안식하는 천국을 연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은 십계명과 모든 명령을 주셨다. 그런 계명들은 전에는 없던 것이 아니고 원래 사람들이 지키고 살던 계명을 잘 정리해 주신 것이다. 제4계명에 안식을 지키라고 하신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려는데 어떤 것은 일이고 어떤 것은 일이 아닌가? 구약 백성들은 유치원생처럼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안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내용을 자세히 열거해 놓았다. 미쉬나는 원래 말로 전해지던 내용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1500년 이상 말로 전해지면서 수정된 부분도 있겠지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그렇게 지켜왔다.
<미쉬나 샤밧 7:2>에 보면 안식일에 금하는 39가지 노동을 이렇게 나열해 놓았다.
(1) 운반하기 (2) 불 켜기 (3) 불 끄기 (4) 끝손질하기 (5) 글쓰기 (6) 지우기 (7) 요리하기 (8) 빨래하기 (9) 바느질하기 (10) 찢기 (11) 매듭짓기 (12) 매듭풀기 (13) 모양 만들기 (14) 쟁기질하기 (15) 심기 (16) 거두기 (17) 추수하기 (18) 타작하기 (19) 키질하기 (20) 고르기 (21) 체질하기 (22) 빻기 (23) 반죽하기 (24) 빗질하기 (25) 실 만들기 (26) 염색하기 (27) 땋기 (28) 베 짜기 (29) 피륙 짜기 (30) 실 풀기 (31) 건축하기 (32) 부수기 (33) 덫 놓기 (34) 털깎기 (35) 도살하기 (36) 가죽 벗기기 (37) 햇볕 쪼이기 (38) 광내기 (39) 표하기.
이런 것을 정할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겠지만 불합리한 것이 많이 보인다. 첫 번째 금령이 “운반하기”인데 여기서 또 질문이 생긴다. 운반하기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식탁에 수저를 놓는 것은 운반일까, 아닐까? 정답은 벽돌 하나 무게까지 가능하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도 이 규칙을 지키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꺾어서 먹었다. 남의 밭에서 이삭 몇 개 꺾어 먹는 것은 도둑질도 아니고 문제가 없다. 그런데 제자들은 39가지 안식일 조항 가운데 4가지를 어겼다. 추수하기, 타작하기, 키질하기, 고르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계명을 어겼다고 따졌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시하고 꼬투리 잡으려고 따라다녔다. 당신 제자들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따졌다.
우리 예수님은 Teachable Moment를 잘 활용하시는 분이시다. 그 순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포함해서 모든 성도를 깨우치려고 두 가지 말씀을 하셨다.
첫째(3-4절), 다윗이 배고플 때 진설병을 먹었는데 성경에서 그것을 정죄하지 않았다는 것.
둘째(5-6절),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성전에서 일을 한다는 것.
7절에서 첫 번째 이야기를 설명하셨는데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지 사람을 율법으로 괴롭히는 분이 아니라고 하셨다. 요즘과는 달리 먹을 것이 정말로 귀하던 그 시절에 제자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허기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밀 이삭을 꺾어 먹었는데 그것이 미쉬나가 정한 안식일 규칙을 어겼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무자비한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경험하라는 뜻이지 안식일을 지키다 쓰러져 죽으라는 것은 아니다. 십계명에서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만 했을 뿐 이삭 꺾는 것은 추수 행위라고 규정하여 정죄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해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안식일 계명보다 더 심각한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진짜로 큰일 날 행동이다.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성전에 올려놓았다가 다음 안식일에 새로운 빵으로 교체한다. 그리고 물려낸 빵은 오직 제사장만 먹을 수 있다. 그런 진설병을 제사장도 아닌 다윗이 먹었으니 성전과 진설병을 모독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은 왜 진설병을 다윗에게 주었을까? 다윗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는데 줄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옛날 보릿고개 시절에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밥이 없으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때는 밥, 라면, 떡, 과자 등 아무것도 없었다. 다윗이 굶어 죽지 않으려고 진설병을 먹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꺾어 먹은 것은 군것질이 아니라 정말로 배가 고파서이다.
지금 우리가 주일을 지켜야 하는데 주일에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주일에 쉬면 수입이 줄기 때문에 주일에 일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내가 20대에는 주일에 쉴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았다. 그럴 때 월급을 적게 받으면서 주일에 쉬는 직장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고 월급을 좀 더 받으면서 주일에 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결과는 주일에 쉬던 사람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주일은 쉬면서 수입이 점점 좋아져서 잘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굶어서 죽더라도 주일을 지키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책임지는 하나님이심을 믿어라.
8절에서는 두 번째 이야기를 설명하시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기에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은 바로 제사장과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라. 이제는 십계명도 안식일도 다 소용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유치원생 어린이에게는 하라/하지 말라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어릴 때 잘 배운 자녀가 대학생이 되면 가르칠 필요가 없다. 대학생이 9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하고 10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규칙을 정해놓으면 공부도 할 수 없고 사회생활도 할 수 없다. 또 부모는 어린이에게 여러 가지 지침을 주지만 막상 부모는 그런 규칙에 매일 수 없다. 만일 유치원생이 부모에게 왜 10시에 잠을 자지 않느냐고 따진다면 더 복잡해진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에게 가르치는 모든 규칙은 필요하다. 하지만 어른에게는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건강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부모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일찍 자기는커녕 잠을 못 잘 수도 있다.
우리는 예배드리기 위해 이날을 직장 일을 하지 않는 날로 정해 놓았다. 주일에 일하지 않고 예배 잘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복주시는 것을 믿어라.
그런데 성전에서 제사장들을 안식일에 번제 드리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일했듯이 신자는 주일에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함께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라. 성도들이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가족과 화목하고 성도를 돌아보기 위해 필요하면 땀을 흘릴 수도 있다. 미국에서 카센타를 운영하는 집사님이 주일 오후에 유학생의 낡은 자동차 무료로 수리해주는 일을 했다. 수원에서 치과원장 집사님이 주일 오후에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해 주었다. 이것은 주일에 먹고 살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봉사이다. 그것은 안식일 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여행하지 말라고 해서 5리, 즉 2㎞밖에 못 간다. 하지만 우리가 봉사활동을 위해 200㎞를 달려가도 된다. 설교하기 위해 2시간을 달려가도 된다.
이렇게 말하면 주일에 뭐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고삐 풀린 망아지같은 생각이다. 어린 망아지는 고삐가 풀리면 이리저리 날뛰기 때문에 붙들어 매야 한다. 하지만 어미 말은 가만히 두어도 날뛰지 않는다. 성숙한 말은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게 하면 묵묵히 일한다.
신자도 마찬가지이다. 성숙한 신자는 주일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규정하기보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생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왕의 자녀이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첫째,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내가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왕의 자녀임을 아는 것이다. 여러분은 왕 되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그가 기뻐하시는 것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