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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의 역사 / 시 106:1-12, 행 2:1-4
성경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절기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순절이 그렇다. 단어를 풀이해 보면 10일을 순이라 한다. 그래서 50일을 오순절이라 한다. 유대에서는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 계셨다. 승천 하신 후 10일 지나 오순절이 임한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10일 동안 제자들은 세가지 일을 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둘째, 그들은 평소에 잘 모이던 한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합하여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셋째, 그들의 기도 중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셨다. 베드로가 갑자기 일어나 예언을 하였는데, 가룟 유다를 대신해 예수님의 삶과 부활을 증거할 수 있는 사도를 택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맛디아를 투표하여 뽑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가 오순절이 되는 때였다.
사도행전의 기록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무엇이냐고 하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일 것이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애 따라서 한 성도의 신앙의 색깔과 모습에 상당한 차이를 가져온다. 다시 말하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가진 의미를 성경이 요구하고 지시하는대로 이해하는 것이 사도행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닌가 한다.
드디어 오순절 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같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이 내린다. 2-4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다는 데에는 놀라운 의미가 있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림으로써 오순절을 지켰다. 유월절은 보리 농사가, 오순절은 밀농사가 끝나는 때이다. 이 두 절기 사이의 기간이 50일이다. 7일이 일곱 번 계속되어 칠칠절이라고도 한다. 맥추절 또는 초실절이라고도 한다. 이때는 모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축제기간이다. 바로 그때 성령이 역사하셨다. 놀라운 사실은 유월절을 지키는 부활절이 주일이고, 오순절이 주일이라는 것이다. 오순절에는 노동(일)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오순절이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 성령이 임한 그 날이 다 주일이다. 또 구약에 보면 오순절에는 재미있는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50일이 지난 후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다. 그 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축복이 날,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인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는데 어떻게 해서 성령이 임하게 되었는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자.본문에 보니까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라고 했다. 그들이 왜 모였나? 행 1장에 보면 에수님게서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에 순종하여 모인 것이다. 모여서 무엇을 했나? 여러분들은 모이면 무엇을 하나?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이야기라면 좋겠는데, 대부분 흉이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이야기를 한다. 이뿐 아니다. 모이면 술마시고 취해서 싸우기도 한다. 놀음(고스톱 등)을 한다. 건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120명의 성도들은 달랐다. 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힘썼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의 모임은 무엇인가? 교회이다. 교회란 어떤 건물이나 조직이나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켜 교회라고 한다. 이들의 모임이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이 되었고, 초대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식이 예배이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성령께서 임재하셨다. 예배는 거룩한 것이다. 예배를 많은 시간 중에서 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여한다는 그런 정도로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예배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받으면서 나 자신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여러분이 한 시간 예배를 드릴 때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성령을 받고 예배를 마치고 나갈 수 있을 때에 한주간을 성령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살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임재하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하셨다. 마음을 모두 드리는 그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그런데 예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기도이다. 행 1:14절에 보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기도에’ 힘썼다고 했다.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셨다. 성령은 나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에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이다. 곧 기도는 우리들 자신을 하나님께 연결시켜 주는 연결고리이다. 수원지에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가정까지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수돗물이 우리 가정까지 오지 않는다. 발전소에서 아무리 많은 양의 전기를 생산한다 해도 우리 가정까지 전깃줄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전기를 공급받을 수 없다. 수도관이 수돗물의 통로가 되었듯이, 전깃줄이 전기의 통로가 되었듯이 기도는 성령이 통로이다. 우리의 심령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연결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다.
그런데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졸라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 7장에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영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따라서 하나하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 먼저 우리들 가운데 성령을 보내주시고,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오순절의 기적은 2천년 전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세계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캐더린 쿨만이 쓴 ‘나는 기적을 믿는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살고 있는 헐버트 터너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부인이 담낭수술을 받게 되었다. 담낭수술을 받기 위해 검사를 하는 도중에 몸에 다른 이상을 발견하였다. 온 몸에 암이 번져 있었다. 3개월 내지 6개월 이상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은 남편 헐버트는 자기 교회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고, 온 성도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였다. 온 성도들이 한주간동안 그 부인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는(중보기도) 시간을 가졌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났다. 병원에서 다시 진단해 보니 온 몸에 번져있던 암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기적은 흔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는 곳에는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여러분, 매일 정기적으,로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일터와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신다. 기도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메마르고 힘없는 신앙생활이다. 교회만 왔다갔자 하지, 영적인 권능은 제대로 갖지 못한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도하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기도하는 심령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기도하는 그 일에 성령이 능력이 드러난다.
성령이 임할 때의 모습은 어떠한가? 2절에 보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라고 했다. 그것은 여기 모인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졸던 사람들도 잠에서 깜짝 깨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님도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신 일이 있다. 요 3: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나훔 1:3절 중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바람같은 소리거 ‘온 집에 가득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말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폭발 직전의 팽팽한 힘이 그들의 몸 가운데, 그리고 그들의 분위기 속에서 경험되어진 것이다.
3절은 또 다른 성령이 임하는 모습이다. 2절이 청각적(귀)이었다면 3절은 시각적(눈)인 설명이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확실히 이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처음에는 불의 혀 같이 보이는 것이 하나의 본체로 나타났다가 그 다음 순간 여러 개로 갈라지며 그 자리에 모인 무리들 머리 위에 머무는 모습이다. 성령이 불로 묘사된 것은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일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자’라고 설명한 일이 있다. 겔 1:13절의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이나 사 6:7절의 ‘입술에 닿은 숯불’도 볼 수 있다. 바람과 같이 터질 것 같은 충만함이 성령이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불로 나타난 것은 그 성령의 강력한 능력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구체적으로 그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4절에 보니까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다. 이제는 성령의 역사가 귀로만 들리는 것도, 눈으로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성령의 바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그 귀에 들리고, 성령의 불이 머리 위에서 보였을 때, 이제 그 성령은 각 사람의 몸을 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령의 충만이란 육체를 건드리는 것이다. 육체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지성 속에, 지적인 모든 사고 활동 속에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엡 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은 주님의 명령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성령충만이란 무엇인가? 내 삶 속에, 내 머리 속에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성령이 나를 통치하시고 지배하신다는 뜻이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한 쓰라린 사건이 있었다. 일본이 한국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그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땅에 일본정부가 들어섰다. 모든 도청 소재지에, 그리고 면 단위까지 관청이 들어서서 일본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일본 군인들과 경잧들이 한국 땅에 가득하게 되었다. 마찬가지이다.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성령이 나를 통치하고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분이 나의 사고가 되시고, 나의 판단이 되시고, 나의 선택이 되시고, 나의 말이 되시고, 나의 모든 것을 하신다는 뜻이다.
성령충만의 결과는 무엇인가? 성령이 나를 통제하시고 언어를 지배하시면 성령이 시키는 말을 내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통치되었다는 증거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이 임재한다는 증거이며 성령이 충만하다는 증거이다. 여러분은 성령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가? 여러분, 찬송을 부를 때 정말 성령님에 의해서 기쁨으로 찬양하나? 아니면 단지 따라하는 것인가? 4절을 다시 보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은 진인격적인 체험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충만이 나타나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내가 말하는 것이다. 이게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생각을 내가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말을 내가 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을 내가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란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사건은 결론이 아니며 분수령도 아니다. 이는 시작일 뿐이다. 이제 성령의 사건은 우리에게, 교회 안에, 끝없이 전개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결심하고 따라갈 때, 우리 교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 12명이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이 일을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충만하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성령의 삶이 되어 살 때 시험을 이기고 선한 싸움의 승리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충만하려고 노력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