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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백[梁山伯]
-중국의 월극(越劇:浙江省 紹興 지방의 극)인 희곡-
남녀의 애정물이 많기로 유명한 월극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며 양산백과 축영대(祝英臺)의 비련을 그린 이야기이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서 인기가 있으며 《양산백과 축영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면학의 뜻을 같이하는 양산백과 남장한 축영대는 의형제를 맺고 항저우[杭州]에 있는 서숙에서 함께 공부한다.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게 되었을 때 축영대는 양산백에게 여자로서의 애정을 고백한다.
그 후 축영대의 진의를 알게 된 양산백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찾아간다. 그러나 축영대는 이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한 뒤였으므로 절망에 빠진 양산백은 죽고 만다. 축영대가 시집가는 날 신부 차림으로 양산백의 무덤을 찾았을 때 갑자기 무덤이 갈라지더니 축영대는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그 뒤 그 무덤에는 두 마리의 나비가 날고 있었다. 옛 민간설화에서 소재를 딴 작품이다.
<출처: 두산백과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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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백전
명나라의 성화 연간에 남양 땅에 양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해 온 명문거족(명문거족)의 아들이었고, 양현도 이들 선조의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아 일찍부터 소년등과 하여 벼슬이 이부상서에 올랐다.
양현은 또한 사람됨이 관후하고 고결하고 뜻이 굳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벼슬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여 선배와 동료들을 예대 하였으니, 그들로부터 공경을 받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하여 다른 충신에 못지않았으니 임금의 은총이 또한 각별하시었다.
그야말로 양현은 당시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부귀영화가 골고루 갖추어져 온 명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양현의 부인 왕씨 역시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부인이었다. 학문과 도덕이 남달리 뛰어났고, 마음이 인자하고 현숙해서 주위 사람들은 물론 비복들 사이에도 열렬한 존경을 받았다. 명문 대갓집 따님으로 남편 못지않은 가문에서 태어나 부인의 교양과 긍지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서로는 좋은 부부였고, 이해 있는 부부였고, 행복한 부부였다. 그들에게 무엇 하나 그리울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행복한 가정의 행복한 주인공들이었다. 여기에서 이들에게 또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양현 내외는 언제나 그 마음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언제나 우울하게 만들고, 슬픈 그림자처럼 마음 한구석에 깔려 있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 우울하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이 없는 비애와 불행을 자식이 없는 부모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리라. 더구나 부모의 나이가 점점 노경에 들게 되면 그들의 생활의 전부가 이 한 가지 불행에 기울고, 이 끝없는 외로움은 그들의 모든 존재를 좌우하게 된다.
양현 내외가 바로 이러한 경우에 처해 있었다. 부인의 나이가 어느새 50에 가깝고 보니 그들의 슬픔과 불행은 대단하였다. 자식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두 내외의 마음은 참으로 간절하였다. 일평생의 모든 행복과 성의를 기울여서라도 단 한 점 혈육을 얻었으면 해서 밤낮으로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렸다.
때는 방춘성화시라 젊은 사람들 같으면 인생의 봄이 왔다가 즐길 때였다. 그러나 50을 바라보는 양현 내외에 봄이 있을 것인가. 자식이 없고, 자식을 원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봄도 한낱 슬픔을 안겨다 줄 따름이었다.
그래서 이 즐거운 봄날의 어느 날 밤, 양현은 자기의 슬픈 마음을 잠시나마 잊기 위하여 후원 높은 누에 올라 월색을 완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혼자서 기울이는 술이니, 그것은 더구나 한 잔 한 잔 가슴에 불행의 불을 갖다 붙이는 것 같기만 하였다. 한 잔 술을 기울일 때마다 가슴은 화끈거리고 뜨거워 올라 무거운 한숨이 길게 터져나올 뿐이었다.
술은 연거푸 여러 잔을 기울였고, 양현은 이와 같이 수없이 술을 마셨을 때, 취기는 그를 사로잡아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난간을 의지하고 스르르 취한 듯이 잠들어 버렸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에 실망한 자의 마지막 절망의 순간인 듯도 하였다.
그러자 꿈속에서 이상한 세계가 그를 찾아 주었다. 이 알 수 없는 세계에 아름다운 채운이 하늘을 뒤덮고, 그 채운 사이로 순백한 거룩한 선동 하나가 난데없이 나타났다.
선동은 양현 옆으로 다가와서 꾸벅 절을 올리고, 낭랑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소자는 천상 선동이더니, 옥제께 득죄 하와 인간에 내치시니 갈 바를 모르고 정히 방황하옵더니만 마침 창해관음보살이 지시하므로 그 분부를 좇아 이리 왔사오니 바라건대 대인은 어여삐 여기소서.”
양현은 이런 말에 더욱 놀라서 그를 붙들고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그를 신비의 세계에서 내치는 결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놀라 깨어 일어나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꿈이라고 하더라도 기쁘기 짝이 없는 꿈이었다. 현실에서 만나지 못한 아들을 꿈속에서라도 만났으니 어찌 되었든 반가운 것이 아니었을까.
양현은 기쁨과 막연한 기대에 넘쳐서 내당으로 갔다. 부인은 이때 등잔불 밑에 앉아 평소의 그 여자답게 《예기》를 읽고 있었다.
부인도 잠시 졸다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두 내외는 서로 거의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내용의 꿈을 꾼 것을 알고, 그것을 이야기하며 여기서 또 한 번 놀랐다. 신비한 기적이 이날 밤 자식이 없어서 슬퍼하는 양현 내외에 똑같이 찾아와 준 것이다.
이날 밤의 두 내외는 한없이 아름답고 열렬하였다. 또 전에 없이 즐겁고 행복하였다. 방춘화시의 아름다운 봄은 이들에게 도와 준 것이었다.
아닌게아니라 이날부터 왕씨는 태기가 있었다. 원근 친척들은 말할 것도 없겠고, 상하 비복들의 기쁨과 놀라움은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열 달 만삭이 되자 해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또 행복한 산모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해산을 할 때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왕씨는 산실이 불편해서 침석을 의지하고 잠시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러자 혼몽한 산모의 눈앞에 별안간 한 쌍의 선녀가 나타났다. 선녀들은 왕씨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해산을 돕다가 아기가 모체에서 떨어지자, 목욕을 시키고 조심스럽게 뉘어 놓았다.
이와 같이 산파 역할을 해준 선녀들은 일이 모두 끝난 후 힘없이 누워 있는 산모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천상 선동이라. 초년에 비록 액운이 있으나 그 액운이 지나면 앞길이 훤히 열려 부귀 세상에 극진하리니 부인은 귀히 길러 후사를 빛내소서.”
그러자 그들은 어디론가 간 곳조차 알 수가 없었다.
산모의 희미한 시각은 차츰차츰 밝아져 왔다. 그러나 선녀들의 인상은 아직도 그 산모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서 떠나지 않았다. 왕씨는 얼른 몇 달 전 태기가 있을 무렵의 꿈을 생각하였다. 그것과 지금의 기적이 어딘가 비슷한 것 같아서 부인은 놀라며 하늘에 무수히 감사하였다.
그리고 왕씨는 곁에 누워 있는 자신의 조그만 분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도 잊고, 숱한 경악과 환희와 감사와 모성애를 느꼈다. 50이 가까운 왕씨는 그제야 비로소 생명의 창조와 그 완성이라는 신비 중의 신비에 참여한 자신에 대하여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아까의 신기한 기적이 왕씨의 눈에 선하게 떠오르곤 하였다. 그래서 더구나 아기가 사랑스럽고 고마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때 남편이 기쁜 얼굴로 달려 들어와 산모를 위로하고 아기를 꼭 껴안았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듯 하였다.
양현은 산모를 위한 탕약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그것조차 옆에다 놓은 채 잊은 듯이 아기만 지켜보았다. 백옥 같은 옥동자요, 기남자가 분명하다고 마음속으로부터 감탄의 소리를 지르며, 아기와 산모에게 번갈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양현의 얼굴에서는 기쁜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기의 눈썹도, 귀도, 코도 그의 마음속에서 마음껏 부풀고 먼 훗날에까지 뻗어서 예언하고 확신하고 격찬해 마지않았다. 그는 아들의 장래를 벌써부터 확신을 가지고 단정하였다. 이렇게 생긴 아들이라면 조상의 유업을 받들어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해줄 훌륭한 아들이 되리라고 예견하였다.
아내가 선녀의 이야기를 하자, 그는 그것에 단정을 내리며 이 아기는 우리 둘 사이의 아기라기보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거룩한 아이이니 하느님을 모시듯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그에 따른 특별한 육아법도 한두 가지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아들의 잘생긴 눈썹이나 귀 심지어는 발가락까지 가리키며 천상의 아들임이 틀림없고, 선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증명해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편의 설명을 누운 채 지켜보는 왕씨는 방글방글 한없이 행복한 웃음으로 대꾸하였다.
양현은 산실을 돌보는 시비가 들어와서야 탕약을 알아보고, 그것을 아내에게 권하고, 시비에게 산모를 잘 돌보라는 분부를 하고 산실을 나갔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산백이라 지었다. 그는 그리고도 몇 번이나 아들을 보기 위하여 산실에 들어오곤 하였다.
양현은 그럴 때마다 아들의 자그만 몸에서 꼭꼭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해서 아내와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았다. 이렇게 해서 즐거운 하루하루는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서 어느덧 아들의 나이가 세 살이나 되었다. 산백은 같은 또래의 아이보다도 숙성하고 말도 잘하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갑절이나 크고 숙성한 것만 같았다. 그것이 도리어 부모의 마음을 걱정스럽게 해줄 정도였다.
양현 내외의 생활은 그 전부가 이제는 이 늦게 얻은 아들에게 있는 듯하였다. 그들의 관심은 모두 아들에게 끌려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볼 때마다 완전히 행복한 듯하였다. 이 때까지는 아들의 건강을 위하여 공부를 그다지 과도하게 가르치지 않던 아버지였건만, 이러한 건강한 소년이 되자 이때부터 본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산백도 물론 어려서부터 재치가 있고 총명하였다. 이런 아이는 보통 언제나 그러하듯이 공부를 잘하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건강을 우려하여 공부에 그다지 힘을 쓰지 않는 것 같은 때에도 그의 학습의 진도는 남의 몇 배로 빨랐다. 이때가 되어 아들의 학습에 열을 내기 시작한 아버지는 그를 유명한 운향사라는 절에 들여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남편의 이러한 결심에 대하여 현숙한 부인도 반대하지 않았다. 원래가 교양이 높고 학문이 깊은 부인은 아들의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산백 자신이라고나 할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느새 열네 살의 씩씩한 소년이 된 양산백은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서동을 하나 데리고 부모의 슬하를 떠나 운향사로 향하였다.
운향사가 있는 산은 매우 깊고 험하였다. 자연의 장엄한 위력과 신비를 자랑하는 온갖 요소로 꽉 차 있는 산이었다. 기암 괴봉이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나, 천 길이 넘을 듯싶은 폭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의 물이나, 늙은 소나무나, 밤이면 무서운 울음소리는 내는 산짐승이나, 아침저녁이면 언제 없어졌다가 찾아드는지도 알 수 없는 깊은 안개나, 대낮의 산봉우리에 걸려 있는 푸른 하늘의 아름다운 흰 구름이나 그 무엇이든 이러한 깊은 산을 상징할 만한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인 엄숙한 분위기를 과시하고도 남을 수 있는 대자연의 공포와 묘를 마음껏 간직하고 있는, 그것은 저 중국의 명산 중의 한 산임에 틀림이 없었다.
열네 살의 나이 어린 소년은 자기를 지켜주는 서동을 뒤에 이끌고, 이 대자연의 신비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참씩 서서 놀라고 음미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산골짜기의 길을 밟아서 더듬어 올라갔다. 산기슭에서 운향사가 있는 주봉의 턱 밑 산중까지는 한나절도 더 걸릴 정도의 먼 길이었다.
그것은 계곡과 절벽과 산을 돌고 돌아서 한없이 뻗어 오른, 때로는 가파르고 때로는 절벽 같은 길을 내려가야만 하는 참으로 험한 산길이었다. 산문 못 미처에 이르렀을 때 같은 방향으로 오는 또 하나 저쪽 길에 역시 같은 차림을, 그리고 나이도 비슷한 소년이 나타났다. 양산백은 약간 의문도 없지 않았으나 그 소년도 산백과 같은 목적으로 오는 것이 그의 눈에 완연하게 보였다. 동자 하나를 데리고 있는 것도 그와 꼭 같았다.
그래서 산백은 처음부터 상대방 소년과 아예 동무가 된 듯한 반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도 이쪽의 목적을 알아보며 반가워하는 듯하였다.
“공자는 어디에서 오시며, 존성대명을 무엇이라 하시나이까?”
하고 상대방이 세 갈래의 길에 와서 서로가 마주쳤을 때, 양산백은 손에 쥔 백우선을 고쳐 쥐며 이 첫 대면의 글동무에게 제법 경의를 표시하면서 먼저 말을 건네 보았다.
상대방 소년도 우선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상대방은 여자 같고 여자 중에서도 실로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양산백은 자신도 모르게 놀랐을 정도였다. 나중에 음성을 들었을 때에는 정말 여자임에 틀림없다 하면서 내심 단정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소생은 평강 땅에서 사오며 추양대라 하오이다. 소생은 본디 머리가 둔하여 글자를 잘 해득하지 못하와 이제 처음으로 운향사를 구경하고자 왔거니와 현형은 어디 계시며 어디로 가시나이까?”
“소생은 남양 땅에 사는 양상서의 독자인 산백이라 하며, 마침 운향사로 공부하고자 오는 길이오이다. 천행으로 존형을 만나매 정이 자연 구면 같으니, 알지 못할세라. 우리 연분이 지중하여 만난 것이 아니로소이까?”
양산백은 말이 오갈 때마다 자신도 알 수 없게끔 이상하게 기쁘기만 하였다. 상대방의 겸손하고,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것 같은 점도 겸해서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주인은 주인대로 기뻐하고 반가워할 때, 동자놈들도 저희들끼리 뒤에서 눈을 마주치며 눈짓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 눈짓은 주인들의 말보다도 더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듯 하였다. 서로는 아무래도 주인이 절로 올라가 행장을 푼 뒤에 조용히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 하고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인들이 이제는 같은 길인 산문으로 향하여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들은 뒤를 약간 떨어져서 걸으면서 무언가 지껄였다.
길은 거기서부터 역시 조금씩 올라가기는 하지만, 조금 넓어져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걷기에 꼭 좋았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옆에서 보기에도 매우 다정스러운 동무처럼 고향 이야기니 집안 이야기니 장래의 포부니 그런 것을 피차 묻고 대답하여 즐겁게 걸어 올라갔다.
이 문답에서 양산백은 자기 자신과 비슷한 가정이며 환경인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추양대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확증은 여전히 그 얘기에서도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남자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흔히 남자 중에도 여자다운 남자가 있고 더구나 이만한 열네 살의 소년일 경우에는 이 소년은 여자였으면 더욱 아름답고 좋았겠는데 조물이 무슨 착오로 이러한 여자 아닌 남자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생각만을 갖고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만약 추양대가 여자라면 처음부터 이와같이 다정할 수도 없고, 또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엄연한 교훈이 있고 보면, 더더욱 남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정도였다. 이토록 산백이 관심을 갖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추양대가 너무도 아름답고 우아해서 여자를 닮은 듯하였다. 그러나 추양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려면 아직도 오랜 시일이 필요하였다.
주인에게 노예의 충성을 맹세한 추양대의 동자놈도 그 한 가지 점만은 언제까지라도 조심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양대를 여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면서도 남자라고 편리한 대로 결론을 지어 버리는 양산백의 의문에는 그것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추양대에게 역시 남자다운 점이 있다는 결과로도 되었다. 그것은 비단 추양대가 남장을 한 데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활달한 성격이라든가 남성적인 취미라든가 의지 같은 데서도 그러하였다. 아무튼 추양대를 낳았을 때 부모가 남자아이를 무척 바랐고 그래서 남자의 이름과 의복을 늘 입혀 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만한 일이었다.
추양대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양산백이 이 세상에 나온 것과 꼭 같은 기적의 경로를 밟아서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서 여자라는 성별만을 제외하고 그 점을 확인하며 똑같이 놀랐다. 부모가 연광이 반이 넘을 때까지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는 것도 두 사람의 경우는 같았고, 열 달 만삭에 꿈 같은 기적을 안고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는 점도 두 사람은 꼭 같았다.
다만 다르다는 점은 저쪽은 여자고 이쪽은 남자라는 점만이 다른 것이리라. 그래서 태몽의 내용도 약간 달랐으나 그것은 여자라고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 추양대가 적당히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에 역시 같았다. 하기야 이러한 나를 낳은 어머니의 태몽 같은 태고의 고색창연한 이야기가 되어서 전해 듣고서야 안다는 그 본래의 성질상 적당히 이야기를 해도 그다지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두 남녀는 이 세상의 햇빛을 쪼일 때까지 신기하게도 같은 비밀을 안고 인간에 내려온 것이니, 장소는 다를망정 때는 비슷해서 나이도 같고 게다가 가정환경도 거의 같으니 실로 하늘이 정해 주신 연적으로 같은 길에서 만났다고 하는 것은 이 또한 무슨 망령된 운명의 장난이라고 할 것인가.
이 세상은 비록 다채롭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우연의 일치가 있어서 오히려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인간은 믿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여하간 추양대의 가정도 양산백의 가정만큼 부유하고, 대대로 부귀영화가 겸비한 행복한 명문거족의 집안이었다. 추양대의 아버지인 추이라는 사람은 양산백의 아버지인 양현 만큼 재주가 있고 가문이 좋아서 일찍 소년등과 하였고 벼슬도 양현 만큼 높직이 상서령에 이르렀다.
추이는 양현과 똑같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강직한 충신이어서 임금의 은총도 두터웠다. 그의 아내도 양현 아내 못지않게 학문과 도덕이 높은 현숙한 여자였다. 한 시대의 한 사회에 있어서 불행한 인간이나 가정이라면 그것도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정도로 대충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이 어린 양산백과 추양대는 서로의 이야기에서 그 점을 발견하고 더욱 반가워하였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의 향수가 있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의 향수가 있다. 그 바로 이 두 소년 소녀의 경험한 감정이 정확하게 증명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천생연분의 두 소년 소녀는 그러나 서로 이성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뒤에 그들끼리 또 역시 향수의 천국을 이루며 따라오는 노비들을 대동하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장래를 설계하면서, 최후의 목적지인 운향사의 자랑스러운 산문을 들어갔다.
그러자 이들의 명랑한 음성을 들었는지, 이 깊은 산중의 장중한 법성을 지키고 있는 몇몇 불제자들이 재빨리 달려 나와 두 소년 소녀를 맞이해 주었다. 중들은 그들의 독특한 겸허한 태도로 합장배례하고, 일찍 나와 영접하지 못한 것을 겸손하게 사과하였다.
“우리 양인은 유산객이라.”
하고 양산백은 아무래도 자기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두 사람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이곳에 유하여 공부를 성사하고자 하나니, 존사는 유벽한 객실을 빌리면 거처하고자 하나이다.”
중들이 이 소년 선비들의 요구대로 법당 뒤 한적한 객실로 인도해 주었다. 그들은 또 이 두 소년을 위하여 거처를 깨끗이 청소하고 공부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만들어 주며 온갖 친절을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 동자들의 멸사봉공하는 충성심도 곁들여 양산백과 추양대는 자기 집에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불전에는 적당히 성의를 보여 불공을 들여놓았으니 불제자들도 만족한 듯하였고 두 소년의 부유한 재력과 명문거족이라는 명예가 그들의 존경을 십분발휘하게 해서 모든 것은 대체로 원만하게 돌아갔다. 공부에 열중하고 시서를 토론하며 즐길 때 동자들은 해방의 감격을 느끼며 법당 한 모퉁이에서 저희들끼리 화제를 만들어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운향사의 이름에 걸릴 만한 말이 나오고, 때로는 중들의 절을 친 그들의 특이한 풍자로 이야기하는 것을 봐도 이 절은 아무튼 부잣집 자제들이 공부하고 수양하기에는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절은 점점 유족해지고, 해마다 이 성의 영역은 넓어지고, 불상과 건물은 늘어나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아졌다.
양산백의 아버지와 추양대의 아버지가 똑같이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안심하고 이곳에 들여보낸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하겠다. 그들은 운향사의 존경받을 만한 후원자들이었다. 동자들은 자기네 주인의 재력을, 그리고 인자한 박애 사상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곤 하였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이와 같은 다시없는 환경 속에서 학업의 공은 나날이 늘어가기만 하였다. 서로는 재주와 총명과 열의에 있어서도 거의 비슷한 적수가 되어서 모르는 것을 가르치고 도와 말하자면 한 사람이 두 사람의 공부를 하는 셈이었다. 그것이 더구나 똑같은 천재들이 다 보니 범인들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급속한 진보를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학업이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괄목하게 발전하는 가운데 어느덧 3년이란 해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학문은 깊고 높아졌으나 양산백이 계속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요즘에 와서 갑자기 추양대를 여자로 단정하고 싶은 마음이 열을 띄어 왔다. 3년의 학업이 이루어지자 그는 서서히 이 중대한 문제를 밝혀 보고 싶었다.
어느 날인가는 서로의 우정을 나중까지 맹세하기 위하여 두 사람은 불전 맹약을 하였다. 서로는 의형제가 되어 죽을 때까지 이 성스러운 우의를 배신하지 말자는 것이다. 생일을 비교해 보니 양산백 쪽이 며칠인가 앞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체격으로 봐도 양산백이 훨씬 크고 위가 됨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 체격을 비교하는 얄미운 장난이 나왔을 때, 양산백은 추양대더러 여자가 되었더라면 더욱 좋았겠다, 그러기만 하였더라면 추양대는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고 다시없는 천생연분이 되어 의형제 대신 부부가 될 수 있는데 하고 대담하게 농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추양대는 정말 여자처럼 양 볼이 수줍게 빨개져 눈을 내리뜨고 특별한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부터 양산백의 의문은 더욱 더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는 공부도 한방에서 하였고 잠자리도 같은 방에서 아래 윗목을 차지하였다. 겨울이면 아랫목을 차지하고 자는 양산백이 추양대더러 가까이 오라고 친절하게 청하곤 하였으나, 추양대는 여전히 윗목에서 잠을 잤다. 언제나 옷을 입은 채로 자는 추양대의 태도는 양산백에게는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에 와서 추양대의 육체적 변화가 점점 눈에 띄고 그것은 아무리 해도 감출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양산백은 추양대의 비밀을 탐지해 볼 결심을 하였다. 3년의 공을 이루고 보니 그의 주위가 산만해지고, 공연한 심사가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엄연한 덕목이 그의 선성을 압도하는 죄악감을 전신에 느끼면서, 그러나 그것을 한편 유쾌하게 생각하기도 하면서, 어느 날 밤인가는 추양대가 깊은 잠이 들었을 때 슬며시 그쪽으로 기어갔다. 여자였으면 하는 기대는 이상하게도 그를 맹렬하게 유혹하였다.
양산백은 되도록 자연스러움을 가장하려고 애썼다. 처음 자기 이불을 그쪽으로 끌어가려고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을 좋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만약 발각되는 경우에는 고단해서 잠을 험하게 잤다는 핑계를 갖기 위하여, 추양대의 옆으로 누운 채 기어가, 그 옆에서 잠시 동안 잠을 가장하고 모든 신경을 모아 상대방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가슴은 두근두근하며 몇 번인가 이 추악한 죄악의 탐색전을 그만 단념할까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런 경우의 내심의 맹렬한 투쟁의 결과 그의 도덕은 완전히 패배해 버리고야 말았다. 그는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초인적인 강한 생명의 약동을 느끼는 듯하였다.
결국 그의 마음의 악마는 승리해서 3년 동안의 형설지공도 인내력도 도덕적 긍지도 나무아미타불이 되어 마침내 그는 한 손을 추양대의 이불 속으로 가져갔다. 이때도 그는 비상한 주의력과 경계심을 발동하여 자연스럽게 가장하려고 애썼다. 언젠가 도둑의 이야기를 동자로부터 들은 일이 있는데, 그 도둑의 마음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도 그는 생각하였다. 인간은 언제나 도둑이 되고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듯하며, 그는 어둠 속에서도 얼굴을 화끈하게 느끼며 이내 그 손을 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힘 대신 추양대의 힘에 의하여 그 손은 돌려졌다. 그는 일부러 잠짓을 해 보이며, 몸을 한 바퀴 커다랗게 뒤쳐 자기 이불 쪽으로 돌아누워 여전히 씩씩 자는 척하였다. 이 때 아닌 침범에 놀라 추양대는 이불을 제치며 일어나 앉았다.
“아무리 곤하기로 무슨 잠을 이토록 험하게 주무실까!”
하고, 그 자는 머리맡의 촛대에 불을 켜고 그 불빛으로 양산백의 자는 광경을 살펴보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반대 방향으로 누워서 여전히 곤하게 자는 척하는 양산백은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죄악감에 죽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잠짓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그러자 그의 죄악감은 사라지고, 이제는 호기심이 또다시 그의 마음에 살아서 여자가 틀림이 없다는 단정을 내리기에 그는 내심 주저하지 않았다.
추양대는 양산백의 변태적인 모험을 잠짓으로만 믿는 듯하였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아 책을 펼쳐 놓고 보기 시작하였다. 양산백도 역시 잠이 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일어나 앉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자는 척하였다. 그것이 더욱 어려운 고역이었다.
이로부터 며칠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양산백 자신이 접근을 피하였고 조심스럽게 날을 보냈다. 양심과 도덕이 승리를 한 일종의 자숙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의 악마가 완전히 죽어 버린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자신을 누르고 그것은 머리를 쳐들어서 그의 모험심을 선동하는 수도 있었다. 어쨌든 양산백은 이와같이 자숙하면서도 일정의 거리를 두고 추양대를 관찰하고, 여자라는 자기의 확신에 더욱 분명한 증거를 잡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눈살이 찌푸려질 보다 추악한 탐색의 방법도 생각이 났으나 그의 도덕심이 그런 방법만큼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런 중에도 서로의 우정은 더욱 가까워졌다. 본능이라고 할까 무엇인가의 초연한 힘이 서로의 마음을 자꾸만 끌어당기고 있는 듯도 하였다. 그것은 우정을 넘어서서 애정의 접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로는 똑같이 이 애정의 성질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런 중에도 양산백은 더구나 초조한 듯하였다. 여자라는 증거만 분명하게 잡는다면 그는 대번에 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노예의 맹세를 해 보이고 싶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점점 흥분에 올랐다.
이에 비하여 추양대의 쪽은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학업을 완성하고 이제는 돌아갈 때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것을 잘 마치고 돌아가면, 집에 돌아가서도 부모를 통하여 적당히 예를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양산백에게 구혼을 할 수도 있겠다고 낙관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요조숙녀의 미덕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마음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비밀을 완벽하게 지켜 가리라고 생각하였다.
심증을 얻기만 한 양산백은 여전히 불안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공부도 되지 않았다. 공연스레 혼자서 산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우두커니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산새들이 서로 좋아서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알 수 없는 기묘한 감동에 흥분한 채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어떤 때는 묘한 생각이 나서 추양대의 동자를 산으로 데리고 가 그의 주인에 대한 비밀을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그것은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이러던 어느 날 양산백의 의문은 또다시 맹렬한 힘을 가지고 그의 마음에서 머리를 쳐들어왔다. 그는 그야말로 악마의 포로가 되어 그것의 지배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겨 버린 듯하였다.
이날 밤 양산백은 그때 이후 처음으로 대담한 모험을 시도하였다. 추양대는 매우 곤하게 잠들은 듯하였다. 창문의 달빛조차 없는 캄캄한 방 안에서 잠자는 숨소리는 그것을 증명하였다.
양산백은 자기의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도 하였다. 상대방이 여자라면 이만한 모험쯤은 남자로서 실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공자에게도 부인은 있으며, 성군으로 만고에 이름 있는 문왕도 여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시경》의 첫머리에 요조숙녀를 칭찬한 것도 군자가 할 일이다. 그는 자기의 공상에 날개를 달아서 무한한 허공을 날게 하며 고금의 그럴싸한 실례를 찾아내어 자기의 행동을 변호하기 시작하였다.
추양대가 놀라 눈을 떠서 자기를 비난한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하고 그는 머릿속에서 그에 대한 온갖 준비를 하였다. 범죄자의 심리적 경험과 똑같은 경험을 그도 이 순간에 마음속에서 하고 있었다.
양산백은 자기가 추양대를 열렬히 사랑한다고도 생각하였다. 추양대가 만일 자신의 심중과는 달리 여자가 아니라면 아예 절망해서 자살이라도 해 버릴 정도로 그는 이 세상의 어떠한 애인들보다도 더욱 열광적으로 추양대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기에게 다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감정은 그의 모험적인 행동에 더욱 맹렬한 불을 붙여 놓은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불같이 흥분한 양산백은 전에 없이 대담하게 상대방에게 접근해 갔다. 추양대의 이불 속으로 자기 몸을 바짝 붙여 놓고 추양대의 가슴을 더듬었다. 순간 그는 승리의 환성을 질렀다. 전신의 피가 그 손에 집중되고, 모든 생명력이 그 손끝에 모여든 것 같아 스스로 놀라서 손을 뗐다. 손바닥의 촉감은 뗀 후에도 더욱 선명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도 생각한 일이지만 그 인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았다.
양산백은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 강한 자극적인 육체의 희열을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맹렬해져서 처리하기에 곤란하였다. 되도록 상대방을 잠에서 깨우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모르는 중에 상대방의 비밀을 알아본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써서 그 여자의 옷고름을 풀었다. 추양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유쾌하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부풀어 오른 그녀의 젖가슴과 그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체온은 단번에 그의 모든 존재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는 자기 몸을 그 여자에게 내던지며 얼굴을 들어 그 여자의 뺨에 대고 자기 뺨을 비볐다. 그리고 자기 입을 그 여자의 입으로 가져가려 하였을 때 추양대는 비로소 발칵 놀라며 소스라쳐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추양대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몹시 분격하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 이상 반발을 보이지는 않았다. 양산백은 무어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이 묘한 유쾌하지 않은 감정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자기가 취한 행동에 대한 상대방의 인정을 받고 싶은 필요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요구는 그를 또다시 대담하게 하였다.
양산백은 자기의 모험을 사과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한 일이 아니고, 저항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힘, 본능의 욕구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변명하였다. 꽃을 보고 달려드는 나비가 죄인이 될 수 있느냐고 그는 자기를 변명해서 말하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자기를 감추고 있는 추양대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녀를 위로하며 그는 지금까지의 우정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맹세해 보였다. 자기는 처음부터 추양대가 여자인 것을 알았고, 여자이기를 바랐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것은 천생연분이며, 기연이라 할 수 있으니, 서로는 아무리 감추고 떨어지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도 그는 말하였다. 그러는 동안 추양대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울고만 있었다.
그것이 안타깝고 가엾은 듯해서 양산백은 그녀의 옆으로 가다가 어깨를 쓸어 주며 위로해 주었다. 천생연분이란 말과 백년해로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맹세하였다. 그리고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하여 불을 켰다. 추양대는 양산백이 풀어놓은 앞자락 옷을 만지기 시작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