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씨 부인과 설씨 총각의 내기로 만들어진 홀어머니산성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의 대모산에는 홀어머니산성이 있다.
홀어머니산성은 백제시대에 쌓았다고 하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까지는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홀어머니산성이라는 이름은 ‘아홉 명의 아들을 둔 양씨 부인이 아들들과 함께 산성을 쌓았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대모산성’ 또는 ‘백산리산성’이라고도 불린다.
홀어머니산성의 축성에 관한 기록은 1700년에 편찬된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대모산성은 원나라 초에 한 할미가 아홉 아들을 데리고 성을 쌓고, 여기 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산성은 1984년에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남대문 문패 가져오기와 성 쌓기 내기
옛날 순창 고을에는 얼굴이 아름답고 성품도 고운 한 부인이 아홉 명의 아들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부인은 성이 양씨여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양씨 부인’이라 불렀다.
같은 마을에는 설씨라는 총각도 살고 있었는데, 이 설씨 총각은 오랫동안 양씨 부인을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설씨 총각은 “양씨 부인, 이제 아들들도 다 장성했으니, 우리 함께 삽시다.”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절개를 지켰던 양씨 부인은 설씨 총각과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싫다고 했다.
자신이 거절하면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던 설씨 총각이 이때부터 막무가내로 행동했다.
아무래도 그를 쉽게 단념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된 양씨 부인은 “우리 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어떤가요?”라고 하며 내기를 제안했다.
내기는 양씨 부인이 대모산에 성을 쌓고, 그동안 설씨 총각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가서 남대문의 문패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이튿날, 양씨 부인과 설씨 총각의 내기가 시작됐다.
설씨 총각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으로 출발하였고, 양씨 부인은 아홉 명의 아들들과 함께 열심히 성을 쌓았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쉴 틈도 없이 성을 쌓았던 양씨 부인은 마지막 돌을 올리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마침 그때 설씨 총각이 한양에서 돌아왔다.
양씨 부인은 자신이 먼저 성을 완성했으니 내기에서 이겼다고 했다.
그러나 설씨 총각이 양씨 부인의 치마에 남아 있는 돌을 발견하고, 아직 그 돌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이겼다고 했다.
양씨 부인은 자신이 내기에 진 것을 알았지만, 차마 설씨 총각과 결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머리에 치마를 뒤집어쓰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양씨 부인이 쌓은 성이라 하여 ‘홀어머니산성’이라고 불렀고, 지금도 결혼을 앞둔 여성은 이 성을 지나면 안 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