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y:(3205, 얄라드)
낳다, 생기게 하다, 산고를 겪다
얄라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아이를) 낳다, 생기게 하다, 산고를 겪다, 진통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푸알, 호팔,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가장 좁은 의미에서, 얄라드는 아이를 낳는 여자의 행동을 묘사한다(예: 출 1:19, 왕상 3:17-18). 그러나 때로 이 단어는 아버지 편에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예: 창 4:18, 창 10:8, 창 10:24, 창 10:26, 창 22:23, 창 25:3, 대상 1:10-20, 잠 23:22).
이 단어는 아이를 출산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해 사용되거나(예: 창 38:27-28) 심지어 구체적으로 실제로 출산하기 전의 여자의 고통에 사용된 것 같다(예: 창 35:16, 미 5:33).
이 단어는 주로 인간에게 사용되었지만, 때로 짐승들에게도 사용되었다(예: 창 30:39, 창 31:8, 욥 39:1-2,렘 14:5, 겔 31:6). 남자편에서 아이의 출산은 일반적으로 히필형으로 묘사되었지만 때로 칼형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얄라드는 피엘형에서 '산파의 일을 하다' do the office of midwife를 의미한다. 출 1:16을 제외하면, 이 용법은 피엘 분사형으로만 국한된다.
칼의 수동형으로는 일반적으로 니팔과 푸알형이 사용된다.
호팔형은 때로 이와 똑같은 의미로 사용된다(창 40:20, 겔 16:4-5).
히트파엘형은 한번 '그들의 가계를 선언하다' declare their pedigrees나 '조상으로 기록하다' register by ancestry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민 1:18).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이 단어는 주민을 생산하는 것으로서의 도시나 국가를 언급하는 것 같다(예: 사 23:4, 사 51:18, 겔 16:20).
이 단어는 악, 거짓말 혹은 죄를 낳는 자로서의 악한 자를 언급하는 것 같다(예: 욥 15:35, 시 7:15, 사 33:11).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라는 어구는 좌절을 나타내는 생생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찌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사 26:18).
종종 얄라드는 고난을 뜻하는 직유로 사용되었다(예: 사 42:14, 렘 30:6, 미 4:10).
한번, 이 단어는 그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 일어나는 날을 언급한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낳은 분으로 언급된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신 32:18).
이 동사 뒤에는 대격이 오기도 하지만, 종종 목적어 없이 사용된다.
이 동사가 수동태로 사용될 때, 실제의 행위자는 일반적으로 불충분하게 소개된다.
이 단어는 반드시 바로 뒤에 오는 세대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히브리 사상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은 부모가 되거나 이 아이의 후손이 될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된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자 아브라함의 아들로 지칭되는 것처럼, 얄라드는 어떤 사람과 그 후손과의 관계의 시작을 보여준다.
여러 파생어들은 어떤 방식으로 출생과 관련을 맺게된 특별한 측면이나 관계들을 나타내준다. 그렇지만 이런 연관성이 다소 거리가 멀 때가 가끔 있다.
이 단어는 몇몇 주요한 신학적 문맥들에서 사용된다.
족장들의 자손이 무수히 많아 지상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이 되리라는 여호와의 약속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은 그들의 아내가 생산치 못하는 것이었다(창 16:1, 창 17:17, 창 18:13, 창 25:21).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생산치 못하는 자궁으로 출산케 하심으로써 그의 약속을 이루셨다.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 백성들의 삶에 위기가 닥친 그런 때에, 여호와께서는 선택된 여인들이 그들의 백성을 구원할 아들들을 낳으리라고 약속 하심으로써, 그들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에 달려 있음을 나타내주었다(삿 13:3, 사 13:5, 삿 13:7, 삼상 1:2-10). 이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절정에 달한다(사 7:14, 사 9:5, 마 1장).
아들 출산에는 큰 기쁨이 따랐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극심한 생의 시련을 겪으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욥 3:3, 렘 15:10, 렘 20:14). 그렇지만 더 비극적인 것은 예수를 배신함으로 말미암아, 태어나지 않는 편이더 나았을 가룟 유다의 경우이다(눅 16:24).
이스라엘의 배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더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것이 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낳았다는 말은 그가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들이 미숙할 때 그들을 돌봐주었음을 나타내주는 은유이다(신 32:18, 참조: 겔 17:20, 겔 23:4, 겔 23:37).
시 2:7에서 얄라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나타낸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시는 것으로 해석한다(행 13:33, 히 1:3-5, 히 5:5).
(참조: Buswell, J. O.,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Religion).